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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239화 (239/251)

< 흔들리는 세계(2) >

흔들리는 세계(2)

지구로 돌아온 뒤, 나는 고민을 많이 해야만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의뢰인이 사라지는 그 순간, 나는 또다시 공허해지고 말았다. 초능력 하나 없이 F랭크의 헌터로서 어떻게든 하루하루 벌어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치던 나날들.

그래, 물론 그때와 지금의 나는 확실히 다르다.

SS랭크에 육박하는 힘을 얻었으며 세계에서 인정받는 최고의 길드 어나더 리그의 마스터로서 헌터들의 업종에서 우뚝 섰으며 나를 믿고 따라주는 수많은 인연이 생겼으니까.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오로지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존재해왔다.

‘레이나 주.’

죽음의 순간, 새로운 삶을 얻게 된 직후부터 생긴 나만의 목표. 헬 게이트로 들어가, 그녀를 되찾아 오는 것.

그 목표 하나만을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던 것인데.

모든 게, 틀어지고 말았다.

“······.”

도저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다. 앞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하여 주저앉지는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은 캄캄한 어둠의 연속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둡고 깊은 산중을 헤매는 떠돌이처럼, 드넓은 망망대해를 뗏목 하나로 표류하는 조난자처럼, 방향을 잃은 채 사방이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맥을 헤쳐나야만 하는 등반가처럼.

그러나, 결국 나는 언제나 올바른 길을 찾아내었다.

헤매고, 또 헤매겠지만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하던 내 인생.

이번에도 결코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레이나 주는 헬 게이트 내부에 있었어. 그건 틀림없어. 맞지?”

-으응···아마도···.

“간단하잖아. 헬 게이트로 들어가면, 되는 거야.”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그렇게 하면 된다.

하지만, 과연 자신의 힘으로 헬 게이트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 동료들의 힘을 빌린다고 헬 게이트 내부의 그 존재들을 이겨낼 수 있느냔 말이다.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것도 이제는 불가능하다. 시시각각으로 헬 게이트가 지구를 비롯하여 수많은 세계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으며, 자신은 더 이상 힘을 키울 방법도 없지 않던가?

‘······아니지. 딱 하나, 있긴 있어.’

그건 바로, ‘주인공’이 되는 것.

하지만 주인공이 되었다가는 자신의 세계를 멸망으로 이끄는 운명까지 받아버리게 된다. 막상 레이나 주를 구해봐야, 세계가 무너져버리면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나를 닮은 그놈은, 평소 하던대로 하라고 했어.’

평소에 내가 하던 일.

그건 바로 주인공을 사냥하는 것.

그런데 어째서 그놈은 주인공 청부살인을 강요했을까?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때쯤, 퍼뜩 어떤 생각이 들어서 나는 고개를 들었다. 비록 의뢰인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허공에 남아서 떠있는 메시지.

[주인공 ‘파르텔 리안’을 사냥하였습니다.]

[재능 및 스킬을 흡수하시겠습니까?]

그렇다. 내가 하는 일은, 단순히 주인공 청부살인이 아니다. 주인공을 사냥한 뒤, 그들이 가진 극히 일부의 개연성과 힘을 흡수하는 것까지가 곧 내가 하는 일이다.

수많은 세계, 수많은 이야기 속의 개연성을 흡수하여 뒤죽박죽 범벅이 된 나의 개연성은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개연성이 과도해지면 곧바로 그것들을 강제로 소모하였고, 또다시 과도해지면 소모하였다.

하지만 거기에도 한계는 있었고, 의뢰인 역시 단단히 못을 박았다.

‘결국, 체내에 쌓이기 시작한 개연성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개연성을 소모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때는 별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조금 더 조심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조심스러웠다.

500레벨의 주인공 이동준을 사냥하고서, 과도한 개연성 때문에 스킬을 획득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400레벨의 주인공을 사냥하고서 당분간은 스킬을 획득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만약······.

‘······내가 헬 게이트의 주인공이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헬 게이트 또한 하나의 차원으로 취급된다면? 그래서,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으로 멸망의 길로 이끌 수 있다면?

물론 확신은 할 수 없다. 헬 게이트가 정상적인 세계느냐에 대한 의문점에 앞서,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주인공’들이 존재했으니까.

“그러니까··· 이제부터 알아봐야겠지.”

희미하게나마 앞으로 내가 해야할 일이 정해졌으니, 지금은 움직일 때였다.

곧바로 스마트폰의 전원을 켜서 연락처를 확인한 뒤, 어나더 리그의 길드원들에게 문자를 전송하였다.

[어나더 리그 길드 마스터 복귀 알림]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하나의 문자를 더 보냈다.

[헬 게이트 공략 예정 알림]

*

어나더 리그 길드가 유명해진 뒤, 간부진들의 존재감은 어지간한 슈퍼스타 저리 가라 할 만큼 유명해졌다.

예카테리나가 소소하게 5천원짜리 티셔츠를 한 장 사 입으면 그날의 트렌드는 그 티셔츠가 되어 여자들이 우후죽순 그녀의 패션을 따라하는가 하면, 테일러가 인터뷰에서 막말을 하면 전 세계 수십 여 국가에서 기사로 보도되기도 했다.

그만큼이나 어나더 리그는 초유의 관심사였기에, 많은 네티즌들이 품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유서담은 대체 어디서 무얼 하는가?’

그는 자주 ‘파견’을 나간다며 모습을 감추고는 했는데, 짧게는 사흘에서 길게는 몇 달이나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는 했다.

그때마다 네티즌들은 ‘사실 유서담은 다른 차원으로 파견을 나가는 게 아닐까?’라는 허무맹랑한 추측을 하고는 했다.

부정적인 의견도 상당하였고 어나더 리그에서는 이런 쓸데없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는 듯 묵언을 고수하고 있으니 진실은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신빙성이 없는 말은 아닌지라 꽤 많은 네티즌들이 위와 같은 설을 믿고 있었다.

실제로 색마를 살해할 때 유서담이 전 세계에다가 자신이 차원을 일부 다룰 수 있다고 공표한 바 있으며, 심지어 완전히 닫힌 균열 속에서 되돌아온 전적도 있지 않던가?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던 마법과 무공의 힘을 수면 위로 드러낸 데다가 이계 귀환자 무림인들은 물론 다른 차원에서 찾아온 이종족마저도 받아들인 유서담인데, 그깟 차원 이동쯤이야 못하겠는가.

그런 이유로 그가 차원학에 대해서도 빠삭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굉장히 많았고 공공연하게 그는 이미 ‘다른 차원’을 드나들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한 부분은 ‘높으신 분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네티즌들과는 달리 상당히 정확한 정보통을 통해, 유서담이 실제로 차원 이동자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서담이 자신의 복귀를 알림과 동시에 ‘헬 게이트 공략 일정’을 준비하기 시작하자 움직임이 급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헬 게이트라는 미지의 차원을, 과연 그는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

국제 안전보장이사회(UNSC).

대략 30년 전 대전쟁이 발발한 직후, 초능력자들에 의해 크게 개편된 UNSC는 국가 간의 전쟁 및 침략, 테러 등 국제적 행위를 막는 데에 더불어 괴수와의 전쟁 역시도 자신들의 규정에 두었다.

대부분의 사건은 국제 이상현상 협회와 국제 초능력자 협회에서 처리가 된다지만, 지구의 평화가 뒤흔들릴 정도로 큰 사건이 발발하면 결국 그들이 움직이게 된다.

그런 UNSC에서 어나더 리그의 움직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도 아닌,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UNSC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무림맹주의 비호를 받기 위해 여러 차례 그녀에게 접근하였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설중연이 유서담에게 상당한 집착을 보인단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제아무리 인터넷상에서 유서담의 차원 이동에 대한 루머가 떠돌고, 거의 확정적인 사실이라고는 말해도 UNSC같은 국제 집단이 그런 루머 하나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무림맹주가 ‘그는 당신들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으며, 또한 헬 게이트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 위해 헬 게이트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종족들의 수장 라칸탈조차도 ‘난 모르니까 유서담한테 가서 물어봐’라며 답하니, 점점 그에 대한 확신이 드는 것이다.

‘이쯤 되면, 뭔가가 있다.’

차원학으로는 지구인들이 감히 따라갈 수 없는 라칸탈과 지구의 그 어떤 초인보다도 높은 경지에 도달해있는 설중연마저도 유서담을 강력추천하니, 이제는 정말로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서. 고작 한 명의 헌터에게 일을 맡기겠다, 이 말입니까?

뉴욕 맨해튼, 유엔 본부 청사.

본디 유엔 총회(General Assembly)의 회의장으로서 본디 여섯 개의 위원회가 보이는 장소이기도 한 이곳은 현재 단 한 명, 유엔사무총장만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허 참, 어쩌다 유엔이 이 꼴이 되었는지······.

-애초에 15년 전부터 유엔에 헌터들을 불러들였을 때부터 단단히 잘못됐단 말이지!

-쯧, 대체 세계 사람들이 우릴 어찌 생각하겠는가? 어이가 없군.

허공에 둥실 떠있는 홀로그램에서는 수많은 부정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으나, 유엔사무총장 ‘알렌’은 아랑곳않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헬 게이트에 다녀왔으며, 심지어 차원에 관해서는 지구상 그 어떤 과학자보다도 폭넓은 지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믿고 맡겨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그게 어이가 없단 말일세! 자문을 구하는 정도라면 모를까, 모든 의사결정을 맡기겠다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UNSC).

사실상 유엔을 꼭두각시로 부리는 그들의 의견은 어느 관점에서 보자면 타당할 수도 있겠다.

‘국제 사회를 지키는 의회인 만큼, 이미지가 중요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욱 중요한 건, 결국 평화를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당장 취소하고, 물러가게. 제대로 된 다른 방법이 있을 테니까!

“제대로 된 다른 방법이라······.”

알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애초부터 기대도 안했지만, 이 정도로 썩어빠졌을 줄은 몰랐다.

저들은 자신들이 이 자리에 있던 덕분에 초능력자들의 체계가 제대로 정립되고, 그런 덕분에 괴수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믿는 늙은이들이다.

그 어떤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터. 전장에서 구르는 헌터 따위보다 자신들이 더욱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믿는 저 늙은이들을 설득할 방법은 단 하나.

“···그렇다면, 유서담 헌터를 직접 불러서 대화를 나눠보시지요.”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직접 저들과 대면하여 대화를 나누도록 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직접 대화를 나누라고?

“예. 마침, 이 자리에 초청했습니다. 그가 말하길 헬 게이트를 확실하게 공략할 방법이 자신에게 있다더군요.”

-뭐라······?

-허언이 심하군. 자네나, 그 헌터나.

“그건 직접 보고 대화하면 알게 되겠지요.”

홀로그램 속 이사회는 서로를 바라보더니 마지못해 승낙하였다.

‘부디, 잘 설득해주기를.’

알렌은 그렇게 믿으며 유서담을 호출하였고, 드넓은 회의장의 뒷문이 열리며 그가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정갈한 정장 대신 에테르 슈트를 입은 그 모습은 이 자리에 퍽 어울리지는 않았으나, 그 어떤 복장보다도 그의 아이덴티티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와우, 유엔.’

살다살다 유엔 본부에 와볼 줄은 몰랐기에 신기한 눈으로 회의장을 두리번거리던 유서담은 이내 이사회의 홀로그램 앞에 섰다.

그러고선, 말했다.

“접니다. 알아서들 협력해주시죠.”

“컥······!”

-뭐, 저런···!

그 뻔뻔한 태도에, 알렌은 헛기침을 하다가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그건 알렌의 인생 Best 3위 안에 들 정도로 정말로 위급한 순간이었다.

< 흔들리는 세계(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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