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주인공(2) >
지구, 중국, 베이징.
찰칵! 찰칵!
익숙하면서도 지겨운 카메라 셔터 터지는 소리에 테일러 나인은 깜빡 잠들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아무리 제 입맛대로 살아가는 테일러였지만, 그래도 소속 길드가 제대로 생긴 뒤부터는 기자회견장에서 퍼질러 자는 등의 행위는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다.
‘아······. 존나 지루해.’
오늘 그녀가 기자회견을 하는 이유도 정말 별거 없었다. 얼마 전 SSS급의 게이트가 발생하였고, 한국 헌터로서 테일러 나인이 파견나간 것.
이미 국적마저도 한국으로 옮긴 그녀였으나 러시아 국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탓에 예카테리나의 의견에 따라 ‘한국 대표 헌터로 활동해보는 건 어떻겠느냐’를 적극 수용한 것이다.
그 결과, 중국에서 발생한 SSS급 게이트에 참전하였고 상당한 공적을 세울 수 있었다.
SS랭크 수준의 헌터는 지구상에서 여전히 드물었기에 인터넷은 그녀의 활약상으로 도배되어 있었는데, 중국 헌터 업계에서 이 기회를 놓칠 리 만무.
급한 대로 기자회견까지 열어버린 것이다.
“(다음 질문입니다.)”
요새는 번역기의 성능이 원체 좋아서 99% 이상의 말을 자동으로 번역해서 들을 수 있건만, 케케묵은 관습인지 뭔지 덕분에 요새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통역가를 쓴다.
“다음 질문이 있다는군요.”
“알겠다고 전해주십쇼.”
어차피 한쪽 귀에 꽂은 번역기가 자동으로 통역을 해줄 것이고, 저 기자들 역시 번역기를 통해 알아먹을 테지만 굳이 이렇게 통역가를 통해서 대화를 나눈다.
“(질문입니다! 이번 게이트에서 맹활약을 하였다고 들었는데, 한국의 헌터들은 어떤 특별한 훈련을 하십니까?)”
중국의 헌터는 미국 다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수준이 뛰어나다. 세계 2위를 몇십 년째 유지하고 있으며, S랭크의 헌터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했다.
즉, 중국보다 한참이나 헌터의 숫자나 질이 부족한 한국에게 할말한 질문은 아니었겠으나······.
최근에는 그 양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한국의 헌터는 비록 그 숫자가 부족할지라도, 질적으로는 뛰어난 면모를 보이고 있기 때문.
그 이유로는, 지금의 테일러 나인이 소속되어있는 길드 어나더 리그 때문이리라.
그곳의 훈련법은 아주 독특했으며 독보적이었기에, 정보를 하나라도 얻을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되리라.
“잘 먹고, 잘 싸라고 전해주십쇼.”
“예.”
물론 테일러는 제대로 가르쳐줄 생각이 눈꼽의 눈꼽만큼도 없었지만.
테일러의 답변이 그대로 돌아오자 몇몇 사람들의 표정이 굳었지만 굳이 티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질문입니다. 어째서 한국의 헌터들은 중국 국가가 나오는데, 중국 국기를 향해 서지 않았습니까?)”
일부러 티를 내는 중국 기자는 있었지만.
통역가를 통해서, 그리고 번역 장치를 통해 질문을 들은 테일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 말같지도 않은 소리야 미친 새끼가.”
“테, 테일러 씨. 여기서는 얌전히 인터뷰하기로······.”
“아 저 새끼가 꼴받게 하잖아. 야, 방금 어떤 새끼가 지껄였냐? 당장 안 튀어나와? 내가 직접 여기로 끌고 나올까? 야! 지금 뒤에 기어나가는 새끼, 당장 안 튀어와!”
통역가가 황급히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노 코멘트! 노 코멘트!”
나름대로 용기내서 질문했던 기자는 이미 도망쳤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간이 부은 자들은 많았다. 테일러가 외투를 집어들고서 회견장을 빠져나가려고 하자 중국 기자들이 야유를 보냈다.
“우우!”
“고 백 홈!”
“아 저 새끼들을 진짜 확 그냥···.”
순간 열이 뻗쳐온 테일러가 주먹을 치켜들자 대부분의 기자들이 침묵하였다. 초인들이 한번 화를 내는 순간 이 근방이 전부 쑥대밭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에라이.”
예전 같았으면 정말로 대판 일을 치렀겠지만, SS랭크가 된 이후부터는 사람들의 시선 자체가 아예 달라졌다.
마치, 두려운 무언가를 보는 듯한 일반인들의 시선을 받고 있자니 테일러도 어떤 찝찝한 기분을 감출 수는 없었다.
“내가 오늘은 봐줬다.”
결국 들었던 주먹을 내려놓고서 회견장을 빠져나가려는 그때.
정말 예고조차 없이.
아무런 징조도 없이.
······!!
천장이 그대로 뜯겨져 나가며, 회견장에 앉아있던 인원의 절반이 쓸려나갔다.
‘윽···!’
소음조차 없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폭발이었다. 테일러는 황급히 몸에 보호장을 두르고서 방망이를 꺼내들었다.
“뭐,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피해를 비껴간 사람들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뒤늦게 볼 수 있었다.
천장을 뚫고 나타난, 어떤 인간형의 괴수를.
그것은 마치 인간을 닮았으나, 인간과는 또다른 기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피부도, 눈동자도, 머리카락도, 모든 게 인간보다 더 한 단계 앞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 여자가 유서담의 가까운 동료 중 한 명이라고 했나?)”
여인은 턱을 쓰다듬으며 무어라 중얼거렸으나, 지구의 언어 체계와는 전혀 동떨어진 말이었기에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건 테일러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굳이 상대와 대화하지 않더라도 저 여인이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야. 너희들 나한테 고마워할 일 하나 더 생겼다?”
테일러는 중국 기자들을 향해 그리 말한 뒤 야구방망이를 붕붕 휘두르다가 어깨에 걸쳤다.
“쓰읍, 대충 견적 보니까······ 쪼끔 세보이기는 하는데······.”
어쩌면 자신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질 것 같지는 않았다.
‘이번에 시험용으로 부착한 M-001 마이너 버전이거든요. 꼭 입고 나가요! 꼭!’
‘아 왜!’
‘마법 제품을 처음 사용하는 건데, 얼굴이 잘 알려진 스타가 먼저 써봐야 홍보가 잘 돼죠!’
‘나는 마법같은거 모른다니까!’
‘그냥 시동어만 외치면 발동되고, 버튼만 누르면 된다니까요?’
테일러 나인의 장비는 어느덧 어나더 리그의 부품과 기술력으로 완전히 교체된 지 오래였다. 그냥 장비가 아니었다.
무려, 강력한 마법이 인챈트된 장비였다.
홍보용으로 아주 제대로 써먹겠다며 좋아할 예카테리나의 얼굴을 떠올리며 테일러는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빨리 덤벼. 나도 장비 시험 좀 해보게.”
*
어나더 리그 길드 아지트, 공중정원.
그 상공에 둥실 뜬 채로, 예카테리나는 누군가와 마주하고 있었다.
‘이종족······.’
예카테리나는 그것들과 눈을 마주하는 순간부터, 이미 저들이 누구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일전에 유서담이 이계인들과 함께 상대했던 ‘헬 게이트의 이종족’과 매우 흡사하게 생겼으니까. 예카테리나는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시체와 기운을 분석하는 연구까지도 도맡아서 했으니, 어쩌면 유서담보다도 저들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봐도 좋았다.
“얼마 전에는 무림맹주에게 직접 찾아갔다가 제대로 당했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전가요?”
뉴스 속보에 아주 대서특필되었다. 무림맹주를 습격했으나, 그대로 목이 달아나버린 이종족들에 대해서.
‘어떻게 공중정원에 들어왔는지, 그런 의문은 당장 중요하진 않겠지······. 무림맹주는 안 될 거 같으니까, 더 약한 누군가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해.’
이미 비상연락망을 통해 테일러 나인 역시도 습격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설중연과 테일러, 그리고 자신.
셋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라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서담님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있는 건가······.’
헬 게이트의 이종족들이 대체 무슨 이유로, 유서담의 동료들에게 접근한단 말인가?
하지만 저들의 접근이 영 좋지 않을 거란 사실은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예카테리나는 개연성을 직접 몸으로 받아내었던 ‘전 주인공’으로서, 저들의 몸속에 품어져 있는 기운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저 남자······ 틀림없이 주인공이야.’
회색의 피부에 푸른색의 눈동자를 가진 기이한 사내는 키가 무려 3m에 달했으며, 강철같은 뾰족한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표정은 변화 하나 없이 싸늘했으나, 그런 건 전혀 예카테리나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하등종족주제에, 차원을 만질 줄 안다는 건가? 꽤 예쁜 둥지를 꾸몄군그래.)”
“···뭐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시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겠네요.”
이유는 모르지만, 당장 해야할 일은 확실하다.
예카테리나는 애써 침착함을 가장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분명히 자신은 약하다.
설중연이나 테일러처럼 압도적인 무력으로 저들을 해치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예카테리나, 그녀의 공간.
화르르륵!!
철썩!
휘이잉-!
사방에서 불꽃이 피어올랐고, 바람이 휘몰아쳤으며, 대지가 들썩였고, 물기둥이 치솟았다.
정령들이 예카테리나의 의지에 따라서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웅웅웅웅웅!! 공중정원에 존재하는 모든 빛의 건축물들의 옥상에서 빛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하늘에 거대한 마법진을 수놓기 시작하였다.
“내가 비록, 아직 마법은 5써클 수준밖에는 안 되지만······.”
백색 마녀의 도서관. 유서담의 머릿속에 상주하며, 예카테리나가 얻은 지식의 양은 이미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방대했다.
그 수준은 어림잡아, 최소한 7써클 이상.
비록 자신의 온전한 힘으로 그 마법들을 발동할 수는 없다지만, 준비된 필드에서 오랜 기간을 공들여 다양한 도구와 과학기술의 힘을 빌린다면?
얼마든지 ‘대마법사’를 흉내낼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제가 다른 건 용납해도······ 길드 아지트에 침입하는 건 못참거든요.”
예카테리나의 양손이 번쩍이자, 하늘을 수놓던 수많은 별자리들이 하나의 선으로 서서히 연결되기 시작하였다.
천체(天體)의 근원을 통해 마법을 발현하는 공식이, 마침내 구현된 것이다.
“그러니까, 얌전히 연행되세요.”
별자리와 그 기원이 존재하는 이상, 예카테리나의 마법이 멈출 일은 없을 것이다.
*
······헬 게이트 내부, 어딘가.
어떤 사내가 앉아있었다.
유서담을 포함한 헌터들이 겪었던 그런 끔찍한 공간이 아니라, 정말로 평범한 흰색의 공간에 평범한 가죽 의자에 앉아, 사내는 평범하게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곳의 지구놈들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사내는 키보드에서 손을 뗀 뒤, 피곤하다는 듯 양손으로 눈을 비비기 위해 안경을 벗었다.
그러자, 유서담과 쏙 빼닮은 인상이 드러났다.
“아무리 환경이 안 좋다고는 해도, 설마 완벽한 종족인 저희들이 당할 줄은······.”
“······완벽? 너희들이?”
회색의 피부를 가진 여인이 말하자, 사내는 코웃음을 쳤다.
“너희는 완벽하지 않아.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건 너희의 착각일 뿐이지. 그 쓸데없이 딱딱한 피부에 아름답지 못한 피부색을 보고서도 ‘완벽하다’라는 말이 대체 어떻게 나오는 거지? 이해를 할 수 없군. 할 수 없어. 정말로.”
“그, 그게 무슨······.”
“아아, 그래. 완벽에 가깝기는 하지. 지금까지 존재했던 그 어떤 종족보다도.”
사내는 힐끗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건, 그 여인들이 지구의 인간들을 바라볼 때와 똑같은 눈빛이었다.
하등종족을 바라볼 때의 눈빛.
“너희는······ 나와 같지 않잖아?”
그 말과 함께, 여인은 그 자리에서 소멸되었다.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그렇게 사라졌을 뿐.
“그나저나, 곤란하군···.”
사내는 마우스를 톡톡 두드리며 고민했다. 슬슬 지구도 흡수해야 할 때가 되었는데도 아직 그러질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데에 한눈을 팔기에는,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 일이 많았다.
“어디, 오늘은 또 어떤 작품이 올라왔나······. 에라이, 이건 연중했고, 이건 완결이 개판이군. 아니지. 개판인 게 더 좋나? 으음. 이거 좋군.”
인터넷에 업로드된 익명의 소설, 『판타지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작품을 찾아낸 사내는 [업로드] 버튼을 클릭하였다.
정말로 간단하고 별것도 아닌 행위이지만, 이 사소한 행동 하나로 이 세상 수많은 차원들 중 어딘가에는 [주인공]이 생성되었을 것이다.
사내는 그런, 주인공을 만드는 행위를 계속해서 반복하였다. 유서담이 주인공 하나를 사냥하는 데에 걸리는 평균적인 시간이 두세달 남짓인 것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주인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오늘 할일은 끝냈고······.”
사내는 의자를 끼릭, 돌리며 다 식어버린 찻잔을 손에 쥐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완전히 뒤틀리고 뒤틀려버린 헬 게이트의 내부 전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저 완성되지 않은 세계의 모습도 서서히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아마도 저것들 중 어떤 것은 ‘건물’일 것이며 어떤 것은 ‘도로’일 것이고 어떤 것은 ‘지성체’일 것이며 어떤 것은 ‘짐승’일 것이다.
완성되지 못한 세계의 완성된 문명. 그 속에서, 저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계가 비틀려있다는 것조차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조만간이다······.”
조만간, 완벽한 세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고, 그 누구라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그런 세계.’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사내는 눈을 감았다.
오늘은 좋은 꿈을 꿀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두 번째 주인공(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