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김유진 씨, 내가 많이 미안합니다.
이게 평범한 사냥이었다면 굳이 시간을 들일 이유는 없다.
잡아다가 쥐어패면 그만이지.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처맞은 자는 움직이지 못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이번엔 경우가 좀 다르다.
단 한 톨의 불씨도 남기지 않고 뿌리까지 화근을 없애고 싶었다.
지현이를 노리고 접근한 거라면 응당 그래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놈들이 뭘 원하는지, 그게 우리 딸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아낼 필요가 있었고.
새로 각성자 등록을 한 놈들.
정파 에이스.
흑막 비스무리한 게 아닐까 싶은 헌터 정철우까지.
전부 다 굴비처럼 엮어서 매달아주마.
***
첫째날.
“쌤 오랜만!”
으레 하던 실없는 말과 함께 정예슬이 다가왔다.
“요즘 왜 안 오셨어요? 나 쌤 보고 싶어서 진짜 울 뻔했잖아.”
“그거 참 신기하네. 나는 지금부터 울고 싶어지던 참인데.”
정예슬이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오, 그래. 이거지. 이 틱틱대는 말투. 이게 그리웠다니까요?”
“됐습니다, 빨리 자기 자리 가세요.”
손을 내젓고는 공터를 둘러봤다.
이수민은 안 왔다. 오늘은 안 와도 된다고 말해뒀으니까.
지현이도 없으니 계획을 실행하기에 적절한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사냥감들은 저기 있군.
저번에 카페에서 봤던 남녀 한 쌍이다.
남자 이름이 신세기였고 여자 이름은 김신지였는데, 편의상 그냥 1호기와 2호기로 부르기로 하자.
“1, 2호기······, 가 아니라 신세기 씨, 김신지 씨?”
“네?”
“이리로 와 보십쇼.”
의아해 하면서도 1, 2호기가 쫄래쫄래 이쪽으로 왔다.
“거기 스톱. 가만히 서 계세요.”
두 녀석 주위를 한 바퀴 빙 돌았다.
······최소한 괴수로는 안 보이네.
혹시나 지현이를 노리고 괴물 놈들이 사람처럼 둔갑해 나타난 건가 싶었는데, 이건 좀 너무 나간 생각이었나?
그렇다고 안심이 된다는 건 아니지만.
조금 거리를 벌리고 말했다.
“둘 다 낼 수 있는 힘 다 내서 나 공격해 보세요. 폼 안 나도 됩니다. 아직 교육 못 받아서 그런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마나량 체크하려는 거니까요.”
테스트를 해 본 결과 이것도 정상이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는지 나름 자세는 잡는데 익숙지 않아서 몸놀림이 엉성했고, 마나로 강화한 신체능력은 측정 결과대로 A랭크 수준.
모범적인 초보 각성자라고 봐도 좋았다.
그러면 혹시 성격에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거기 최종면접까지 가셨어요? 와, 대박.”
“그래도 이왕 각성한 거니까요. 이게 좀 더 의미 있는 일일 것 같아서요.”
“그리고 보니까 페이도 이게 더 세더라고요. 거기 혹한 것도 없다면 거짓말이죠.”
“인정. 금전적인 것도 절대 무시 못하죠.”
“아마 오빠나 언니나 한 일이 년만 하시면 A랭크 달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도 아직 실적 때문에 B랭크거든요.”
뜻밖에 사교성까지 좋은 녀석들이었다.
한 집단에 새로 들어가는 자들이 취할 수 있는 이상적인 스탠스.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발현되는 서글서글한 인싸의 기운이 놈들의 주변으로 감돌았다.
연락처 교환하고, 기념이라고 셀카도 찍고 아주 난리가 났다.
이거 뭔데.
꿍꿍이속이 있는 놈들이면 거기에 맞게 행동해야 되는 거 아니냐?
왜 성격이 좋냐고. 왜.
하지만 요모조모 살펴봐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
이쯤 되면 나도 이성적으로는 깨닫고 있다.
이 녀석들 사실은 좋은 녀석들이었어······.
근데, 그러면 우리 딸한테 왜 접근한 거지?
정말로 다른 뜻 없이 우리 딸 소설이 재밌어서?
아냐. 그럴 리가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결국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채 첫째날 훈련이 끝났다.
명목상 출장으로 되어 있어서 숙박업소에 체크인을 하고 들어왔다.
이수민이 메시지를 하나 보내놨길래 확인해 봤다.
<날씨가 많이 무덥네요. 좋은 하루 되시고 오늘도 화이팅하세요~! *^^* -이수민 드림->
뭐지? 이 새끼 혹시······.
“더위 먹었나?”
영업사원이 보낼 법한 안부문자였다. 답장은 하지 않았다.
지금 머리가 복잡했다.
뾰족한 수가 안 떠오른다면······, 그 방법으로 갈 수밖에 없겠군.
역시 정공법이 최고지.
***
남자의 이름은 신세기.
나이는 스물여섯 살.
지금껏 나름대로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다.
서울의 괜찮은 대학을 나와서, 마찬가지로 꽤 괜찮은 진로를 목표로 열심히 나아가는 중이었다.
세 달 전에 이상한 꿈을 꾸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매일마다 이어지는 꿈에서, 신세기는 고풍스러운 매화 문양이 들어간 중국 전통 옷 같은 걸 입고 허리에 검을 차고 다녔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나쁜 놈들과 싸우기도 하고, 모험과 낭만을 즐기기도 했다.
그게 처음에는 재밌었는데······.
“형, 저 진짜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간만에 동아리 선배를 만난 술자리에서 술이 좀 들어가고, 농담조로 털어놓은 말이었다.
그런데 함께 술을 마시던 선배 이서준이 몹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세기야.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
“네, 형.”
“너 혹시 전생 같은 거 믿냐?”
신세기는 생각했다.
이 형 작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그새 다단계에 빠져버린 건가?
대충 기회 봐서 빨리 집에 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했건만 이서준은 결코 틈을 주지 않았다.
뭔가에 홀린 듯이 설명을 듣고, 끌려다니다가, 정말로 각성까지 해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신세기는 어느새 말 같지도 않은 비밀결사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함께 동아리 활동하던 선후배 두어 명이 신세기를 반갑게 맞이해 줬다.
‘다들 멀쩡해 보이는데 대체 왜? 그리고 나는 왜?'
자괴감에 신세기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신세기가 그 사이비 모임을 관두지 않은 이유는 오직 하나.
거기서 만난 김신지 때문이었다.
스물여섯 인생에 첫눈에 반한 상대는 처음이다.
김신지는 이서준이 어릴 때부터 알던 동생이라고 했다.
눈치 빠르게 신세기의 마음을 알아챈 이서준은 ‘쟤네 분명히 사이 안 좋았는데······.’ 라는 영문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다, 이내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내가 다리 놔줄게.”
“형, 진짜요?”
“대신 나중에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라.”
그 부탁이란 게 이번 일이었다.
“그래서 유지현이라는 애랑 친해지려고 들어 왔다?”
“네······.”
얼굴이 호빵맨이 된 신세기가 털어놓은 내용을 종합하면 이랬다.
그러니까 정파 에이스란 놈이 그 코찔찔이 새끼의 환생이라 그 말인가?
비겁한 놈들이 우리 딸 합공하다가 백운상이가 그렇게 애지중지하고 자랑하던 불덩어리 날려먹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걸 또 우리 딸한테 캐물으려고 접근했다?
“이런 뻔뻔한 새끼들을 봤나······.”
방금 들은 이야기가 일리가 있냐 없냐의 문제를 떠나서,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
이래저래 얘기 들어보면 우리 딸이 전생에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인데 그 일을 현생까지 끌고 온다고?
심지어 원인 제공한 놈들이?
“후, 도저히 안 되겠다. 한 대만 더 맞자. 아니다. 두 대, 세 대 맞자.”
“제발! 차라리 저를 때리세요! 신지는 더 이상은 안 돼요!”
“오빠, 오빠······.”
“얼씨구. 잘들 논다.”
하는 꼬락서니들이 아주 가관이었다.
내가 뭘했다고 그래.
저 여자애는 아직 한 대도 안 때렸는데.
지가 제풀에 겁나서 다 말해놓고선 왜 나한테 그러냐.
이제는 아예 서로 부둥켜안고는 애원하고 있다.
뜻밖에 사랑의 큐피드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아무튼 너네 말한 대로면 그 유지현이라는 애한테 해코지를 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 말이지?”
“네, 네. 친해진 다음에 아마 터놓고 이야기를 할 계획이었던 걸로······.”
“거짓말하면 뒤지는 거야. 알겠냐? 방금까지 한 말 중에 거짓말한 거 있는지 네, 아니오로 대답해라.”
“없어요. 진짜로 제가 아는 것만······.”
둘다 전생에는 제법 잘나가는 애들이었나 본데, 그래봐야 제대로 각성한 것도 아니고 사실상 내공만 있는 일반인이나 다름없다.
내 기세에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이건 진실이라고 봐도 되겠지.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걸 물었다.
“그러면 너네 모임 있다며. 방금도 거기 가는 중이었냐?”
“그건······.”
“솔직히 말해. 내가 걔들을 죽이기라도 한대? 확인차 가는 거야, 확인차.”
거짓말은 안 했다.
죽일지 말지 확인차 가는 거지.
“나도 너네가 캐고 다니는 거에 관심이 많단 말이야. 이상한 애들이 들쑤시고 다니는 것 같아서 일단 힘으로 제압하긴 했지만, 말이 통하면 협력할 수도 있는 거고. 그러니까 당장 불어라.”
“그게······.”
짜식이 진작 말할 것이지.
이서준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모임장소라고 했다.
거기 비싼 아파트로 아는데.
집 비밀번호는 모른다고 해서 신세기의 휴대전화로 연락을 보내놨다.
<형, 저희 한 시간 안에 가는데 형 집으로 치킨 주문해놨으니까 배달 먼저 오면 문 열어주세요.>
그리고 조금 기다리고 있으려니 배달 오토바이 하나가 들어섰다.
반색하며 다가갔다.
“그거 504호 치킨 맞나요?”
“네.”
“받으러 나와 있었는데, 결제는 미리 했고요.”
“네,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배달원이 별 의심 없이 치킨상자를 넘겨줬다.
다섯 마리나 시켜서 양손이 묵직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생각했다.
신세기와 김신지는 거의 말단 조직원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의심 받을 일도 적으리라 생각해 투입시킨 것이고.
그러니 어쩌면 그 둘은 정확한 사정을 모를 수도 있다.
우리 딸과 터놓고 이야기를 한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고, 검은 속내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지.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망설임없이 다 저세상으로 보내줄 계획이었다.
띠잉.
엘리베이터가 5층에 도착했다.
504호는 왼쪽 복도였다.
문 앞에 도착했다.
들어가기에 앞서, 조용히 문에 귀를 대고 기감을 집중했다.
열 명 내외.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린다.
‘아니, 그래서 어떻게 친해질 건데? 걔 중학생이잖아. 우리 다 성인인데 걔 입장에서는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니까?’
‘그러니까 댓글도 좀 열심히 달고, 걔가 쓴 소설 팬클럽처럼 가자니까? 그게 최고야.’
‘근데 솔직히 믿을까? 유지현 걔도 상식이란 게 있으면 자기가 쓴 게 트래픽 낭비라는 것 정도는-’
‘몰라. 걔 진짜 몰라. 이거는 믿어도 돼.’
‘그러면 음······, 뭐가 좋을까요?’
‘나, 나! 좋은 생각 있어!’
‘뭔데?’
‘우리 다 같이 A4 용지 다섯 장 분량으로 감상문을 쓰는 거지. 그거 가지고 걔 초대해서 독서 모임처럼 진행하는 거 어때?’
‘A4 다섯 장을 쓴다고?’
‘응. 글자 크기랑 자간으로 장난 안 치고.’
‘아, 그건 좀······.’
“······.”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오른손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띵동.
‘배달 왔다.’
‘이건 솔직히 막내가 나가자.’
‘근데 다리랑 날개 세트 맞아? 나 퍽퍽살 싫은데.’
‘누나 진짜 치킨 먹을 줄 모른다······.’
웅성거리는 목소리 속에서 누군가 답했다.
“네, 나가요!”
곧 문이 열렸다.
현관에서 거실이 바로 보이는 구조였다.
남녀 십여 명이 둘러앉아 고심하는 얼굴로 토의하고 있었다.
“그러면 감상문 포인트는-”
“캐릭터 어때? 제일 좋아할 것 같은데.”
“문체도 자부심 쩌는 것 같은데 그거도.”
“아니지. 스토리 라인으로 가야지.”
김유진 씨, 내가 많이 미안합니다.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이런 놈들 뒤 밟으려고 그만 번거롭게 부탁씩이나 하고 말았다.
도저히 면목이 없었다.
현관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쾌활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 주시면 돼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와중에 왼손에 쥐고 있던 치킨부터 넘겨주고, 손을 뻗어 현관문을 닫았다.
그러자 몇 명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치킨을 받아든 남자가 얼떨떨하게 물었다.
“저, 왜 그러세요? 혹시 목 마르시면 물이라도 한 잔······.”
그리고 누군가 팟, 하고 외쳤다.
“나 진짜 좋은 생각 났어. 완전 레전드급 아이디어!”
······더는 못 참겠다.
굳이 힘주지 않아도 폐부에서 목소리가 끓어나온다.
“레전드 맞네······.”
“네?”
바로 정면의 남자가 되물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여기 비싼 데니까 기본적으로 방음도 될 거고.
내공을 최대한 끌어올려 거실 전체를 감쌌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치킨 박스에 내공을 가득 실어 거실 중앙으로 내던졌다.
튀김옷에 감싸인 닭뼈들이 당가절기 만천화우처럼 비산했다.
순간적으로 비명이 터져나왔다.
비명소리를 반주 삼아 조용히 읊조렸다.
“그걸로 감상문 쓴다는 너네 인생이 레전드라고 이 병신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