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222화 (222/251)

< 프린헬스 메이커(5) >

황위쟁탈전 전투력 항목의 첫 번째 관문, 난관돌파.

다양한 시련과 다양한 위기, 다양한 함정이 등장했을 때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시험하는 관문이다.

옛날엔 어땠을지 몰라도 현대에 들어서는 당연히 모든 난관을 근육과 의지 하나만으로 극복한다.

부수고, 박살내고, 파괴하고, 철저하게 무너뜨려서, 최후에는 온몸에 피칠갑을 할지라도, 결국에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전사가 가장 위대한 것이다!

퍼엉!!

격렬한 폭발음과 동시에, 세 명의 공주가 출발하였다. 다음대의 여황이 될 공주를 보기 위해 찾아온 수많은 백성들은 손에 땀을 쥐고 페로델의 돔에 둘러앉았다.

세 공주는 서로에게 간섭할 수 없다. 또한 도착하기 전까지, 서로 어디까지 진행했는지 알 수 없다.

모든 공주의 진행도를 알 수 있는 건 오로지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백성들 뿐.

“흐아아압!!”

“하압!”

“······.”

출발도 결코 평범하지 않다. 세상이 떠나가라 우렁차게 괴성인지 비명인지 모를 무언가를 내지르며 공주들이 출발하였다.

“오오!”

“엄청난 도약이야!”

초반 스타트는 확실히 첫째와 둘째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근육이 속도와 비례하지 않는다지만, 셋째 공주 예리나는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

첫 번째 난관, 바위의 산. 공주들은 이를 올라서 넘어가거나, 혹은 부숴서 관통해야 한다. 하지만 넘어가기에는 너무 높은 바위산!

근력이 약하지만 의지가 좋은 공주는 이를 넘어서 통과할 것이고, 근력이 강한 공주는 바위의 산을 박살낼 것이다.

빠각, 뻐어엉!!

첫째와 둘째 공주가 주먹을 휘두르자, 가벼운 폭풍이 일어나며 바위산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와중, 아직 도착도 하지 못한 셋째 공주. 무언가를 기대하던 백성들조차 아예 실망하게 만들 정도로 느릿한 속도였다.

“오오···. 확실히 둘째가 파워는 훨씬 더 위야.”

“첫째는 자신의 근력이 둘째보다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테크닉을 단련해왔군.”

둘의 바위 부수는 속도는 막상막하! 두 공주가 절반쯤 바위를 부수고 있는 그때, 뒤늦게 셋째 공주가 바위산 앞에 도착하였다.

심지어 뛰지도 않았는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여유로운 모델 워킹으로 걸어오는 그녀를 보며 사람들은 혀를 쯧쯧 찼다.

“삶을 포기한 건가?”

“황제가 되기에는 그릇이 부족한 게야.”

“그렇다고 도전 정신마저도 없어서야 원.”

심지어, 셋째 공주가 지팡이를 치켜들었자 사람들이 경악하는 건 당연한 일!

“지팡이? 설마, 마법이라고?”

“허, 살다살다 별 어이없는 광경을 다 보는군.”

“드디어 셋째 공주가 미쳤구나!”

모두가 혀를 차고서 그녀를 외면하는 그 순간, 셋째 공주는 우아하게 지팡이를 흔들며 주문을 외웠다.

“라피스만다툼.”

그것은 의지만으로 바위를 다루는 고난도의 마법으로서 마법을 발현하는 화분 따로, 마력을 제공하는 제공처 따로 있는 유서담은 사용할 수 없는 종류의 마법이었다.

드드드득!

“오······?”

“무슨···!”

요란스럽게 바위를 부수는 다른 공주들과는 뭔가가 달랐다. 바위가, 저 스스로 알아서 길을 터주었다. 예리나는 그 자그마한 통로 사이로 여유롭게 걸어서 통과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녀가 바위산을 힘 하나 안 들이고 통과하였을 때, 먼저 도착했던 다른 두 공주 또한 비로소 바위산은 통과할 수 있었다.

이미 근육이 상당히 붉어진 그녀들과는 달리, 예리나는 여전히 모델워킹··· 아니 프린세스 워킹으로 천천히 걸을 뿐이었다.

그 다음으로 공주들을 가로막는 난관들 역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 그곳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튼튼한 근육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밖에 없으리라!

“크아아압!!”

“하아아앗!!”

두 공주가 온몸에 불이 붙은 채로 전력질주를 하는 와중, 예리나는 우아하게 지팡이를 휘적였다.

“플라마이타.”

그러자.

불길이 기적처럼 양옆으로 갈라지며, 오로지 단 한 사람만을 위한 레드카펫을 만들어내었다.

“이, 이건······.”

“마법으로, 저런 게 된다고······?”

물론, 현재 그녀가 사용하는 마법은 굉장히 고차원적인 마법이었다. 단순히 부수고 공격하는 마법이 아닌, 원소라는 성질 그 자체를 이해하고 다룰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황위쟁탈전까지 몇 년 남지도 않은 상황에서 저 고차원의 마법을 배우겠다고 결심하는 것도 대단한데, 실제로 그것들을 완전히 마스터할 줄이야.

‘대단한데······.’

천천히, 아주 조금씩이지만 예리나가 다른 두 공주를 앞서 나가기 시작하였다. 근성과 근력으로 어떻게든 난관을 돌파하는 그녀들의 모습도 멋있었지만, 결국 예리나의 방식이 훨씬 더 빨랐기 때문이다.

용암으로 이루어진 다리를 만나면, 지팡이를 사뿐히 휘둘러 바위의 다리를 생성하여 여유롭게 걷는다.

아무것도 없는 절벽, 떨어지는 순간 즉사하는 나락!

예리나는 빛나는 새의 무리를 자신의 앞에 소환하여 그것을 밟고 지나갔다.

그제야 좌중이 모두 침묵하였다. 여황조차 말없이 황위쟁탈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500년의 역사 동안, 만백성과 귀족들에게는 ‘근육’이 최고라는 인식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틀어박혀 있었다.

근육으로, 근성으로, 그 피땀나는 열정과 괴력으로, 그렇게 난관을 극복하는 것만이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저런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단련된 근육으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첫째와 둘째 공주의 근력보다도 셋째 공주의 마법에게 이끌리는 건 무슨 이유일까?

더 우아하고, 더 여유롭고, 더 아름다우며, 더 신비롭고 품격있는.

지팡이를 조금 뒤흔들었을 뿐인데도, 지상 최강의 전사 두 명을 앞서나가는 저 마법은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만 하는가.

“아니, 아니야···. 결국 저런 건 잔머리일 뿐이지.”

“마, 맞아. 전투력 관문의 최종 종착지에는 골렘이 있다고. 과연 마법으로 골렘도 쓰러뜨릴 수 있을까?”

골렘이라. 유서담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골렘이 가소로워서는 아니다. 오히려 골렘이라는 하이 테크놀로지가 있다는 게 놀라워서 웃은 것이다.

‘근육으로 모든 게 지배되는 세상에, 잘도 이런 마법적인 요소로 황위쟁탈전을 시행하는구만.’

결국 마법과 과학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세계였을 뿐이다. 그저 마법에 대해 자세히 ‘묘사’가 되지 않고 있을 뿐, 마법은 근육의 뒤편에서 꾸준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쿵, 쿵!!

세 공주가 마침내 최종 관문에 도착하자 좌중이 모두 긴장한 듯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누군가는 두 명의 공주가 이기기를 바라고 있었으며, 변화를 원하는 누군가는 셋째 공주가 이기기를 바라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쿠오오오!!

거의 골렘과 비등한 괴성을 내지르며, 첫째 공주가 달려들었다.

쿠웅!! 첫째 공주의 양팔이 골렘의 양팔과 맞닿았다. 키가 5m는 가뿐히 넘어가는 골렘이었거늘, 그녀의 근력은 골렘조차도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둘째 공주는 아예 골렘의 손을 악력으로 우악스럽게 쥐어 뜯어버린 것! 비록 골렘의 팔은 세 쌍이나 있었지만, 악력 하나만으로 팔을 뜯어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

“와아아아아아!!”

“역시! 근력으로는 세계에서 이길 자가 없으시지!”

“그대로 박살내버리시오! 공주!”

그러한 와중에도 셋째 공주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제일 먼저 최종 관문에 도착했으면서도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잔머리를 굴려서 도착했으니, 결국 하찮은 전투력이 들통날까봐 두려운 것이다’라고 말했으나 다른 두 공주의 결투 소리가 들려오자 그제야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지팡이를 들었다.

그녀는 왜 굳이 다른 두 공주를 기다린 것일까.

그건, 그녀들과 자신 사이에 있는 어떤 압도적인 차이점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악토마 프로히베이레.”

지팡이를 휘릭, 흔들자 형광색의 밧줄이 골렘의 몸을 단단히 속박하였다.

“제누기빈.”

골렘이 무릎을 꿇었고.

“룩스 클룸나.”

빛의 기둥이, 저 지상에서 솟구쳐 올라 그대로 골렘의 머리를 박살내버렸다.

“······.”

“······.”

“······어?”

고작 세 번의 마법으로 발생한 결과물이었다.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모두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껌뻑거렸다.

“똑똑하네요.”

“그렇지?”

그러나 사실 예리나는 여유를 부리느라 미리 도착했음에도 바로 골렘을 상대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골렘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그에 가장 걸맞는 속박 주문과 파괴 주문을 캐스팅하기 위해 명상을 하느라 시간이 지체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마법을 준비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자신의 압도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기다렸다고만 생각하고 있을 뿐.

콰아아앙!!

이윽고 둘째 공주가 두 번째로 골렘을 박살내는 데에 성공하였다. 관문이 모두 끝나면 서로를 가로막던 장막이 걷히며, 다른 공주들이 현재 어느 정도까지 진행했는지 확인할 수가 있다.

당연히 자신이 일등일 것이라고 생각한 둘째 공주는 피칠갑이 된 몸으로 여유롭게 골렘의 머리를 짓밟고 고개를 치켜 들었지만.

“···응?”

자신보다도 먼저 골렘을 해치운 채, 골렘의 잔해 더미에 다리를 꼬고 우아하게 앉아서 커피 한 잔을 즐기고 있는 예리나와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늦으셨네요, 언니.”

“···너. 뭐야. 어떻게···?”

“제가 언니보다 더 강하고, 빨랐던 게 아닐까요?”

꽈아앙!!!

이윽고 첫째 공주가 세 번째로 골렘을 쓰러뜨리고서 장막을 걷어냈을 때에는, 정말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첫째와 둘째는 온몸이 만신창이인 데다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거칠게 호흡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예리나는 산책 나온 사람처럼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으니까.

물론, 체내의 마나가 거의 바닥나 있어서 사실상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조금 다를 뿐 실제로 예리나 역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으나 그녀는 일부러 티를 내지 않았다.

그저.

“흐음···. 충분히 단련된 근육도, 생각보다 별거 없었네요?”

화사하게 미소를 지으며, 두 공주를 도발할 뿐이다.

*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폐하! 감히 황위쟁탈전에서 마법을 사용한 셋째 공주를 당장 끌어내야 합니다!”

“근육이 아닌 마법 따위로 신성한 황위쟁탈전을 우롱하다니···!”

첫날의 전투력 과목이 끝나자마자, 여황은 자신에게 달려든 수많은 귀족들의 얼굴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셋째 공주의 마법 사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저 귀족들.

‘······죄다, 첫째와 둘째 라인에 서있는 귀족들이로군.’

첫째와 둘째 공주가 패배하면 그 즉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이들이었기에, 이번 황위쟁탈전에 굉장히 필사적이었다.

자신이 붙잡은 라인이 탈락하여 한순간에 죽어버리면, 더 이상 지탱할 수 있는 이들이 없었으니까.

‘나약하도다.’

그러나 여황의 눈에는 한심스럽게 보일 뿐이었다. 근육도, 의지도 부족한 같잖은 귀족들. 저런 것들이 이 나라의 귀족이라니. 한탄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대들에게 묻겠다. 황위쟁탈전에서 마법의 사용을 금지한 적이 있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이면 뭐 어떻던가? 황위쟁탈전의 무대는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도 좋은 곳이다. 마법이 더 강해서 불공정하다? 그대들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어째서 근육을 증명하는 자리에서 마법을······.”

“웃기는군!”

여황 프리멜 프리멜리아는 귀족들의 말을 끊어버렸다.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었다.

“언제부터 단련된 근육이 마법에게 벌벌 떨면서 겁을 지레 먹었던가? 지금 그대들은 국력을 무시하는 건가? 마법이 두려워, 그것을 금지할 정도로 프리멜리아 제국의 근육이 나약했느냔 말이다!”

“······!”

“우리가 근육을 추구하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바로 강한 힘을 위해서가 아니던가! 마법이 강해서 두려운가? 그럼 더욱 근육을 단련하라. 그것마저도 안 되겠으면, 강한 힘을 위해 셋째 공주처럼 마법을 배워오란 말이다!”

더 이상 마법은 무시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었다.

충분히 단련된 마법은, 강철같은 의지의 근육마저도 웃도는 수준이 되었다.

여황은 비로소, 그 사실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알겠는가? 이번 전투력 과목은 매우 공정했다. 단지 첫째와 둘째 공주가 나약했을 뿐이고, 셋째 공주가 더욱 강했던 거지!”

여황은 주먹으로 의자를 콰앙!! 내려치며 일어섰다. 예전 같았다면 그대로 지반이 무너졌겠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의 주먹질에도 의자에 살짝 금이 가는 정도로 그쳤다.

“황위쟁탈전은 굉장히 신성한 의식이며, 또한 황제가 될 자격을 증명하는 자리이다. 감히 네놈들이 황위쟁탈전에 이의를 제기해? 여봐라! 이놈들을 모두 ‘언머슬 프리즌’에 가두어라!”

그러자 귀족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제, 제발···. 폐하! 그것만은 아니됩니다!”

“부탁드립니다! 부디 그 명령을 철회해주십시오!”

“뭣들 하는가! 모두 끌고 나가라!”

언머슬 프리즌.

단순한 감옥은 굉장히 단순하게도, ‘결코 근육을 단련할 수 없다’는 제한이 있는 아주 무시무시한 감옥이었다.

이 감옥 내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은 결코 단백질을 섭취할 수 없으며, 그 어떤 운동기구의 반입도 금지되어 있다.

“근손실만큼은 제바아아알!!”

“폐하아아!!”

즉, 현재 이 세계에서는 가장 끔찍한 형벌이었다.

근육의 척도가 곧 귀족으로서의 강함과 위엄을 증명하는 이 세계에서, 운동을 하지 못해 근육이 빠진다? 그건 곧 직위의 수직 추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후우···.”

병사들에 의해 귀족들이 끌려나가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여황은 턱을 쓰다듬으며 다음의 과목을 바라보았다.

사실상, 전투력 과목에서 일등을 차지한 것만으로도 셋째 공주의 승리는 거의 확정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진정한 황제로서의 덕목.’

500년 전부터는 완전히 잊혀져서, 이제는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있던 그 과목들이 여황의 손끝에 잡혔다.

황제의 품격? 기품? 예절? 정책?

여황은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했다. 배울 필요도 의미도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번 대의 공주는 어쩐지 많이 다르다.

‘근육이 아닌 두뇌로 강함을 점지하는 공주라······.’

그녀는 서서히 근육이 빠지고 있는 자신의 팔뚝을 쓰다듬었다. 최근, 운동의 강도를 절반 이하로 줄였더니 근육이 더 늘어나기는커녕 이제는 유지하는 것조차도 힘들어졌다.

그러나 그런 것이 전혀 아쉽지 않을 정도로, 최근 들어서 독서에 재미를 붙였다.

그것도 마법쪽으로.

‘다음 대의 여황이 만약 근육이 아닌 마법에 의한 제국을 그려나간다면······.’

어쩌면 상당히 재미있는 세상이 될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 프린헬스 메이커(5)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