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너네 사부 싸움 개못하잖아.
첫 번째 초식을 나누자마자 느꼈다.
이거 잘못하면 오늘 개망신 한 번 제대로 당하겠구나!
맞부딪친 손목이 벌써 시큰했다.
아씨. 뼈 맞았다고, 뼈!
진천군 이놈 무공 수위가 보통이 아니었다.
입신경 入神境, 그러니까 무공으로 신을 엿보는 경지 내에서도 완숙에 이르른 단계.
기껏해야 이형환위 깔짝대던 놈이 언제 이렇게 컸냐. 시간 좀 번 다음에 시작하는 게 좋을 뻔했다.
일단 치코리타라고 말한 건 취소다.
게다가 애초에 내 몸이 지금 정상이 아니다.
무적신공을 몇 번이나 연달아서 썼으니까 그럴 만도 하지.
차라리 한 번 운용하고 그 상태를 계속 유지했으면 모를까.
들어갔다 나오고, 다시 들어갔다 나오고를 반복하다 보니 기감도 내력도 정신적인 피로감도 모두 극한까지 치닫은 상태다.
이 비겁한 새끼도 그걸 노리고 지금 덤빈 걸 테고.
만약에 내 몸상태가 만전이었으면 지가 뭘 어쨌겠어.
고기 먹방이나 찍었겠지.
처음 손과 손이 맞부딪힌 반동 따위는 아랑곳않고, 내력을 추진력 삼아 이수민이 재차 달려든다. 치사한 새끼, 자기는 내력 빵빵하다 이거다.
“어른? 개소리하고 있네! 너 죽고 내가 몇 년을 살았는데! 내가 니 누나다, 이 새끼야!”
까아앙!
마교 십대 상위마공 중 하나인 혈옥수가 내 목을 노린다.
저건 잘못 맞으면 그대로 골로 간다.
내 발걸음이 술취한 노숙자처럼 탭댄스를 췄다. 취선보가 폼이 좀 안 나서 그렇지 공격 피하는 데는 최고다.
그리고, 비록 지금 공력이 좀 밀린다고 해도 입씨름까지 밀릴 순 없다.
“그거야 내 알바 아니고! 태어난 날짜로 따져야지 이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야! 느그 사부가 그리 가르치디?!”
안 그래도 붉으락푸르락 볼 만했던 이수민의 얼굴이 이제는 거의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다.
“그 더러운 입으로 감히 내 사부님을 입에 담아?”
“내가 니 사부보다 한 살 많다니까 그러네!”
거리를 벌리려고 해도 곧바로 따라올 테고, 당장은 근접전을 펼치는 것도 몸에 부담이었다.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 손에 내력을 끌어모아 맞받아쳤다.
콰아앙-!
미처 해소되지 못한 강기의 여파가 사방으로 튕겨져 갔다.
벽에서 울리는 폭발음과 비명소리가 합창처럼 터져나왔다.
그제서야 이수민이 흘낏 주위를 살폈다.
이게 내 노림수였다.
훌쩍 거리를 벌리며 말했다.
“야, 잠깐 타임.”
“뭐?”
“일단 애들 내보내.”
이수민이 이를 악물었다. 내적 갈등이 극심한가 보군.
조금이라도 시간을 주면 안 될 것 같은데, 쟤네 내보내는 동안 내가 조금이라도 기력을 회복하면 어쩌나 싶겠지.
그래도 이대로 계속 싸우면 저기 헌터 애들 황천 가는 건 순식간이다.
결국 이수민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최민호 쪽을 보며 말했다.
“거기, 다 나가요.”
“······네?”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헌터 애들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되물었다. 좀 더 직관적으로 설명해줘야 할 것 같았다.
“나가. 뒤지기 싫으면.”
“아, 네!”
입단속을 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기실에 대기하고 있어요. 이거 던전 트랩인지 뭔지 아무튼 이 친구 돌아버린 것 같은데 내가 알아서 해결하려니까. 괜히 밖에 나가서 쓰잘데기 없는 말 떠벌리지 마시고요. 다들 알아듣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헌터 애들이 우르르 출구 쪽으로 향한다.
내 곁을 스쳐 지나면서 정예슬이 작게 말을 흘렸다.
“······고맙다.”
“왜 반말입니까?”
정예슬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 왠지 이래야 될 것 같아서요······.”
그게 뭔 소리야. 영문을 모르겠다.
마침내 던전에는 나와 이수민 둘만 남았다.
이수민이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지금 개털인 거 다 알고 있어. 경고하는데 조금이라도 곱게 죽고 싶으면 다시는 우리 사부님 이름 입에 담지 마라. 이게 마지막 경고야.”
호오······. 그으래?
원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인간의 심리인 법이다.
내가 툭, 내뱉었다.
“야, 천군아.”
“시간 끌려고 하지 마라. 명년 오늘이 네놈 제삿날인 줄-”
“너네 사부 싸움 개못하더라?”
이수민의 입이 멍청하게 벌어졌다.
“······뭐?”
의사소통에 바디랭귀지가 큰 비중을 차지하듯이, 일신의 강함이라는 것도 내력이나 기술의 정교함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다.
상대를 멘탈을 뒤흔드는 격장지계. 때로는 그게 중요한 법이지.
말코 도사들이나 땡중들한테야 잘 안 통하지만 다혈질에 정신병자들이 한 가득인 마교놈들한테는 직빵으로 잘 듣는다.
그게 듣는 놈의 역린을 건드는 거라면 더더욱.
“천군아. 백운상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냐?”
“무슨 개소리를 하려고-”
“아니, 왜. 그놈이랑 나랑 둘이서 쇼부치려고 황산에서 만난 건 알지? 근데 백운상 걔 안 돌아왔잖아. 나도 안 돌아가긴 했지만 나야 내 발로 안 간 거고 백운상이는······, 그래. 케이스가 좀 다르지.”
지금 내 입꼬리는 틀림없이 비열한 곡선을 그리고 있겠지. 자괴감이 든다.
그치만 어쩔 수 없어. 이게 잘 먹히는걸.
이것 봐라. 벌써부터 효과 끝내준다.
이수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부님이 네놈한테 당하시기라도 하셨다는 거냐?”
사실 나도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긴 한데, 백운상이 나보다 저세상 빨리 간 건 확실하다. 그래서 그놈이 십만대산으로 다시 못 돌아갔을 거라는 것도 알지.
그 정도 알면 저 애새끼 멘탈 박살내기엔 충분하다.
이수민이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사부님은 대도를 깨달아 등선하셨어! 지금 선계에 계신다고!”
내가 한없이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이죽거렸다.
“등선? 대도오? 바보야, 등선이 아니라 삼도천이겠지! 너네 사부는 저승 간 거야. 그것도 모르냐?”
“너 이 새끼!”
이수민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폭발이라도 난 듯이 돌무더기가 어지럽게 비산했다.
눈에 비치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지만 이런 건 빠른 게 아니다. 그냥 성급한 것뿐이다.
“닥쳐-!”
이수민의 한 손에 모인 붉고 푸른 내력이 내 명치 부근으로 향했다.
천마신교 호교무공 수라강기.
의도가 뻔히 보인다. 이것저것 잴 것 없이 때려 부수고 싶다는 거네.
다시 한 번 정정한다.
이 새끼 치코리타 맞다.
전혀, 전혀 성장하지 않았어······.
레벨 100까지 꾸역꾸역 찍은, 그냥 힘만 좀 세진 치코리타다.
초식의 형을 벗으려 한다면 부동심을 잃지 말 것이며,
초식의 형을 따를 것이라면 생동하는 마음을 가져라.
무공의 기본 원칙과도 같은 것인데, 이 새끼는 초식도 없고 부동심도 없고, 오로지 주체하지 못한 기운만 생동한다.
나도 모르게 한탄스러웠다.
운상아, 운상아. 네가 제자를 잘못 가르쳤구나!
아직 설익은 제자까지 놓아두고는, 어딘지도 모를 선계가 그리도 그립더냐.
수라강기를 줄줄 흘리며, 이수민이 이번에는 내 경동맥을 노렸다. 한끝차이로 피했다.
피싯! 하고 내 목으로 핏줄기가 스쳤다.
상관없다. 이거 가지고는 안 죽어.
이 새끼는 지금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거리를 벌리고 있으면 내가 내력을 회복할 것 같았나?
그래서 근접전으로 승부를 내겠다고 생각했나 본데······.
차라리 멀찍이서 화력전으로 나를 몰아붙였어야 했다.
그러면 내가 먼저 힘이 떨어졌겠지. 천마신공이 그런 데는 또 일가견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 멍청한 녀석은 이미 나한테 약간이나마 시간을 주었고, 겁도 없이 내 간격 안으로 들어왔다.
다시 말해서, 넌 이제 진짜로 뒤졌다는 거다.
맨바닥에서 자유영 연습을 하게 해주마.
이수민이 왼팔 팔꿈치를 휘두른다.
손바닥을 펼쳐 받아내고, 그 반동까지 이용해 측면으로 더욱 거리를 좁혔다. 그와 동시에 자세를 낮췄다.
어느새 내 머리와 이수민의 턱이 지척이었다. 그대로 머리통으로 아래턱을 올려쳤다.
뻐어억!
억,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이수민의 몸이 붕 떴다.
혀 안 씹은 것만 해도 다행인 줄 알아라.
몸이 솟구친 탓에 이수민에게는 발을 디딜 지지대가 없었다. 그래도 억지로 균형을 잡아 각법을 펼친다.
팔꿈치를 세로로 세워서 그 공격을 받아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이수민의 오른쪽 발등이 정지상태로 허공에 머물렀다.
왼손 장심을 뻗어 가볍게 내기를 발출했다.
다음 공격을 준비하려던 이수민의 자세가 미묘하게 흐트러진다.
이번에는 아예 발을 잡아채서 아래로 내쳐버렸다.
그것과 동시에 오른쪽 팔꿈치로 다시 한 번 아래턱을 올려쳤다.
투웅, 하는 무거운 소리가 나고 이수민이 비틀거리며 물러선다.
입신경이고 뭐고, 머리통 울리면 정신 못 차리는 건 매한가지지.
달려드는 나를 막으려는 듯, 이수민의 손이 복잡한 움직임을 그렸다. 하지만 이미 예리함을 잃은 쭉정이 같은 초식이다.
상체를 뒤로 굽혀 피해내고, 땅을 박찼다. 탄력을 이용해 한쪽 발로 턱을 날려줬다.
세 번이나 맞았으니 이제는 진짜로 정신이 하나도 없을 터.
취선보로 마지막 견제공격을 이리저리 회피하고 재차 접근했다.
왼손바닥을 이수민의 가슴팍에 갖다댔다.
이게 내 특기 중 하나인데 아마 오지게 아플걸.
내공 좀 있다 하는 놈들 단전에 이거 한 방 놔주면 너도나도 정신을 못 차렸지.
우웅, 하는 진동이 내 손바닥을 통해 느껴진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지 이수민이 찢어질 듯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턱 맞아서 머리는 멍한데다 당장은 내공 쓰려면 가슴팍이 쑤실 거고, 더 이상 경계할 것도 없네.
얼마 안 남은 내공이나마 전력으로 끌어모아서 후려쳤다.
콰앙!
이수민의 몸이 쏜살처럼 날아서 벽에 처박혔다.
그제서야 던전 안이 다시 침묵을 되찾았다.
늑대를 닮은 형님을 떠올리며 조용히 읊조렸다.
“악즉참. 재는 재로, 마교도는 지옥으로······.”
내력을 회복하면서, 이수민이 파묻힌 벽을 향해 걸었다.
한 발, 한 발 걸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백운상과는 그놈이 소교주고 내가 어디 타격대 대주 하던 시절부터 죽자사자 싸웠는데,
몇십 년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려운 사이가 됐다.
뭐랄까,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원수 같은 그런 거.
‘진짜 안 갈 거냐?’
‘마음 바뀌었다니까? 등선이나 뒈지는 거나 뭔 차이라고. 나는 속세에서 배부르고 등따숩게 살련다.’
‘얄팍한 놈. 그러면······, 나 부탁 하나만 들어줘라.’
‘은거는 말 안 해도 할 거다. 됐냐?’
‘그것도 그거고 우리 제자. 걔가 좀 꼴통이잖냐. 애먼 사람 죽이는 거 아니면, 나중에 한 번만 봐줄 수 있겠냐? 무공은 거둬가도 되는데 목숨만 좀 살려줘.’
‘생각은 해 볼 건데 장담은 못 하겠다.’
‘네놈이 그렇게 말하면 믿어도 되겠지. 나 이제 간다. 하가놈아. 잘 살아라.’
그게 마지막이었다.
백운상과 나눈 마지막 대화이며, 내가 기억하는 전생에서의 마지막 대화.
그러고 보니 지금이 백운상이가 부탁했던 거 들어줄 수 있는 타이밍이긴 한데······.
“내가 생각해 본다고 그랬지 꼭 들어준다고는 안 했잖아.”
기절해 있는 이수민을 향해 걸으며 변명처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