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저랑 만나주시겠어요?
“언니 안 내려가요?”
“먼저 내려가. 나 잠시만 볼일 있어서.”
훈련 끝나고 뒷정리하는데 이수민이 등 뒤에서 나를 불렀다.
“잠깐 나 좀 보죠.”
오늘 하루는 참으려나 했는데 반응이 빨리 오네.
느린 동작으로 돌아서서는 한껏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답했다.
“뭐냐? 대련 조금 한 게 그렇게 아쉬웠어? 거 있잖아. 솔직히 내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긴 한데, 너 혹시 그 고통에서······.”
“얻어맞는 거 안 좋아하니까 쉰소리는 집어치워!”
이 자식. 꼭 선불 맞은 멧돼지마냥 흥분한다.
쿵쿵 발을 구르는 소리가 온 공터를 울렸다.
이 풋내기 같은 놈······.
“그럼 뭐야. 왜 부르는데.”
“대체 무슨 속셈이지?”
“뭐가.”
이걸 어쩌나.
속셈이 너무 많아서 하나를 콕 집어서 말 못해주겠는데.
“지현이 말하는 거야. 유지현! 걔한테 무슨 속셈이 있냐는 말이야!”
귀를 후비적대며 답했다.
“무슨 생각이긴. 애가 착하고 귀엽고 자질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뭐······?”
이수민이 갑자기 자기 이마에 손바닥을 올린다.
혈압이 오르나봐?
내가 최근에 많이 느꼈던 기분이지.
근데, 나야 소림사 금강부동신공 덕을 많이 봤지만 너는 어떨까······.
“걔가 너랑 친하다고 했었나? 근데? 그래서 나보고 뭐 어쩌라고. 내가 너랑 원수졌지 지현이랑 원수졌냐? 애가 싹수가 보여서 나도 한 수 가르쳐주고 싶다는데 니가 왜 난리치냐. 어?”
“그건, 그게······.”
이수민은 우물쭈물 대답을 못한다.
“그러고 보니까 저번에 나한테 얻어맞을 때도 그랬지? 진짜로 제자로 삼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냐?”
“제자 정도는······!”
“그때도 말했지만 안 돼. 허락 안 한다. 마교 무공을 가르쳐주지 않을 거라고 해도 안 돼. 너는 제자를 둘 수 없고 네 전생을 알릴 수도 없다.”
이수민도 머리로는 왜 안 된다는지 이해는 할 거다.
사승 관계라 함은 대체로 선대의 은원까지도 이어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얘도 나름대로 딱하긴 해.
상황과 자기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서 꼼짝도 못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그리고 제자로 삼을 것도 아니라면 내가 지현이랑 가까워지건 말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 이거야. 네가 무슨 걔 부모라도 되냐?”
“부모는 아니지만······.”
뭐, 임마.
이제 사부도 아냐, 이 자식아!
“두 번의 경고로 두 번의 기회를 줬다. 세 번째는 없어. 내가 무얼 하든 관여하려고 하지 마라. 너는 그냥 너대로 편하고 즐겁게 살아. 알겠냐?”
“······.”
대답 안 들었지만 그 정도는 그냥 봐줬다.
근데 이 새끼가 정말 포기라는 걸 모르나보네.
“지현이 아버지. 제가 드릴 말씀이······.”
“지현이가 요즘 안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나쁜 친구, 가 아니라 아무튼 아주 심성이 나쁜 사람과 어울려서 제가 걱정이 돼서요.”
“스미스라고, 저도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인데 지현이한테 나쁜 영향 줄까봐······.”
나한테 팩트로 두들겨맞고 그걸 나한테 와서 하소연하는 이 새끼를 내가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거냐.
잡상인 거절하는 말투로 무장하고 말했다.
“지현이한테 들어보니 얘기가 좀 다르던데요.”
“그거는 지현이가 아직 어리고 잘 몰라서-”
“지현이도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정도는 압니다.”
“앗······.”
대체로 이놈은 우리 딸을 너무 과보호하려고 든다.
그건 내 권리란 말이다.
“그리고 저도 좀 알아봤는데 거기가 그렇게 안 좋은 자리도 아니고, 위험한 것도 아니고 아버지로서 말릴 상황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아아······.”
이수민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하나하나 줄여나간다.
“정 걱정되면 제가 그 스미스라는 사람이나 다른 분들을 만나 봬도 되는 거고요.”
“그러면 제가-”
“물론 이수민 씨 말씀은 감사하지만 제가 직접 자리를 가져도 될 것 같습니다.”
“네······.”
네가 나설 자리가 없다는 걸 확실하게 알려주듯이.
“지현이한테 신경 써주시는 건 항상 감사합니다. 지금 지현이 집에 있는데 보고 가시겠어요?”
“아뇨, 아뇨. 실례했습니다······.”
찰거머리 같은 놈이 드디어 멀어져간다.
이 정도까지 했으면 괜찮겠지.
마침내 요 며칠간 그렸던 큰그림을 마침표까지 찍은 것 같다.
아주 홀가분했다.
그리고 집에 다시 돌아왔는데,
“끄아아아아!”
배 속에서부터 울려퍼지는 것 같은, 지현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딸, 왜!”
지현이 방으로 다급하게 달렸다.
***
유지현은 현재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맛보고 있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주 기분이 좋았다.
연재하는 웹사이트에 로그인했더니 댓글 알림이 수십 개나 떠 있었다.
물론 달리는 댓글이란 게 대체로 <오늘도 실컷 웃고 갑니다 작가님 화이팅 ^^> 같은 종류이긴 했다.
뼈를 깎는 창작의 고통으로 진지하게 써낸 글인데.
하지만 진검승부와도 같은 웹 연재를 해나가면서 유지현의 멘탈도 나름대로 단련되고 있었다.
그 정도야 글에 보여주는 관심의 표현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한데, 한데.
“뭐야, 뭐야 이 사람······.”
<첫 에피소드부터 이상하네요. 마교가 지나치게 강하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작중의 시대를 고려하면 당시 기준으로 전체 세력이라던가, 무공의 수위가 너무 강해요. 만약 마교가 이만큼 강했다면 세력비라던가 정세가 완전히 달랐어야 하고요. 흠, 작가님 혹시······?>
장문의 댓글.
<글쎄요, 다른 분들은 그냥 개그코드로 웃고 넘기시는 것 같은데······ 주인공 편의주의적인 전개가 너무 심하네요. 천마앙복이요? 황도 지하실 구경하고 싶어서 안달난 거 아니라면 ㅎㅎ>
<이 지역에서 마교가 이렇게 민초들의 지지를 받는다고요? 솔직히 개연성 측면에서 말도 안 되네요. 작가님이 글을 쓰실 때 조금만 생각이란 걸 하셨더라도 이렇게는 안 썼을 것 같은데.>
개연성 지적.
<사실 쭉 읽으면서 작가님의 사상이 좀 의심되긴 하네요. 작가님 이 댓글 보시면, 갑자기 이런 말씀드려서 죄송하지만······, 천마 개새끼 한 번 해보시겠어요?>
압도적 비난.
마지막 댓글까지 보는 순간 유지현은 저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다.
“끄아아아악! 뭐야, 이 사람! 나한테 왜 이래애!”
“딸, 왜. 벌레 나왔어?”
아버지 유수현이 방문을 벌컥 열었다.
그 와중에 반사적으로 유지현이 말했다.
“아빠아. 노크!”
“아, 미안.”
방문을 연 상태 그대로 문 바깥쪽을 똑똑 두드리고 유수현이 다시 물었다.
본래라면 ‘그게 무슨 노크야’ 라고 따졌어야 하지만 유지현은 지금 그럴 겨를까지는 없었다.
비척비척 의자에서 일어나서 유수현에게 달려갔다.
“아빠, 악플. 악플. 저 사람 이상해······.”
“어디 봐. 아빠가 보고 혼내줄게.”
마치 구세주라도 나타난 것처럼 유지현이 휴대전화를 유수현에게 건넸다.
한데 반응이 이상하다.
“흠, 으흠······.”
고개를 주억거리는가 하면 ‘그렇지. 과연, 음. 그래.’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불길한 예감이 든 유지현이 유수현의 팔에 매달려서 말했다.
“봐봐. 이거 완전히 선동과 날조! 그냥 비난하려고 쓴 거잖아. 그치, 아빠? 아빠가 보고 반박댓글 써줘. 이 사람 차단하면 내가 지는 것 같단 말야!”
유수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음······. 딸?”
“응.”
“그게, 아빠가 보기에는 이 사람 말투가 좀 험해서 그렇지, 나름대로 건설적인 의견도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지금껏 믿고 있던 세상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소리를 유지현은 들었다.
네? 건설적인, 뭐요?
“딸은 앞으로도 글 쓰고 싶다고 했지? 그러면 그, 뭐랄까 정당한 지적을 수용하고, 좀 더 사실적이고 완성도 높은 글을 쓸 수 있도록-”
하지만 유수현이 하던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지옥에서 올라온 것 같은 어두운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 있어?”
“응?
이번엔 좀 더 명확한 목소리로,
유지현이 말했다.
“······아빠가, 아빠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아니, 딸. 아빠 말은 그게 아니라-”
“아빠 진짜, 아빠가 더 미워. 나 화났어. 이씨······.”
유지현은 여리여리한 손에 힘을 가득 주고 유수현을 방문 밖으로 밀어냈다.
내공은 쓰지 않는 게 원칙이어서 오직 순수한 힘만으로 사력을 다해.
유수현은 당황하면서 밀려났다.
“어, 어. 아빠 넘어진다. 딸, 근데 진짜로 이거 생각을 좀.”
“빨리, 나가아!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아빠 필요없어!”
약 십 초간의 실랑이 끝에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의 방에는 유지현 홀로 남았다.
모든 게 무의미한 것 같다는 무력감에 유지현은 벌러덩 침대에 드러누웠다.
연재 사이트 앱을 새로고침해봤다.
그새 댓글이 몇 개 늘어나 있다.
울분을 가득 담아 중얼거렸다.
“나쁜놈······. 닉네임부터 마음에 안 들어······.”
‘정파 에이스’
뭐야. 세상에서 제일 야비한 짓 잘한다는 말인가? 그걸 좋다고 광고하고 다니네.
분명 현실에서도 음흉하고 위선적이고, 키보드 앞에서는 고금제일인이지만 집 밖에만 나가면 삼류도 아니고 오류 칠류 십류일 게 틀림없다.
유지현은 자신의 생각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통찰력에서 나왔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때, 댓글 알림이 하나 더 왔다.
<천마가 등선? 와, 진짜 가지가지하네요. 작가님 얼굴 한 번 보고 싶네 ㅋㅋ>
“끄아아아악!”
마침내, 실낱처럼 붙잡고 있던 유지현의 이성이 완전히 끊어졌다.
너는 진짜 잘 걸렸어. 내가 본때를 보여줄 거야.
손가락으로 분노를 줄기줄기 흘리며 유지현이 답댓글을 달았다.
ㄴ남겨주신 댓글 잘 봤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비난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네요! 글에 개연성이 없다니요, 천마는 등선을 하면 왜 안 되죠? 제대로 알지도 못하시면서 계속 비난 댓글을 다시다니 저도 어떤분인지 꼭 한 번 뵙고 싶은데 저랑 만나주시겠어요?
ㄴ콜
ㄴ쪽지 보내겠습니다
그 소식은 곧 연재하던 웹사이트를 넘어 웹소설 커뮤니티 전반에까지 퍼져나갔다.
제목 : 칠대천마의 전설 작가 드디어 글 밖에서도 개그감 폭발
내용 : 악플러한테 현피 신청함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근데 악플 아니자너
ㄴㅇㅈ
ㄴ팩트) 정당하고 건설적인 비판이다
ㄴ이게 맏따 내가 봄
ㄴ개그물인데 너무 그러지 마라
ㄴ니가 더 나쁘다
ㄴ작가 본인이 개그물 아니라 함
ㄴ작가 자기가 무슨 대문호인 줄 알자너 ㅋㅋㅋㅋㅋ
ㄴ어디서 만난대?
ㄴ자기들끼리 쪽지로 얘기하나 본데
ㄴ근데 칠대천마 작가 여자라는 거 진짜임?
ㄴ하와와 여중생쟝이자너 나는 믿고 있다
ㄴ이번에 보면 알 텐데 ㅋㅋㅋ
ㄴ어디서 하는지 몰라서 아쉽다야
ㄴㄹㅇ 팝콘각 오졌는데 아ㅋㅋ
그리고 어두운 방, 모니터 너머.
한 남자가 차갑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