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인류(2) >
지구 하와이 제도, 오아후 섬.
와이키키 해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유명한 휴양지로서, 드넓게 펼쳐진 하늘과 맑고 깨끗한 바다, 잔잔한 파도 덕분에 1년 내내 관광객으로 가득한 장소였다.
한때 해양 괴수의 침공 때문에 위태로울 뻔한 적도 있으나, 지금은 하와이 제도에서 자체적으로 활동하는 헌터들이 24시간 방비를 하고 있으며 최첨단 이상현상 감지 장치 덕분에 게이트나 던전 현상이 발생하기 한참 전에 미리 대피 명령이 떨어지기 때문에 위험한 일이 발생한 적은 거의 없었다.
어린아이가 꺄르르 웃으며 뛰놀고, 어떤 이는 헐벗은 채 태닝을 즐기고, 어떤 이는 바닷속에 풍덩 뛰어들어 해수욕을 즐긴다.
물방울 맺힌 형형색색의 음료수를 하나씩 손에 쥔 채 휴가를 즐기는 관광객들.
“응?”
“저게 뭐야?”
위험한 일이 전혀 없던 하와이였기에, 그들은 낯선 무언가가 등장해도 크게 경계심을 표출하지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에 다가가는 젊은 이들까지 있었다.
“사람인가?”
“키가 엄청 큰데?”
“자기야, 괴수 아냐? 그냥 가자.”
“에헤이. 저렇게 사람처럼 괴수 본 적 있어? 아무리 봐도 초능력자잖아. 자이언트 보이 알지? 그런 타입이겠지.”
해안가에 난데없이 등장한 그것은 살색의 피부와 평범하다 못해 흔해빠진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남성과 여성의 얼굴을 ‘평균치’로 계산해놓은 것만 같은, 정말로 한 번 보고 스쳐 지나가면 잊어버릴 것 같은 인상.
그것의 키는 3m에 가까웠으나 21세기에 그리 이상하게 보일 건 없었다.
‘선천적 초인’이라고 하여 평상시에도 초능력의 영향으로 인해 키가 평균보다 훨씬 더 크다거나 피부색이 푸르다거나 등등 독특한 초능력자들이 워낙 많은 세상이었으니까.
“헤이, 날 좋지?!”
누군가는 그것에게 다가가 허벅지를 툭툭 치고 지나가기도 했는데, 여전히 그것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다 벗고있는 거야?”
“그러게.”
“저 친구 거시기가 없는데?”
삐이익! 웬 괴한이 나타나자 즉시 반응한 안전요원이 호루라기를 불며 다가왔다. 안전요원 또한 전원이 최소 C랭크 이상의 초능력자로서, 어지간한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안전요원이 나서면 민간인으로서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재미없기는!”
“우!”
관광객들이 물러서자 안전요원은 그 괴인에게 다가서서 영어로 말했다.
“옷 한 장 안 걸치고 뭐 하시는 겁니까?”
그러나, 괴인은 대답없이 안전요원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하필이면 근무 타임에 잘못 걸렸단 생각에 요원은 한숨을 내쉬며 그의 어깨에 손을 뻗었다. 강제로라도 데려가기 위함이었다.
“초능력자 같으신데, 일단 저랑 같이 가서······ 응?”
그런데, 어깨가 짚이지 않았다.
손으로 허공을 휘젓는 듯한 느낌만이 계속 들어서 다시 확인해보니.
푸슉, 프스스······.
오른손이 위치해 있던 자리가, 깔끔하게 절단된 채.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어···어···.”
툭!
이윽고, 떨어져 내리는 요원의 목. 그는 자신의 죽음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두 눈을 부릅뜨고서 그렇게 마지막을 맞이하였고.
“······어, 어어어?”
“꺄아아아악!”
“사, 사람이 죽었어!!”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관광객들이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알았을까.
애초에 저것이 이 땅을 밟은 시점에서, 상황은 이미 종료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왜앵! 왜앵! 왜앵!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사이렌. 그러나 난데없는 괴인의 살해 때문에 울리는 것은 아니었다.
-해일 경보 발령! 해일 경보 발령!
끼룩! 끼룩!
떼지어 날아가는 수만 마리의 갈매기, 어느 순간 하늘 가득 메우기 시작한 두터운 먹구름 층.
그리고, 해일.
쿠구구구구······!!
하와이 제도의 지진해일 경보 시스템은 그 해일이 발생하기 한참 전부터 경보를 울릴 정도로 예측이 빠르기로 유명했는데, 어째서인지 이번 해일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도, 도망쳐어어!”
“해일이다!!”
그 어떤 초능력자도, 그 어떤 첨단 장비도, 그 어떤 대비책도 해일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천재지변이었기 때문에.
상황은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하와이 제도가 태산만한 해일에 휩쓸려서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30분 남짓.
괴인은 희멀건 눈빛으로 자신이 선사한 모든 죽음과 재앙을 지켜보았고, 곧 그 자리를 떴다.
-오늘 오후 14시 48분 하와이 제도 서쪽 지역에서 규모 7의 해일이 발생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나온 가운데······.
해당 사건은 즉시 전 세계에 보도되었고.
-······해일이 발생하던 시점, 하와이 제도의 상공에 정체불명의 괴인이 떠있는 장면이 포착되었습니다.
그것 역시, 세계에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
오후 4시경, 어나더 리그 연구소.
“그 부품을 사용하면 에테르의 효율성이 떨어져. 차라리 접도체를 써보는 게 어떤가?”
“그건 마나가 안 통하지 않습니까?”
“어쩔 수 없다. 두 겹으로 나눌 수밖에. 이 슈트는 우주복이니까.”
마도공학이 극한까지 발달했던 세계에서 박사로서 살아온 라칸탈의 조언을 받으며, 나 또한 예카테리나와 함께 디스펜서 개발에 참여하고 있었다.
사실 개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거의 없었고,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도대체 무슨 물건이 개발되었는지 하나하나 확인해보면서 실험해보기 위함이 더 컸다.
내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관심사는, 뭐니뭐니해도 ‘슈트’였다.
착용자의 또다른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에테르 슈트. 얼마나 돈을 떡칠하느냐에 따라 우주 공간에 나가서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개조 방향에 따라 성능은 천차만별이었다.
“제가 우주를 왜 나갑니까?”
“자네 종족도 조만간일세. 별들 사이를 여행하는 성간종의 기술력을 따라잡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라칸탈이 공들여 개발한 우주복은 과거의 착용도 불편하고 거동은 당연히 힘들었으며 여러모로 두껍고 답답했던 우주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 지금은 특수합금과 에너지 보호장을 둘러서 두께 5cm 정도로 우주 공간에서도 어느 정도 유연한 움직임이 가능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우주복의 원리를 적용시켜, 새로이 개발하고 있는 슈트가 바로 ‘헬 게이트 슈트’였다.
헬 게이트 내부 공간은 그 어떤 보호복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으며, 방독면도 기능을 잘 하지 못했는데 라칸탈이 직접 헬 게이트의 환경을 조사하여 그에 적응할 수 있도록 슈트를 만든 것이다.
“아직은 아무것도 입력되지 않았다만, 이것을 입고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슈트가 스스로 적응하고 진화할 걸세. 외부가 제아무리 초고열이든, 초저온이든 상관없이 내부는 인간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환경을 유지해주겠지.”
물론, 헬 게이트 내부의 환경은 단순히 덥거나 춥거나 공기가 좋지 않다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무언가가 잘못되어 있었지만, 거기까지는 아직 지구의 기술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 일단은 여기서 데이터를 입력해보고 차차 실험해보자고. 임상 실험은 자네로 하지.”
“아니 왜 접니까?”
“자네는 어느 환경에서든 적응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그렇긴 한데······.”
얼떨결에 임상실험을 강행하게 되어, 슈트를 어떻게 장착해야 하나 살펴보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거칠게 울렸다.
“뭐지?”
긴급한 상황에만 연락이 오는 두 번째 스마트폰이었기에 서둘러 통화를 받아보았다.
-마스터 유서담. 지금 뉴스 보셨습니까?
“뭔 일 있습니까?”
-헬 게이트 연구소가 완전히 붕괴되었답니다!
“······예?”
그 말에, 나는 손에 들고있던 슈트를 툭 떨어뜨리고 말았다.
“자, 잠깐······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헬 게이트 연구소는 헬 게이트의 바로 지척에서 그 에너지를 관측하는 데다가 그 내부에서 혹시 튀어나올 수도 있는 괴수에게 대항하기 위한 최첨단 장비가 가득 설비되어 있었다.
연구소는 이미 그 자체로도 전쟁을 위한 준비가 완료된 커멘더 센터 그 자체였단 말이다.
앞으로, 헬 게이트로 들어가기 위한 계획에는 연구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곳을 거점으로 삼아서 헬 게이트 원정을 지속해야만 할 테니까.
-지금 즉시 데이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생환자, 단 한 명. SS랭크의 헌터 ‘청’께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놓았으니 곧바로 읽어주십시오.
“예. 고맙습니다.”
뚝, 통화를 끊고 나서야 전화를 건 상대가 국제 이상현상 협회의 어디 높은 직책의 사람이란 것을 알았다.
즉시 전송된 헬 게이트 연구소 붕괴와 관련된 데이터. 그것을 읽기도 전에 전화가 연달아 울렸다.
-여보세요? 헌터 유서담!
“헬 게이트 붕괴 건은 방금 들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지금 전송하는 화면을 봐주십시오! 하와이 제도가 해일에 완전히 쓸려나갔습니다!
“해일? 그런 걸 왜······.”
의문이 생겼지만 일단은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로 했다. 스마트폰을 살짝 뒤집자 스크린이 확장되며 큰 화면에 영상이 재생되었다.
인공위성과 드론의 시점에서 적나라하게 포착된 하와이 제도에서 발생한 대참사 장면.
그것을 보던 나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하와이 상공에, 저 이상한 건 뭡니까?”
-헬 게이트 연구소가 붕괴되었다는 연락은 받으셨겠지요?
“그렇습니다.”
-추측컨대, 하와이 제도에 더불어 헬 게이트 연구소의 붕괴 또한 저 괴인의 소행인 듯싶습니다.
“무슨, 미친······.”
헬 게이트 연구소, 하와이 제도. 전 세계에서 가장 이상현상에 대한 방비책이 뛰어난 두 장소가, 단 하루만에 한 명의 괴인에 의해 무너져버렸다.
“······나중에 연락드리죠.”
상대방이 누군지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나는 즉시 스마트폰에 전송된 연구소 붕괴와 관련된 데이터를 확인하였다.
[헌터 청의 증언: 대상은 헬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존재이며 최소 SSS랭크 이상의 능력치를 지니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음.]
[인간의 잣대로 에너지 수치 레벨을 재는 것은 무의미.]
[대상은 자연재해를 불러올 수 있으며, 무언가 특이한 능력을 통해 스스로에게 ‘항상 유리한’ 환경을 만드는 것으로 확인됨.]
“SSS랭크라고······?”
여태 헬 게이트 내부에서 ‘그레이 휴먼’들이 지속적으로 지구를 침공하기는 했으나, 각 개체가 SS랭크 수준이었기에 어떻게든 막아볼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게 SSS랭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SS랭크의 헌터를 수십 명 이상 모아야만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을 터인데, 그런 많은 수의 헌터를 때마침 저 괴인의 등장에 맞춰 한 곳에 모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젠장······.”
“SSS랭크의 괴인이라. 골치가 아프게 되었군.”
“예······.”
과거, 아주 극소수의 헌터들이 SS랭크 등급을 받았을 때.
어떤 테러리스트가 있었다.
바람을 다루는 SS랭크의 초능력자였던 그는 성층권의 기류를 타고 전 세계를 날아다니며 세계 각지를 테러하였는데, 시골과 도심지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폭풍으로 휩쓸어버린 탓에 지구의 사회망이 아예 마비가 되어버렸다.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른다.
옆에서 멀쩡하게 걷던 사람이 사실은 핵폭탄일 수도 있다는 공포.
사람들은 서로 마주하지 않게 되었고, 모두가 건물 속으로 꽁꽁 숨어 들어갔다.
그만큼, 초능력자가 벌이는 게릴라전은 상상 이상의 공포와 피해를 안겨다 준다.
비록 저 괴인에게 이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태 그레이 휴먼이 보여준 행동양상을 보면 인간 이상의 지적 능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누님과 내가 함께 다니면서 저놈을 찾아내면, 어떻게든 이길 수는 있겠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점이 하나 있었다.
‘무언가 특이한 능력을 통해, 스스로에게 항상 유리한 환경을 만든다.’라는 항목. 언뜻 일반인들은 저것을 보고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으나, 어쩐지 나는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주인공 보정.
내가 상대해왔던 모든 주인공들은 한계치 이상의 [위기]가 닥쳐오면 주인공 보정에 의해 스스로의 능력치를 더욱 강화하고는 하였는데, 헬 게이트의 그레이 휴먼들 역시 주인공 해시 태그를 달고 있지 않던가?
만약 저 괴인 또한 주인공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주인공 보정이 존재할 수도 있을 터.
내가 알기로 지구상에서 주인공 보정을 억누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나밖에 없다.
< 신인류(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