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249화 (249/251)

<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2) >

헬 게이트의 영역은 내부의 물질이 쏟아져나오는 만큼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었다.

바닷물이 완전히 고체화되어서 헌터들 역시 상륙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그 영역 내에서 기계가 제대로 먹히지 않으며 어지간한 헌터들은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단순히 초능력의 강함이 문제가 아니라 정신력의 문제였다.

벽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팔다리가 튀어나오고, 바닥에서 입이 쩌억 벌어져 낼름 발목을 잘라서 도망가버리고, 하늘에서 눈알이 껌뻑이는 저 끔찍한 장소에 손쉽게 발을 들일 수 있는 자가 과연 누가 있겠는가.

“급한대로 대처는 해뒀소.”

그나마 다행인 점은, 뒤늦게 어나더 리그에서 고속정을 타고 찾아온 이계출신의 마도공학자 라칸탈 덕분에 헬 게이트의 팽창을 일시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송전탑처럼 생긴 특수한 장치를 여덟 척의 항공모함에 설치한 뒤 마법을 가동하자, 임시 차원막이 생성되어 헬 게이트 영역이 더 이상 뻗쳐나오지 못하게 된 것.

“물론 임시일 뿐이고, 팽창을 막으려면 ‘플랜트’를 모두 파괴해야만 하오.”

플랜트는 생명체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생명체가 아닌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그 기괴한 물질은 서서히 태평양을 헬 게이트로 물들이고 있었는데, 그것들을 파괴하면 영역을 일부 없앨 수 있었다.

즉, 소강상태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헬 게이트도 더 이상 들어올 수 없지만, 이쪽에서도 들어갈 수 없는 상태.

“······다른 방법은 없겠는가?”

“음.”

무림맹주, 설중연의 질문에 라칸탈은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규모의 길드는 보통 자신들만의 대책 회의실이 있기 마련이었으나, 어나더 리그는 배가 한 척도 없었다.

하지만 UN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항공모함 한 척의 작전 통제실을 양도받아, 임시 대책 회의실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고작 일개 길드의 대책 회의라고 보기에는 꽤 거물들이 상당히 많이 참석해 있었다.

투스타급의 장군들은 물론 SS랭크의 초능력자들과 유명 길드의 마스터, 솔로 활동으로 유명한 20년 차 베테랑 헌터 등등.

세계 어디에 이름을 내놓아도 빠지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원들이 모여있던 탓에 라칸탈의 주장을 들으며 예카테리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방법이 없지는 않지. 아주 간단해. 소수의 헌터로 이루어진 팀을 짜서 내부로 진입하는 거다. 내부의 플랜트를 먼저 잘라내면 외부의 플랜트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헬 게이트 영역을 파괴할 수 있어.”

물론, 헬 게이트로 직접 진입하는 건 아니더라도 그와 버금가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도 헬 게이트 진입보다 나은 점은 외부에서 진을 쳐서 헌터들이 추가로 진입해, 내부로 진입한 인원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이지.”

그렇기에 이 작전에 참여할 인원은 거의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전에 헬 게이트 내부로 진입하기로 되어있던 원정대, 어나더 리그의 길드원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당장 헬 게이트의 영역을 축소시키지 않아서 자칫 방어선이 뚫리기라도 하면, 그 즉시 그곳을 타고 쭉쭉 뻗어나가 영역이 내륙에 닿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 자리에 있는 가용 가능한 모든 병력이 참전해야만 했다.

“최소 10년 이상 괴수전 경력이 있는 헌터와 군인들이 영역 내에 진을 쳐야 할 거다.”

어지간한 병력은 정신력이 부족하여 버틸 수 없으며, 기계들은 대부분이 먹통인지라 에테르 디스펜서와 초능력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베테랑 헌터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경력 무관으로 B랭크 이하의 헌터는, 사실상 쓸모가 없겠군.”

“······예?”

“그건······.”

뒤이은 라칸탈의 말에,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황했다.

사실 그의 말에는 모두가 전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에테르 디스펜서가 아무리 발달했다고 한들, F랭크 헌터가 저 안에 들어간다고 해서 과연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라도 의문을 표하는 이유는 단 하나.

8년 전, 무능력자 헌터 유서담이 헬 게이트 내부로 진입했다가 3년 동안 생존했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F랭크의 헌터가 필요 없을 거라는 건······.”

“그 말대로다. B랭크 이하의 초능력과 에테르 총기류는 거의 먹히지 않으니까.”

“하, 하지만 헌터 유서담은 헬 게이트로 진입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게 참 의문이란 말이지.”

비록 헌터로서의 경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라칸탈은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계산적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나라면 절대 F랭크의 헌터따위를 헬 게이트에 집어넣지 않을 거야. 죄다 죽여버릴 속셈이라면 또 모를까. 하지만 그것도 아니잖아? 당시 원정대의 리더 또한 SS랭크의 헌터였으며 정예 병력이 다수 있었다고 들었다. 단순히 짐꾼으로 쓰자면, 차라리 육체강화계 초능력자를 데려가는 게 더 나을 거고.”

그런데도 굳이 F랭크의 헌터를 데려갔다는 건 정말로 병력으로서 채용했다는 건데······.

‘그게 상식적으로 가당키나 한단 말인가.’

어째서 유서담이 헬 게이트로 들어가게 되었을까.

또, 그는 어떻게 미치지도 않고서 무사히 생환했단 말인가.

‘모르겠군.’

하지만 지금 그런 건 중요치 않아 보인다. 당장은 헬 게이트 공략의 중요 키워드를 가진 유서담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닦아놓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

*

[······이동이 완료되었습니다.]

나는 정신을 잃을 때면, 가끔 꿈을 꾸곤 한다. 꿈의 내용은 대부분 별것도 없이,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금 겪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처음으로 헌터가 되어 괴수를 사냥했던 당시의 꿈.

친구라기보단 동료라는 말이 더욱 어울리는 아이들과 함께 그룹을 꾸렸던 당시의 꿈.

웃고, 울고, 떠들었으며, 때로는 행복했고, 때로는 불행했던 시절을 건너서.

최초로 등장했던 거대균열 너머로 레이나 주가 사라졌으며, 그녀를 쫓아 홀연히 헬 게이트로 들어섰을 당시의 꿈을 꾸었다.

용감한 동료들이 있었으며, 믿음직스러운 리더가 있었고, 언제나 등을 맡길 수 있는 듬직한 전우가 있었다.

그랬었다.

대부분은 죽었고, 남은 이들은 모두 미쳐버렸다.

‘하하, 서담. 내 아내야. 내가 맨날 소개시켜주고 싶다고 그랬지? 어때, 진짜 미인이지 않아? 자기야 부끄러워 안 해도 된다니까? 어서 이리로 와.’

아니다. 그건 아내가 아니라 괴물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왜 아내에게 괴물이라는 소리를 하냐며 내게 총을 쏴갈겼다.

그를 사살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만에 먹는 소고기 스테이크냐. 역시 T본이 내 입에는 가장 잘 맞는단 말이지.’

‘화이트 트러플이라고 알기는 하냐? 세계 3대 진미라고! 이거 아무 때나 먹는 거 아닌데, 서담 너도 한 입 할래?’

그건 음식이 아니라, 내가 방금 쏴죽인 동료의 시체다. 그딴 걸 제발 먹지 말라고 애원해도 그들은 듣지 않았다.

그들 역시, 내가 죽일 수밖에 없었다.

동료들 중 대부분은 괴수에게 죽었으며, 또 대부분은 내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저, 헬 게이트에 들어서면 모두가 그렇게 된다.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

‘······흥미롭네. 너희는 대체 뭐야?’

그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 또한 동료들처럼 정신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환청이 들릴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정신병에 걸린 동료들과 나에게는 아주 결정적인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가 미쳤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나는 내가 환청을 듣고있단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

‘진정하라고. 너희의 언어를 이해하느라,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까. 그 여자가 사용하는 언어를 배워서 정말로 다행이야. 하하.’

‘···넌 대체 누구야?’

‘나? 글쎄. 굳이 따지자면, 너희가 헬 게이트라 부르는 이 세계의 의지 그 자체라고 부르면 좋지 않을까?’

‘헬 게이트가 가진······ 의지라고?’

‘그래! 맞아. 흥미롭지? 나도 놀랐어. 너희처럼 의식을 가진 존재와 마주치기 전까지는, 나도 내가 의지를 가지고 있단 사실조차 몰랐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알아. 나에게는 의지도 있고, 꿈도 있어.’

나는 홀린 듯이 ‘그것’과 대화했다. 그것은 말했다. 자신은 원래 ‘이야기의 여백’을 떠도는 미완성된 세계였으며, 스스로를 완성시키기 위해 어설프게 세상을 주무르다가 이런 끔찍한 꼴이 되었다고.

비생물과 생물의 구분이 없으며, 타인과 자신의 구분조차 없는 세계, 헬 게이트.

‘이제는 확실히 내 꿈을 말할 수 있어. 나는 완벽한 세상을 만들 거야. 주인공의 의지대로 이끌리는 이야기 속 세상이 아닌, 완전히 이야기 바깥으로 독립해버린 그런 세계를 말이야.’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하겠는데.’

그것은 말했다.

각각의 세상은 단 하나의 「주인공」만을 위해 존재하며, 주인공이 존재하지 않으면 세상은 존재가치를 잃는다고.

단 하나의 세계도 빠짐없이, 모두 그러한 원칙을 따르고 있다.

아마도 헬 게이트라 불리는 자신의 세계도, 어설프게 완성되어봐야 그렇게 될 거라고 그것은 말했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 내 의지를 뻗어, 「완결」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어. 그러한 개념이 확립되는 순간, 세상은 빠르게 멸망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지. 그리고 나는 멸망한 세계의 힘을 흡수하여 나의 세계를 조금씩 구축하고 있어.’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는데?’

‘어떻게 되긴.’

어느덧 ‘그것’은 서서히 형체를 만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꼭, 나를 쏙 빼닮은 모습으로 내앞에 등장하더니 내가 아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거지.’

‘······!’

‘너도 세상이 불합리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봐, 너는 무능력자잖아. 힘도 없고, 인맥도 없고, 부모도 없고, 양부모는 죽어버렸고, 가난하게 태어나서, 그렇게 살다가 결국 이런 최후를 맞이하게 되겠지.’

‘그건······.’

‘너 같은 건 「주인공」을 위해 존재하는 배경일 뿐이라 그런 거야. 주인공은 네가 가질 수도 있었던 모든 운명과 가능성을 앗아가고 있어.’

하지만, 그것의 말대로 ‘모두가 주인공인 세상’이 온다면.

‘더 이상 그런 불합리를 겪지 않아도 좋은 거야. 운명이 정해준 대로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 어때, 너도 동의하지? 나는 지금 여기서 널 살릴 수 있어. 그리고 넌 나를 도울 수 있지.’

‘내가, 어떻게···?’

‘그건 말이지······.’

그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허억!”

가슴과 등이 축축하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자고 있던 거지? 아니지, 직전까지 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괴인 2호를 퇴치하기 위해, 헬 게이트로의 차원이동을 강행했던가.’

[헬 게이트로의 차원이동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렇다. 나는 결국 헬 게이트로의 이동에 성공하여, 괴인을 퇴치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하하······.”

허탈하지만 마음이 놓여서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리던 나는, 빵빵 울리는 경적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미친 자식아! 횡단보도 한복판에서 쳐자빠져있나!”

“···어?”

“빨리 비키라고!”

중년의 트럭 운전기사가 거칠게 소리를 지르자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나를 쳐다본다.

내가 이상한 짓을 해서?

아니다. 저들은 내 복장을 보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뭐지? 웬 갑옷이래.”

“코스프레인가?”

뭔가 이상하다. 현대에 들어서는 각종 개성 넘치는 에테르 슈트 디자인 덕분에 내 갑옷 따위는 딱히 주목받을 만한 것도 되지 못했는데.

‘아니, 애초에 여긴 헬 게이트가 아니던가······?’

틀림없이 시스템은 이곳을 ‘헬 게이트’라고 가리키고 있었건만.

드높은 회색의 빌딩. 번쩍이는 네온사인. 사거리 교차로와 횡단보도, 현대적인 디자인의 평상복을 입은 사람들과 매연 가스를 내뿜는 자동차들.

이곳은, 틀림없는 ‘지구’였다.

툭!

“아, 좀 비키세요.”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머리 위를 보았고,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박선주』

#회사원 #남친있음 #아침부터과장새끼는왜지랄?

난데없이 주인공과 마주쳤다···라고 생각하고서 주위를 둘러보니.

주인공이 한둘이 아니었다.

『데이비드 김』

#백수 #한미혼혈 #잘생김 #외국인TV프로에출연하고싶음

『김석권』

#축구선수 #딸둘아빠 #세영아사랑해

『서한울』

#대학생 #자취함 #여친구함 #오늘한잔할사람?

지나가는 모든 사람의 머리 위에 ‘주인공 해시태그’가 떠있었다.

그러나 그들 하나하나를 면밀히 살펴보자면, 주인공이라기엔 지나치게 평범한 감이 있었다.

누구는 평범한 회사원, 누구는 평범한 대학생, 누구는 평범한 백수.

모두가 평범했으나, 모두가 주인공인 세상.

‘이거, 설마······.’

툭, 뒷걸음질을 치다가 벽에 걸린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시선에 비춰진 유리창 너머, 내 머리 위에 선명히 적혀있는 메시지 하나.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

#현대 #헌터 #다차원유랑물

[당신은 이 세상의 ‘주인공’입니다.]

“어······?”

그렇다.

나는 마침내, 주인공이 되었다.

<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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