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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이 천마인데 나는 무림맹주-26화 (26/130)

26. 쌤 말 진짜 이쁘게 하신다.

어검비행.

검을 이용한 무의 가장 높은 봉우리 중 하나라 알려져 있고, 실제로도 그렇긴 한데······,

솔직히 폼 잡는 용도 말고 평소에는 쓸 일 없다.

땅이라는 지지대를 가지지 못한 인간에게 허락된 일이란 그리 많지 않으니까.

제대로 마음먹고 싸울 때는 오히려 손해라 이거지.

칼 위에 올라타서 날아다녀 봤자 뭐하겠어.

강기공으로 양민학살밖에 더 하겠어?

그러니까 바꿔 말하면, 지금 쓰기엔 안성맞춤이란 소리다.

콰아앙-!

온 사방이 다 적이다.

거리낄 게 없었다.

열 손가락에 하나씩 강환을 담았다.

그리고 아래로 거침없이 뿌렸다.

쾅, 콰앙!

대여섯 개는 성공적으로 터졌다.

단단한 갑주로 몸을 감싼 몬스터들이었지만 그래봐야 쇳덩이다.

강환에 직격으로 맞은 놈들은 그대로 피를 뿌리며 쓰러졌고, 흙먼지와 비산하는 파편에 주위가 아수라장이 됐다.

하지만 남은 서너 개는 별 재미를 못 봤다.

“우워어어어!”

세 마리의 보스몹 중 하나였던 대형 오우거가 마찬가지로 무지막지하게 큰 몽둥이를 휘둘러 강기다발을 튕겨냈다.

실력 좀 보려고 일부러 저놈한테 던진 건데.

강호무림의 기준으로도 절정고수 이상은 될 것 같은 몸놀림이다.

게다가 저 정도 덩치면······, 접근해서 싸우는 건 아직 시기상조다.

나머지 둘도 신경을 써야 하니까.

내가 지상의 몬스터들과 오우거를 상대하고 있는 틈을 노린 건지, 두 놈이 양쪽에서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익룡은 입을 쩍 벌리고 불을 뿜어냈다.

해골기사는 원뿔형의 랜스 같은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거기서 국지적인 번개 같은 마법이 쏘아져 나왔다.

망설임없이 발을 박찼다.

화염과 전격은 나를 맞추지 못한 채 내가 타고 있던 칼만 녹여버렸다.

공중에서 아래로 급강하하면서 손을 휘저었다.

지상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던, 몬스터들의 무기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검, 도, 창, 도끼 등등.

몇십 정이나 되는 무기가 내 의지에 따라 빙글빙글 허공을 순회했다.

그중 하나에 다시 올라타면서 내가 외쳤다.

“탄彈!”

무기 십여 정이 거침없이 쏘아져나갔다.

익룡과 해골기사를 각각 노린 공격.

너네는 일단 저것들이랑 사이좋게 놀고 있어라.

“탄彈!”

남은 무기들이 일제히 아래로 날았다.

이번에는 몬스터들의 진격을 가로막는 형태로 지상에 꽂혔다.

마지막으로 외쳤다.

“파破!”

콰아아아앙-!

수류탄 여러 개가 한 번에 폭발하듯이, 무기 내부에 주입해 두었던 강기들이 터져나왔다.

무기의 파편과 강기다발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일시적으로 군대의 진격 속도가 급격히 둔화됐다.

선두의 한 언저리에 국지적인 공백이 생겼다.

그 빈 공간을 노려 지상에 내려앉은 나는 그대로 흙먼지를 뚫으며 땅을 박찼다.

아니, 땅을 접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

축지縮地.

신을 엿보는 자가 발현할 수 있는 초능의 하나.

대형 오우거가 나를 본다.

눈이 마주쳤다.

흉폭한 눈동자를 통해 저놈 성질머리가 아주 더럽다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놈이 통나무 같은 쇠몽둥이를 앞으로 뻗어 나를 가리키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이미 놈의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기감으로 느껴졌다.

어검술로 움직이던 무기들은 해골이랑 익룡과 싸우면서 실시간으로 숫자가 줄어드는 중이다.

여유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끝낸다.

축지의 영역에서 빠져나와서 일부러 한 템포 여유를 줬다.

오우거가 괴성을 지르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들고 있던 검면을 세워 받아냈다.

그리고.

타앙!

힘이 해소되는 그 순간을 노려서 다시 튕겨냈다.

무식하게 힘이 센 새끼를 상대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 역시 따로 있다.

하지만 가장 빠른 방법을 꼽으라면······.

“우워어!”

상대보다 더 강한 힘으로 찍어누르는 게 최고다.

상단 대각선으로 공격을 쳐낸 덕분에 오우거의 품이 크게 열렸다.

곧장 파고들어 목과 상반신의 중앙부, 발 아래로 장력을 세 방 날렸다.

그럴 것 같긴 했지만 아무래도 인간이랑은 신체구조가 다른 모양이다.

데미지가 있긴 하되 급소는 아니었다.

그래도 발 아래, 자세를 무너트리는 건 효과를 봤다.

대충 봐도 몇십 톤은 족히 될 거대한 덩치가 앞으로 고꾸라진다.

그때쯤 기감으로 연결해뒀던 무기들이 모두 소멸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익룡과 해골이 내 쪽으로 날아오기까지 이제 불과 몇 초.

내가 땅을 박차서 오우거의 얼굴에다 칼 꽂고,

강기 주입해서 터뜨린 뒤 다시 어검비행으로 날아오르기까지.

충분하고도 넘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삼십 분 후······.

나는 연신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크흠, 으음······.”

나를 빙 둘러싼 자들이 거침없이 팔을 뻗어온다.

내 목덜미를 노린 손의 움직임에 저항하지 못한 채 나도 모르게 몸을 맡겼다.

그리고 단말마처럼 말했다.

“오른쪽 어깨. 좀 더 세게 해봐요.”

“네!”

주물럭, 주물럭 하는 감촉.

“어으으······.”

역시 손맛이지.

안마기 따위로는 느낄 수 없는 감각이다.

정예슬이 내 어깨를 주물거리며 물었다.

“쌤, 시원하세요?”

“아직 피곤이 좀 덜 풀렸는데 십 분만 더 하세요.”

헌터 애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안마를 계속했다.

폭풍 속의 고요란 게 이런 느낌인가······.

오우거만 죽이고 호다닥 돌아온 후 전투가 급격히 소강상태로 빠졌다.

애초에 그걸 노린 거긴 했지.

솔직히 계속 싸웠으면 내가 손해다.

내 몸이 위험하다는 게 아니라 효율의 문제였다.

남은 둘이랑 드잡이질 하려면 적어도 십 분은 잡아야 할 것 같았다.

어검술로 조종하던 무기 없애는 속도를 보니 실력들이 제법 괜찮았거든.

오우거 그 새끼가 삼대천왕 중에 최약체인 모양이고.

내가 거기서 계속 싸우고 있었으면 보스 두 마리 정리하기 전에 몬스터들이 성벽에 다다랐을 게 분명했다.

내가 돌아와서 시위하듯이 자리 지키고 있으니 성벽 밖의 몬스터들도 뭔가 전열을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더럽게 센 녀석이 활개치고 다녔으니 전략을 다시 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나?

성벽과 조금 거리를 두고 대치가 이어졌다.

“그나저나 클리어 조건이 뭔지 좀 단서가 있습니까?”

“글쎄요······.”

저기 저놈들 일만을 다 때려잡으라는 건 아무리 봐도 과하다.

S랭크 던전이라고는 해도 이게 밸런스가 안 맞잖아, 밸런스가.

내가 말했다.

“S랭크 던전이나 컨셉 스테이지 던전을 클리어한 경험 있는 사람 손 들어 보세요.”

몇 명이 손을 들었다.

S랭크 헌터 차지유가 대표로 말했다.

“평범한 S랭크 던전은 다른 던전이랑 조건 자체는 크게 안 달라요. 지하로 한 층씩 내려가서 보스 잡으면 끝이죠. 근데 컨셉 스테이지는······, 클리어 조건을 유추하는 게 꽤 중요한 요소긴 해요.”

“그러면 차지유 씨의 경험으로 이번의 클리어 조건을 한 번 유추해본다면?”

“그건 저도 잘······. 보통 이런 식으로 소환되는 경우에는 현지인이라고 해야 하나, 원래 있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긴 했어요.”

“그래요?”

거기까지 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쌤, 어디 가시려고요?”

“물어보는 게 제일 좋다지 않습니까.”

시간이 별로 없다.

언제 다시 전투가 시작될지 모른다.

“일단 다 나 따라와요.”

여기 들어오고 처음 봤던 그 지휘관 같은 악마.

그 새끼한테 가서 좀 물어봐야겠다.

***

지휘관을 만나는 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한 명 붙잡고 너네 대장 있는 데로 안내하라고 하니 곧 만날 수 있었다.

아까 내가 한 따까리 제대로 한 걸 보고 두려워하는 면도 없는 건 아니겠지만, 이상하게 호의적인 느낌도 들고 말이지.

곧 호위하는 놈들이 몇 딸려 있긴 했지만 지휘관과 조용한 방에서 얼굴을 맞댈 수 있었다.

한창 회의 같은 걸 하고 있던 모양인지 탁자에 종이랑 펜 같은 게 어지럽게 널려 있다.

근데 이 새끼 어째 아까보다 좀 비실비실해 보이는데?

우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봐. 내 말 알아듣지?”

지휘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당신들을 부르려고 했다.”

“그래?”

이야기가 빠르겠군.

가장 물어보고 싶었던 걸 먼저 물었다.

“내가 먼저 물어봐야겠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너희는 뭐고, 저기 성벽 밖에 저놈들은 정체가 뭐고, 나와 내 일행들은 왜 이런 곳으로 온 거지?”

지휘관이 잠깐 침묵하더니 곧 입을 열려고 했다.

곧바로 알았다.

이 새끼, 지금 약 팔려고 한다.

“잠깐 스톱. 가만 있어봐.”

한 손에 최대한으로 강기를 응집했다.

그걸 응축하고, 다시 그 위에 강기를 덧씌웠다.

한 호흡만에 다섯 번을 반복했다.

곧 방 안에는 작은 태양이 뜬 것처럼 어마어마한 빛이 발생했다.

“구라치면 진짜 뒤진다. 아까 나 싸우는 거 봤지? 그냥 사실대로 말해. 아는 거 전부 다.”

지휘관이 표정을 굳혔다.

한 번 더 으름장을 놓았다.

“말 안 하고 입 다물고 있어도 뒤지는 건 마찬가지야.”

말하면서 손으로 강기다발을 튕겼다.

콰앙!

밖으로 나가려던 병사 하나가 박살난 문 앞에 주저앉았다.

“괜히 밖에 애들 불러서 시체 늘릴 생각하지 말고. 너흰 선택권 없어. 그냥 말해. 너흰 뭐고, 여기는 어디고, 우리가 왜 여기 있는지. 여기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제서야 지휘관이 말했다.

“······너희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성벽 밖의 자들을 모두 죽이면 돌아갈 수 있다.”

“그게 어떤 원리로 이루어지는 거지? 돌아갈 수 있는 다른 조건은 없나?”

“다른 조건은 없다.”

이거 안 될 새끼네?

신사적으로 물어보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이미 글러먹었다.

그리고 이 새끼 지금 비실비실한 걸 보아하니, 아까 처음 봤을 때면 모르되 지금은 되겠다 싶었다.

무적신공의 구결을 운용하며 씹어뱉듯이 말했다.

“대답해라. 우리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된 거지?”

심어검의 묘리를 이용한 언령의 강제.

지휘관이 힘겹게 기세를 버텼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때로는 침묵도 답이 되는 경우가 있지.

내 감이 지금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이 새끼 족치면 뭐가 나와도 나온다고.

고개를 뒤로 돌려 우리 애들한테 말했다.

“잠깐 뒤로들 가 있으세요.”

뭔가를 직감한 듯, 다들 벌떡 일어나서 한쪽 구석으로 물러섰다.

“안 되겠다. 우선 좀 맞고 시작하자.”

그대로 주먹을 날렸다.

“컥!”

대응하지 못한 지휘관이 저 멀리 벽에 처박혔다.

호위하던 놈들이 우르르 달려든다.

한 명당 한 방씩 어루만져줬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는 지휘관에게 다가갔다.

고통을 최대한으로 줄 수 있는 실전적인 주먹의 대화가 이어졌다.

“허, 헐거워진 틈새로······, 소환······.”

“일정한 자격 이상인, 자들을······.”

“균열 이후로······, 다른 세상과 연결이······.”

“마력으로 통로를······.”

들을 만한 건 다 들었다.

내공을 듬뿍 실어 한 방 날려줬다.

뻐어억!

만신창이가 된 지휘관이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패대기쳐진 걸 봐도 분이 안 가라앉는다.

그러니까 지금 하는 말이 그거잖아.

우리를 무슨 용사소환 하듯이 소환했다는 거 아냐.

어이가 없어도 이렇게 없나.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미친놈들······.”

뒤에서 정예슬이 속닥였다.

“쌤 말 진짜 이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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