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나의 제자는 그러지 않아.
“완전 난리도 아니네······.”
작게 목소리가 들려서 얼굴을 들어봤다.
병원복을 입고 병실 침대에 몸을 기댄 지현이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으음, 음.”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로 십 초도 넘게 요상한 감탄사를 내던 지현이와 눈이 마주쳤다.
지현이가 눈짓으로 티비를 가리킨다.
나도 귀로는 다 듣고 있긴 했지.
지금도 공중파 채널에서 한 시간 특집으로 ‘느닷없이 등장한 S랭크 괴수, 원인과 대책은?’ 따위의 방송을 내보내거나 이마가 반질반질한 사람들이 회견장 같은 데서 90도로 머리를 숙이거나, 여하튼 대한민국 전체가 어제 던전에서 벌어졌던 일로 시끄러웠다.
그리고 초대형 게이트, S랭크 괴수에 뒤지지 않을 만큼, 오히려 그보다 조금 더 핫한 주제가 바로······.
“······그거 누구였을까?”
그 무지막지한 괴수를 홀로 때려잡았다고 알려진 의문의 각성자에 대한 것이었다.
지현이에게 껍질을 깎은 사과 한 조각을 건네주며 물었다.
“딸도 못 봤다고 했지. 얼굴?”
“응. 그냥 목소리만. 근데 그것도 잘 모르겠어. 나도 엄청 피곤했단 말야. 아, 아빠 다음 꺼는 나 토끼모양으로 잘라주면 안 돼?”
지현이가 침울한 얼굴로 사과를 아그작아그작 씹었다.
“그래도 아빠는 우리 딸 별 일 없어서 다행이야.”
“응. 유진 쌤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진짜. 만약에 엄마가 이거로 알았으면······.”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이 지현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현이 말처럼 이 소동에서 지현이 이름은 완전히 빠져 있다. 그냥 부상을 입은 각성자 중 하나.
이건 전부 내 계획대로였다.
용을 죽이고 지현이가 돌아온다.
혼자만 깨어나 있던 것으로 해둔 김유진이 지현이에게 말한다.
시끄러워지는 게 싫으면 마지막에 나타났던 그 사람이 혼자 한 일로 해두자고.
지현이도 동의한다.
그 외에 귀찮은 일도 김유진이 자기가 알아서 해주겠다고 말했다.
아마 오늘도 어디 협회나 여기저기 불려가서 사건경위 같은 걸 설명하고 있을 터.
내가 끌어들인 것이라 솔직히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다.
오는 게 있었으니 가는 것도 있긴 할 테지만······.
토끼모양 사과를 이리저리 돌려보던 지현이가 말했다.
“근데 아빠아.”
“응, 아빠 왜?”
“나 있잖아, 진짜 사흘이나 입원해야 돼? 진짜 괜찮은데.”
지현이가 갑갑한 얼굴로 한 팔을 들었다.
링거가 두세 개 꽂혀 있어 아래로 축 늘어졌다.
단호하게 답했다.
"퇴원은 절대 안 돼. 최소 사흘이고 안 되면 며칠 더 있게 할 거야."
"힝. 이거도 효과는 있는데에, 그래도 그냥 운기하는 게 훨씬 효과 좋은데."
"링거도 맞고 운기도 하면 더 좋겠지?"
"앗, 그런 방법이······."
유지현의 말은 유지현의 말로 반박 가능했다.
지현이가 입을 꾹 다물었다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나 학교도 가야 되구, 연재도 해야 하구, 그리고 그럼 아빠는 왜 입원 안 해?"
"학교는 병결처리하고 연재는 휴재하거나 여기서 쓰면 되고 아빠는 멀쩡하니까. 딸도 봤지?"
"응. 엄청 다행."
아예 상처 하나 없는 건 이상하니까 적당히 타박상 정도만 남게 처리를 해뒀다.
순간적으로 펼친 보법에다 먼저 깨어난 김유진의 응급처치가 좋았다는 식으로.
"아무튼 아빠는 다시 일하러 가봐야 하니까 딸도 푹 쉬고 있어."
"알겠어. 아, 맞다. 아빠."
"응?"
병실을 나서기 직전 지현이가 나를 불렀다. 왠지 모르게 의미심장한 얼굴이었다.
"내가 어제부터 계속 생각한 게 있거든. 그, 아빠는 못 봤겠지만 나중에 나온 사람. 그 사람이 엄청 셌단 말야?"
"응."
"그래서어, 나 목표가 하나 생겼어."
"목표?"
지현이의 얼굴이 발그레하다.
불안하다.
"내가 그 사람을 찾을 거야. 찾아서······."
"찾아서?"
지현이가 씨익 웃었다.
"정식으로 비무를 신청할 거야. 그래서 한 방 날려주는 게 목표야. 나 보고 자기보다 약하댔단 말야."
지현이가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잔뜩 긴장했었는데 천만다행이다. 모 전직 특수요원처럼 '찾아서, 죽이겠다.' 라고 안 한 게 어디야.
우리 딸이 패륜아가 되는 것만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지금도 이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어렵사리 답할 수 있었다.
"구, 굿럭······."
"히히. 아빠 그게 뭐야아."
병원 문을 나서며 전화를 걸었다.
"김유진 씨? 지금 통화 괜찮으십니까. 아,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묘하게 지현이와 내가 있던 후방으로 몰리는 듯했던 지하 1층의 괴수들. 지금 생각해 보면 착각이 아니다.
비워져 있던 2층과 3층.
그리고 D랭크 던전에서 결코 나와선 안 될 강력한 괴수.
틀림없이 뭔가 있다.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우리 딸한테 해가 될 만한 걸 결코 그냥 두고 볼 생각이 없다.
***
헌터 이수민은 소식을 접하고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D랭크 던전에서 추정 S랭크 괴수가 출현.
이것만 해도 놀랄 일인데 알고 보니 안면이 있던 센터의 헌터들이 그곳에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수민을 더 놀라게 한 건 전생의 제자일 것이 틀림없다, 라고 행복회로를 혹사시키는 중인 14세 유지현 양도 같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추 사건의 전말을 접한 다음 이수민은 코웃음을 쳤다.
'흥. 정체불명의 헌터?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 제자가 힘 좀 쓴 게 틀림없어.'
심성이 너무도 착한 아이였으니까.
필시 현생에서도 그럴 테지.
다른 사람들의 위기에 결코 가만히 있을 수 없던 것일 터.
제자가 괴수를 물리친 후에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적당히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낸 것이리라.
'입원했다고 들었는데······.'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
제자가 각성을 언제 했는지는 모르지만, 설령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에 전생을 깨달았다고 해도 크게 바뀌는 건 없다. 겨우 만 열두 살, 중학교 1학년은 S랭크 괴수를 상대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래도 큰 부상이 없다니 다행이야.'
이수민은 고민했다.
병문안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아직은 겨우 한 번 지나가다 마주치고, 통성명하고 명함을 주고받은 사이일 뿐이다.
전생에서야 같이 밥 먹고 목욕하고, 제자가 어릴 적에는 한 침상에서 자주 잠도 같이 잤지만······, 현생에서 그러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있다.
그래도······,
'병문안이잖아. 좋은 거지.'
이수민은 자기 편할 대로 결론을 내렸다.
오히려 이게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병문안을 계기로 친해져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어보자.
게다가 그럴 확률은 만분지 일도 안 되겠지만 설령 유지현이 제자 운혜가 아니라도, 그래도 좋다.
그냥 처음 보는 순간 마음에 들었던 아이다.
'좋아. 그럼 선물은······.'
일단 집을 나선 이수민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문병 선물을 골랐다.
이 점에서도 자신이 있었다. 제자의 취향이야 훤하게 꿰뚫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한 시간 후.
이수민은 양손에 한 아름 바구니를 안고, 들뜬 마음으로 1인실 문을 노크했다.
똑,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이수민의 심장박동 소리도 빨라졌다.
곧 병실 안쪽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에."
떨리는 마음으로 이수민이 문을 달칵, 열었다.
"······어라?"
"안녕하세요, 전에 한 번 뵀죠? 그, 유진이한테 듣고 그냥 지나가다 들러 봤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아."
제자가 머리를 푹 숙이며 인사를 했다.
어찌나 예의가 바른지. 참으로 흐뭇했다.
이수민은 들고 온 바구니들을 건넸다.
"이거 그냥 빈 손으로 오기 허전해서 사왔어요."
압도적 크기의 과일 바구니.
제철 과일 복숭아부터 시작해 십여 종의 싱싱한 과일이 보기 좋게 담겨 있었다.
유지현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아, 괜찮으면 지금 몇 개 깎아 드릴까요?"
이수민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자가 환하게 웃으며 그래 달라고 할 것임을.
그러나.
"으음······, 그러면 너무 죄송스러우니까아. 나중에 먹어도 괜찮아요."
이수민은 혼란스러웠다. 과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이였는데? 제철 복숭아가 맛있다고 너무 많이 먹어서 배에 탈이 났던 일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땀을 뻘뻘 흘리는 제자의 이마를 쓸어내렸던 기억도.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침대맡에 이미 깎아둔 과일이 꽤 많이 접시에 남아 있는 것이.
'나의 제자는 과일을 남기지 않아. 나의 제자는 그러지 않아······.'
아니, 아니다.
어쩌면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이수민은 또다른 카드를 꺼내기로 했다.
사실상 가드 불가 공격기에 준하는 강력한 카드를.
"아니면 샐러드도 가져와봤는데 드시는 건 어때요? 병원 밥이 입에 잘 안 맞으실 텐데."
오는 도중에 잘 아는 레스토랑에 들러 공수해온 유기농 샐러드였다.
이수민은 현생에서도 채식주의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가르침을 되새기고 있었다.
필시 제자도 그러했으리라.
언젠가 제자와 함께 동반으로 생명 보호 공익 광고를 찍는 것이 요즘 그녀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과연 이건 먹혔는지 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요."
그러면서 주섬주섬 일어나 병실 한쪽의 냉장고로 향한다.
자기 몫과 제자의 것까지 2인분을 의도적으로 한 접시에 담아온 샐러드를 꺼내며 이수민은 생각했다.
드레싱을 가지러 가나? 흐음, 그거야 그럴 수 있지.
하지만.
"······!"
싱글거리며 다시 돌아오는 제자의 손에 들린 굵고 긴 덩어리에 이수민은 숨이 막혔다.
떠듬떠듬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어, 어째서······?"
"아. 히히, 샐러드만 먹으면 심심하잖아요. 이거 소세지 아빠가 사다놓은 건데 엄청 맛있어요. 드셔보실래요?"
제자가 해맑은 미소로 붉은색의 소세지를 내밀었다.
정체 모를 오한이 온몸을 스치는 걸 느끼며, 이수민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나는······."
"아아, 그냥 먹기는 너무 크네요. 잠시만요. 이거 잘라가지구······."
양손에 각각 포크와 나이프를 든 소녀의 얼굴을 보며 이수민은 생각했다.
뭔가, 뭔가 잘못되었다.
내 제자가 육식주의자일 리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