69. 왜 여기로 온 줄 알아요?
저대로 살려두기는 힘들다.
나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
애 엄마가 대답없이 침묵했다.
설명이 더 필요할 것 같아서 내가 말을 이었다.
“나랑도 벌써 한 번 싸웠던 데다가 이번에는 아예 납치까지 했잖아? 이서준이야 나랑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우철이 동생이고, 다음에는 더 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저 상태로 놔두기는 힘들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말이야?”
“최소한 더 이상 무공 같은 거 못 쓰게 만들거나 그게 아니면 걔네가 마법 배워왔던 곳 있을 테니까 거기로 돌려보낼 거야.”
“둘 다 안 되면?”
이번에는 내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 되긴 했어도 애 엄마 앞에서 누굴 죽이느니 하는 이야기를 입 밖에 내는 건 내키지 않았다.
오히려 애 엄마가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괜찮아. 내가 다녀왔던 곳도 그런 일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빠한테도 말한 적 있지?”
작년에 애 엄마가 내게 털어놨던 사실.
스무 살에 지현이 가졌을 때부터의 자신이 사실 차수희가 아닌, 다른 세계의 누군가가 수희의 몸에 빙의한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했던 것.
지난 여름까지 애 엄마는 그 세계에 다녀왔다.
집에 들를 때마다 내게 전해줬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쪽도 썩 만만찮은 동네이긴 했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 오빠가 너무 마음 쓸 필요없어.”
“응.”
“그래도 최선은 다해보자.”
“······고마워.”
“왜 고마워? 부부는 일심동체 아냐?”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진심이 담겨 있는 게 느껴졌다.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전생에 지현이랑 그렇게 가까웠다는데.
죽이니 살리니, 무공을 전폐하니 지구에서 쫓아보내니 하는 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으니까.
물론 사마군 놈들 때문이 아니라 지현이 때문에.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졌길래 뭔가 농담이라도 하려고 애 엄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와 정확히 같은 타이밍에 애 엄마도 나를 쳐다보는 바람에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웃었다.
“왜 웃어?”
“오빠는 왜 웃는데?”
둘 다 얼굴을 바꿔놔서 문득 웃음이 나온 것이다.
솔직하게 말했다.
“얼굴 적응 안 돼서.”
“난 이번이 두 번째라서 그런가 괜찮은데? 이것도 잘생겼어.”
“뭐야? 왜 나만 이상한 사람 만들어.”
내가 투덜대고 애 엄마가 뭐라고 다시 말을 하려던 그때.
콰아앙!
굉음이 울렸다.
이제는 정말로 타이밍이 온 것 같아서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호숫가가 보이는 숲에 멈춰서 상황을 파악했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어억! 으어억!”
우철이가 대머리한테 신나게 두들겨맞고 있었다.
계획대로였다.
먼저 가서 함정에 빠진 척 얻어맞고 있으라고 말해두긴 했지.
그래. 그렇긴 한데······.
“잠깐만 타임! 뼈 맞았다고! 야! 아악!”
우철이 너 임마. 너무 찰지게 맞고 있는 거 아니냐?
명색이 내 제자인데 모양새가 좀 그렇잖아.
아까 애 엄마한테 괜히 힌트 준 것도 그렇고 저놈 오늘 내 점수를 상당히 깎아먹는 중이다.
공격을 피하려고 땅을 박찬 우철이가 갑자기 허공에서 멈춰섰다.
놀라서 허둥거리는 걸 보니 자의는 아니고 마법사 계집애, 천유화가 수작을 부린 모양이었다.
우철이를 따라서 날아오른 대머리가 힘차게 주먹을 날렸다.
우철이 몸이 그대로 호수로 내리꽂혔다.
대머리의 허공섭물인지 천유화의 마법인지 모를 힘이 우철이를 띄우더니 호숫가에 털썩 던져놓았다.
몸이 꽁꽁 묶인 이서준이 바로 옆에.
이서준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아니, 형 미쳤어? 생각 안 하고 살아? 왜 혼자 오냐고, 왜! 딱 보면 이상한 거 몰라?”
“남출어청 우철의 아둔함이 온 천하에 이름이 높았는데 환생했다고 별 수 있겠어?”
천유화가 비웃음을 한껏 머금고 말했다.
이서준은 천유화 말 같은 건 신경도 안 쓰이는지 계속해서 우철이를 비난했다.
“이 돌대가리야! 너는 어? 형도 아냐. 구하러 오랬지 누가 같이 잡히랬냐고!”
“서, 서준아. 그래도 어떻게 형한테······.”
“진짜 내가 이런 걸 형이라고. 다 필요없고 스미스 어딨어! 빨리 스미스 데리고 오라고!”
약간 고민이 됐다.
지금 안 나가면 사촌지간의 우애에 상당히 금이 갈 것 같은데, 또 원래 계획을 생각하면 아직 나가면 안 된다.
거봐. 지금 걸려들고 있잖아.
“말 잘했네. 우철. 스미스는 어디 있지? 그자도 환생한 정파의 고수 맞나?”
“······.”
“너희 정파놈들 목적이 성화를 차지하는 거 맞지?”
우철이는 아무 말 없이 눈만 꿈뻑거렸다.
아무래도 나한테 보내는 신호 같았다.
이서준의 비난이 더 이어지기 전에 모습을 드러내달라.
듣고 있으려니 마음이 아프다.
그런 외침을 담은 슬픈 눈빛이었다.
사마군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대충 알았으니 이제는 저 간절한 눈빛에 응답해줘야 했다.
애 엄마에게 눈짓하고 둘이 함께 호숫가로 모습을 드러냈다.
“혹시 나 찾았냐?”
“······!”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사마군 전원이 한 곳에 모였다.
내가 이어 말했다.
“너희는 할 줄 아는 게 약한 애들 잡아다가 두들겨패는 것밖에 없냐? 정정당당하게 한 판 붙자, 어디 신문에 광고라도 내라고.”
“그렇잖아도 조만간 찾아갈 생각이었어. 조금 이르긴 해도 너를 상대할 방법을-”
“아, 그거 말인데.”
애 엄마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너 얘기 듣고 이분이 재밌겠다고 하셔서 특별히 모셔왔다. 너는 이분한테 참교육 좀 받아야겠어.”
“뭐?”
“안녕하세요?”
애 엄마가 웃으며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드는 순간.
파아앙!
바람이 불었고,
순식간에 천유화를 호수 저편으로 날려버렸다.
애 엄마가 말했다.
“다녀올게.”
“조심하구.”
“응. 걱정 안 해도 돼.”
그건 그렇지.
내가 애 엄마가 싸우는 걸 본 적은 없지만······.
아마 나보다 셀 걸.
가볍게 발을 구른 애 엄마가 호수 저편, 천유화가 날아간 곳으로 향했다.
남은 것은 우철이에게 사죄의 말을 쏟아내는 이서준과 묵묵히 눈을 감고 있는 우철이.
그리고 멀대 두 명과 함께 자세를 취하고 있는 대머리.
3대 1에 인질이 둘이다.
이 정도면 적당한 핸디캡이지.
***
간신히 몸을 추스른 천유화가 눈앞의 상대를 노려봤다.
“당신 뭐야! 대체-”
“저기요. 내가 왜 굳이 여기로 데리고 온 줄 알아요?”
“뭐?”
생글거리는 웃음 그대로 상대 여자가 말한다.
“저기서 했어도 괜찮았을 텐데 왜 굳이 여기로 왔을까. 혹시 짚이는 게 있나 싶어서요.”
영문 모를 질문이었고, 당연히 답을 알 수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게 하나 있었다.
‘번역 마법이 아냐!’
상대는 분명 이 나라의 말로 이야기하고 있을 텐데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한데 번역 마법을 쓴 것도 아니었다.
그런 조잡한 잡기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초고도의 기술.
‘뭐야. 저 여자 뭐냐구.’
“잘 모르시겠나 봐요? 으음. 사실 별 건 아니에요. 그냥······, 이미지 관리?”
천유화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긴장한 상태로 공격에 대응할 준비를 했다.
여자가 이어서 말했다.
“왜애. 보물이란 게 주인이 있어도 사람들이 자꾸 탐을 내잖아요? 그러면 욕심 많은 사람들 멀리 쫓아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인도 보물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거든요. 신비감을 적당히 유지하는 게 제 비결이라서요. 그래서 이리로 데리고 온 거예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알아듣게 말해.”
여자가 웃었다.
“그러니까, 너는 지금부터 사람 취급 못 받을 거다. 뭐 대충 그런 뜻?”
그 모욕적인 발언에 답하기도 전에 천유화의 시야가 빙글 돌았다.
세상이 뒤집혔다.
***
이수민은 심혈을 기울여 차를 내렸다.
본질적인 것이 미흡하다면 최소한 구색이라도 갖춰야 하는 법.
하지만 달리 말하면, 아무리 구색을 갖춰봤자 본질적인 것이 빠져 있으면 소용이 없다.
‘어떡하지? 진짜 모르겠단 말야!’
제자 유지현이 말했었다.
잘못한 게 있으면 이실직고하라고.
하지만 도저히 모르겠다.
그저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억울해······.’
그렇다고 유지현이 없는 일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 것도 아닐 터.
무언가 커다란 실수를 한 건 분명했다.
조심스럽게 찻잔을 내면서 이수민은 두뇌를 전력으로 가동했다.
‘생각해 보자. 전생부터 지금까지 지현이랑 같이 지낸 게 이십 년이 넘잖아. 도중에 뭐라도 하나 실수를 했을지도 몰라. 침착하게, 하나하나 생각해 보자······.’
눈발이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버려진 아이 설운혜를 데려왔다.
할 수 있는 한 정성을 다해서 소중히 길렀다.
다만 매번 감싸고 돌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때로는 혼을 낸 적도 드물지만 있었다.
이수민은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그건가? 일곱 살 때 글 배우기 싫다고 도망나갔을 때 회초리로 종아리 때린 거?’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나도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데······. 그리고 회초리라고 해봐야 지푸라기 몇 개 엮은 거잖아.’
그마저도 두세 대 때리다가 도저히 못하겠어서 제자를 끌어안고 잘 타일렀다.
착한 제자는 울먹거리면서도 앞으로는 글 공부도 열심히 하겠다고 답했다.
‘그럼 그건가?’
사마군 옆에서 설운혜 행세를 할 때 줄기차게 들었던 말.
채식 강요.
하지만 이것도 이수민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있었다.
‘나는 운혜 보고 채식만 하라고는 안 했단 말야······.’
정확히 말하면 사부가 하는 거라면 뭐든지 따라하고 싶었던 설운혜와, 그런 제자가 기특했던 이수민이 다른 선택지를 마련할 생각도 안 한 것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일어난 일이었다.
‘아냐. 변명하지 말자. 내 잘못이 맞아.’
유지현이 고기를 좋아하는 모습에 처음에는 충격을 많이 받았지만 미안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저렇게 좋아할 줄 알았다면······.
이수민은 머릿속에 새겼다.
첫 번째 잘못 후보는 채식 강요.
그리고 두 번째 후보를 엄선해 나갔다.
‘소설 내리라고 한 거? 아니면 시도때도 없이 영상통화 하자고 한 건가? 친구들이랑 논다고 했을 때 괜히 삐져서 한 시간 답장 안 했던 거?’
주륵, 하고 찻물이 찻잔 바깥으로 흘렀다.
생각에 빠져 있느라 넘치는지도 몰랐다.
“언니?”
거실에서 유지현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십 분이 넘게 부엌에서 나 홀로 작전회의를 하고 있었으니까.
더는 미적거릴 수 없던 이수민이 거실로 돌아왔다.
“마실래?”
“응. 고마워요.”
침묵과 함께 사부와 제자가 차를 홀짝였다.
호로록 찻잔을 비워내고 유지현이 말했다.
“그러면 이제 말씀해 주세요.”
“뭐, 뭘?”
“언니가 저한테 잘못한 거요. 진짜 솔직하게.”
너무 많거나.
혹은 아무것도 없거나.
결정적인 하나가 무엇인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결국 이수민이 택한 방법은 생각나는 건 전부 다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회초리로 때린 일.
채식 강요.
소설을 내리라고 한 것.
괜히 귀찮게 연락을 자주 한 것.
오늘은 사실 우연히 만난 게 아니라 의도적인 계획이 있었다는 것.
전생부터 현생에 이르기까지 수십 가지의 자질구레한 잘못들이 이수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말을 주워섬기면서 이수민은 흘끗흘끗 유지현의 눈치를 봤다.
‘표정이 안 좋아······.’
전부 다 헛방인 것 같았다.
듣다 듣다 못 듣겠는지 유지현이 손을 뻗었다.
“잠깐만요.”
“으응?”
“회초리 그거 나 기억하는데 하나도 안 아팠구. 그때 언니가 마음 아파서 회초리 꺾어서 삼매진화로 불태운 거도 기억하구. 채식하는 거는 내가 먼저 물어보고 따라하고 싶어서 한 거잖아. 사부님이 왜 사과해. 소설 일도 나 이해해요. 그리고 다른 것도 전부 다 사부님이 잘못한 거 아니야.”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도 이수민은 해방감 같은 건 느낄 수 없었다.
잘못을 부정하면서도 유지현의 목소리가 여전히 나직하고 차분했기 때문이다.
도저히 제자를 똑바로 볼 자신이 없어 이수민은 고개를 푹 숙였다.
한숨 소리가 들렸다.
“휴우.”
“······.”
“언니. 사부님.”
“으응.”
“그러면 그냥 내가 물어볼게요. 대답해 줄 수 있어요? 진짜 솔직하게.”
“응. 뭐든지 물어봐.”
어떠한 질문일지라도 숨김없이 답하겠다.
이수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한데 유지현은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던 질문을 했다.
“언니,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
놀라서 이수민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유지현이 진지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좋아하는 거 말구. 내가 말하는 거 무슨 뜻인지 알죠? 대답해줘요. 있어요?”
“응······.”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이수민은 솔직하게 답했다.
그래. 마음이 복잡하긴 했지만 그런 감정은 분명히 있었다.
유지현이 긴장된 얼굴로 재차 질문했다.
“혹시 그 사람······, 내가 아는 사람이에요?”
이수민은 눈을 질끈 감고 답했다.
“······응.”
대답한 후 눈을 살짝 떴다.
‘뭐야? 왜?’
레스토랑에서 참사가 일어났을 때처럼 유지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지현아, 왜······?”
걱정이 돼서 손을 뻗었다.
“으아앗!”
유지현이 몸을 뒤로 빼면서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