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주인공(3) >
두 번째 주인공(3)
어나더 리그 길드 아지트, 공중정원의 지하 깊숙한 곳.
예카테리나가 신뢰하는 몇몇 과학 연구원 및 마법사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극비 연구소.
이곳에서는 세간에 함부로 드러내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판단되어 아직까지 봉인되어있는 몇몇 마도과학 기술과 큰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을 정도로 위험한 몇몇 기술들이 잠들어 있었다.
예카테리나의 허락을 받지 않은 자는 차원의 경계선을 통과할 수 없어서 그 누구도 출입할 수 없는 이 공간에, 다섯의 인원이 모여있었다.
테일러, 설중연, 예카테리나, 라칸탈, 암영미소였다.
“암영. 이 시체들의 은폐 과정은 어떻게 되었나요?”
“자연스레 소멸된 것처럼 꾸며두었습니다.”
“언론 통제는 완료되었나요?”
“예. 마법사의 존재에 불만을 가진 안티메이지 집단의 소행이라고 꾸며두고,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입장 발표를 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이종족 이야기가 나올 경우에는 알아서 잘 변명해주세요.”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암영미소는 은신술뿐만이 아니라 사건현장을 조작하는 일이나 컴퓨터 및 CCTV를 속여서 그림자 무공으로 시체를 유기하는 등의 능력이 굉장히 뛰어났으며, 또한 예카테리나에게 꾸준히 가르침을 받은 덕분에 언론 플레이에 능했다.
아직은 그럴 일은 없었으나, 아주 만약······ 훗날 어나더 리그가 ‘더러운 일’에 손을 대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온다면, 암영미소의 도움이 아주 클 것이다.
예카테리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서, 보존 장치에 들어가있는 네 구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종족들. 일전에 유서담이 상대했던 그 존재와 똑같은 DNA를 가진 이 정체불명의 이종족들은 유전적으로 너무나도 완벽한 신체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간에게는 왜 손가락이 다섯 개인가? 더 많으면? 더 적으면? 좋지 않을까? 왜 팔과 손은 두 개 뿐인가? 더 많으면 좋지 않을까? 꼬리는 왜 없을까? 날개뼈는 있으면서, 날개는 왜 없을까?
왜? 왜? 대체 왜?
인간이라는 종족은 미완성이고, 또 연약하다. 종이에 베여도 찢어지는 연약한 피부에 70%가 액체로 이루어져 있어 자그마한 구멍만 뚫려도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그런데, 이 기묘한 이종족들은 달랐다.
완벽했다.
그 단어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정말로 완벽했다.
몸에 쓸데없는 세포는 단 하나도 없었다. 모든 뼈에는 존재 이유가 있었으며, 피부를 비롯하여 장기는 너무나도 튼튼하고 강력하여 그 어떤 극한의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진 그들은 최소한 A랭크 이상의 능력치를 타고났을 것이다.
“그 어떤 종족에게도, 감히 ‘완벽’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는 없었다. 지고지순한 종족 ‘드래곤’이라면 또 모를까······.”
이곳에서 유일무이하게 이종족인 라칸탈이 입을 열자, 테일러가 호기심 가득한 눈을 떴다.
“드래곤? 그런 게 실제로 있어?”
“······있다마다. 그들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지.”
“네에? 라칸탈 씨의 종족은, 차원이동을 가능케 했을 정도로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요?”
“그래. 극한까지 발달한 마법 기술로는 불가능한 게 없어 보이더군. 하지만······ 날 때부터 차원이동과 시간여행이 가능한 종족이 있다면, 믿어지는가?”
“······아뇨. 못믿겠어요.”
“드래곤이란 그런 존재야. 의지만으로 세상에 길을 내어 여행하고, 원한다면 시간을 언제든 역행할 수 있으며, 새로운 종족과 세상을 창조할 수도 있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존재가 존재한다니······.”
예카테리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혈관에는 ‘마녀’라는 이종족의 피가 진하게 흐르고 있다.
모든 면에서 인간의 상위호환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뛰어난 종족.
거추장스러운 감정이 없으며, 사고체계가 뚜렷하고 빠르며, 마법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마녀조차도 차원이동은 거의 불가능한 과제였다.
“뭐, 드래곤은 아무 때나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아. 오히려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 차원은 저주를 받았다고 할 수 있겠지.”
“······그건, 어째서죠?”
라칸탈은 가만히 예카테리나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말했다.
“드래곤이 나서지 않고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정도의 사태가 그 세계에 벌어졌다는 의미일 테니까. 마치 멸망해버린 우리의 세계처럼.”
“······.”
예카테리는 물론, 테일러와 설중연조차 말을 잃어버리자 라칸탈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진지하게 했군. 하여튼,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이종족들은 완벽하지 않아.”
“어째서죠?”
“저 해부 데이터를 보고도 모르겠나? 이놈들은 너희 인간이 가진 단점만을 명확히 파악해서 억지로 보수작업을 쳐두었어. 너희 인간들이 구멍 송송 뚫린 낡아빠진 항아리라면, 이것들은 그 구멍만을 메워놓은 상태라는 거지.”
“······어?”
생각해보니 그랬다.
인간의 신체로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던 부분. 불편하고, 또 부족하다고,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저 이종족들은 완벽하게 보완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다.
인간들의 입장에서 불편하고 부족한 부분이 보완되어 있어서 ‘완벽’에 가까워보일지 몰라도, 정작 그 이상은 없는 것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이 기묘한 종족들은 자연적으로, 그러니까 신이 빚어낸 종족이 아니야.”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라며 라칸탈은 슬쩍 웃음을 흘렸다.
“···그럼, 저희와 같은 지성체의 손에 의해 탄생했다는 말인가요?”
“그렇게 되겠지. 신이 이런 어설픈 누더기를 만들어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완벽에 가까우나, 오히려 그렇기에 완벽하지 못한 이종족.
대체 이 이종족들은 누가 만들었는가. 어째서, ‘완벽’에 집착한단 말인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자들은 어째서, 헬 게이트의 내부에서 나온 것일까요.”
헬 게이트, 그 내부에는 도대체 어떤 존재가 있는 걸까. 어떤 기술을 사용하고, 어떤 마법을 부리기에, 완벽에 가까운 새로운 종족을 탄생시켰는가.
알면 알수록 오히려 알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자신들은 어떻게 하면 좋은가.
“······뭐,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건 다 알아냈다. 여기서 저 시체를 해부한다고 해서, 뭔가 정보를 더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군.”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뭘 그런 걸 나한테 묻나?”
라칸탈은 어쩐지 살짝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쪽으로는 나보다도 더 전문가가 있지 않던가. 그놈이 오기를 기다려야지.”
그에 예카테리나는 조금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서담이 이계로 파견을 더난 지도 벌써 석달 째.
‘언제쯤 돌아오시련지······.’
*
마법이 극한으로 발달한 세계, 비비안타 대륙은 단 하나의 제국이 세상을 통치하고 있었다.
‘마법은 오롯이 인간을 위하여 존재한다.’
대마법사 라인칼에 의해 전파되기 시작한 초창기 마법 문명은 폭발적으로 기술력의 발달이 이루어지며, 비비안타 제국의 팽창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들은 그 어떤 이종족보다도 우월한 마법 기술력을 앞세워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부르짖었고, 수백 년 동안이나 온 세상을 통치하며 그들의 사상은 꽤 성공적인 평화를 거둔 것처럼 보였다.
아, 위대한 비비안타 제국. 열 개의 대륙을 지배하였으며 천 개가 넘는 공중섬을 휘하에 두었고, 다섯 개의 위성을 모두 식민지화했으며 요정들이 사는 타행성에게도 마법 문명을 전파하였으니.
이제 이 하늘 아래, 심지어 하늘의 위에조차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종족은 없었다.
모두가 마법을 사용하였고, 마법이 일상이 된 찬란한 마도문명의 시대.
아라셀리 라인칼은 자신의 선조 덕분에, 그런 위대한 세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모든 게 평화로웠다.
자신이 9써클의 마법사가 되어, 마법사의 천적 ‘악마’를 모두 물러낸 이상 더 이상의 위협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향을 두고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비비안타 제국은 그 위대한 마도문명을 꽃피우고 있었는데.
그랬었는데.
“······아.”
기이잉···!
-마법사 감지. 마법사 감지.
-소거한다.
-마법사를 모두 소거하라.
하늘의 절반을 뒤덮은 거대한 기계 덩어리에서 소름끼치도록 기분나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마름모 형태의 빛이 자꾸만 번쩍이며, 지상을 비추고 있었는데.
지이이이-!!
갑작스레 거대한 기계 덩어리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대지가 불타 사라져버렸다.
-마법사 소거 확인.
-MKM409. 복귀하겠다.
잠시 뒤, 거대한 기계가 저 하늘 높이 자취를 감추었고.
그제야 아라셀리는 자신의 고향이 뭔가 이상하게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달이······?’
다섯 개나 있는 위성이 전부, 어떤 기괴한 기계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 기계에는 어떤 거대한 ‘눈동자’가 데룩데룩 굴러가고 있었다. 마치 이 땅을 감시하려는 것처럼.
하지만······.
저건 마법도, 악마의 기술도 아니었다.
예전이라면 소설 속, 환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바로 그 기술.
유서담과 함께 이계를 여행하며, 이제는 현실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 바로 그 기술.
‘과학’이었다.
그러나, 말이 되지를 않았다. 비비안타 대륙에서는 과학이라는 존재가 그저 미신으로 취급될 뿐이었단 말이다. 애초에 과학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세계였을 터인데.
“어째서··· 이렇게 된 거야···?”
라인칼 력 709년 8월 31일, 한여름날의 밤.
아라셀리는 과학에 의해 멸망해버린 자신의 고향을 마주하였다.
*
눈을 뜨자, 푸르른 하늘이 내 시야를 한가득 메웠다. 오존층이 있는 행성이라면 태양을 맨눈으로 째려보아도 별 지장이 없는 신체 능력치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눈을 뜨자마자 태양과 눈을 딱 마주치는 건 언제나 불쾌하다.
“끄응······. 이번 차원이동은 조금 요란스러웠는데? 원래는 그냥 눈 감았다 뜨면 바로 이동돼 있었잖아.”
<이동 과정에서 주인공 사냥에 가장 적합한 장소와 시간대를 고르다보니 약간의 흔들림이 있던 모양이군요.>
“왜? 무슨 문제 있어?”
<추정이지만, 원래의 시간대에서 살짝 벗어난 것 같습니다.>
“···개연성이 없는데 그게 가능해?”
<이미 차원을 이동한 상태에서는 시간을 이동하기 위해 개연성을 소모해야만 하지만, 차원과 시간을 동시에 관통하는 건 단 한 번의 개연성 소모로 충분······.>
“요약 좀.”
<······일전의 주인공 사냥으로 얻은 개연성만으로도 충분히 과거 시간대로 단 한 번이지만 이동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구만.”
시야에 한가득 들어오는 휘황찬란한 도시의 전경. 마법 문명은 아름다움에 특화되어 있어, 알록달록한 건축물들이 하늘을 둥실 떠다니는가 하면 거대한 비행체가 하늘에서 광고를 띄워놓기도 했고, 구름에서부터 거꾸로 자라난 성채에서 폭죽이 터지기도 했다.
회색빛으로 가득한 지구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환상적인 풍경이 지금 이곳에 펼쳐져 있었다.
“이게 마도문명이라는 건가······.”
마법이 극한까지 발달한 세계는, 이미 하나의 예술에 가까웠다.
어디까지 아름다워질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가.
마치 그런 것만을 고민하며 사는 인간들이 세상을 바꿔놓은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아라셀리는 어디에 있지?”
아쉽게도 이번에는 내 개연성으로 아라셀리를 이동시킬 수 없어서, 그녀와 동떨어진 상황.
그러나 어째서인지 아라셀리의 기운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지금의 시간대에는 없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아니,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아마도 그녀는 원래의 시간대··· 즉, 미래로 향했을 겁니다.>
“어···?”
잠깐, 그건 전혀 예정에 없던 일인데.
“그, 그럼 대체 얼마나 더 미래로 가버렸는데?”
<그건, 아마도······.>
의뢰인은 잠시 고민하더니, 내 눈앞에 현재 날짜를 출력해주었다.
[라인칼 력 597년 8월 31일]
그것을 내가 멍하니 읽어내리자, 의뢰인이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해주었다.
<······추정상, 최소 100년 이후의 세계로 이동한 것 같군요. 그녀는 이 세계에 원래 소속되어있던 존재인지라, 당신을 따라서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던 겁니다.>
“뭐, 뭐? 100년이라고?”
여태 내가 살아온 세월보다도 3배는 족히 많은 시간.
“그럼······ 대체 어떻게 만나라는 말이야?”
정신이 아득해졌다.
< 두 번째 주인공(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