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진짜 손 더럽게 많이 가네.
나오려면 시간 좀 걸리려나?
허공에 둥둥 떠서 그런 생각을 했다.
지현이가 이수민 사는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간 지가 벌써 이십 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 나올 기미가 안 보였다.
그래도 목적지가 이수민 집이어서 적잖이 안심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늘로 날길래 뭘하려고 저러나, 우리 딸이 날아다니는 비행청소년이 돼버리고 만 건가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단 말이지.
자기 사부랑 화해하러 간 거라면 정말 다행이다.
이미 밤이 늦었다는 게 문제지만.
이수민 집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나?
혹시나 자고 간다고 말이라도 하면 애 엄마가 화낼 텐데.
지현이가 갑자기 외박해버리면 그 분노는 온전히 내가 받아내야 한다.
당연히 나는 그러기 싫고, 우리 딸이 그렇게 책임감이 없는 애는 아닐 거라고 믿는다.
지현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긴 한데 안 받는다.
이 기집애가······? 놀기는 지가 놀고 혼은 나보고 나라고?
그렇게는 안 되지.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제서야 받았다.
한데,
<······여보세요?>
“응, 딸. 어디야? 밖에 많이 추운데.”
<나, 아직 산책······. 좀 있다 갈 거야······.>
지현이 목소리가 이상했다.
왜 부들부들 떨리는 거지?
게다가 수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공기가 싸늘했다.
이수민 이 새끼 집에 없는 거 아닌가?
아무리 봐도 지현이 혼자 있는 것 같다.
<······아빠 나 끊을게. 집에서 봐······.>
내가 대답할 틈도 없이 전화가 뚝 끊겼다.
뭔가······, 뭔가 심상치 않았다.
당장이라도 이수민 집으로 처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애써 자제하던 그때.
현관으로 지현이가 나왔다.
역시나 이수민은 없고 지현이 혼자다.
지현이는 터덜터덜 어딘가로 걸어간다.
나는 허공에 멈춰선 채로 몇 분 동안 지현이를 지켜봤다.
힘없는 발걸음으로 향한 곳은 지하철역이었다.
지하철 출입구 계단을 내려가서 마침내 지현이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날아가지도 않는다고?
축 처진 어깨나 경악과 혼란이 뒤섞인 표정이 말해줬다.
단단히 충격을 받은 일이 있는 거라고.
내가 모르는 곳에서 우리 딸이나 이수민과 관련된 일이 벌어졌다.
이럴 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지.
“도와줘요, 유진에몽!”
외치면서 김유진에게 전화를 걸려고 휴대전화를 든 순간.
타이밍 맞추기라도 한 듯이 내 휴대전화가 먼저 울렸다.
“캬아······.”
발신인을 보자마자 내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전화를 받아들고 곧장 말했다.
“김유진 씨. 솔직히 말하세요.”
<네······?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당황한 척 연기도 잘하는군.
나는 확신에 가까운 의혹을 입에 담았다.
“당신 사실은 존나 세고 개쩌는 흑막 같은 거지? 혹시 미래에서 왔나? 아니면 회귀자야? 내가 이미 다 눈치 깠으니까 숨길 생각하지 마쇼.”
<네······?>
김유진이 황당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이 사람 착하고 일 잘하고 다 좋은데······.
순간적인 대응력이 좀 떨어지는 게 아쉽단 말이지.
그런 거 보면 우철이랑 짝짜꿍이 잘 맞긴 하네.
“뭐어. 굳이 숨기고 싶으시면 저도 모른 척 하겠습니다. 아무튼 전화 왜 했습니까.”
<그게요. 저한테 연락이 두 명 왔거든요.>
“무슨 연락 말입니까.”
김유진이 잘 이해가 안 된다는 어조로 말했다.
<하나는 지현이한테 왔는데 수민 언니가 어디 있는지 연락을 안 받아서 걱정된다고 했어요.>
“나머지 하나는 누굽니까.”
<협회에서 마법 가르쳐주는 여자분이요.>
이 시점에서 이미 머릿속의 퍼즐이 착착 맞아떨어져가고 있었다.
이어질 말을 예상하면서 물었다.
“뭐라고 왔습니까.”
<이수민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아는 걸 전부 말해달라고. 정말 꼬치꼬치 캐물었어요. 그래서 일단 아버님한테 말씀드려야겠다 싶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해야 할 일을 정하면서 김유진에게 일렀다.
“일단 지현이한테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시고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김유진 씨는 이제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회귀자는 회귀자 나름대로 바쁠 거 아닙니까.”
<네? 아, 네······.>
“그리고 그 마법사라는 놈들. 협회에서 집도 제공해줬죠?”
<네. 그랬어요.>
“거기 주소나 톡으로 좀 보내주십쇼.”
전화를 끊고 생각을 정리했다.
사마군과 진천군의 한없이 비즈니스적인 관계.
이수민은 아마 사마군을 속이고 있다.
이수민은 현재 연락이 안 된다.
사마군이 김유진에게 이수민의 신상을 캐물었다.
그러면 결론은 명쾌하고도 단순하다.
치코리타 이 새끼, 로켓단한테 잡혀버렸군······.
***
이수민은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고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았다.
‘사마군 새끼들 집······.’
정확하게는 혁련휘나 천유화가 수련 겸 정신단련을 한다고 따로 마련해둔 목조건물이다.
그리고 몸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정신이 들어?”
‘천유화?’
이수민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천유화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계승하다가 정신을 잃어서 일단 집으로 데려왔어.”
“그랬······나요?”
“그러고 보니까 아까 전화 몇 통 왔었어.”
“전화요?”
전화라는 말에 이수민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건 한 명이었다.
천유화가 답했다.
“메시지는 비밀번호가 걸려 있어서 확인 못했구 전화는 받아지니까 받았거든. 어린 여자애 전화. 이름이 하트로 저장되어 있던데. 누구야?”
“······그냥. 아는 동생이에요.”
“그래? 아무튼 걱정하길래 지금 몸이 안 좋아서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대신 전해줬어.”
“고마워요.”
천만다행스럽게도 천유화는 전화한 사람이 누군지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아무튼 아까는 깜짝 놀랐어.”
아직 몸의 감각은 무뎠지만 이수민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알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천유화가 노래하듯이 말을 이었다.
“신교에 있을 때부터 성화에 관심이 많았거든. 내가 가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운혜가 그걸 짊어진다는 게 너무 걱정돼서. 그래서 자세히 알아봤어. 그도 그럴 게 그 전이 워낙 처참했다고 들어서 운혜도 그러면 어쩌나 싶었거든.”
“그, 그래요?”
“응.”
천유화가 이수민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서 눈을 맞췄다.
“근데 운혜는 너무너무 잘하더라구. 그래서 이번에도 같을 거라고 생각했지 뭐야? 난 지금도 윤회 같은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성화의 계승에서 육체적인 거나 무공 같은 건 부수적인 변수에 불과하거든. 여기, 아니면 여기.”
톡톡.천유화가 자기 머리와 가슴 부근을 차례대로 톡톡 두들겼다.
“영혼? 정신? 그것도 아니면 성품? 아무튼 그런 거랑 깊게 연관이 있어. 그래서 환생을 했다고 해도 본질이 바뀐 게 아니라면, 운혜라면 이번에도 잘 해낼 거라고,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괜히 죄송스럽-”
“그리고 있잖아.”
천유화의 눈이 새파랗게 빛났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
이수민은 생각했다.
아무래도 좆된 것 같다고.
천유화의 입에서 절벽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그래. 운혜는 잘했을 거야. 이건 아집을 부리는 게 아니야. 논리적인 사고에 입각한 추론이지.”
그리고 이수민은 눈치챘다.
동굴에 있었을 때까지와는 달리 지금 천유화는 이수민 자신을 단 한 번도 ‘운혜’라고 부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마주보고 있는 이수민과 천유화 본인이 아는 설운혜를 완전히 분리시키고 있었다.
천유화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논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오류가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는 게 맞아. 그게 아무리 실낱같은 가능성이라고 해도.”
천유화가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색의 마나가 퍼져나가 천유화와 이수민을 덮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에 이수민이 물었다.
“······이건?”
“별 거 아니야. 통역마법을 좀 강화한 거?”
천유화가 마저 설명했다.
“마법이라는 게 사실 어떻게 쓰냐에 따라서 차이가 많이 나거든. 예를 들어서 통역마법도 응용을 하면 단순히 말이 통하는 거 말고도 할 수 있는 게 있다? 나 정도 돼야 제대로 쓸 수 있긴 하지만.”
“······응용이라고 하면?”
“지금 대화하고 있는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는지, 사실을 감추는지. 혹은 진실만을 말하고 있는지. 그런 걸 알 수 있다는 거야.”
“······!”
이수민은 깨달았다.
그런 걸 미리 알려준다는 것부터가 독 안에 든 쥐 신세라는 방증이었다.
천유화가 물었다.
“이름이 뭐니?”
“······이수민이요.”
“확실해?”
“네.”
“나이는?”
“스물여섯이요.”
“내 이름은 이수민이 아니며 내 나이는 열일곱입니다. 라고 해 볼래?”
“······.”
이수민은 잔뜩 긴장하면서 천유화가 시키는대로 질문과 대답을 이어나갔다.
하라는 대로 말을 듣는 이유는 단 하나.
혹시라도 착오가 생길까봐.
그리고 들켜버린다면 틈을 찌를 최적의 순간을 찾기 위해서.
몇 번 질의응답을 반복한 천유화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알겠네. 너는 이런 느낌이구나?”
천유화가 다시 물었다.
“그때 처음 만났을 때 가끔 꿈을 꾼다고 말했잖아? 그거 정말이니?”
“네.”
“너는 네가 왜 천마신공을 쓸 수 있는지 아니?”
“······네.”
“후우.”
천유화가 깊게, 아주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이제 편린밖에 남지 않은 희망과, 슬픔과 분노를 섞어 말했다.
“······해봐.”
“뭘?”
“진천군 개새끼······. 해봐.”
이수민은 눈을 감지 않고 부릅떴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진천군······,”
거기까지 말한 후에.
콰아앙!
있는 힘을 다해서 천유화를 후려쳤다.
타앙!
녹색빛의 마력이 유형화되어 그 공격을 막았다.
천유화와 이수민이 삼 미터의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천유화가 증오를 담아 외쳤다.
“진천군! 속였구나, 진천군!”
“좆까. 이 미친년아!”
왠지 기시감이 드는 것을 느끼며 이수민이 맞서 소리쳤다.
‘지금은 내가 불리해.’
지친 몸에서 진원지기까지 끌어다 날린 일격이었지만 전성기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다.
한데 상대는 마법이라는 정체 모를 힘을 수준 높게 사역하는 자.
승산이 없었다.
‘틈을 봐서 도망치는 거야.’
이수민이 흘끗 시선을 문 쪽으로 돌렸고, 문이 열렸다.
이수민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혁련휘, 진태호, 곡비령.
사마군의 나머지 셋이 굳은 얼굴로 들어왔다.
진태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외쳤다.
“정말로? 진짜로 운혜 아니라 진천군이라고?”
곡비령은 복잡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봤으며,
혁련휘는······.
“다시 보게 되어서 반갑구료, 전대 교주.”
이수민이 핏대를 세워서 외쳤다.
“어른한테 말버릇을 그따위로 하니 머리카락이 다 도망가지! 이 문어 대가리 새끼! ”
혁련휘의 미간이 꿈틀 움직였다.
그리고 짧게 말을 흘렸다.
“······제압한다. 손속에 인정을 두지 마라.”
사마군의 나머지 셋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에는 천유화.
뒤에서는 곡비령과 진태호.
그리고 이수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는 혁련휘.
승산이 없다.
해서 이수민은 외쳤다.
꼭 해야만 하는 말.
반드시 전해야만 하는 말.
“너희 잘 들어! 나 짝궁뎅이 아냐! 저년!”
손가락으로 천유화를 가리켰다.
“저년이 사기친 거지! 가슴이랑 등이랑 구분도 안 되는 년이!”
천유화가 조소했다.
“흥, 그래? 나야 뭐 그렇다 치고. 그러면 너는······, 지금부터 확인해 보면 되겠네.”
그리고 한 걸음씩 다가왔다.
포위망이 더욱 좁혀졌다.
곡비령이 말했다.
“교주······님. 그냥 얌전히 계시면-”
“언니는 초치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천유화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곡비령이 입을 다물었다.
이수민은 판단했다.
곡비령 쪽으로 뚫고 나가는 것이 최상책이었다.
하지만 천유화가 말했다.
“괜히 거리 좁혀주지 마요. 마력 있는대로 마법 갈겨서 누더기로 만들어버려.”
이수민이 기겁하면서 입을 열었다.
“이 상도덕도 없는-”
콰앙!
콰아앙!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온갖 공격마법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이수민이 털썩 쓰러지며 나머지 말을 흘렸다.
“-치사한 새끼들······.”
“싸움에 치사하고 말고가 어딨어.”
천유화가 비웃음과 함께 걸어오며 손을 휘둘렀다.
“여엉차!”
단단한 마력의 감옥이 이수민을 옥죄었다.
천유화가 즐겁게 말했다.
“그러면······, 어디 확인 한 번 들어가볼까요?”
이미 전투불능 상태인 이수민이 속으로 절규했다.
‘시발, 시바알······.’
그리고.
천유화의 손이.
앞으로 엎어진 이수민의 옷에 닿으려던 그 순간.
“자, 이제 시작이야! 내 꿈을!”
멀리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천유화가 문 쪽을 바라봤다.
“내 꿈을 위한 여행! 피카츄!”
작게 들렸던 노랫소리가 점점 커졌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걱정 따윈 없어! 없어!”
“내 친구와! 함께니까! 피까피······, 치코치코!”
혁련휘가 말했다.
“태호. 문을 열어봐라.”
“네, 형님.”
진태호가 문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콰아앙!
폭발하듯이 날아온 문짝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말았다.
이수민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는 얼굴의 남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째선지 남자가 표정을 찌푸렸다.
그리고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시발. 진짜 손 더럽게 많이 가는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