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인류(3) >
신인류(3)
헬 게이트 연구소를 무너뜨린 괴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듣기 위해, 나는 예카테리나와 함께 새벽부터 일찍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 향해야만 했다.
눅눅하게 물든 새벽의 하늘은 썰렁했다.
멍하니 있기도 뭐하겠다, 괴인에 대한 문서를 조금 더 읽어보던 나는 문득 TV를 틀었다.
-···일명 ‘걸어다니는 재앙’이자 ‘괴인 2호’라 불리는 괴인이 나타나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에 떨고 있습니다. 하와이 제도를 휩쓸고 사라진 정체불명의 괴인. 과연 그 정체는 무엇일까요? 전문가 알렉스 박사님을 모셨습니다.
-반갑습니다. 알렉스입니다.
온갖 채널에서는 벌써부터 괴인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박사님. 저 괴인의 정체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아직까지는 자료가 충분치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현재까지 포착된 정보에 따르면 괴인은 괴수보다는 인간을 더욱 닮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인간을 닮았다니요?
-괴수는 에테르 에너지의 영향으로 인해 푸른 피를 흘리는 반면, 헌터 청의 말에 따르면 괴인은 붉은 피를 흘렸다고 합니다. 또한, 신체 기관의 일부가 인간과 굉장히 흡사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괴인이 인간의 또다른 종이라도 된다는 걸까요?
-거기까지는 확언 지을 수 없습니다만······.
알렉스 박사는 숨을 한 차례 골랐다. 신중히 단어를 내뱉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다른 종이라기보단, 오히려 인간이 진화한 형태라고 보는 게 더 옳다고 볼 수 있겠군요.
-아······.
괴수학 전공의 1인자 알렉스 박사의 발언은 공중파를 타고 널리 퍼질 것이나, 저게 큰 파장을 줄 수는 있을까.
그것이 신인류든 아니든, 당장 재앙이 눈앞에 닥쳐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텐데.
-···한국 시각 오후 15시경, 멕시코의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에서 통칭 ‘괴인 2호’가 상륙했음을 확인했습니다.
-괴수 센서에 포착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바하칼리포르니아에서 시민들을 대피시키지 않아,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언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상황인데, 그들은 제대로 인류를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히려 헌터들을 탓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헌터! 헌터들은 대체 우릴 지키지 않고 무얼 하고 있소! 돈 받아 처먹고 하는 게 뭐냔 말이야!
-다음으로, 괴인 2호의 동선에 대해 전문가를 모셔와서······.
헬 게이트의 습격 때만 해도, 그래도 어느 정도의 안전선을 유지할 수는 있었다. S랭크 이상의 헌터들이 그레이 휴먼에게 어느 정도 대적하는 게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SSS랭크의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속보입니다! 괴인 2호의 경로를 예측하여 대기하고 있던 SS랭크 헌터 세 명을 비롯한 헌터 쉰다섯 명이 모두 사망했습니다.
“허.”
괴인 2호의 행동 속도는 생각보다도 빨랐다. 첫 등장 이후, 하루도 채 되지 않아서 벌써 멕시코의 일부를 괴멸시켜버렸을 정도이니까.
TV에서는 영상의 일부가 나왔으나, 대부분의 장면이 편집되어 짤막하게 편집된 3초가량의 영상을 반복재생하는 게 전부였다.
‘제대로 된 영상을 보내달라고 해야겠구만······.’
비행기는 금세 베이징 공항에 도착하였다. 움직임을 어디에도 알리지 않고 은밀히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벌써부터 기자가 사방에 쫙 깔려있었다.
“으······. 진짜 싫어요.”
“너무 싫어하진 말고. 쟤들 덕분에 우리도 먹고 사는 거니까.”
예카테리나는 귀찮다는 듯 울상을 팍팍 지었지만 어쩔 수 없이 기자들을 향해 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뭐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니까.
비행기에 함께 탑승했던 어나더 리그의 초능력자들(죄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이 양복을 빼입고서 두 줄로 쫙 갈라지자, 기자들이 양옆으로 물러났다. 모세의 기적을 보는 것만 같았다.
물론 몇몇 기자 중에서는 육체강화계의 초능력을 가진 이들이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혼자만 툭 튀어봐야 오히려 혼자 쫓겨날 뿐이다.
“어떻게 할까요?”
“나 중국말 쓸 줄 모르는데.”
“번역기 드릴게요.”
뭐 대수로운 일 하러 가는 것도 아니었으니, 대충 대답 몇 개 던져주고 갈 생각이다.
“(헌터 유서담! 괴인 2호를 퇴치하기 위한 대비책이 있습니까?)”
“이제부터 만들어야죠.”
“(헌터 청을 만나는 이유는 몰래 파악한 괴인 2호의 약점을 전해듣기 위해서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게 있으면 진작 잡으러 갔지.”
“(헌터 유서담은 역시 중국을 수호하기 위해 찾아오신 게 맞습니까?)”
마지막 질문은 조금 뜬금 없어서 되물었다.
“왜요?”
“(왜냐니요. 중국을 지키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헌터 유서담의 조상이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이 이미 연구 결과로 밝혀졌습니다.)”
“뭐래 병신인가. 내가 너네랑 기원이 왜 같아?”
“(예?)”
“서, 서담님! 그냥 빨리 가요!”
예카테리나가 이를 꽉 깨물고 나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미리 대기중이던 리무진의 뒷좌석에 탑승한 뒤에야 그녀가 화를 냈다.
“테일러 언니가 언론에서 톡톡 튀는 바람에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길드 마스터라는 사람이 그렇게 생각이 없으면 대체 어떻게 해요!”
“······미안해.”
“후우···. 화가 많이 나셨을 건 알겠지만, 그래도 그냥 무시하는 게 답이에요.”
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리고, 예전의 나였다면 틀림없이 무시했을 것이다.
그런데, 방금의 행동은 대체 뭐란 말인가?
‘뭔가······.’
뭔가가, 이질적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정치적, 외교적, 사교적인 문제를 싸그리 무시한 채 그저 당장의 속 시원함만을 노리고 발언해버렸다. 이건 흡사······.
[사이다를 일부 선사하여 개연성을 획쉃 꿝! 앝앆뵻 췀···.]
“······!”
“가, 갑자기 왜 놀라시나요?”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크게 젖히고 말았다. 덕분에 눈을 마주하고 대화하던 예카테리나도 내 감정에 동화되어 뒤로 발라당 넘어가 창문에 머리를 부딪쳤다.
“···아냐. 아무것도.”
“정말······. 깜짝 놀라게 하시지 마세요.”
“그래. 나는, 조금 생각할 게 있어서.”
“···알겠어요.”
예카테리나는 노트북을 펼쳐들고 뭔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고,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진정했다.
예상했던 일이다. 당황할 건 없다. 다만, 아직은 때가 아닐 뿐.
‘······참아야 해.’
이제는 주인공을 사냥하는 행위뿐만이 아니라, 단순히 평상시에 하는 행동만으로도 개연성을 쌓기 시작했다. 그건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아마도······ 괴인 2호의 퇴치가 내 마지막 주인공 살인이 되겠지.’
그것을 사냥하는 순간, 또다시 대량의 개연성이 체내에 흡수될 테니 ‘주인공 화’는 이제 결코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마음 한 켠에 두려움이 자리를 잡았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나도 인간이었기에.
띠링!
[테일러: ㅋㅋㅋㅋㅋ병신ㅋㅋㅋ]
[테일러: 야 너 오늘따라 쿨하다? 존나 차가웤ㅋㅋㅋㅋ]
[테일러: 니가 무슨 유담때야? 아니면 유게더? 유밤바? 유앤크?]
핸드폰이 울려 확인해보니 테일러가 장난치는 문자였다.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쩐지 마음이 차분해지고 안정되었다.
[유서담: ㄲㅈ]
[테일러: ㅋㅋㅋㅋㅋ]
그녀 덕분에 긴장을 상당히 풀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새삼 내 목적을 상기할 수 있었기에.
“······.”
리무진은 한참을 달렸고, 내 생각이 정리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도착한 장소는 베이징 뉴 에이지 호텔. 삼십여년 전 대전쟁 이후 지어진 이 호텔은 고위층들의 연회장으로 주로 쓰였으며 드라마에도 하도 나오는 배경인지라 처음 와보는 나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호텔 가드의 안내에 따라 내부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대기하니,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던 사람과 마주할 수 있었다.
SS랭크의 헌터 청.
헌터 협회 총괄협회장 라이클 사이어스.
그리고, 무림맹주 설중연.
누님은 내가 이 자리에 특별히 초청하였다. 괴인 2호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누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았기에.
“···반갑습니다, 헌터 유서담. 명성은 익히 들었는데 처음 뵙는군요.”
“예, 헌터 청. 평소부터 존경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뵈니 영광이네요.”
“별말씀을요······.”
청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중국계 혼혈인 그녀는 동양인의 이미지가 조금 더 강했는데, 그 미소에 깃든 슬픔이 어쩐지 진하게 느껴졌다.
“저는 존경받을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을 지키지 못한 채 도망쳐 나왔으니까요. ···심지어, 저를 위해 희생하신 분도 계십니다.”
그건 들어서 알고 있다. 이름이 당백수라고 했던가. 가끔 누님 만나러 무림맹에 들릴 때마다 마주치는 사람이었는데 성격이 워낙 지랄맞아서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다니.
“······죽고 나서야 그 사람이 가슴에 품고있던 뜻을 알 수 있게 되고, 존경하게 되다니. 그 또한 별로 좋은 일은 아니군요.”
“예. 유서담 헌터의 말씀이 맞습니다.”
짧게 당백수를 애도한 뒤, 라이클이 먼저 주제를 꺼냈다.
“무림맹주 설중연님과 어나더 리그 마스터 유서담께서 직접 괴인 2호의 퇴치에 참여해주신다니 정말로 든든하군요. 제가 감히 지구를 대표할 깜냥은 못되니, 제 가족을 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그의 예의바른 유머에 누님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우선 이 자리에 모이신 건, 아마도 괴인 2호에 대해 더욱 상세히 들을 필요가 있어서겠지요.”
“예.”
청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차를 홀짝이고서는 무언가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이건, 사건 당일 제가 착용하고 있던 액션캠의 파일입니다. 세간에는 공개하지 않았죠.”
그러고선 미리 준비해온 태블릿에 꽂자, 즉시 영상이 재생되었다.
헬 게이트 연구소를 부수며 등장하는 괴인 2호와 그에 즉시 대응하는 당백수와 청.
영상은 빠르게 지나갔으나, 몇몇 장면은 화질이 흐릿해지기도 하고 짤리기도 해서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당사자가 코앞에 있어서 제때 그에 대한 보충 설명을 들을 수는 있었지만.
영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종료되었고, 청이 먼저 입을 열었다.
“헌터 유서담. 제가 이 자리에 당신을 왜 불렀는지 혹시 아시겠습니까?”
“네? 글쎄요.”
“그 괴인, 헬 게이트와 연결되어있습니다.”
“······예?”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사이코키네시스는 기본적으로 정신파를 사용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두 가지의 힘 중력, 자기력을 위배하는 또다른 힘이죠. 덕분에 저희는 힘의 움직임에 대해 조금 더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어요.”
“그렇···군요.”
“괴인 2호는 헬 게이트의 ‘일부’입니다. 여기, 이 찻물을 보시겠어요?”
청은 염력으로 찻물을 동그랗게 말아서 허공에 띄웠다. 그러고선 그 찻물에서 자그마한 물방울 하나를 떼어냈다.
“이 작은 물방울이 괴인 2호입니다. 이렇게 바깥으로 나와있을 땐, 스스로 활동할 수 있죠. 하지만···.”
그녀는 다시 작은 물방울과 큰 물방울을 합쳤다.
작은 물방울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완전히 합쳐졌기에.
“···이렇게 합치면, 괴인 2호는 헬 게이트에 다시 녹아들 거예요.”
나는 말 없이 고민했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부르셨군요.”
“······.”
그녀는 정말로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으나, 이해는 갔다.
괴인 2호는 인류를 위협하는 사상 최악의 괴수였으니까. 그것을 물리칠 방법이 만약에 없다면, 어차피 헬 게이트로 들어가기로 약속했던 내가 희생하여 그곳으로 들어가는 편이 더 나은 실정이니까.
단 한 명의 희생으로, 70억 인류가 모두 살 수 있다.
청은 합리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 희생을 자신이 하겠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해서 창피한 것인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하는 게 당연하죠. 저는 어차피 헬 게이트로 들어가기로 약속했었으니까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 방법이 이따위 것밖에 없다는 게 너무···.”
“자책하지 말게나.”
청은 연거푸 고개를 숙였고, 누님이 그녀를 말렸다.
“후우······.”
뜨거운 차를 들이킨다. 반대로 가슴은 점점 더 차가워져갔다.
< 신인류(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