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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219화 (219/251)

< 프린헬스 메이커(2) >

소나기는 금방 그쳤다. 서서히 떠오르는 희미한 햇빛에 빗방울이 반사되어 뚝, 떨어졌다.

동굴보다 조금 아래에 위치한 날카로운 능선에서, 유서담과 자베로프 수호기사가 마주보고 있었다.

여황은 살짝 떨어진 위치에 서서 둘의 기류를 지켜보았다.

“그래, 비록 몸은 허약하지만 기세 하나만큼은 대단하군!”

체내에 기와 마나를 쌓은 고수는 전투 직전, 몸을 긴장 상태로 달아올리면 에너지가 외부로 발산된다. 그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를 달성한 고수는 그것이 아예 형태화 되고는 하는데, 유서담의 경우에는 활활 타오르는 푸른색 불꽃의 형상이었다.

자베로프가 도끼를 들어서 바닥을 쿵 내려찍자, 지반이 뒤흔들리며 날카로운 능선이 아주 살짝 평평해졌다.

유서담은 검을 뽑지 않았다. 대신 아라셀리에게서 지팡이를 빌려왔다.

‘3대 7,000을 치는 괴물이라고 했던가······.’

자베로프 수호기사도 만만찮은 괴물인 것은 사실이었으나, 사실 유서담에 비해서는 격이 현저히 떨어졌다.

평균적으로 S랭크의 육체물리계 초능력자가 3대 7,500을 친다. S랭크의 무림인과 검사는 그보다 훨씬 더 낮은 수치를 기록하였고.

신체의 강화 하나에 모든 능력치를 투자한 강체 능력자가 S랭크에 들어서야 간신히 7,500을 찍었다는 말은, 곧 눈앞의 자베로프 수호기사는 기껏해야 A랭크 수준이라는 말이 되겠다.

심지어 초능력자들은 우스갯소리로 ‘실전압축근육’이라고 하여 근육의 부피가 날렵하고, 무게도 가벼워서 몸놀림이 굉장히 민첩한 데 비해 이 세계의 프린헬스들은 오로지 근육만을 단련해서 움직임이 굉장히 둔했다.

‘괴력만을 강화한 A랭크의 초능력자들이 지금껏 어떻게 죽어갔는지는 실컷 봐서 잘 알지.’

민첩을 포기한 초능력자는 명줄이 그리 길지 않다. 그래서 유서담 본인 또한 회피 테크닉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고.

“준비 됐어?”

-으응···.

화분이 하품을 하며 대답한다. 최근, 백색 마녀의 도서관에서 온종일 마법서를 정독하고 있다는 그녀는 최근 들어서 꽤 마법적인 성취도를 올렸다고 한다.

“무기를 꺼내지 않는가?”

“이게 제 무기입니다.”

“······그건 지팡이가 아니던가?”

유서담은 지팡이가 없다. 그래서 아라셀리가 들고 다니는 아무런 효과도 없는 나무 지팡이를 빌렸다.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지팡이 따위로 무얼 하겠다고?”

“마법을 씁니다.”

그의 대답에 잠시 벙찐 듯 보였던 자베로프와 여황 프리멜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헥하핫!!”

“푸학하학학!!”

웃음소리마저도 정열적이신 분들이다.

눈물까지 흘리며 실컷 폭소하던 여황은 이내 뚝! 웃음을 그치더니 정색하고서 목소리를 내려깔았다.

“장난하는가? 단련된 근육은 마법을 초월한다! 마법 따위로, 최고의 전사라 불리는 자베로프를 상대하겠다고?”

“지켜보시지요.”

“하! 좋다. 그대의 몸이 반으로 꺾였을 때, 막내 공주가 울상지을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착잡하군!”

문답무용. 유서담이 더 이상 반응하지 않자, 곧바로 결투가 시작되었다.

“트합!”

꽈앙!!

요란한 기합과 함께 자베로프가 자리를 박차자, 지반이 무너지며 생성된 돌조각이 튀었다.

붕붕붕! 공기를 찢어발기며 풍차처럼 회전하는 거대한 도끼는 굉장히 흉물스러웠으나, 예상대로 그렇게 빠르지는 않았다.

화분이 마법을 캐스팅하기에는 충분한 속도.

유서담은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손을 뻗었다. 사실 화분이 마법을 시전하기에 그런 행동은 필요 없었으나, 마법사인 척을 하기 위함이었다.

쩌엉!!

푸른색 마름모 형태의 마법진이 형성되어 도끼를 틀어막자마자 그는 잽싸게 발을 굴렀다. 이슬이 모이고 모여서 날카로운 고드름을 생성하여 자베로프의 발을 찌르려고 했지만 그녀는 힘껏 도끼를 휘둘러 그것들을 모두 파괴하였다.

그러나 마법사의 연속기는 한 번 시작되면 끊어지기 전까지 계속 이어진다.

착! 유서담이 허공을 움켜쥐자 자베로프의 사방에 공허가 열리더니 푸른색의 사슬이 튀어나와 그녀의 몸을 속박하였다.

“그으읍!!”

쨍그랑!! 사슬은 금방 끊어졌지만, 다음 마법의 캐스팅은 끝났다.

유서담의 머리 위로 거대한 화염의 구체가 떠오르자 자베로프는 심음을 흘렸다.

‘마법 따위가······ 이 정도의 위력이라고?’

도끼로 전면을 가드한 직후, 불덩어리가 날아와 자베로프와 부딪힌다.

퍼어엉!! 새벽이슬과 소나기의 잔해가 모조리 증발하며 수증기를 일으켰다. 도끼를 잽싸게 휘둘러 시야를 자욱하게 가리는 안개를 걷어냈지만, 그보다도 더 빠르게 바람의 칼날이 자베로프의 팔다리를 옅게 베어내며 지나갔다.

“······따갑군.”

“이야.”

솔직히 이건 좀 감탄했다. 여차하면 팔다리가 그대로 절단될 수도 있을 정도로 날카로운 윈드 커터를 버텨내다니. 저건 어지간한 초능력자들도 할 수 없는 행위다.

“충분히 단련된 근육은 강철보다도 단단하지!”

그리 외치며 자베로프는 하늘 높이 도약하였다. 순간 유서담은 ‘바보인가?’라는 생각으로 명중률은 낮지만 파괴력이 강한 ‘퍼플 불릿’을 손가락 끝에 응집시켜 발사하였다. 공중에서는 방향을 틀 수 없기에, 무조건적으로 명중하리라.

떠엉···!!!

예상대로, 퍼플 불릿은 자베로프의 피부에 정확히 틀어박혔으나 그녀는 근성으로 그 고통을 버텨냈다. 고통을 참기 위해 붉어진 눈을 부릅 뜨고서, 자베로프가 유서담이 위치한 장소를 힘껏 도끼로 내려찍었다.

이렇게까지 큰 동작을 보이며 파괴적인 기술을 사용한 이유는, 여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유서담이 괘씸해서이리라.

그러나.

“······음!”

유서담은 한쪽 무릎을 꿇고서,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 위로 솟아있는 네 개의 흙기둥.

그 보잘것없는 흙기둥이, 자베로프가 날린 회심의 일격을 버텨내었다.

쩌적···!

막아낸 직후 충격에 의해 바스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도약력을 더한 도끼의 충격파를 버텨낼 줄은 몰랐기에 자베로프에게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파앙!

손바닥 끝으로 충격파를 발사하여 자베로프의 몸을 5m 정도 밀어버린 그는 입고있던 갑옷을 절그럭, 절그럭 벗어던졌다.

“제가 왜 갑옷을 입는지 아십니까?”

“······말하라.”

“실전에서는 자존심을 세울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갑옷이 없으면 나무껍질로 몸을 감싸고, 그마저도 없으면 천조각이라도 두른다. 살아남기 위해, 뭐라도 해야만 했다.

“······.”

그래, 확실히 자베로프는 강하다.

“나 또한 실전에서 살아왔다!”

자베로프의 도끼가 유서담을 향해 크게 휘둘러졌지만, 그는 여전히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고개를 숙여서 그것을 피해낸 뒤, 손바닥에 탄환을 응집시켜 그녀의 복부에 명중시켰다.

“커헉!”

마법사는 근접 전투에 약하다. 마법사는 전사의 보호를 받아야만 한다. 마법은 결코 단련된 근육을 이길 수 없다.

그런 당연한 상식이, 자베로프와 프리멜 여황의 머릿속에서 서서히 박살나고 있었다.

“실전? 자신보다 강한 적에게 벌벌 떨며 대항해본 적은 있습니까?”

“나보다 강한 적은 없었다!”

“지금 눈앞에 있지 않습니까.”

펑, 퍼퍼펑!!

바닥이 폭발하며 불기둥이 솟아올랐고, 하늘에서 빛의 기둥이 떨어지며 자베로프의 단단한 근육을 다져놓았다.

뜨거운 열기와 뼛속까지 얼려버릴 정도로 시린 냉기는 근육과 근성으로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짜 강자 앞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여태 만나왔던 마법사는 죄다 약골이었기에 곧바로 허리를 붙잡아 부러뜨리면 끝이었고, 여태 만나왔던 전사들은 전부 자신보다 허약한 근육을 가지고 있었기에 모가지를 꺾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최고의 전사이자 최고의 수호기사였던 자베로프는, 단 한 번도 강적을 만나본 적이 없었기에 그저 일반적으로 이기는 싸움밖에 할 줄 모르는 것이다.

그녀는 강자에게 대적하는 법을 전혀 알지 못했다.

퉁!

도끼가 날아가 바닥에 꽂히고, 자베로프가 무릎을 꿇었다.

여전히 유서담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였다.

여황은 말없이 결투의 결과를 바라보았다.

마법 따위에,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최고의 전사가 패배하였다.

그녀는 과연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여황은 잔뜩 분노한 듯 이글거리는 눈으로 한참이나 자베로프와 유서담을 번갈아 보았으나 자신의 수호기사가 다시 일어설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의 고민 끝에, 여황은 이를 꽉 깨물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베로프의 패배다. 아무래도 네가 그 늑대인간을 사냥한 게 틀림없는 모양이구나.”

여황 프리멜은 전투광인 만큼, 승부에 있어서는 확실할 수밖에 없었다. 승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추악한 전사는 없으니까.

“자,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폐하! 저는 아직 더 싸울 수 있습-”

“자베로프. 네 패배를 인정하거라.”

“크윽······!”

자베로프는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유서담을 힐끗 쳐다보고서는, 고개를 떨궜다. 여황의 말이 떨어진 이상 더 이상 우길 수는 없었다.

“일어서거라, 자베로프. 돌아가자.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어졌으니.”

“···알겠습니다, 폐하.”

자존심이 잔뜩 상한 자베로프였지만 여황의 명령은 거부할 수 없었다. 프리멜은 유서담을 잠시 바라보더니 말없이 몸을 돌려서 저 멀리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쯤이 되어서야.

“푸하···.”

“숨막혀 죽는 줄 알았네요······.”

사에란과 예리나가 바닥에 주저앉으며 소리를 내었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간만에 마법 좀 썼더니 머리 아프네.”

“근데, 교수님은 마법사 아니라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근데 사실 마법 쓸 줄 알아.”

“아하···?”

화분은 이미 유서담의 정신세계에 포함되어 있었기에, 아라셀리도 그의 꼼수를 알아챌 수는 없었다.

“그런데 교수님, 왜 마법만으로 상대하셨나요?”

“여황이 미리 마법의 강함을 인지하고 있어야 하니까. 방금 봤어? 끝까지 내가 이긴 거 인정 안 하려고, 자베로프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린 거.”

그러나 결국 자베로프가 일어나지 못하자, 여황도 패배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지금 내가 마법을 미리 보여주지 않았으면 황위쟁탈전에서도 그랬을 거야. 예리나가 실컷 마법 수련해서 첫째랑 둘째 공주놈들 때려 눕혀놨더니, 마법 따위로 이겼다면서 인정 안했겠지.”

그렇기에 황위 쟁탈전이 시작되는 날짜보다 4년 일찍 마법의 강함을 보여주고, 여황이 4년 내내 ‘충분히 단련된 마법은 근육만큼 강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도록 만든 것이다.

만약 4년이나 흘렀는데도 인정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우리도 슬슬 출발할까?”

“네, 넵!”

예리나 프리멜리아는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록 여황과 함께 밤을 지내느라 잠을 설치기는 했지만, 방금전의 어마어마한 결투를 봐서 그런 걸까 그렇게 피곤하지는 않았다.

‘이게··· 마법······.’

예리나는 마법에 대한 충분한 재능이 있으면서도, 마법을 배운다는 것에 대해 회의감이 있었다.

‘아무리 마법을 단련한다고 해서, 근육을 이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던 탓이다.

그녀는 근육의 강함을 평생 동안이나 겪어왔고, 마법이 전사들에게 어떻게 깨지는지 수도 없이 지켜보았다.

그런데, 근육이 아닌 마법을 단련하여 황위쟁탈전에 도전하라니.

도저히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이미지가 그려지지를 않았다.

하지만 오늘, 확실히 알았다.

‘······나도, 이길 수 있어.’

자신이 진짜 마법사가 된다면. 전사들이 근육을 단련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노력을 하여 마법을 단련한다면.

틀림없이 첫째와 둘째 공주를 이길 수 있다.

그런 자신감이 그녀의 가슴을 한가득 채웠다.

“후견인님, 능선을 타고 오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사에란의 말에 유서담이 먼저 앞서 나가며 또다시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려고 했지만, 예리나는 허겁지겁 달려서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 어제. 늑대인간말인데요.”

“왜. 늑대고기 땡겨?”

“아, 아뇨. 그냥······ 감사해서요.”

예리나는 그 동굴 안에 그런 위험한 괴물이 숨어있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소풍 나온 철없는 아이마냥 웃고 떠들며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누구 덕분인지도 알지 못한 채.

그러나, 이제는 확실히 알았기에 그녀는 공주로서 감사를 표해야만 했다.

유서담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고마우면 나중에 여황 찍고 성이나 한 채 지어주던가.”

“무, 물론이죠!”

당연히 유서담은 농담이라며 웃어넘겼지만.

‘성은 어디에 짓지? 마우렐카 절벽이 경치는 끝내주는데······ 바란타 지방의 영주의 자리를 뺏을까? 아니야. 차라리 파벨로프 황야에 짓는 게 더······.’

예리나는 진심으로 성의 건축을 고민하고 있었다.

< 프린헬스 메이커(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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