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주를 키···워라···?(2) >
셋째 공주 예리나 프리델리아. 그녀는 올해로 나이 열넷이 되어, 대륙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초강대국 ‘프리델리아 제국’의 황위쟁탈전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아니, 정확히는.
공주로서 강제로 황위쟁탈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황족이라면 황위쟁탈전에 참여하는 게 당연하였기 때문에 결코 거부하는 건 불가능.
포기하거나 패배하면, 죽는다.
또한, 하늘 아래 여황이 아닌 다른 공주를 모셨다는 중죄로 그들을 따르던 수행인 및 식솔들 또한 모두 처형당한다.
잔혹하고, 자비가 없는 처우였지만 이 프리델리아의 문화가 바로 프리델리아 제국을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만들어준 문화였기에 500년이 지나도록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살아남기 위해, 여황이 될 자격을 얻기 위해 공주들은 극한의 상황에 내몰려 더욱 완벽하고 체계적인 교육 과정을 이수하게 되었으니까.
“흥미롭네.”
와삭! 팝콘을 씹으며 유서담이라는 이름의 나무꾼은 황위쟁탈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낡디 낡은 셋째 공주만을 위한 마차는 그다지 편리하지도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해서 엉덩이가 깨질 것 같았지만, 직속시녀 사에란은 꾹 참았다.
“···본디 외부인은 끌어들이지 않는 게 암묵적인 룰입니다만, 어쩌다 보니 당신들을 끌어들이게 되었군요. 죄송합니다.”
사에란은 사과를 했고, 공주 또한 마찬가지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마차에 탑승한 뒤부터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유서담은 귀를 후비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난 직속시녀의 사과를 받을 생각은 없는데.”
“···네?”
“어찌 되었든, 나는 내가 공주님을 모시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를 고용한 것도 공주님의 결정이지. 그런데, 건방지게 시녀가 대신 사과를 해도 되는 건가?”
“아······.”
그제야 사에란은 황급히 예리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공주님.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주제넘은 행동을······.”
“아니야, 괜찮아. 사에렌이 날 생각해서 그런다는 걸 항상 이해하고 있으니까. 사에란은 나보다도 똑똑하고 생각이 깊으니까, 우려가 되는 것도 당연해.”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신중히 고려하고 말하겠습니다.”
흐음, 유서담은 턱을 쓰다듬으며 시녀와 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녀들의 관계, 즉 ‘주종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충 떠봤는데 일단 시녀는 진심으로 공주를 모시고 있는 듯 보였다.
‘충성심 높은 여자로군.’
그렇다면, 셋째 공주를 모시는 다른 수행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에 대한 질문에는 공주와 시녀 둘 모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이미 유서담은 대충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굳이 모든 이야기를 공주의 입으로 설명하라 말했다.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황위쟁탈전에서 패배한 공주의 모든 식솔들은 처형당합니다. 그러니 당연히도 승리할 확률이 높은 쪽에 유능한 기사와 마법사, 귀족들이 붙겠죠···.”
“그렇지.”
“첫째 공주 페리나 프리델리아. 압도적인 1순위, 말 그대로 차기 여황이라 불리는 여자입니다. 그녀의 ‘후견인’으로는 마라셀로나 하이반 공작이 있지요. 과거 ‘분열 대전쟁’을 자신의 휘하 기사단과 함께 막아선 위대한 전쟁영웅입니다.”
“멋지네.”
“둘째 공주 케리나 프리델리아. 후견인으로 용사 ‘아이반’이 붙은 뒤, 첫째 공주에 맞먹는 세력과 인맥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당장 케리나 프리델리아가 황위쟁탈전에서 패배하더라도, 반란을 일으키면 제국이 거세게 뒤흔들릴 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요.”
“흐음······.”
첫째 공주의 후견인, 전쟁 영웅.
둘째 공주의 후견인, 용사.
그리고 셋째 공주의 후견인······.
나무꾼 유서담.
얼마나 절박했으면, 얼마나 그녀를 위한 인물이 단 하나도 없었으면, 공주의 가장 최측근에서 그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어야할 ‘후견인’으로 지나가던 나무꾼을 지목한단 말인가.
여러모로 기구하다고 볼 수 있겠다.
“하, 하지만! 이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세력과 인맥은 말 그대로 공주들을 뒤에서 키워주는 후원자들일 뿐, 결국 황위쟁탈전은 공주들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야만 하니까요.”
“그건 그렇지.”
말은 그렇게 했어도, 결국 첫째와 공주는 전쟁 영웅 및 용사의 아래에서 초특급 엘리트 코스를 밟고있을 것이다.
고작 나무꾼 따위를 후견인으로 둔 셋째 공주에게 과연 승산이 있을까?
모른다.
그냥 한다.
이게 주인공을 사냥할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셋째 공주는 영 걱정스러웠나보다.
“그냥······ 지금와서, 조금 걱정이 되네요.”
“뭐가.”
“제가 나무꾼 유서담님을 괜히 죽음으로 몰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충동적으로 그에게 후견인이 되어달라고 말하였고, 이제 그의 주인이 되었지만.
자신의 패배는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했기에, 그에게는 미안한 감정밖에 들지 않았다.
“나 죽을 생각 없는데?”
“···네?”
“질기고 오래 살 거라고.”
“아······.”
예리나는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다. 질기고 오래 살 것이란 말은, 곧 황위쟁탈전에서 승리하겠다는 다짐과 다름없다.
처음 만난 사람이 자신을 위핸 목숨까지 걸고서 최선을 다해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기에, 가족은 물론 신하들에게조차 버림받은 여리디여린 열넷의 어린 소녀는 고작 그런 말 한마디에 가슴이 울렁이고 말았다.
‘여차하면 튀면 되지.’
···물론, 혹여나 패배해서 처형을 당할 위기가 되면 그는 아라셀리만 쏙 빼서 다른 차원으로 도망칠 생각이었지만.
*
황도(皇道) 프리멜로드.
다음 대의 여황이 즉위하는 날, 단 하루만을 위해 개방되는 그 붉은색의 길은 제국의 수도 프리멜시티 전체를 관통하여 프리멜리아의 황궁(皇宮) 프리멜캐슬의 제1거성을 향해 들어가게 된다.
거창한가? 그래도 좋다. 세계의 절반을 차지한 초강대국의 여황 즉위식인데 오히려 그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나?
오늘, 셋째 공주의 후견인이 정해졌다.
다른 두 공주가 ‘후견인 찾기 여행’을 단 하루만에 끝내고 돌아온 데에 비해, 셋째 공주는 무려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어찌 되었든 무사 귀환했음에 여황 프리멜 프리멜리아는 축복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후견인이, 한낱 나무꾼이라고 했던가?”
제0거성.
여황, 프리멜 프리멜리아는 거만히 다리를 꼬고서 황좌에 앉아 자신의 눈앞에 무릎을 꿇고있는 네 명의 일원들을 바라보았다.
꼴에 공주랍시고 데리고 다닌다는 직속시녀는 비쩍 마른 데다가, ‘후견인’이라는 놈 역시 근육도 별로 없어 보이는 주제에 심지어 갑옷까지 걸치고 있었다.
“허어······! 하늘이 마침내 셋째 공주님을 버리셨군······!”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달리 반박을 할 자는 없었다.
“음!”
여황, 프리멜 프리멜리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유서담은 식은땀을 흘렸다.
2m에 가까운 거구, 유서담 본인의 머리통 두세 개는 합친 것같은 팔뚝에 허리 굵기보다도 더 두꺼운 허벅지가 그를 긴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으적!
여황 프리멜 프리멜리아는 손에 쥐고있던 단백질바(439kcal)를 단숨에 씹어 삼키고서는 이마를 짚었다.
그러자 그녀의 왼쪽에 서있던 첫째 공주 페리나 프리멜리아가 한심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후견인으로 연약한 남자 따위를 데려오다니······. 그것도, 갑옷을 입은 겁쟁이를! 네년이 정녕 제정신이느냐, 예리나 프리멜리아!”
“첫째 공주! 감히 본좌 앞에서 주둥이를 열다니! 여황의 권위에 도전하려는 것이냐!”
“하! 닥치시지요, 여황! 골격근량이 저보다 0.2kg이나 부족한 주제에!”
“건방진! 그날 소변을 보고 온바디(Onbody)를 재서 그렇다!”
정말 콩가루 집안이다.
둘째 공주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예리나! 네가 아무리 무골(武骨)이 전혀 보이지 않는 연약한 약자라고 하여도, 후견인은 제대로 데려올 줄 알았거늘! 꼴이 처참하구나! 네 후견인의 근육을 보라! 내 손가락보다도 얇지 않느냐!”
그건 좀 과장이다.
“그래서 어디 힘이나 쓰겠느냐? 내 후견인, 용사 아이반의 근육이 보이는가? 연약한 사내로 태어났음에도 나와 필적하는 이 아름다운 근육을!”
그러자, 옆에 서있던 아이반이 상의를 찢어 던지더니 ‘사이드 체스트 포징(Side Chest Posing)’을 하였다.
옆으로 서서 측면가슴을 돋보이는 포즈로서, 어깨의 야만적인 근육을 자랑하는 자세! 우두둑! 마치 가시가 돋친 것만 같은 허벅지 근육이 꿈틀거리며 파도쳤다.
‘미친놈들인가 진짜.’
유서담은 자신의 팔뚝을 매만졌다. 저들에 비해 확실히 호리호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우스갯소리로 말하기도 하는, ‘실전근육’이었다.
마력이 근섬유 내에 스며들어, 적은 근육으로도 괴력을 낼 수 있게 되는 초인들은 피격 범위가 넓어지고 착용하는 장비가 무거워진다는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근육을 단련하는 대신 더 많은 마력을 단련하였다.
물론, 여전히 괴력을 좋아하는 이들은 근육을 단련하기도 하였지만 유서담은 민첩함을 추구하였기에 상대적으로 말라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그렇다고 해도, 아예 빼빼 마른 멸치 취급을 받을 줄이야.
사실 이 자리에 있는 전원 모두, 유서담과 1대1 실전 혈투를 벌인다면 단 5분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질 것이다.
고작 근육 하나만으로 덤비기에는 그는 수많은 상황, 수많은 환경에서 수많은 경우를 염두에 두고서 싸워왔으니까.
그러나, 그 사실을 알리겠답시고 후견인 주제에 황위쟁탈전의 주인공들에게 싸움을 걸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유서담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서 입을 다물고 있자, 셋째 공주 예리나가 입을 틀어막고서 끅끅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와 언니들의 취급이 서러워서. 무골을 타고나지 못해 근육을 전혀 키우지 못한 자신이 한심해서. 전쟁 영웅이나 용사가 아닌, 나무꾼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처량해서.
그래서 소리없이 울었고, 아무도 그런 그녀를 위로해주지 않았다.
“썩 꺼져라! 황위쟁탈전이 정말로 기대되는구나”
여황의 일갈에 유서담 일행은 조용히 황궁에서 쫓겨나, 바깥으로 내몰렸다.
“흐윽, 흐···으흑!”
셋째 공주는 아예 흐느껴 울었으나 아무도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전할 수 없었다.
그때, 거대한 그림자가 그녀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
첫째 공주의 후견인이자 전쟁 영웅, 마라셀로나 하이반 공작이었다. 그녀 역시 다른 공주 및 여황과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한 근육을 뽐내고 있었는데, 표정을 굳히자 음영이 짙게 드리워서 무거운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하이반 공작은 셋째 공주의 어깨를 툭툭 치며 지나쳤다.
떨어지는 태양을 등지고서 저 멀리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마치 태양을 향해 나아가는 제국의 기상을 표현하는 듯했다.
“울지 말거라, 소녀여.”
세상을 울리는 듯한 떨림에 예리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전쟁 영웅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뒷모습만을 보이며 손을 슬쩍 흔들었다.
“눈물 흘리면 근손실 온다.”
예리나는 즉시 울음을 뚝 그쳤다.
근손실은 중대문제였으니까.
< 공주를 키···워라···?(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