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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236화 (236/251)

< 709년 9월 1일(스텔라 호라이즌) >

아래로, 더 아래로, 끝없는 부유감을 느끼며 엘레임은 오만가지 생각을 하였다.

내가 죽으면 우리 부모님은 어떡하지? 엄청 슬퍼하시겠지? 마법 배우고 싶었는데, 결국 마법서는 구경도 못해보네. 추락사는 아플까? 안 아프게 갔으면 좋겠는데. 먹다 말고 숨겨둔 딸기 케이크, 그냥 끝까지 다 먹을걸······.

······그런데, 추락이 원래 이렇게 길었던가?

바람이 잦아들었다. 어째서인지 부유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고개를 들었고.

“···엉?”

거대한 성, 정말로 거대한 성과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오색빛깔로 찬란하게 빛나는 타워와 형형색색으로 은은한 마력장을 흩뿌리는 수많은 첨탑들.

살면서 이런 장소는 분명히 처음 보는 것이겠지만, 어쩐지 익숙하다.

이토록이나 예술적이고, 마법적이며, 신비롭고, 웅장한 장소는 그녀의 기억 속에 단 한 군데밖에 없다.

100년 전, 대마법사 아라셀리 라인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봉인해둔 바로 그 장소.

“라인칼···리가투마······?”

“그래.”

유서담은 엘레임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 비행정 12호는 정확히 라인칼 리가투마를 지나쳤다. 옛날에야 신비로운 장소네 어쩌네 했던 모양이지만, 요즘은 비행유람정이 지나가면서 필수로 들리는 관광명소가 되었으니까.

안드로이드와의 전투 도중, 바로 아래에 라인칼 리가투마가 있는 것을 확인한 유서담은 망설임 없이 엘레임을 안아들고서 뛰어내렸고, 예상대로 아라셀리의 결계는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

“저, 정말······ 대마법사님의 유산이라 불리는 라인칼 리가투마에 들어오다니······.”

“그럼 내가 한 입으로 두 말 하겠니.”

그녀는 유서담을 새삼 다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가 분명히 대단하고 신비로운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대마법사 아라셀리님과 정말로 아는 사이셨던 건가요?”

“아는 사이셨던 건 아니고, 아는 사이지. 현재진행형으로.”

“네? 하지만 대마법사님은 분명 100년 전에 모습을 감췄다고 들었는데···.”

“그날 이후부터 쭉 나와 함께 있었거든.”

“아······.”

파직, 파지직!!

멍하니 성을 구경하던 엘레임은 갑작스레 들려오는 스파크 소리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저 하늘 높이까지 펼쳐진 푸른색의 장막을 뚫기 위해 미사일과 레이저 등을 발사하는 안드로이드 부대가 공중을 비행하고 있었다.

“숫자가 더 늘은 것 같은데요···?”

“그러게.”

거의 50체 가까이 되어보이는 안드로이드 부대. 지금 당장 저것들의 능력으로는 결코 이 9서클 마법사의 결계를 뚫을 수는 없을 터.

하지만, 마법사를 사냥하기 위해 극한까지 무기 체계를 발전시킨 미래 기술이라면 꼭 불가능할 것도 없을 것이다.

지금도 1체씩 늘어나는 안드로이드들. 아마도, 여기서 더 시간이 지나면 이 결계 역시도 뚫려버릴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아라셀리가 미래에서 시간 터널을 막기만 하면, 모든 안드로이드가 되돌아갈 터.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엘레임은 훗날, 자연스레 마법 혁명에 성공하여 파르텔 리안을 죽일 것이다.

그때까지, 유서담이 할 일은 그저 아라셀리를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

[라인칼 력 709년 9월 1일]

비비안타 대륙의 생존자들은 200년 전에 사라진 대마법사, 아라셀리 라인칼을 부르기 위하여 어떠한 신호를 쏘아 올렸다고 한다.

비록 아라셀리 본인은 그 신호를 받지 못하였지만, 마법사들이 희망을 담아 쏘아 올린 그 신호는 시공간조차 초월하는 힘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현재.

아라셀리는 그 시공간 에너지에 자신의 마나를 담아, 점점 더 그 힘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단순히, 그녀의 심장에 깃들어있는 나인 써클을 완벽히 활성화하기 위함이었다.

사하르 공녀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만류하였다.

“네 나인 써클은 일주일 안에 복구될 것이다. 그렇게 급하게 했다가, 써클이 깨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저들이 만들어낸 ‘타임 터널’은 609년 3월 27일과 연결되어 있어요.”

동문서답이었지만, 사하르는 고개를 끄덕여서 수긍했다.

“평범한 시간 여행이었다면 이렇게 서두르지 않았어도 될 거예요. 몇 개월이든, 몇십 년이든 다른 시간을 여행하다가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5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시간일 테니까요. 하지만 저들은 달라요.”

타임 터널. 말 그대로 두 개의 시간이 연결되어 똑같은 속도로 흐르고 있다.

“609년에서 하루가 흐르면, 709년에서도 하루가 흘러요. 제가 낭비하고 있는 이 1분 1초 동안에도 이미 수많은 안드로이드가 교수님이 계신 과거로 향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이제 아시겠어요?”

그래서 아라셀리는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움직여야만 그가 안전해질 테니까.

서서히 자신의 나인 써클을 활성화시키며 아라셀리는 하늘색의 눈동자를 더 푸르게 물들였다.

“단 한 번의 마법이면 충분해요.”

수준 높은 마법사들간의 대결에는 그리 많은 마법이 필요하지 않다. 마법 하나의 위력이 워낙 강력한 탓에, 적게는 세 합에서 많게는 열 합 안에 마법전이 끝나게 된다.

과학이 강력한 병기를 가지고 있는가?

마법사는 이미 그 자체로도 병기다.

단지 물량으로 밀려서 여태껏 그 빛을 발하지 못했을 뿐.

하지만, 과학의 한계조차 넘어선 물리력을 가진 나인 써클의 마법이라면······ 단 한 번일지라도 크나큰 타격을 먹일 수 있을 것이다.

사하르 공녀는 마른침을 삼키고서 살짝 뒤로 물러났다.

고오오오···!!

어마어마한 마나의 폭풍이 아라셀리의 온몸에서 퍼져나왔다. 비록 사하르는 마법사가 아니었지만, 나인 써클이 얼마나 대단한 경지인지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인 써클이라는 경지는 기껏해야 전설 속에서나 보던 경지였다. 그것의 실체를 실제로 겪어보니, 사하르는 확실히 알 것만 같았다.

‘저기서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갔다가는······ 정말 여신이라도 되겠군.’

실제로 여신을 겪어보았고, 그 신성력을 현재도 품고있는 사하르였기에 더욱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번쩍!

이윽고, 아라셀리가 두 눈을 뜨자 황금색의 거대한 톱니바퀴가 그녀의 주변에서 굴러가기 시작하였다. 사하르는 저것의 정체를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그것은, 아라셀리를 얽매고 있는 현실 혹은 운명 그 자체였다. 모든 인간에게는 반드시 운명이 정해져 있기 마련. 예를 들어 ‘39초 뒤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라거나 ‘3초 뒤 재채기를 한다’라는 등, 그 사람에게 벌어지는 사건이나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운명으로 결정되어있다는 것이다.

아라셀리는 그러한 자신의 운명을 형상화하였다.

아마 짧게는 몇십 초에서 길게는 분 단위로 미래를 볼 수도 있을 터. 심지어, 원한다면 운명을 일부나마 바꿀 수 있는 경지에 올라선 것으로 보였다.

설명은 간단했지만, 간단히 정의하자면 아라셀리는 무려 ‘현실 조작’조차 마법으로 가능케하는 수준에 올랐단 말이다.

‘어떻게······.’

사하르는 아연해졌다. 그녀의 능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나서? 아니다. 그저, 아라셀리의 마음가짐이 자신 따위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서 그랬다.

만약 자신이 저 정도로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가, 한순간에 잃어버린다면 버틸 수 있을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폐인이 되거나, 그대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라셀리는 저 능력을 스스로 포기하였다. 단 한 사람을 찾기 위하여.

‘···나도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군.’

이윽고 아라셀리가 눈을 번쩍 떴을 땐, 이미 공간이 뒤바뀌어 있었다. 사하르는 무심코 발을 헛디딜 뻔하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어느 틈에······?”

전조조차 없이, 그저 눈을 한 번 깜빡인 것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심장이 잠든 계곡’으로 이동해 있었다. 아라셀리는 사하르를 향해 말했다.

“제가 마법을 준비하는 동안, 저들을 막아주실 수 있나요?”

“···문제없다. 최대한 노력해보도록 하지.”

“부탁해요.”

거기까지 말한 뒤 아라셀리는 구름에 닿을 정도로 높이 날아올라 양손을 모았다. 황금색 톱니바퀴가 더욱 거칠게 회전하더니, 그녀의 운명을 서서히 수정하기 시작하였다.

사하르는 저 하늘 너머, 우주까지 닿고있는 아라셀리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마력 파장은 너무나도 거대하고 또 공포스러워서 굳이 탐지 장치가 없더라도 누구라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위잉! 위잉! 위잉!

심장이 잠든 계곡, 그 중심부에서 거칠게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과학의 총본산, 스텔라 호라이즌의 심장에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자신들의 심장에게 위협이 접근하고 있다는데, 과연 저들이 가만히 있을 것인가?

반응은 빨랐다.

경보가 울린 지 고작 30초도 지나지 않아서 하늘이 갈라지며 미사일 수십 다발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것.

저것에 명중당하면, 그 일대는 흔적도 없이 소멸당한다. 사하르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저 웃었다.

“나의 뭘 믿고 등을 맡겨준 건지는 모르겠다만······.”

그녀는 신뢰를 받은만큼, 돌려주는 성격이었다.

“하아······.”

뜨거운 숨을 내뱉자, 허공에 김이 서렸다. 아라셀리는 공간학에서 감히 겨룰 자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진 마법사였다.

그리고 사하르 공녀는, 시간에 관련해서는 감히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이해도를 가지고 있었다.

과학은 시간에 인공적으로 구멍을 뚫어내 길을 만들어서 여행을 한다.

그와 반대로 사하르는 시간 그 자체의 흐름을 타고 여행한다. 비록 구멍을 뚫어서 여행하는 것보다는 느리고, 멀리 가지도 못하겠지만······ 흐름을 다룬다는 것은 곧 그 흐름을 뒤집어 조작하는 것조차 가능하다는 것.

그 이해도에 대한 차이는 금방 드러나게 되었다.

사하르 공녀가 주먹을 쥐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비틀자, 날아오던 미사일들이 그 방향 그대로 역주행을 하기 시작한 것!

푸쉬익······!

날아오던 방향 그대로 역주행하기 시작한 미사일들은 이내 미사일 런처로 되돌아가 폭발하였다.

퍼퍼펑!! 펑!

밤하늘을 수놓은 아름다운 불꽃들. 별자리도 저보다 빛나지는 않을 것이다.

-관측 불가능한 수준의 마력 파장이 감지되었다.

-원인을 찾아 제거하라.

-적은 기록되지 않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미사일이 대응책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하늘에서 100기가 넘는 안드로이드 부대가 하강하고 있는 것이다.

안드로이드 100체는 동시에 오른팔을 들어 소형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사방에서, 단 하나의 빈틈조차 두지 않고.

사하르는 재빨리 하늘 높이 팔을 치켜들었으나, 방금처럼 전부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공간과 물체는 한정되어 있었는데, 사방에서 물량 공세를 해오니 그 힘이 전부 미치지 못하는 것.

“······.”

하지만 그녀에게도 방법은 있었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까지는 불가능하더라도, 시간을 동결시키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타임 락 온. 미사일을 전부 동결시킨 뒤, 그녀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순서대로 시간 역행시켰다. 정신력의 한계치 내에서 최대한으로 저항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

그 광경은 정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하고 특이했다.

발사되는 미사일, 허공에 멈춰선 미사일, 그리고 역으로 돌아가는 미사일. 안드로이드 부대는 자신들에게 되돌아오는 미사일을 피해가며 레이저와 미사일을 발사하였으나, 그녀에게 적중하는 공격은 단 하나도 없었다.

-적의 공격 궤도를 파악하였다.

-적은 시간 동결 및 역행을 사용하므로, 유의하도록.

저들은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의 공격이 읽히는 것 정도는 사하르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녀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악동같은 미소를 지었다.

“파악? 조금 더 공부하도록.”

따악! 손가락을 튕기자, 갑작스레 허공에 또다른 안드로이드 12체가 나타나더니 아군을 향해 레이저를 발사하고서는 돌연 사라졌다.

파지지직!! 레이저 열두 가닥은 정확히 안드로이드에게 명중하였고, 순식간에 12체가 소멸하자 저들 역시 판단력이 흐려진 것으로 보였다.

‘타임 로딩.’

여태까지는 시간 정지와 되감기만을 사용했다면, 이번에 사용한 것은 과거에 있었던 시간을 불러오는 기술이었다.

역사 그 자체를 현세로 불어오는 기술인만큼 사하르에게도 부담이 상당하였으나, 고작 몇 초 전에 발생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불러올 수 있다.

즉, 1대 다수의 상황에서 저들은 스스로가 했던 공격마저도 견제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하르 공녀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 있었으니.

-적은 과거의 공격을 불러올 수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공격 데이터를 로드하여, 반격에 대비한다.

안드로이드들은 자신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모두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적들은 더 이상 사하르의 공격에 당해주지 않았다.

시간 정지도, 되돌리기도, 불러오기도.

하는 수 없이 그녀는 직접 검을 꺼내어 스스로의 몸에 시간 가속과 인지 가속을 걸어 휘두를 수밖에 없었으나, 기본적인 신체 스펙마저도 뛰어난 그들을 단신으로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추가 지원 도착.

-B타입 1009부대 12기, 참전한다.

심지어 계속해서 안드로이드의 증원이 오고 있었으며, 어느덧 하늘 저 높이 ‘스텔라 호라이즌’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밤하늘 빼곡히 수놓인 수백 기의 전투기와 드론, 하늘의 절반을 덮는 천공 전함, 어느덧 수백에서 천 단위를 바라보는 안드로이드까지.

사하르는 코피를 흘려가며 최대한 모든 공격을 방어하는 데에 전념하였다.

자신을 노리는 공격은 맞아서 버티더라도, 아라셀리를 노리는 공격은 최대한 막아내었다.

그녀의 코앞에서 정지한 미사일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레이저가 아라셀리의 머릿결을 스치고 지나갔으며, 광선 파동이 허공을 뒤흔들었으나 그녀에게는 조금의 피해도 가지 않았다.

덕분에 아라셀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마침내 사하르가 한계에 도달했을 무렵.

번쩍!

푸른 귀기를 흘리며, 아라셀리의 몸에서 무형의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왔다.

콰콰쾅!!

안드로이드 수백 체가 불꽃으로 화하여 터져나간다. 아직 마법은 발동조차 되지 않았음에도, 그 마나의 파장만으로도 충분히 파괴적인 위력을 보여주었다.

-위험, 위험.

-적의 공격에 대비하라.

아라셀리라는 존재에 대한 위험성을 감지한 스텔라 호라이즌에서 무언가 긴급한 명령이 떨어지고 있는 듯보였으나, 이미 늦었다.

‘아······.’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징징 울려대는 머리를 간신히 부여잡은 사하르는 저 하늘을 무심코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새하얀 태양과도 같은 무언가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거대했고, 밝았으며, 뜨거웠다.

과학은 해낼 수 없는 영역.

공간 저편을 유영하던 유성 하나를 통째로 소환하는 것.

저것이, 진정한 마법이었다.

-에너지 파형 분석······ 방어 불가. 모든 시설은 가동을 중단하고 긴급 대피 모드로 들어갈-

스텔라 호라이즌은 재빠르게 하늘 저편으로 상승하였으나, 지상에 고정되어있는 발전기는 결코 저것을 피할 수 없었다.

······!!

백색 소음.

그리고, 눈부시게 밝은 섬광.

스텔라 호라이즌의 심장이 소멸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정말로 한순간이었다.

눈 깜짝할 새, 심장을 잃어버린 스텔라 호라이즌.

저들은 더 이상 시간 여행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아······ 이걸로, 된 거야.’

털썩! 몸을 부유할 수 있는 힘조차 없어, 바닥으로 추락한 아라셀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스텔라 호라이즌의 일부가, 다시금 하늘에 그 거대한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뿐이랴.

아까까지는 보이지도 않던 안드로이드가 수천 단위로 하늘을 비행하고 있었으며 벌써 기계로 인해 밤하늘이 완전히 뒤덮히고 말았다.

오로지, 단 한 사람.

아라셀리 라인칼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용 전투 기계 병력을 데리고 온 것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아라셀리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였으니까.

‘······나는, 이대로 죽겠지.’

어차피 죽음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 다만, 자신이 사라진 뒤 슬퍼할 누군가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파올 뿐이다.

‘내가 없더라도··· 잘 해내셔야 할 텐데······.’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었더라면, 그런 생각을 하려는데.

‘······어?’

알 수 없는 이질감이 온몸을 닥쳐왔다.

힘겹게 눈을 뜬 아라셀리는, 무언가.

정말로 괴이하다고밖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생명체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악마의 날개를 달고 있었으며, 금색의 뿔이 있었고, 흰색의 줄무늬가 아름다웠으며, 금색의 눈동자와, 도마뱀의 몸통, 그리고 용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스텔라 호라이즌만큼 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태양빛보다도 밝을 것이라 감히 장담할 수 있었다.

드래곤. 저것은 틀림없는 드래곤이었다. 위기에 처한 세상에 홀연히 나타나, 그들을 구원하고 사라진다는 전설적인 존재.

그것은 저 하늘을 크게 선회하더니, 아라셀리와 정확히 눈을 마주하였다.

-구조 신호가 아주 격하길래 찾아왔더니··· 이미 전부 끝나있잖아?

‘어···?’

머릿속으로 울리는 그 생생한 목소리는 참으로 곱고 아름다웠다. 소년의 것인지, 혹은 소녀의 것인지조차 구분가지 않았지만 어쩐지 아라셀리는 그 목소리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세계선이 변하고 있어. 너희들이 무슨 짓을 했는진 모르겠지만, 시간 여행을 시도한 누군가가 과거를 성공적으로 바꿨나 보네.

드래곤의 표정을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어쩐지 그는 웃고있는 것처럼 보였다.

-축하해. 너는 네 세계를 지키는 데에 성공했구나. 좋은 구경을 시켜준 대가로, 선물을 하나 줄게.

아라셀리는 자신의 품에 툭, 떨어진 푸른색의 큐브같은 물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고서 다시 고개를 드니, 하늘 저편으로 또다른 형상 몇 개가 나타나고 있었다.

유니콘, 혹은 인간, 혹은 천사, 혹은 뱀처럼 보이는 그 존재들의 등장에 드래곤이 황급히 말했다.

-···이런,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네. 그럼, 무운을 빌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라셀리는 기절하듯이 두 눈을 감았고, 그 사이 세계가 서서히 변화하였다.

웅웅웅웅!!

세상 자체가 개벽되는 그 요란한 소음 속에서도, 아라셀리는 정말로 오랜만에 달콤한 꿈을 꿀 수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세상을 여행하는, 그런 아주 평범한 꿈이었다.

< 709년 9월 1일(스텔라 호라이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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