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헬스 메이커(7) >
‘교수님이 싸우는 방식 첫 번째.’
1vs2 결투가 시작된 직후, 호기롭게 달려들 것처럼 기합을 외친 예리나 프리멜리아는 별안간 뒤돌아서 힘껏 전력질주 하였다.
‘결코 상대방이 유리한 지형에서는 싸워주지 않는다.’
예리나가 왔던 길로 되돌아가자 첫째와 둘째가 당황하여 서둘러 뒤쫓았다. 도망친다고 나무랄 수도 없다. 비겁한 짓은 자기들이 먼저 시작했으니까.
“너, 이···!”
그러나 얼마 달리기도 전에, 갑작스레 바닥이 폭발해버리는 바람에 공주들은 전력질주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쿨럭!”
“큭···!”
폭발의 강도 자체는 약했다. 그러나 폭발의 여파로 나온 안개가 갑작스레 정글에 자욱하게 내려앉았다.
‘어느 틈에···!’
아마도, 두 명의 공주가 손을 잡고서 자신을 먼저 치려는 속셈을 눈치 챈 그 순간부터 예리나는 이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따위 안개, 근풍(筋風)으로 날려버리면 그만!”
두 공주가 바닥을 두 주먹으로 힘껏 내려치자, 어마어마한 회오리가 몰아치며 안개를 걷어내었다. 하지만 마법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무슨······!”
하늘이 어두웠다. 주변의 시야를 어둡게 만드는 ‘녹티스’ 마법을 연달아 사용한 것.
‘그럼, 유리한 지형을 잡으라는 건가요?’
‘그렇죠. 하지만 언제나 유리한 장소에서 싸울 수는 없어요. 그럴 경우에는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이점을 최대한 없애야만 해요.’
두 공주가 당황하는 것을 보며, 예리나는 최대한 여유를 가장하고서 마법으로 목소리를 흘러보냈다.
-언니들. 어둠도 근육으로 날려버릴 수 있나요? 아니면 시력도 쇠질로 단련하시나요?
시야가 서서히 좁아진다. 마력을 시력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애초에 이 세계의 전사들은 마력보다 근육을 위주로 단련하기에 5써클의 마법을 벗어나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예리나가 유리하지는 않다. 이 마법의 반경 범위는 고작해야 50m. 급하게 설치하느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지만, 정글에서 벗어나면 곧바로 마법이 깨진다.
‘언니들이 그 사실을 최대한 늦게 눈치채도록 해야해.’
예리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5써클의 마법사는 3개의 마법을 캐스팅 해서 저장해놓을 수 있으나, 그 위력은 30%정도 반감되며 자신보다 한 써클 아래의 마법만을 캐스팅해놓을 수 있다.
유사시에는 즉시 마법을 터뜨릴 수 있다지만, 공주들의 근력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부스럭! 예리나가 양손을 마름모 형태로 모아 마법을 캐스팅하며 조금씩 움직이자, 갑작스레 첫째 공주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거기냐!”
“······!”
쐐액! 바닥에서 뾰족한 바위를 뽑아 첫째가 던지자, 나무를 죄다 갈아버리며 예리나를 향해 쇄도했다. 황급히 바닥으로 내려왔지만, 어느 틈엔가 둘째가 접근하여 주먹을 꽉 말아쥐고 있었다.
‘과연, 첫째 언니의 감각은 둘째 언니보다 훨씬 좋았지.’
둘째는 근력, 첫째는 기술과 감각.
그 사실을 인지하며 전방에 준비해두었던 불꽃의 장막을 터뜨리자 둘째가 양팔로 가드를 하였다. 하지만 이 마법은 애초에 공격하기 위한 마법이 아니라, 추진력을 얻기 위한 마법.
예리나는 폭발을 타고서 10m나 후방으로 이동한 뒤 바닥에 손을 짚었다.
촤르르륵!! 일곱 갈래로 나뉜 빛의 사슬이 바닥에서 솟구쳐 올라 둘째를 거세게 타격하여 옭아매려고 했지만, 그 위로 첫째 공주가 내리쳐 사슬을 박살낸 뒤 남은 사슬을 양손으로 움켜쥐어 끌어당기려 했다.
“네 꾀에 당해보거라!”
그러나.
바닥에 손을 짚었다고 해서, 사슬이 시전자와 연결되어 있겠는가?
예리나는 코웃음을 치며 손바닥을 살짝 들어올렸다.
“······!”
자신이 한 짓이 헛짓거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그 순간, 그림자가 드리웠다.
하늘에서 거대한 송곳이 떨어져 내리고 있던 것!
근육 때문에 민첩하지 못하여, 피할 수 없는 공격! 둘째가 서둘러 일어나 양팔을 들어올려 그것을 틀어막았다.
쩌억···!!
송곳에 금이 가기 시작하며 갈라진다. 그럼에도 둘째의 피부에는 자그마한 찔린 자국만 남아있을 뿐, 거의 상처가 없었다.
‘···맷집은 대단해 역시.’
그 사이 예리나는 또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두 번째로, 적의 숫자가 많아서 불리하다고 생각된다면 최대한 비겁하고 치졸하고 더럽게 싸운다는 거예요.’
‘······진짜로?’
‘네. 근데 이게 사실, 궁수나 도적이 독화살 뾱뾱 쏴제끼면서 수풀 사이로 숨어다니면 짜증나거든요? 폼새도 안살구, 쫌생이 같고.’
당시의 아라셀리는 턱을 짚으며 잠시 고민하더니, 엄지를 척 세웠다.
‘근데 그것도 다 마법사가 하면 멋있어져요.’
‘···아니, 그게 중요해요?’
‘엄청 중요하죠!’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아라셀리는 환하게 웃었다.
‘황위쟁탈전은, 결국 쇼맨쉽이 중요하니까요!’
쩌저저적! 바닥이 갈라지며 그 사이에서 가시가 튀어오고, 하늘에서 자그마한 벼락 줄기 하나가 내려친다.
언뜻 여러 개의 마법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보였기에 마법에 대해 전혀 모르는 두 공주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법은 기본 적으로 한 번의 캐스팅에 하나의 마법이 발동된다.
지금의 예리나는 눈속임을 하고있는 것이다!
테라테러, 바닥을 뒤집어 엎는 마법이며 5초 동안 지속됨.
선더페리쿠틴, 벼락이 내려치는 마법이며 즉시 발동되고 지속되지 않음.
만약 테라테러 마법이 지속되는 동안, 선더페리쿠틴 마법을 서둘러 발동시킨다면?
바닥이 엎어지는 와중에도 벼락을 내려쳤기에 두 가지의 재해를 연달아서 발동시켰다고밖에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 사이 예리나는 ‘5초 뒤에 발동하는 마법’이라던가 ‘상대방이 밟아야 발동하는 마법’ 등을 준비하여 자꾸만 시간차 공격을 두었다.
‘세 번째. 이기기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어야만 해요.’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아니요. 공주님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여태 아라셀리와 마법대련을 해오면서도 몰랐다. 진짜로 이기기 위해서 ‘뭐든지’ 해야만 한다는 말을.
과연, 지금 이 전투를 전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예리나는 이기기 위해서 두 언니를 괴롭히고 있었다.
모조리 급조된 마법이라 공주들에게는 제대로 된 타격조차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시야를 가리고, 뜨겁고, 차갑게, 따갑게, 고통을 선사하며, 그러고서는 반격당하지 않기 위해 도망친다.
이건······ 사람 대 사람의 전투가 아니라, 조각가가 바위를 깎아내리는 것과 더 닮지 않았는가?
상대방이 지칠 때까지, 상대방이 결국 모든 전략적 이점을 포기할 때까지, 상대방이 결국 참다 못해 저돌적으로 변할 때까지!
“······찾았다!”
섬뜩한 감각에 예리나의 머리카락이 오소소 돋았다. 서둘러 고개를 들어 올리니, 둘째 공주의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바로 정면까지 다가와있는 상태였다.
“그거 아나? 용사 아이반의 근육 단련법 중에는 시력을 강화하는 방법도 있다는 사실을!”
뻐엉!! 예리나의 복부를 주먹으로 힘껏 후려치자, 풍선 터지는 소리가 터지며 그녀의 몸이 활처럼 휜 채 멀리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해서, 머릿속에 지식을 담아두고만 있었을 뿐이었는데······ 방금 네 마법에 실컷 두들겨 맞으면서, 눈알을 강화했다! 이제는 네 어둠을 꿰뚫을 수 있지!”
“하······.”
예리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복부가 불처럼 타오르는 바람에 심음이 새어나올 것 같았지만, 애써 꾹 참았다.
둘째와의 거리는 5m도 되지 않는다.
마법사의 치명적인 단점.
전사의 접근을 허용하는 순간, 그대로 패배까지 말려 들어가게 된다. 둘째는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고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 언제까지고 이게 될 거라고는 애초에 생각도 안 했어.’
슬쩍 뒤를 쳐다보니, 첫째가 예리나의 후미를 잡고 있었다.
심지어 사방을 어둡게 만드는 녹티스 마법의 범위에서 벗어난 상태.
그러나 녹티스 마법에서 벗어나는 순간, 곧바로 갈대밭이 나오도록 마법이 설계되어 있었다.
휘이이잉···!!
바람이 불어오며 갈대밭이 흔들렸다. 흡사 춤을 추는 듯한 갈대가 꺾이더니 고개를 숙인다. 세 공주의 마력을 버티지 못한 탓이다.
불리하다. 전사에게 둘러싸인 이 상황은, 틀림없이 불리했으나.
‘아주 만약, 정말로 만약의 경우에. 전사들이 멍청해서 마법이 준비된 필드에 발을 들이면 어떻게 되나요?’
그걸 말이라고. 아라셀리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완벽하게 준비된 마법사는, 절대로 이길 수 없어요. 드래곤이라도 오지 않는 이상에는.’
두두두두-!!
바닥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예리나는 그 어떤 손동작도 취하지 않았다. 마법사가 마법을 발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동작이나 행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던 공주들이었지만, 의아함을 가지기도 전에 몸이 먼저 행동했다.
‘목을 비틀어버린다!’
‘다시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두 명의 공주가 예리나를 향해 도약했고.
딱! 셋째 공주가 손가락을 튕기자, 바닥에서 두 개의 기둥이 치솟아 올라 돌진해오던 공주들의 복부를 찔러들어갔다.
“커헉!”
“큽!”
뿌득, 꽈드득···!! 공주들의 삼각근과 상완근에서 핏줄이 뱀처럼 꿈틀거린다. 마법으로 인해 기차보다도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기둥을 막아내버리는 미친 괴력!
하지만 마법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하늘에 거대한 푸른색의 선이 서서히 그어지더니, 이윽고 하나의 원을 만들어냈다.
쏴아아···!!
난데없이 쏟아지는 소나기.
예리나는 축축하게 젖어가는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작은 지대의 기후를 조작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했고, 어마어마한 준비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준비가 이제야 비로소 끝났다.
콰콰쾅!! 각자의 기둥을 마침내는 박살내버린 두 공주는 입김을 뿜어내며 조금씩 내려가는 기온을 느꼈다.
예리나의 양손에 새하얀 서리가 끼고 있었다. 그녀의 발바닥으로부터 바닥이 서서히 얼어붙는다.
“······네년, 설마 이걸 준비하려고 여태 시간을 끌었던 게냐?”
“네. 맞아요.”
셋째 공주는 천천히 양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양팔을 펼쳐보였다. 그 손바닥 위에서 회오리치는 아주 자그마한 서리의 소용돌이는, 그녀의 주특기가 ‘빙결 마법’이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꾸득, 꾸드드득!!
소나기가 내리는 범위의 테두리에서부터 거대한 얼음의 고드름이 수십, 수백 개 형성되더니 서서히 이 두 명의 공주를 에워싸기 시작하였다.
그 한가운데에 서서, 예리나는 양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꽈드드드득!!
쿵! 쿵!
형광색의 룬어가 새겨진 얼음의 기둥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내린다. 공주들은 그것을 피하느라 급급했지만, 얼음 기둥이 떨어져내린 자리에서부터 또다시 바닥이 얼어붙기 시작하여 제대로 된 기동조차 힘들었다.
“으아아아!!”
“흐아압!”
그 우람한 근육을 꿈틀거리며 얼음을 박살내고, 찔러 들어오는 고드름을 쳐내고, 바닥에서부터 자라는 얼음의 송곳을 열심히 쳐내는 공주들이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자연의 습기를 받아먹고서 자연스레 자라나기 시작하는 혹한에 어떻게 대항한단 말인가?
마치, 거대한 얼음의 꽃이 피어난 것만 같았다. 예리나는 얼음꽃을 거닐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전신을 관통하였다.
준비된 마법사의 공간에서 싸운다는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이전의 삶이 너무나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토록이나 쾌감이 휘몰아치는 강렬한 전투를, 왜 여태껏 몰랐단 말인가?
“크아아아···!”
“끄으윽!”
두 공주들이 자신의 얼음에 둘러싸여, 벌레처럼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며 예리나는 어떤 황홀한 감각에 눈을 뜨고 말았다.
‘아아, 이거 정말··· 중독될 것 같아!’
< 프린헬스 메이커(7)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