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엄마아빠한테 효도해라.
***
유지현은 어안이 벙벙했다.
강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만큼 지금 스미스가 보여주는 무력은 경이로웠다.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나선 스미스가 가볍게 땅을 박찼다.
차라리 어검비행이었다면 이만큼 놀라지는 않았을 거다.
한데 스미스는 어떠한 지지대도 없이, 마치 날개라도 달린 것처럼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손을 떨쳤다.
한 번의 손짓마다 빛이 번쩍였고, 괴수 한 마리의 목숨이 사라졌다.
그러면서도 수시로 지상에서 싸우는 헌터들을 살폈고 적재적소에 지원사격을 해줬다.
위기에 몰렸다면 벗어날 수 있게.
기회를 잡았다면 확실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게.
공중의 괴수를 처리하는 속도만큼이나 지상의 싸움 역시도 헌터들의 우세로 돌아갔다.
그리고 정말로 놀라운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와이번 떼들이 사방에서 스미스를 둘러쌌다.
와이번들을 지휘하는 건 인간형의 괴수 두 마리.
유지현 본인도 간단히 제압하기는 힘들 것 같은 강적들이었다.
일백여 마리의 괴수들이 동시에 입에서 불을 뿜어냈다.
인간형 괴수들의 손에서 발출된 흑백의 강대한 마나도 스미스를 노렸다.
스미스가 점프하듯 날아올라 그 공격들을 피했다.
그러자 오히려 그것이 노림수였다는 것처럼 괴수 무리들이 스미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피해-”
유지현의 다급한 외침이 닿는 것보다, 포위된 스미스가 괴수들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을 것이 먼저일 것 같았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유지현은 분명히 보았다.
‘멈춰’
그런 입모양이었다.
단지 그것만으로, 달려들던 괴수들이 일제히 멈췄다.
마치 그래야만 한다는 법칙처럼 한순간에 속박되었다.
유지현은 그런 일이 가능한 무공을 단 하나 안다.
진정으로 신의 영역에 발을 디딘 자에게만 허락된 권능.
심어검의 언령.
와이번 떼들은 정말로 한 치의 움직임도 허락되지 않고 꽁꽁 묶인 상태였다.
한편 두 마리의 인간형 괴수들은 달랐다.
버둥거리면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마 시간이 더 있었다면 몸의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틈은 결코 주어지지 않았다.
허공에 떠 있던 스미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정도면 되겠지, 라고 가늠하는 것처럼.
그리고,
‘어?’
유지현의 시선에서 일순간 스미스의 몸이 조금 흐릿하게 보였다.
그러다 곧 선명해졌다.
잘못 봤나 싶어 눈을 한 번 깜빡인 순간 또다시 흐릿해졌다가, 원래대로 선명해졌다.
그것을 서너 번 반복하는 사이 스미스의 양손에 빛이 모였다.
칠흑빛을 뿜어내는 게이트에 지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밝은 빛무리였다.
스미스가 가벼운 손짓으로 빛무리를 떨쳐냈다.
그리고 빛이 지나간 자리에, 괴수들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거기까지 정리를 마치고, 스미스가 다시 유지현과 이수민이 서 있는 쪽으로 하강했다.
터억.
땅에 내려앉은 스미스의 얼굴은 처음에 비해 엉망으로 창백해져 있었다.
유지현은 걱정스러워 입을 열었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스미스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전혀 안 괜찮다. 머리가 아파서 죽을 것 같아.”
“그러면 좀 쉬셔야 하는 거-”
“아니, 아직 쉬면 안 돼.”
고개를 가로젓더니 이수민에게 말했다.
“이제 뭘 해야 할지 알지?”
이수민이 덤덤하게 긍정했다.
“그래. 저거 다 나오기 전에 끝장을 보는 거.”
‘저거?’
잠깐 의문이 들었지만, 무엇을 말하는지 굳이 듣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쿠오오오오-
기괴한 소리가 게이트 너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동물의 울부짖음 같기도 하고, 바람이 거칠게 몰아치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리고 게이트 안쪽에서 무언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굉장히 커다랗고 동그란 구체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한 번 깜빡이고, 소름끼치는 광채를 뿜어낸 순간 유지현은 깨달았다.
그건 바로 동물의 눈이었다.
대체 어떻게 생겼을지 감도 안 잡히는 그 괴수는 게이트 안쪽에서 이곳을 노려보면서,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조금 전의 기괴한 울음소리는 그 과정에서 나온 것 같았다.
괴수를 잠깐 응시하던 스미스가 유지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 너도 힘 좀 써야겠다. 도와줄 일이 있어.”
“도울 일이요?”
“그래. 너밖에 못하는 일.”
툴툴거리지만 항상 따뜻하다고 생각했던 스미스의 눈빛이 지금만은 어쩐지 차가워 보인다고, 유지현은 생각했다.
***
지현이가 내게 묻는다.
이해가 잘 안 된다는 어조다.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래. 그것만 하면 돼.”
내가 지현이에게 주문한 건 두 가지였다.
힘을 최대한 이끌어낼 것.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힘의 발현을 멈추지 말 것.
지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곧 지현이 주변으로 세찬 바람이 휘몰아친다.
천마신공에 자연지기가 순응하는 것이다.
내가 이수민에게 전음으로 일렀다.
<확실하게 해. 내력 아끼다가 헛일 될 수도 있으니까.>
<나도 알아.>
퉁명스럽게 답한 이수민이 지현이 등 뒤에서 손바닥을 댔다.
이수민의 주위로는 지현이보다도 훨씬 더 강한 바람이 몰아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변화가 생겼다.
지현이 쪽의 흐름이 더 커지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 평온하던 지현이의 표정이 변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격체전력.
같은 내공심법을 익힌 자들끼리 진신내공을 전달하는 수법.
지현이의 감은 눈이 파르르 떨린다.
내가 경고하듯이 일렀다.
“지금 그만두면 다 죽는다.”
“······!”
나는 조금 더 기다렸다.
이수민의 내공이 더 쪼그라들고 체력이 완전히 바닥날 때까지.
지현이의 천마신공의 화후가 9성에서 10성으로, 거기서 다시 완숙한 수준으로 자리잡을 때까지.
그리고 그에 발맞춘 것처럼 게이트가 점점 커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저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강대한 힘 역시도 아까보다 훨씬 잘 느껴진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결론부터 말하자.
성화가 폭발하면서 이 모든 사단이 난 게 맞았다.
심지어 지현이와의 연결 역시 완전히 끊긴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우리 딸이 ‘환생’이라는, 사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법칙을 경험하고,
그때 주위에 있던 놈들까지 비슷한 시대에 환생하고,
지현이의 부모인 나와 애 엄마까지 영향을 받아버린 것까지도.
모든 게 다 그 엿같은 도깨비불 때문이라는 거다.
처음 이런 생각을 떠올린 이후,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내게 필요했던 게 세 가지 있었다.
성화와 심령으로 연결된 지현이.
상정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게이트.
천마신공을 익힌 이수민.
우선 격체전력으로 지현이의 천마신공의 화후를 급격하게 높인다.
지현이와 성화의 연결이 끊기지 않았다면, 천마신공을 통해 연결이 강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천마일맥의 무공과 신녀로서의 권능은 별개의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것이 게이트에 영향을 주는지까지도 알아봐야 했다.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는 되도록 규모가 큰 게이트여야 했고, 그건 지현이를 이 자리에 데려와야 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 여기까지는 내 생각대로 맞아떨어졌다.
이제는 단 두 걸음 남았다.
지현이를 향해 다가가서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가 알고 있는 우리 딸의 기운.
전생부터 천마일맥과 대적하며 경험해 왔던 천마신공의 기운.
그것들과 조금은 다른, 이질적인 기운을 찾아야 했다.
저기 게이트 안에서 입맛 다시고 있는 괴물 새끼가 튀어나오기 전에.
격체전력을 받고 있는 우리 딸이 다치지 않게.
그리고 나는 그 기운이 어디 있을지 짐작가는 바가 있었다.
힌트를 지현이한테 이미 받았거든.
‘성화를 모시는 의식을 치르고 나면 파란색 불 같은 게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 같거든? 깨어 있을 때나 자고 있을 때나 항상. 그게 되게 따뜻하구 좋아서 나는 좋아했어.’
아마도 중단전.
심장에 있을 거다.
내 이마로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무적신공을 한계까지 운용하고 있어서 그런지, 꼭 어디로 가자고 꼬드기는 것처럼 귓가에 노랫소리가 아른거렸다.
집어치워. 지금 중요한 게 그딴 게 아니다. 우리 딸이 백 배, 천 배 중요하다고.
······마침내 찾아냈다.
심장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묘한 온기를 담은 기운. 오늘처럼 특수한 경우가 아니었다면 발견하기 힘들었을 거다. 그만큼 은밀하게 숨어 있었다.
하지만 들켰다는 게 중요하지.
이 개같은 불덩어리야. 너는 이제 뒤졌다.
지현이에게 전음을 보냈다.
<지금 느껴지냐? 심장에 있는 기운.>
지현이 머리가 겨우 한 치 움직였다.
조심하려고 노력은 했는데, 격체전력에다 내 기운까지 몸속을 오가니까 지현이도 부담이 큰 모양이었다.
<그거 안 좋은 거라서 없애려고 하는데 아저씨 말 믿을 수 있어?>
지현이가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딸은 성화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원래는 내가 심령의 연결을 끊고 계승의식 치르는 게 아니면 계속 있어야 하는 게 맞긴 한데······.’
나 혼자 없애고 싶다고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신녀인 지현이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면 하나, 둘, 셋 하면 아저씨 하는대로 따라줘라. 그걸로 끝나.>
두통이 점점 심해진다.
나도 이 이상 버티기는 힘들었다.
마지막 정신력을 그러모으고 말했다.
<자, 하나, 둘, 셋.>
그리고.
내 공력과 지현이의 의지가 푸른 불길을 꺼뜨리는데 성공했다.
쿨럭, 하고 지현이 입에서 마른기침이 새어나왔다.
심맥에 무리가 갔는지 핏줄기가 입가로 흘렀다.
그게 증거이기도 했다.
심장의 기운이 어디로 연결되고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달성한 거다.
이제 지현이는 신교의 신녀가 아니었다.
이수민에게도 일렀다.
“끝났어. 손 떼도 된다.”
그제서야 이수민이 힘없이 땅바닥에 털썩 엎어졌다.
나도 엎어졌다.
지현이까지 셋이 한꺼번에 포개졌다.
이수민과 내가 지원사격해준 덕분에 지상의 괴수들도 조금 전에 정리가 끝나고, 헌터 애들이 우리를 빙 둘러싸고 쳐다보고 있었다.
힘없는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뭘 봅니까. 구경났······. 아, 이쪽 볼 만도 하네요. 저것 때문에 그럽니까?”
아까보다는 명백히 크기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게이트 크기가 어마무시했다.
S랭크 최상위 정도는 충분히 될 거다.
거대 괴수는 약이 바짝 올라서 어떻게든 이쪽으로 넘어오려고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지금보다 게이트 크기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어쨌든 넘어오긴 할 것 같았다.
지친 몸을 털고 일어나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이수민 뺨을 두들겼다.
“일어나봐. 야!”
이수민이 비틀거리며 상반신만 일으켰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저놈이랑 싸울 힘 남아 있냐?”
“······.”
당연히 없겠지.
격체전력으로 내공 넘겨주는 건 운기조식해서 회복하는 수준의 손해가 아니다.
영구적인 상실에 가까운 것이어서 새로 쌓아가야 했다.
이수민 이 자식, 당장은 우철이랑 붙어도 질 건데 거기다가 체력까지 전부 소진했으니까. 내가 일부러 그렇게 유도했고.
대답 없는 이수민을 잠깐 응시한 다음 한껏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놈을 여기로 넘어오게 한 다음에 싸우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쌤 그러면 어떻게 해요?”
지쳐서 숨을 헐떡이는 정예슬이 물었다.
나는 잠깐동안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음······.”
그리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사실은 깊은 내적갈등을 겪는 표정을 꾸미고 답했다.
“어떡하긴 어떡합니까. 여기서 제일 센 내가 책임져야죠.”
“······!”
모두가 술렁였다.
사회생활 해 본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 ‘책임’.
거기서 한없는 불길함을 감지한 것이리라.
“여기서 드래곤볼 읽은 사람 있습니까? 있으면 손 한 번 들어봐요.”
절반 이상이 손을 들었다.
뭐야. 이거밖에 안 돼?
나머지 절반은 대체 뭐지?
의문이 생겼지만 일단 놔두고 재차 말했다.
“셀이 자폭할 때 손오공이 어떻게 했습니까. 아니면 거 있잖아요. 마인부우랑 싸우던 베지터라던가······.”
“쌤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은근히 이쪽 문화에 통달한 정예슬이 가장 먼저 눈치채고 외쳤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쟤 나오기 기다렸다가 같이 싸우자고? 내 생각에는 나 혼자 싸우나 정예슬 씨 백 명 달고 싸우나 큰 차이 없을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하시나요. B랭크 헌터 정예슬 씨.”
“그래도, 그래도요! 뭐라도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도움이고 자시고 저 새끼 넘어오기 전에 처리하는 게 제일 좋다니까 그러네. 어? 저것 봐라. 저놈 머리 내미는 거 봐요!”
일제히 시선이 게이트로 쏠렸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머리 내밀고 있긴 했다.
으윽. 저거 꼴보기 싫어서라도 빨리 해결봐야겠다.
“아무튼 반론은 안 받습니다. 그리고 뭐, 내가 꼭 죽는다 그랬어요? 이래놓고 멀쩡하게 돌아와서는 ‘다녀왔어’ ‘어서 와’ 이러고, 서로 뻘쭘해하고.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아니면 뭡니까. 진짜로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 이겁니까? 이야, 정예슬 씨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농담처럼 말해도 정예슬은 수긍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게이트 안에 들어가서 저런 괴물이랑 싸운다는 게 말이나 돼요······? 다른 게 또 있을 줄 어떻게 알아요. 쌤 와이프도 있다면서요. 딸도 있다면서. 가족은요. 가족은 어떡하고요.”
뭐랄까.
그건 네가 걱정 안 해줘도 될 문제인 것 같은데······.
아무튼 마음씀씀이 자체는 고마웠다.
정예슬에게 말했다.
“정예슬 씨. 지금까지 내가 못되게 굴어서 미안했습니다. 그게 다 정예슬 씨 포텐셜을 높이 사서 그런 건데. 내 마음 알죠?”
“흐윽, 흑. 알죠, 당연히 알죠······. 그러니까 앞으로도 괜히 폼 잡고, 내가 실없는 얘기해도 받아주고, 훈련도 시켜주고 그렇게 하라고요오······.”
“정예슬 씨는 나 없어도 잘할 겁니다.”
이번에는 최민호 쪽을 바라봤다.
“최민호 씨.”
“네!”
정말로 진심을 담아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임플란트. 미안했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최민호가 고개를 숙인다.
이번엔 김유진.
“여러모로 고마웠습니다, 김유진 씨.”
말하면서 눈을 찡긋했다,
김유진이 대단히 떨떠름하게 받았다.
“아, 아뇨. 별말씀을······.”
그렇게 안면 있던 헌터들에게 빠짐없이 인사를 하고 나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수민에게 다가갔다.
이수민이 대뜸 말했다.
“나도 같이 가.”
나도 곧바로 답했다.
“싫은데? 너 싸움 개못하잖아.”
“너······.”
“그리고 말 안 했는데 아까 금제 풀어놨거든? 천군아, 너 이제 자유야.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라. 그리고 생각 있으면 고기도 한 번 먹어보고 그래. 맛있다니까? 이거야 네가 알아서 할 일이긴 한데. 음, 그리고 그······, 뭐냐. 지금까지 내가 있잖냐······,”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거리다, 툭 내뱉었다.
“내가 좀 많이 미안했다. 그렇게 알고, 아무튼 잘 살아.”
“기다려! 하무-”
이수민은 미처 말을 끝맺지 못했다.
더 말 섞기 귀찮아서 혈도 짚어버렸거든.
우철이에게도 김유진처럼 눈 한 번 찡긋해주고, 이번에는 지현이에게 다가갔다.
지현이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기절해 있다.
심어로 전달해놓으면 기억에 남긴 하겠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말 안 했는데 네가 쓴 소설 봤거든? 그거 제법 재밌더라. 글을 잘 쓰더라고. 처음에도 말했지? 너는 어려서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많을 거라고. 되도록이면 헌터 같은 건 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라.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엄마아빠한테 효도도 하고. 그럼 나 간다. 잘 지내.”
그걸로 마지막이었다.
모두를 향해 한 번 씨익 웃어주고, 이제 머리까지 거의 다 내민 괴수에게로 날았다.
그리고 새하얀 빛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