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아빠. 그거 해봐, 그거.
뭐가 수상하냐고 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수상했다.
우선 아버지 유수현의 외출이 부쩍 잦아졌다.
딸이라면 죽고 못 사는 사람이 요즘은 어디 정신이 팔렸는지 유지현 본인보다도 귀가가 늦기 일쑤고, 주말에는 약속이 있다고 얼버무리며 저녁 때나 돼야 집에 돌아온다.
바로 요 앞 주말이 결정적이었다.
돌아왔을 때 입고 있던 옷. 집에서 나갈 때 입었던 옷이 아니었다.
얼핏 보기엔 비슷하게 생긴 흰색 티셔츠였지만 원래 입던 후줄근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처음 보는 새 옷이다.
게다가 잘 보면 머리카락도 물기가 젖어 있고, 어디서 씻고 온 게 틀림없었다.
곁을 스쳐지나갈 때 낯선 샴푸향까지 났다.
‘설마 아빠가?’
끔찍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고 애써 부정해봐도 상상의 나래가 끝없이 가지를 뻗어나갔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대체 언제부터······.’
이미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커다란 바위라도 들어찬 듯이 속이 답답해졌다.
엄마가 알기라도 하면 화해는 물건너가고, 그걸로 끝장이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혹시라도 아빠가 딴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건 결단코 막아야 했다.
이것이 첫 번째 수상한 점이었고, 당장은 손 댈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당면한 건 두 번째. 며칠 전부터 생겨난 의문이었다.
“아빠, 아빠! 잠깐만 내 방에 좀.”
“딸, 왜 불렀어?”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던 유수현이 방문을 열고 물었다.
유지현이 말했다.
“여기 딱 서 봐.”
유수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유지현을 마주 보고 섰다.
“왼발은 앞으로, 오른발은 뒤로 좀 빼구 왼손 주먹으로 나 때리듯이 포즈!”
“이게 뭔데?”
“쓰다가 좀 막혔거든. 내공을 못 쓰는 상태에서의 박투 묘사. 아빠가 보조 좀 해줘.”
“······그거 꼭 해야 하는 거야?”
유지현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응, 응. 아빠 없으면 안 돼. 나 혼자 하면 시간 많이 걸린단 말야.”
“딸······. 이런 세세한 장면도 좋지만 스토리 진행에 신경을 더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아빠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안 돼, 안 돼. 사실적인 묘사가 내 글의 세일즈 포인트란 말야. 동작 하나도 대충대충 안 쓸 거야.”
“‘전투씬이 허접해서 못 보겠네요.’ 라고 악플 달리면 아빠인 줄 알아.”
“히히, 댓글 삭제하면 되는데? 아, 여기서 이제 한 걸음 물러나면서 발차기.”
투덜거리는 대화가 오가는 도중에도 유수현은 시키는 대로 여러 동작을 취하면서 전투를 흉내냈다.
문득 유지현은 감탄스럽다고 생각했다.
“아빠 어릴 때 태권도 같은 거 배웠어?”
“아니? 아빠는 피아노 학원만 다녔는데.”
‘근데 왜 이렇게 자세가 잘 나오지?’
유지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마 설운혜로 살아갈 때의 기억을 되새겨 보면, 무공이나 박투 동작을 한 번에 습득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리카락이 솜사탕 같은 화가가 붓으로 슥슥 그어놓고 ‘참 쉽죠?’라고 말해도 따라할 엄두도 안 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아빠는 말하면 말하는대로, 척하면 척이었다.
물론 내공을 안 쓰는 단순 동작이긴 했지만 천마 설운혜의 관점으로 보기에도 충분히 합격점이었다.
‘투로가 너무 깨끗한 건 좀 마음에 안 들지만.’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올린 그날 연재분에는 ‘x밥 싸움에 오천 자 다 쓰고 날로 먹어도 아주 제대로 날로 먹죠?’ 라는 댓글이 달렸다.
심지어 압도적으로 많은 추천을 받았다.
유지현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흐윽, 흑······. 아이피 추적할 거야······. 추적해서 복수할 거야······.”
그때 조심스러운 달칵, 소리가 들렸다.
유지현은 이불 속에서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유수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딸, 자고 있어······?”
그러면서 이불 위로 손을 댔다.
유지현은 이제야 깼다는 듯이 하품을 했다.
“으응, 아빠 왜? 지금 몇 시야? 깜빡 잠들었나봐.”
“······."
어둠 속에서도 걱정스러운 유수현의 표정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유수현이 말했다.
“너무 신경 안 써도 돼.”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왔다.
“아빠아. 나 진짜아, 사람들이 내 글 보고 비웃어······.”
“응, 응. 괜찮아, 괜찮아. 딸이 쓴 글 재밌어.”
“그치? 그치? 근데 아빠. 명작도 못 알아보는 우매한 대중들이······.”
품에 안겨 울먹이자 유수현이 부드럽게 등을 쓸어줬다.
“딸, 아빠가 좀 생각을 해봤는데.”
“응? 뭐가?”
“그, 딸이 쓰는 전투 장면 같은 거.”
“아빠가?”
“잠깐 일어나 볼래?”
그리고 유수현이 일러주는 대로 동작을 재현해 봤다.
유지현은 감탄을 넘어서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와, 이거 진짜 아빠가 생각한 거야?”
“응, 영화 보고, 딸이 쓰는 장면이랑 비슷하게 좀 생각해 봤어.”
“나, 나 이거 쓸래. 근데 또 욕 먹으면 어떡하지······.”
“그럼 아빠랑 같이 쓰자. 딸은 그래도 괜찮아?”
유지현은 날아갈 것처럼 기뻐서 대답했다.
“응. 괜찮아, 괜찮아. 아빠가 도와주면 나는 당연히 좋은데?”
그것이 갈등의 시작이었다.
***
“딸, 여기서 전개가 음······, 쟤. 화산파 후기지수 쟤. 마교의 무공에 승복하고 그대로 검을 꺾어버린다는 게 음.”
“왜? 승복 안 하면 자기가 뭐 어쩔 거야. 격의 차이를 확실하게 느꼈는데.”
“그리고 이번 에피소드도 명문정파의 횡포에 시달리던 마을 사람들이 나중에 다 같이 천마앙복을 외치는 게 엔딩이라고 했지?”
“응."
“그러면 마을 사람들 나중에 큰일 날 것 같은데 딸은 어떻게 생각해?”
“아냐, 아냐. 어차피 결국에는 강호 무림을 넘어서 중원 전체를 통일할 거니까아, 그리고 무슨 일 생기면 구해주러 갈 건데?”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개연성이 좀······.”
“아빠.”
“응?”
“글은 내가 쓰는 거니까 아빠는 전개에 대해서는 뭐라고 안 해줬으면 좋겠어. 아빠는 어디까지나 자문역할이니까. 지킬 건 확실히 지켜줘.”
“알겠다······.”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자는 유지현의 말에 유수현이 몹시 미묘한 얼굴을 했다.
***
여전히 악플로 도배된 댓글창을 바라보며 유지현이 분통을 삼켰다.
아까 저녁을 같이 먹을 때 유수현이 한 말이 특히나 유지현을 화나게 만들었다.
‘그러게 내가 말하지 않았냐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마음에 안 들었다.
아빠가 깊이 개입할수록 그나마 반응이 더 좋아진다는 점이 특히나.
유지현이 보기엔 그건 글의 수준 차이가 아니라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차이였다.
본인은 실제로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사실적인 묘사와 전개에 중점을 두고, 아빠의 의견은 독자들의 니즈에 맞춰 시류에 영합한 전개일 뿐이다.
유지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고민하다가, 문득 무언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응?’
차곡차곡 쌓인 퍼즐이 마침내 맞춰지듯이 생각이 이어졌다.
아빠는 내공이 없는 전투를 사실적으로 잘 쓴다. 유지현 본인이 감탄이 나올 정도로.
천마 설운혜로서 살던 시대의 대화의 흐름 같은 것도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잘 파악한다.
게다가 처음 유지현 본인이 천마라는 걸 밝혔을 때의 반응.
‘생각해 보면 이상해. 그걸 바로 믿는다는 게.’
유지현 본인에게는 일생일대의 고백이었다. 안 믿어도 좋으니까 우선 말은 해 보자고 생각했다. 쉽게 믿기는 힘들 테니까.
그런데 아빠는 곧바로 수긍하고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던전이니 게이트니 하는 것이 느닷없이 생겨나 어지간한 판타지 컨텐츠를 죄다 퇴물로 만들어버린 게 십수 년 전이었다고 들었다.
지금이야 모든 사람들이 원래 있던 것처럼 받아들인다지만 처음에는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혼란이 왔었다고.
‘환생도 마찬가지 아냐? 나라면 절대 곧바로는 못 믿었을 건데.’
오히려 어떻게 하면 잘 구슬려서 망상이라는 걸 인지시킬 지를 고민했을 것이다.
한데 유수현은 처음에만 잠깐 놀라고 당황했을 뿐 곧바로 유지현의 말을 믿어줬다.
그리고 지금 떠올려 보면······.
‘우리 사부님 존함을 말할 때 표정이 확 굳어졌어. 그건 사부님 존함을 듣고 확신을 가졌다는 뜻 아닐까?’
자연히 결론이 나온다.
‘설마 아빠도 환생자?’
이상할 것도 없다.
‘나도 환생자잖아.’
며칠을 고민하다가 유지현은 작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
“아빠, 또 전투씬. 자문, 자문해줘!”
“인세 나오면 5대 5로 나누는 거야.”
“8대 2까지는 한 번 생각해 볼게.”
유지현은 심장 뛰는 소리가 크게 울리는 걸 느꼈다.
정말일까?
이제 곧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집단전이거든. 여기서 저기 거실 끝까지 옆으로 한 걸음씩 옮기면서 각각 다른 사람들 싸우는 걸 재현할 거야.”
“우리 대문호님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유지현이 연속으로 외쳤다.
"여기서 오른발 상단 올리구, 저기 쇼파 앞에서는 옆으로 비켜서면서 손가락으로 눈 찌르구, 두 걸음 더 가서 ‘교룡출두.’”
유수현은 그대로 따라했다.
오른발을 곧게 쭉 뻗고, 옆으로 피하면서 조법으로 얼굴을 노리고, 두 걸음을 옮겨서 상체를 확 숙인 상태에서 상단으로 내지르기.
그리고.
“아빠.”
이 이상 없을 정도로 가라앉은 유지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유수현이 물었다.
“응. 왜?”
“······아빠가 교룡출두를 어떻게 알아?”
***
좆됐다.
나는 좆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