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공 클리셰(1) >
별명으로는 신인류, 공식적인 명칭으로는 괴인 2호라 불리는 재앙은 빠르게 남미 대륙을 가로질렀다.
그 과정에서 재앙에 휩쓸린 헌터의 숫자만 벌써 수천 명이 넘어갔으며, 민간인의 피해는 감히 셀 수조차 없었고 출동한 군부대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
지구상에서 가장 큰 테마파크가 존재하는 이곳은 365일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붐볐으나, 지금은 단 한 명을 제외하고서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괴인 2호.
그것은 텅 비어버린 도시의 전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신의 목적조차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어딘가로 향할 뿐인 괴인 2호는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치직! 다음 소식입니다! 어나더 리그의 마스터 유서담이 직접 ‘괴인 2호’의 사냥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무림맹주 설중연과 둘이서 활동하겠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의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과연 괴인 2호의 토벌이 가능키나 할까요?
-무림맹주는 SSS랭크의 초인이기 때문에······.
드높은 빌딩, 꺼지지 않은 채 반짝이는 스크린.
그리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속보.
“······?”
괴인 2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뉴스에서 나오는 저 남자의 얼굴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아주 천천히.
자신의 태어난 이유를 상기해낸다.
‘유···서담······.’
목표가 저기에 있다. 괴인 2호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켰고, 스크린은 작은 스파크와 함께 꺼져버렸다.
유서담이, 아니었다.
‘진짜를······찾아야······.’
타앙!!
팅!
“······.”
괴인 2호는 고개를 돌렸다. 어디에선가 들려온 총성은, 이제는 꽤 익숙했기에. 이것은 ‘인간’이라는 하등 종족이 자신에게 적대감을 표출할때 내는 소리였다.
“뭐, 뭐야! 총알이 바람에 날아온 간판에 막히다니······!”
특수 저격총을 발사한 자는 9년차 F랭크의 헌터로서, 나름 무능력자로 이 바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자였기에 정확한 저격 타이밍을 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주 우연히도 바람에 불어온 간판이 총알을 튕겨냈고」 그 덕분에 헌터의 위치가 발각되고 말았다.
‘젠장, 도망쳐야······!’
저격에 실패했을 땐 장비를 챙기는 사치따위를 부려선 안 된다. 그는 와이어를 달고서 고층 빌딩에서 뛰어내렸는데, 「갑자기 바람이 거칠게 불기 시작했다」.
‘크윽, 이건······?!’
말 그대로 자연 현상이었다.
그 어떤 에너지 파장조차 감지되지 않는, 평범한 자연 현상.
‘그런데, 왜 하필 지금······!!’
하지만 그 우연히 발생한 자연 현상에 의해 헌터는 저격에 실패했으며, 심지어 와이어에서 몸을 크게 흔들리다가 결국 끊어져 바닥에 추락하고 말았다.
“끄, 끄아아아악!!”
퍽!
9년차의 헌터라지만 아무런 초능력도 없던 그는 허무하리만치 그렇게 목숨을 잃었고, 괴인 2호는 무심하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다른 스크린이 떠있었다.
-오늘 저녁, 헌터 유서담은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하기로···.
‘······중국, 베이징.’
단어를 거기까지 들었으면 충분하다. 그곳이 지구상 어디에 위치한 곳인지, 어떤 나라인지, 그런 건 상관없다.
그저, 어디에 있는지 인지할 수만 있다면.
곧바로 그곳에 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 괴인 2호는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
괴인 2호라 불리는 존재가 어디를 향해 움직이는지는 아직 알 길이 없었다. 다만 남미를 가로질러 이동하는 그 동선으로 추정컨대, 빠르면 하루 안에 아프리카에 도달한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하루 뒤, 아프리카로 갈 겁니다.’
누님에게 그리 말한 뒤 나는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딱히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중국 정부 측에서 자신들의 시민에게 안심을 줄 수 있겠냐고 정중히 요청까지 해서 어쩔 수 없었다.
“한시가 바쁜 와중에도 정치 따위나 생각하는 꼬라지가 우습구나.”
“하하··· 너무 그러진 마세요.”
사실, 누님의 말이 맞았다. 중국은 시민에게 안심을 주려는 게 아니었다. 단순히 그런 의도였다면 정장 빼입은 정치인들이 한가득 나와서 내 옆에 앉아있을 리가 없겠지.
아마도 그들의 목적은 오늘 이 기자회견 이후, ‘헌터 유서담을 우리 중국이 컨트롤할 수 있다’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이리라.
원래 같았으면 안 하려고 했으나, 그냥 아예 소신 발언 딱 한 번 한 뒤에 자리를 뜰 생각이다.
나는 중국을 지키는 게 아니다. 나는 세계를 지키는 것이다.
상당히 오글거리는 대사였으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언하면 상당히 멋있을 거라며 나름대로 예카테리나가 생각해준 것이다.
중국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 중국만 지키는 것도 아니고.
즉, 이렇게 발언하면 나를 어떻게든 중국으로 끌어들이려는 정치적 수작을 단번에 카운터칠 수 있는 것이다.
솔직히 지금 기분은 굉장히 더러웠다.
고작 정치질 따위에 묶여있을 때가 아닌데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신경 쓰느라 제대로 집중해야 하는 문제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마음을 편하게 먹거라. 사냥에 필요한 준비는 끝났고, 남은 건 기다리는 것뿐이니.”
“그렇죠······.”
장비도 모두 챙겼고, 아프리카 대륙의 서부 지방에도 대피령을 발령하였다. 이제는 정말 기다리는 것만 남았으니 애초에 손해보는 시간은 아니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였다.
차르르륵!찰칵!
기자회견장에 당당히 걸어나가자, 다양한 국적의 기자들이 카메라 셔터를 마구 터트렸다. 흡사 눈앞에 벼락이 내리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여유로운 걸음으로 나가 미리 나와있던 이들과 악수를 나누고, 단상으로 다가가 마이크를 잡으려는데.
“잠깐.”
“네?”
누님이 내 어깨를 짚으며 저지하였다.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뭔가······.’
직후, 느껴지는 불길한 직감.
그 이후의 행동은 그저 본능이었다. 아마도 나는 ‘모두 도망쳐라’고 소리를 쳤고, 인벤토리에서 서둘러 장비를 꺼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게 에테르 슈트였는지, 아이템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삐이이······!!
귓가에 들려오는 이명음.
내 몸은 이미, 벽을 몇 겹이나 뚫고 날아가고 있었다.
등에서 느껴지는 충격, 번쩍이는 시야,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청각.
뒤늦게 나는 무언가에 얻어맞았다는 사실을 인지하였고.
“쿨···럭···!”
피를 한웅큼 토해냈다.
파직, 파지직! 복부에서 청녹색의 스파크가 튀었다.
[배터리 잔량: 0%]
단 한 번의 충격으로 나름 1등급의 에테르 슈트의 배리어가 완전히 깨어진 것.
고개를 들어보니.
“······미친.”
기자회견장이 깔끔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사방에는 시체와 부상자가 널려있었고, 그나마 충격에도 살아남은 헌터들이 비틀거린다.
그리고 그 하늘에.
괴인 2호와 누님이 마주보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신체 상태를 체크한다. 다행스럽게도 슈트의 방어력을 모조리 소진한 데다가 나름대로 SS랭크의 초인이었던 덕분에,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누님.”
“일어났느냐.”
설중연 누님은 벌써부터 분홍빛이 감도는 검을 뽑은 채, 괴인을 겨누고 있었다. 나 또한 검을 뽑고서 괴인을 향해 마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의 머리 위에 떠있는 주인공 해시 태그.
『내꿣 뎋인곯은 쌅!이덱』
#클리셰 #새드엔딩 #없음
‘···뭐야.’
어느 정도 글자가 눈에 읽혔다. 비록 제대로 문장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해시 태그 세 개는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다.
‘클리셰, 새드엔딩······ 그리고 없음은 또 뭐야?’
괴인 2호는 천천히 고개를 떨궈, 나와 눈을 마주하였다.
“···유, 서담.”
“그래. 나다.”
예상대로였다. 그레이 휴먼과 마찬가지로, 나는 놈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벌써 여기까지 왔을 줄은 몰랐는데······ 목적이 뭐야? 날 찾아온 거냐?”
“그렇다.”
“왜?”
그러자 괴인이 눈을 깜빡였다.
“그건, 모른다.”
“······그러냐?”
목적이야 어쨌든 상관없다. 철컥! 이제는 완성형에 가까운 윈체스터를 한손으로 장전한 뒤, 놈에게 겨누었다.
“모르면, 죽어야지.”
타앙! 각종 에너지 분석기가 탑재되어있는 탄환이 빠르게 괴인에게 날아간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순간 바닥에 쓰러져있던 전력시설의 스파크가 튀어 자기장이 발생하며 총알의 궤적이 휘고 말았다.
[주인공 ???의 스킬 「주인공 클리셰」가 발동되었습니다.]
[1. 주인공은 결코 적이 쏘는 총알에 맞지 않는다.]
괴인 2호는 궤적이 휘어진 총알을 잡아, 다시 내게 던졌다.
황급히 보법으로 자리를 피했으나.
[2. 그런데 주인공이 쏘는 총은 백발백중.]
총알이 바람을 타고 휘더니, 내 다리에 명중하였다.
“큭···!”
가벼운 타격 정도였으나, 그 충격으로 인해 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직후 괴인 2호는 손바닥을 내게 향하여 소용돌이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누님을 보고서는 즉시 손을 틀었다.
···쩌엉!!
가벼운 충격파가 대지를 휩쓸었다. 누님은 놈의 손과 검을 한 번 맞대더니, 마치 호숫가에 떠다니는 벚꽃처럼 자신의 몸을 천천히 늘어뜨렸다.
천마신공(天魔神公)
천마진혼멸검(天魔震魂滅劍)
설매화(雪梅花)
검끝에서 퍼져나간 분홍색 물결의 파장. 그 파장의 끝에서, 매화가 흩날리기 시작하였다.
벚꽃과 매화가 다른 점이 있다면, 매화는 벚꽃보다 더욱 짧지만 촘촘하게 세상을 메운다는 것.
한겨울에 폭설이 내리는 것처럼 빗발치는 매화의 향연에 괴인 2호의 피가죽이 벗겨지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몸이 갈라지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서서히 그렇게 가루가 되어 분쇄되는 것이다.
이윽고, 매화의 향연이 괴인 2호를 완전히 덮어버렸다. 아예 그것의 형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는 그것 또한 누님이 의도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작스레 내 입이 절로 열리며 어떤 단어가 튀어나왔다.
“······해치웠나?”
[3. 주인공이 공격을 받은 뒤, 적이 ‘해치웠나?’라고 말하면 상처 하나 없이 모습을 드러냄.]
누님의 매화가 한순간에 흩어졌고, 그 안에서 괴인 2호가 멀쩡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야, 화분! 아직이야?”
-이제 됐어······.
대답이 떨어짐과 동시에 양손에 마나를 집결시켜 바닥에 손을 가져다 대자, 한때 드래곤이 발록조차 봉인하였다는 전설의 봉인 마법 ‘칠주결계(七週結界)’가 발동되었다.
가장 먼저 월(月)이 적혀있는 비석이 허공에 떠올라 놈의 후미에 자리를 잡았으며, 두 번째로 화(火)의 기둥이 날아올랐지만.
슉!
“······!”
괴인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젠장, 어디지!?”
라고 말하는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함께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뒤늦게 떠오르는 메시지.
[4. 주인공의 모습이 사라진 후 ‘젠장, 어디지?’라고 말하면 반드시 뒤에서 나타난다.]
‘크윽, 빨리도 말해주네!’
죽을 만큼의 충격은 아니었기에 서둘러 바닥을 구르자 그 자리로 거대한 건물 잔해가 떨어져 박혔다.
그래도, 일련의 합을 나눈 덕분에 나는 놈이 어떤 원리로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여태 만났던 주인공들 중에서도 분명히 저런 부류가 존재하긴 했었으나, 이번 경우에는 더욱 확실하게 ‘클리셰’를 따른다.
“그렇단 말이지···.”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사기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하지만, 나는 무수히 많은 클리셰를 접해왔으며 무수히 많은 주인공들의 클리셰를 부숴온 데다가 스킬 [주인공 사냥꾼]이 있다.
가만히 클리셰에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 주인공 클리셰(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