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7년 8월 31일(도시의 뒷골목) >
“잠깐, 뭐, 패러독스?”
머릿속에서 울리는 아라셀리의 목소리를 채 받아들이기도 전에, 안드로이드의 광선검이 내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끼이이-!!
즉시 에테르 블레이드를 활성화시켜 막아내니, 두 개의 광선검이 공명하여 서로를 밀어내었다.
파직, 파지직···.
-알 수 없는 종류의 기술을 발견하였다.
-정보를 수집하겠다.
에테르 블레이드는 순수 과학이 아니었다. 전기가 아닌 ‘에테르’라는 몬스터에게서 얻은 완전히 새로운 에너지로 작동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같은 과학이라도 조금 다른 형태를 부여하게 되었고, 순수 미래 과학의 집결체인 안드로이드에게는 굉장히 낯선 기술이었을 것이다.
-해석 불가. 179항 1109조 ‘미지의 기술 조우’ 항목에 따라 적의 기술을 흡수하거나, 기술을 흡수할 수 없다면 적을 제거하겠다.
그렇게 안드로이드는 건조한 기계음을 내뱉으며 나를 향해 직선으로 돌진하였다. 그것의 오른손에는 광선검이 흉흉하게 발광하고 있었고, 추진기를 이용한 도약은 무식하리만치 재빨랐으나.
‘뭐야 이거?’
SS랭크에 도달한 내 기준으로 보자면, 터무니없이 느리게만 보였다.
그렇다고 특별한 기교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대단한 검술을 부리는 것도 아니었다.
슬쩍 반 발자국 옆으로 비켜서서 광선검을 피한 뒤, 에테르 블레이드를 휘두르자.
서걱!
안드로이드의 오른팔이 잘려나갔으며, 직후 에테르 블레이드를 풍차처럼 회전하자 그것의 목을 가볍게 따버릴 수 있었다.
파직, 파지직!
···퉁!
-경···고······작동···중···지······.
정말로 허무하리만치 전투가 끝나버렸다.
안드로이드는 분명히 날쌔고, 단단하고, 강력했지만, 그 어떤 기교도 기술도 존재하지 않아 검술을 익힌 나에게는 별로 위협조차 되지 않았다.
-······다행이군요. 역시, 마법사만을 상대하기 위해 제작된 안드로이드라 그런지 교수님에게는 상대가 되질 않네요.
허공에서 희끄무레하게 아라셀리의 형체가 나타났다. 그녀는 이미 저만치 도망간 꼬마의 뒷모습을 시선으로 쫓았다.
“진짜 저거 잡지마?”
-네.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막았다면 모를까, 교수님이 이미 사건을 관측해버렸잖아요.
“그게 어때서?”
-시간 여행자가 사건을 관측한다는 건 평범한 일이 아니에요. 그 시간대에서 바뀌어버린 역사가 완전히 고정되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무슨··· 그런 게 어디있어? 시간을 다시 되돌린다면······.”
-그것도 불가능해요. 교수님은 시간 여행자이면서, 동시에 꼬마가 안드로이드에게서 무언가를 받는 걸 목격했잖아요. 지금 교수님의 머릿속에는 ‘미래의 유서담이 나타나, 안드로이드를 방해하고 꼬마를 죽였다’라는 기억이 있으신가요?
“아니······ 당연히 없지.”
-그런데 만약 미래의 교수님이 시간을 한 번 더 되돌려서 지금 시간대로 돌아와, 꼬마를 막는 데에 성공했다면······ 교수님의 머릿속에는 그런 기억이 있어야 정상이에요.
맞는 말이었다. 만약 이 사건을 막아냈다면, 애초에 실패한 기억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야만 했다. 미래의 내가 찾아와 사건을 막아내는 광경을 현재의 내가 목격했을 테니까.
그런데 만약······ 미래의 내가 성공하는 것을 목격한 나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시도했을까? 만약 내가 과거로 돌아가기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타임 패러독스예요. 시간 여행은 복잡하게 인과가 얽히고설켜서 아무리 교수님이 ‘주인공 사냥꾼’이라고 할지라도······ 더 이상 사건의 시작을 막을 수는 없어요. 그건 개연성이나 스토리의 진행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세계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니까요.
“거 참, 골때리네······.”
그래, 다 좋다 이거야.
“그럼 이제 뭘 어떻게 해야돼? 너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고?”
-그게······.
-그건 내가 설명하도록 하지.
그때, 아라셀리의 옆에서 또다른 형체가 나타났다. 자그마한 아라셀리보다는 키가 10cm정도나 더 큰, 은색의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여인.
그녀는 여우처럼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하르, 공녀님?”
-그래. 오랜만이구나. 재회의 키스라도 해주고 싶건만, 그러질 못한다는게 너무나도 아쉽군.
-키, 키스라뇨. 그런 건 안 돼요···.
-음? 안 될 게 뭐 있나?
-아무튼 안 돼요······.
설마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던 사람이기에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그런 내 표정도 좋다는 것인지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그 어벙한 얼굴도, 오랜만에 보니까······ 참으로 좋군. 드디어 내가 살아있다는 게 느껴져.
그건 꽤 부담스러운 말이었으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아라셀리 덕분에 이제는 꽤 익숙하기도 했다.
“···네. 저도 오랜만에 보니까 좋네요.”
그녀는 희끄무레한 형체를 유지한 채 바닥에 조심스레 안착하였다. 그러고선 맨발로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는데, 이 더러운 골목길이 정화되는 느낌마저도 들었다.
사하르 공녀는 내 뺨을 어루만졌으나, 아무런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만났음에도 촉감을 느끼지도 못한다니. 야속하군.
이후로, 사하르 공녀는 자신이 여기까지 도달하게 된 이야기를 짤막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녀가 여신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스스로가 신성력을 얻게 되었으며 심지어 시간 여행자가 되었다는 사실까지도.
“시간 여행이라니······.”
-뭘 그렇게 놀라나? 듣기로는 자네 또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들었다. 더불어 차원 여행도 자유자재로 한다니···.
“······.”
아닌데.
나는 그 둘 다 할 줄 모른다. 그저 개연성의 힘으로 시간과 공간을 타고 이동할 수 있었을 뿐.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스스로의 능력으로 시간을 거스른 사하르와 공간의 경계를 넘어선 아라셀리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것도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한 열정 하나만으로 말이죠.>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아도 좋잖아.’
<하지만 사실입니다.>
‘시끄러워.’
나는 한숨을 살짝 내쉬며 말했다.
“어쨌거나, 사건이 이미 발생했다는 건······ 결국 미래를 바꾸지 못했다는 말 아닙니까?”
-그렇지.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아직 우리와 자네가 관측하지 못한 다른 사건들을 막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미래를 바꿀 수 있으니까.
“다른 사건들이라는 건······?”
-역사에는 마법이 과학에게 멸망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 몇 개가 기록되어 있다. 자네가 그 시간대를 찾아가 막아낸다면, 미래는 틀림없이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렇군요.”
근데, 그 미래의 시간대로는 어떻게 이동하지?
-내가 시간좌표를 찍어주도록 하겠다. 자네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이동할 수 있겠지?
<···좌표가 있다면, 미래로의 시간여행은 어렵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오··· 그래?’
<예. 이곳이 이미 과거이기에 미래로 가는 데에 부담이 덜하다는 점, 그리고 명확한 좌표가 정해지면 시간 이동에 드는 비용이 줄어듭니다.>
‘비용이라면······ 역시 수명이겠지?’
<···그렇습니다.>
나는 슬쩍 곁눈질로 아라셀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느덧 골목 바깥까지 날아가서, 세상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네가 떠난 이후로, 몇 년이나 흐른 세상이야?”
-아··· 597년이면······ 대략 70년 정도 흐른 뒤겠네요.
도시는 아름다웠다. 비록 비비안타 제국에서도 가장 살기 힘든 동네였지만, 그럼에도 멸망하지 않은 세계는 이토록이나 생기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좀 걸을까?”
-······네.
나는 아라셀리와 사하르 공녀를 데리고서 도시를 걸었다.
거리에는 활기가 넘쳤고, 시장에는 생기가 흘렀다.
-제가 떠났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풍경이에요.
“······.”
아라셀리는 고향을 등지고서 다른 세상을 유랑하였다. 오로지, 나 하나를 찾기 위해서, 이토록이나 아름다운 세상을 버린 것이다.
그간 그녀가 고향을 완전히 잊어버렸을까? 그럴 리가. 세상을 구하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9써클의 마법사가 되었던 아라셀리였다. 내가 지구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비비안타를 사랑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참을 걷다보니, 웬 거대한 광장이 나타났다. 문화의 거리라고 적힌 이 광장에는 무려 이름이 붙어있었는데.
[아라셀리 광장]
세상 그 어떤 여신보다도, 천사보다도, 요정보다도 아름다운 여인이 동상이 되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나도 본 적이 없었던 성인이 된 이후의 아라셀리였다.
그간 어린 모습의 아라셀리만을 보아왔기에, 저렇게나 성숙해있을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헤헤··· 제가 떠나기 전에, 동상 세울 거면 눈매를 좀 더 온화하게 해달라고 했거든요.
“그래?”
-네. 그런데 정말로 눈매가 온화해졌네요. 덕분에 무슨 사랑과 가정의 여신처럼 보이네요. 부담스럽게도.
“그만큼 널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거지.”
-과분하게도, 그런가보네요.
아라셀리 동상에는 별다른 설명이 쓰여있지 않았다. 아마, 별다른 설명조차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비비안타에서 유명할 것이다.
악마를 물러내고, 세상을 구원한 여인.
-······미래에도, 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너를···?”
-네. 제가 여전히 살아있을 거라고 믿으며, 계속 저에게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더라구요.
“······.”
하지만 그녀는 그들의 바람을 들어주지 못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세상은 기계에게 점령당했고, 더 이상 멸망해버린 세계를 구원할 방도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있잖아.”
-교수님······.
“네가 여태 대가없이 나를 도와줬던 것처럼, 이번에는 나도 너를 도와줄게.”
시간 여행에는 상당히 많은 수명이 쓰인다. 최소 단위로 1000일 이상은 잡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깟 수명따위, 얼마든지 써도 좋다. 어차피 다른 인간을 사냥하여 빌어먹은 이 더럽고 추잡한 수명, 그 누구보다도 고결하고 사랑스러운 아라셀리의 인생을 위해서라면 모조리 다 바쳐도 부족할 것이다.
“네 세상을 구하고, 그리고 내 세상에서의 일이 끝나면······ 다같이 여행하자.”
-아······.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장소들이 너무나도 많다. 인생이 짧다고 느껴질 정도로, 무수히 많은 세상들.
“그런 세상을 여행하는 거야.”
아라셀리는 내 눈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 투명하고 푸른, 하늘색의 눈동자로. 그러더니 그 눈동자가 마침내 반짝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꼭 함께 여행해요.
“그래.”
-그런데······.
그때, 사하르 공녀가 끼어들며 말했다.
-나를 잊고 있는 게 아닌가? 상당히 불쾌하군.
“아, 아뇨. 당연히 공녀님도 같이 여행하자고 말한 거였는데······.”
-흐음···. 이미 자네들의 유대감이 상당히 돈독하여, 내 마음이 끼어들 빈자리가 없어 보이는군. 나로서는 참으로 부담되는구나.
그리 말하더니 사하르 공녀는 은근히 웃었다.
-하지만······ 나는 시간과 공간을 여행하며 불가능한 모든 것을 가능케 만들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군. 정말로.
-······.
아라셀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고, 사하르는 능청스럽게 웃었다. 저 둘의 사이가 은근히 좋은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됐으니, 곧바로 이동합시다. 다음 시간대의 좌표를 알려주세요.”
-그러도록 하지.
사하르 공녀는 그리 말하며 두껍고 낡은 책 한 권을 펼쳐들었다.
-라인칼 력 607년, 1월 19일. 이날 법이 개정되면서, 수많은 하류층들이 고통을 호소하게 된다는군. 마법적인 지원이 완전히 끊기게 된 거지.
“그럼······.”
-그때, 과학 장비로 무장한 사내가 나타난다. 사내의 이름은 ‘파르텔 리안’. 그는 과학의 편리함을 하류층들에게 전파하였지.
“과학의 편리함?”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역시 과학보다는 마법이 더 편하지 않던가?
-그래. 과학은 참 기묘하더군. 마나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모든 게 자동으로 이루어지며, 마나가 아예 없는 평범한 인간조차도 도구 몇 개만 있으면 마법을 사용한 것보다도 더 뛰어난 효과를 내지 않던가? 마법사 없이는 사용할 수 없었던 그 수많은 아티팩트와 마법도구들······. 과학은 일반인조차 그저 버튼만 누르면 발동할 수 있었다.
“아··· 그렇군요. 이해가 갑니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마법이 아무리 편리하다고 한들, 마법사가 없으면 그 모든 것들은 무용지물이 된다.
하지만 과학은 다르다.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마법같은 힘을 누릴 수 있으며, 재능으로 인해 마나를 단련하지 못하더라도 강력한 장비로 무장할 수 있었다.
-그래, 그러니 저 날짜로 가서 사람들이 과학에 선동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할 수 있겠나?
“···저도 마법보다는 과학 신봉자이긴 해서 어떻게 해야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해봐야죠.”
안 되더라도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라셀리의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해야만 한다.
-좋은 마음가짐이로군.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사하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10년 뒤의 미래로 이동합니다.]
[1000일의 수명이 소모됩니다.]
< 597년 8월 31일(도시의 뒷골목)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