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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243화 (243/251)

< 신인류(1) >

쿠르릉!쿠릉!

구름 한 점 없이 창창했던 태평양의 하늘에, 먹구름이 서서히 몰려왔다.

툭, 투툭, 쏴아아···!

이윽고 쏟아지기 시작한 소나기.

당백수는 소나기를 맞으며 건물에서 빠져나가, 헬 게이트 연구소에서 가장 높이 우뚝 솟아있는 송전탑의 꼭대기를 밟았다.

그리고, 헬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정체불명의 괴인과 마주하였다.

“······허, 거참. 가까이서 보니까 더 장난 아니군.”

그것은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처럼 아무런 표정조차 짓지 않았았으며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의사소통을 시도하고 있고 또한 감정표현을 하고 있었지만 인간의 수준으로 이해할 수 없어서 알아채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심지어 허공을 딛고 서있다니!’

공중을 밟고 도약하는 경지인 허공답보(虛空踏步) 정도는 당백수 또한 가능하다. 하지만 저 괴인은 말 그대로 허공에 자연스레 발을 딛고 서 있는, 능공허도(凌空虛道)의 경지였다.

한층 긴장감이 더욱 팽팽해지려는데, 바로 옆에서 청이 말을 걸었다.

“굉장한 기백이군요.”

“어이쿠, 깜짝이야. ···뭐냐 너. 어떻게 하늘에 떠있냐?”

바로 옆에는 어느덧 청이 다가와 있었는데, 그녀 역시도 괴인과 마찬가지로 허공을 밟고 있었다.

“······염동력자는 기본적으로 다 이 정도는 합니다.”

“능공허도를 말이냐?”

“그렇습니다.”

“허 참. 초능력이란 참으로 신비하군. 신선들이나 한다던 능공허도와 허공섭물(虛空攝物)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니.”

청의 입장에서는 수련을 통해 염동력의 영역까지 도달이 가능한 무공이라는 존재가 더 신기했으나, 잡담이나 떨 상황은 아니었으므로 굳이 이야기를 이어나가진 않았다.

철썩! 쿠르르···!

파도는 점점 거세지고, 소나기 줄기가 굵어졌으며, 하늘에서는 천둥벼락이 울부짖기 시작하였다.

마치, 자연 자체가 저 괴인에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공격하지 않는 거지?”

첫 등장 때만 해도 연구소를 전부 부술 것처럼 굴었으면서 말이다.

“어쨌든, 저놈이 인류에게 적대적인 건 확실하다. 먼저 가는 수밖에.”

당백수가 손을 휘릭 흔들자, 어딘가에서 날카로운 단검과 침이 튀어나와 손가락 사이에 끼워졌다. 검은색의 먹으로 칠해진 그 암기들에는 천혈독(千血毒)이라는 끔찍한 독이 발려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품에서 지휘봉처럼 생긴 에테르 디스펜서를 거낸 청은 마치 지휘를 하듯 허공을 휘저었다.

그러자 바다로부터 물기둥 수십 개가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바다와 하늘을 이었다.

감히 자연을 거스르는 그 어마어마한 위용에도 당백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서 소리쳤다.

“내가 먼저 치겠다!”

즉시 도약한 당백수는 괴인의 목에 단검을 찔러넣으려 했다. 하지만 놈에게 채 도달하기도 전에, 갑작스레 하늘에서 벼락 한 줄기가 떨어지더니 당백수를 튕겨냈다.

“큭!”

청은 잽싸게 그의 몸을 염력으로 자연스레 받아냈다.

‘벼락이라고···? 이런 최악의 우연이, 갑작스럽게 발생하다니······!’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물줄기를 날카롭게 가다듬어 괴인의 목을 노리고 날렸다.

극한까지 압축되어 다이아몬드조차 종잇장처럼 가뿐히 잘라내는 수압의 칼날! 최소한의 피해는 입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퍼석!

“······!”

물줄기가 모두, 허공에서 ‘증발’해버렸다.

‘이게, 어떻게······?’

도저히 원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고작 수압 칼날 정도가 청의 전부는 아니었다.

“흐읍!”

지휘봉을 크게 휘둘러, 괴인의 몸을 감싸고 있는 중력 그 자체를 우그러뜨린다. 마음만 먹으면 강철조차 녹여낼 정도로 끔찍한 압력!

하지만, 괴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청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이렇게 단단하다니······!’

계란의 모서리로 바위를 갉아내는 것만 같은 무기력함. 이렇게까지 자신의 능력이 아무렇지도 않게 막힌 적은 없었기에, 그녀는 적잖게 당황하였다.

스윽······.

이내, 괴인이 손을 치켜 올려 무언가를 하려는 그때 옆에서 용수철처럼 당백수가 튀어나왔다.

쐐액!

그의 손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십 다발의 침! 그것을 본 청은 아연실색하였다. 자신의 염력조차 놈에게 침범할 수 없었는데, 고작 침 따위를 던진다고 어떻게 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용 없······!”

그렇게 소리치려던 청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퓩, 퓩퓩!

놀랍게도, 당백수가 던진 침은 인간의 인지 속도를 가뿐히 넘어서··· 아니, 마치 공간을 관통한 듯 날아가 괴인에게 꽂혔기 때문이다.

그 놀라운 광경에 당황하길 잠시, 청은 하늘 높이 지휘봉을 흔들었다.

뚜둑! 쩌저저적!

무너진 장벽의 잔해, 종이, 책상, 날카로운 칼, 머그컵, 와인잔, 그저 지나가던 아기상어 등 그녀의 영역 안에 들어있는 모든 사물이 허공으로 날아올라 춤추기 시작했다.

“흐으으읍!!”

이윽고, 손을 아래로 내려치자.

콰콰콱!!!

그 모든 물건이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괴인에게 쏘아졌다.

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마치 무형의 장막이 쳐있는 것처럼 괴인의 몸에 닿는 즉시 모든 물건이 소멸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충분히 벌었고, 독이 슬슬 완전히 퍼졌겠다 싶었던 당백수는 손가락을 튕기며 소리쳤다.

“갈(喝)!”

그러자 괴인의 몸 내부에서 무언가가 꿀렁거리며, 피부가 푸르게 물들었다.

감염되는 순간, 모든 혈액을 말 그대로 폭탄으로 만들어버리는 그의 천혈독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한 것!

그러나 당백수는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본래 이 정도의 독에 감염되면, 폭발 즉시 이 일대 전부가 날아갈 정도의 위력이거늘.

‘어째서 독이 제대로 듣지 않았지?’

의문은 당장 해소할 수 없다. 입에 독을 묻힌 단검을 물고서 당백수는 양손을 모아, 내공을 끌어올렸다.

“선풍환살(旋風幻殺)······ 칠격(七擊) 폭(爆)!”

직후 허공에 손바닥을 내려치자, 허공에 보랏빛의 단검 일곱 자루가 우수수 생성되어 맹렬히 회전하였다. 그러고선 당백수가 팔을 크게 움직이자 그의 손짓을 따라서 허공을 유영하던 단검이 하나하나 괴인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자, 처음으로 괴인이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청은 놀라움을 애써 꾹 누르고서 괴인의 몸을 염력으로 짓눌러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았다.

퓨퓨퓩!!

보라색 단검 중 네 자루가 빗나가 소멸되었지만, 세 자루가 그것의 몸에 명중하였다.

“파(破)!”

다시금 손가락을 튕기니, 단검에 명중된 부위가 폭발하여 손바닥만한 크기의 상흔을 남겼다.

이윽고 드러나는, 놈의 신체 내부.

깜빡!

신체가 절단된 부위에서 눈알이 깜빡인다. 다른 부위에서는 혓바닥 수십 가닥이 튀어나와 낼름거리다가 들어갔으며, 또다른 부위에서는 입이 쩍 열리더니 허공을 갉아먹을 것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딱딱대다가 사라졌다.

“이, 미친······.”

“욱···!”

그 끔찍한 모습에 청은 저도 모르게 나오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고, 염력의 압박이 사라진 그 순간 괴인이 양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쿠릉, 쿠르릉······!!

번쩍!

먹구름으로 가득 차버린 하늘이 환해졌다. 수십, 수백 가닥의 천둥이 번쩍이기 시작한 것!

‘아뿔싸!’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린 청은 다시금 염력으로 놈을 쥐어짜려고 했지만, 괴인은 팔을 덜덜 떨면서도 압박을 견뎌냈다.

‘젠···장······!’

흡사 태산을 맨손으로 움직이려는 듯한 감각에 청은 어마어마한 심력의 소모를 느꼈다.

무언가, 좋지 않다.

그녀는 땀과 코피를 줄줄 흘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저 괴인은 왜 곧바로 공격하지 않았는가. 괴인의 공격 방식은 무엇인가. 괴인은 왜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 않고 있는가.

왜, 괴인의 등장과 동시에 먹구름이 끼었는가?

‘······설마, 자연을 다루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믿을 수 없다. 물을 조종하거나 바람을 움직이는 초능력은 있지만, 자연 그 자체를 다루는 초능력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데, 구름을 생성하고 천둥을 부른다니.

‘좋지 않아. 정말, 좋지 않아!’

놈을 쥐어짜는 것과 동시에 청은 염력으로 수많은 사물을 움직여 놈에게 던져보았으나 단 하나도 명중하지 않았다.

괴인 역시도 바람을 미세하게 조종하여, 그녀가 던지는 모든 물건의 궤적을 바꿔버리는 것이다.

‘닿을 수 없어······!’

모든 공격이 무효화된다.

염력을 통한 공기 조작, 수류 조작, 공간 장악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적에게 막힌 적이 없었거늘.

‘이토록이나 무력할 줄이야······.’

쿠르릉-!!

청은 입술을 꽉 깨물고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예 하늘이 새하얘질 정도로, 이제는 천둥벼락으로 온 세상이 가득 차있었다.

‘저것이, 괴인의 진정한 능력···.’

애초에 ‘전투’라는 단어 자체가 성립이 되질 않았다. 놈은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던 것이다.

죽음.

그것이 지척까지 다가왔을 때, 당백수가 움직였다.

“······사청당문(四川唐門), 절기(絕技).”

만천화우(滿天花雨).

청의 눈앞에, 꽃의 향연이 펼쳐졌다.

‘아······?’

보랏빛의 꽃잎이 휘날렸다. 거기에서는 마치 향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떤 꽃잎은 위로, 어떤 꽃잎은 아래로, 어떤 꽃잎은 앞으로, 어떤 꽃잎은 뒤로.

수백, 수천······ 수만의 꽃잎들은 마치 스스로가 의지를 가진 듯 수만 개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청은 염동력자이기에 알 수 있었다.

저 수많은 꽃의 향연은, 모두 단 한 사람의 의지로 인해 조종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저건, 염동력이다.

틀림없이 염동력이다.

인간의 정신력으로는 결코 수만 개의 물건을 수만 가지의 방향으로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했거늘.

‘어떻게 저런······.’

그녀는 지구 최고의 염동력자라는 타이틀을 지녔고, 그것은 마법사와 무림인이 등장한 이후로도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자신보다도 더 뛰어난 정신력을 지닌 자가 바로 눈앞에 있었음에도, 어째서 알아보지 못했단 말인가?

수만 개의 암기가 허공을 날아다니며 괴인을 서서히 갉아먹었다. 청의 공격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었던 괴인의 피부가 당백수의 공격에는 서서히 찢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저 공격에, 나도 합세한다면···!’

뒤늦게 청이 지휘봉을 흔들려 하는 그때, 당백수가 송전탑에 착지하였다.

꽃잎의 폭풍이 잦아들고 있었다.

“······이봐.”

“정신차리십시오. 저도 곧 합세할 테니!”

“아니, 너는 도망쳐라.”

“···예?”

당백수는 손을 크게 휘저었다. 여전히 만천화우가 몰아치고 있었지만, 하늘을 새하얗게 물들인 천둥벼락은 잠잠해질 기세가 전혀 없었다.

“봐라, 저놈은 독에 적응하고 있어. 만독불침지체(萬毒不侵之體)라도 되는 건지······. 금세 모든 독에 적응해버리는군.”

심지어 대부분의 공격이 빗나가고 있었다. 이제 보니, 그건 괴인의 조작에 의해서 아니었다.

그냥······ 자연의 바람 그 자체가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괴인의 몸에 칼날이 닿는 것을 끔찍히도 싫어한 바람이, 모든 공격을 흘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냥, 그럴 뿐이다.

“너라도 살아서 빠져나가. 그리고 놈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 송전탑이 완전히 망가져서······ 외부와의 연락 수단이 완전히 끊어졌다.”

“아니, 저도 끝까지 남아서 싸운다면 분명히 이길 수 있을-”

“냉정히 생각해, 이 멍청한 여자야.”

청은 멍하니 당백수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는 만천화우를 컨트롤하느라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저건······ 재앙이다. 지구를 학습하는 재앙.”

“학습한다니······.”

“저놈은 거대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어.”

그 에너지는 내공도, 마나도, 에테르도, 자기력도, 중력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당백수와 청이 알지 못하는 어떠한 거대한 에너지.

“내가 처음 공격하려 했을 때를 기억하나?”

당백수가 달려드는 그 순간, ‘에너지’가 스스로 움직여 벼락 줄기를 내리꽂았다.

그건, 결코 괴인이 의지를 가지고 행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청이 물줄기로 공격했을 때, 당백수가 독으로 공격했을 때 모두.

저 괴인은 공격을 단 하나도 피하지 못했다. 그저, 저 거대한 에너지가 움직여서 상쇄했다.

“그 에너지는······ 마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생각하고, 판단하고, 움직여서 자연의 섭리 그 자체를 조작한다. ···우리들만의 힘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어.”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청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망나니처럼 막 굴기에 아무런 생각도 없는 자인 줄 알았건만, 알고 보니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한 수 위에 있던 자였다.

“······이 연구소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내가 버티는 동안 어서 빠져나가서 이 사실을 알려. 서둘러! 이제는 슬슬 한계야!”

청은 당백수를 한 번, 괴인을 한 번, 그리고 연구소를 한 번 바라보았다.

헌터로서 살다보면, 때때로 선택을 해야만하는 시기가 찾아오고는 한다.

동료를 버리고 후퇴하여 후일을 기약할 것인가.

애꿎은 감정에 휘말려 함께 죽을 것인가.

여태껏, 청은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그녀는 그럴만한 능력이 되었기에.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확실히 알 수 있다.

자신의 조잡한 염력 따위로는, 놈의 발을 단 1초도 묶어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청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도움이 전혀 되지 못해서.

이렇게 두고, 도망쳐야 해서.

그러나 당백수는 그저 시원스레 웃었다.

“흐하하! 콧대 높은 여자한테 사과도 듣고, 오늘은 아주 좋은 날이군!”

그 말과 함께 당백수는 양손 한가득 암기를 쥐고서 괴인에게 달려들었고, 그 듬직한 등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청은 잽싸게 먹구름의 반경에서 빠져나왔다.

그렇게, 그녀가 한참을 달아난 뒤에서야 커다란 폭음이 바다를 뒤집어 흔들었다.

쿠릉······!!!

“윽!”

허공을 날던 청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곳을 확인하였다.

수천 가닥의 천둥벼락이 일제히 떨어져 내리고 있어, 마치 거대한 빛기둥이 세워진 것처럼 보였다.

“아······.”

확실한 건 하나였다.

헬 게이트 연구소는 이제 없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것은, 소멸되었을 것이다.

암담한 심정을 애써 가슴 속에 묻은 채 청은 다시금 발길을 돌렸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당백수의 희생으로 얻어낸 저 괴인의 정보를 세상에 알려야 할 때다.

< 신인류(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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