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주를 키···워라···?(1) >
나는 축 쳐진 아라셀리를 어깨에 들쳐업고서 황당하다는 말투로 물었다.
“···그러게 왜 무리했냐?”
원래의 예정대로 진행했다면, 마지막 순간에 내가 직접 마왕성에 당도해서 왕국의 마법사들이 준비해준 ‘고밀도 마정석’을 이용해 마법을 시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정과는 다른 일이 벌어졌다.
[교수님! 저 납치돼요!]
침대에 이불까지 깨끗하게 개어놓고, 심지어 방에 준비된 다과까지 깨끗하게 챙겨서는 그런 쪽지를 남기고 아라셀리가 사라져버렸다.
황당함을 금치 못하고 허겁지겁 마왕성으로 달려왔더니, 이게 웬걸.
하늘에서 유성우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109(+134)레벨의 주인공을 사냥하였습니다.]
[수명이 109일 지급됩니다.]
[레벨이 3단계 상승합니다.]
[대량의 개연성으로 높은 기반을 다지고 있던 주인공을 사냥하여 레벨이 4단계 추가 상승합니다.]
대재앙.
마왕성 인근의 지형지물 자체가 뒤집어 엎어져, 지도를 아예 새로 그려야 할 정도의 강력한 위력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아라셀리는 완전히 탈진 상태가 되었다.
본래 메테오 스톰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무려 50%가량의 마력을 사용해야만 한다고 하였다.
지금은 각종 마법 재료와 타워 등으로 보조를 하여 어떻게든 커버를 했지만, 아라셀리의 체내에는 10%의 마력도 남아있지 않았기에 애초에 무리해서 마법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나마 2써클의 쥐꼬리만한 마력도 포함해서 시전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대로 기절해서 몇 달은 요양할 뻔했다.
“가끔······.”
“가끔?”
“포장 뽁뽁이를 보면 죄다 터뜨려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잖아요?”
“어, 그렇지?”
“그런 느낌이에요.”
뭔 느낌이야 그게 대체.
“그러냐······.”
아무튼 대충 납득하고서 슬쩍 다른쪽 옆구리를 향해 고개를 돌려본다. 그곳에는 왠지 모르게 뺨이 발그레진 성녀 레니카가 아라셀리를 힐끗힐끗 엿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뭐라 중얼거린다. 뭐지. 악마 소환 주문인가?
“오, 오늘··· 고마웠···워어요···.”
그렇단다.
아무튼, 나는 레니카를 무사히 교황청으로 데리고 복귀할 수 있었다.
“용사여. 절대불가침의 마왕성에 도전하여 불패의 마왕 디아블로 김을 처치하고, 성녀를 구해왔군! 그대의 용맹함과 강인함에 우리 교회는 그대를 칭송할 것이라네!”
폭죽이 터지고, 꽃가루가 휘날리고, 아주 난리가 났다. 사실 일은 거의 다 아라셀리가 한 거 같은데.
정작 그녀는 레니카가 자꾸만 말을 걸고 있어서 바쁘다.
“으흠, 아라셀리님. 이 다음에 어디로 가실 건가요? 혹시··· 제 마음 속으로?”
“······.”
아닌가. 일방적으로 혼자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세계에 대한 미련은 더 이상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어차피 이제 떠날 거니까. ···뭐, 지금 보면 딱히 아라셀리도 미련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마왕 중 한 명이 죽었으니까 당분간은 용사가 없어도 인간의 세력이 우세할 터. 아마, 이후로는 용사 없이도 알아서 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나저나, 레벨 많이도 올랐네.’
아라셀리가 없었다면 사냥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만만찮은 주인공이었기 때문인지 레벨 역시 어마어마하게 상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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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담>
[도합 레벨: 195]
*능력치
[근력 191] [체력 193] [민첩 189]
[기력 1] [마력 321]
*재능
[검술 S] [사냥 D+] [사격 S]
[요리 D-] [직감 A] [기민 A]
[통찰 B] [원기 SS+] [집중 C]
[기타···.]
*스킬
[주인공 사냥꾼 Lv. 5]
[백색검법(S)] [육감(B)]
[인벤토리(S)] [달마풍천신법(SS+)]
[정신 집중(SS)] [신성력 변환(F)]
[아라-선영 식 마나 써클링(SS+)]
[백색 마녀의 도서관(C)]
[만물을 냉정한 시선으로(B)]
[기계를 감정적으로 이해하는 법(A)]
[더블 써클(S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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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거의 200레벨에 가까이 도달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SS랭크 초능력자보다는 순수 출력 및 능력치로는 밀릴 수밖에 없지만, 다양한 능력(검술, 마법 등)을 지니고 있기에 맞먹는 것 정도는 가능할 듯싶다.
“슬슬 떠날까.”
“용사여. 정말로 축제를 즐기지 않아도 되겠소?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마왕 디아블로 김의 죽음에 축제를 벌이고 있소.”
그건 그렇긴 하다. 나 또한 축제는 좋아하는 편이라 즐길 수 있다면 최대한 즐기자는 취지였고.
하지만 아스칸타 월드에서 보낸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농땡이를 피우며 휴식을 취한 바람에, 현실에서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저는 바로 떠나야 합니다.”
“흑···. 아라셀리님, 보고 싶을 거예요!”
교황은 아쉽다는 표정을, 레니카는 눈물을 보였다. 언제나 이별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얼굴이었다.
최소한 작별의 순간에 원망의 눈을 받았던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사실 나 꽤 잘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아라셀리의 손을 잡았다.
남은 개연성은 차원이동을 고작 서너번쯤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 하지만 차원이동에 이 개연성을 전부 소모하기에는 슬슬 ‘주인공화’를 걱정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어서 모든 개연성을 소모해야만 한다.
“저번처럼, 시간을 조금 건드려서 개연성을 아예 모조리 소모하고 싶은데.”
<많은 시간여행을 할 수는 없겠지만, 작은 도약 정도는 몇 번 가능하겠군요.>
“그 정도면 충분해. 시간여행을 활용해서 주인공을 사냥할만한 세계를 보여줘.”
<알겠습니다.>
의뢰인은 곧바로 해시태그 하나를 띄워주었다.
『용사여! 공주를 키워라!』
#판타지미소녀육성시뮬레이션
#연애 #정치 #피 #혈투 #근육
육성 시뮬레이션이라. 처음 보는 장르다. 이쪽으로는 별로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데······.
“줄거리 확인.”
━
<줄거리>
흑룡왕 카베루스를 처치한 뒤 은퇴한 용사 파에덴.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묘령의 여인이 찾아와 자그마한 소녀를 부탁한다.
“이 아이를 여황으로 만들어주세요.”
“그러도록 하지. 목숨을 걸고서.”
······지금부터, 전직 용사의 공주 키우기가 시작된다!
━
역시나 뭔가 육성을 하는 듯싶은데, 이것만 봐서는 사실 잘 모르겠다.
‘공주 키우기라······.’
공주를 여황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게 뭐가 있더라?
대충 판타지가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외모 단정에 예절을 중요시여기고, 언제나 품격을 잃지 않으며, 춤과 악기 연주 등을 교양으로 배우고 있고, 정치와 전략에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여황’의 조건이 아닐까 싶다.
모든 공주와 여황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일반적으로 ‘클리셰’를 따른단 점을 떠올리며 얼추 들어맞을 것이다.
“재밌겠네. 한번 가볼까.”
“네!”
<출발하겠습니다.>
나는 아라셀리의 손을 꼭 붙잡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뜨자.
[199레벨의 주인공 ‘아이반 파에덴’의 세계, 프리델리아 제국으로 이동합니다.]
[10···9···8···]
[2···1···0]
[이동이 완료되었습니다.]
······슈우우욱!!
거대한, 그림자가.
내 시야를 한가득 메웠다.
그건, 어떤 거인의 발바닥이었다.
“···뭐시여?”
깜짝 놀랄 틈도 없이, 나는 잽싸게 검을 뽑아들고서 높이 날아올라 그 거인의 발길질을 막아내었다. 체내 마력의 함유량이 1%가 간신히 넘는 아라셀리가 저것에 채이면 그대로 즉사할 것이기에 보호해주기 위함이었다.
쩌엉-!!
거인의 발이 옆으로 휙 돌아가며 꺾여버렸다. 과연, 덩치만 클 뿐 SS랭크 수준은 아니다.
서걱! 에테르 블레이드에 마력까지 담아서 휘두르자 발목이 그대로 절단되었고, 보법으로 놈의 신체를 날아오르듯 타고 올라가며 검을 주욱 그어버리니 그대로 두동강이 나버린다.
촤악! 거인의 시체에서 튀는 녹색의 지저분한 핏방울을 화분의 워터 실드가 깔끔하게 막아주었다.
쿵, 쿠웅···!!
이윽고 거인의 시체가 바닥으로 쓰러진 뒤, 뒤늦게 나는 아라셀리의 옆으로 두 명의 여자가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명은 20대 후반의 여인이었으며, 다른 한 명은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린 소녀였다.
서로를 끌어 안고서 덜덜 떨고있는 그녀들의 머리 위에 떠오르는 자그마한 메시지.
[조연, 셋째 공주 예리나 프리델리아]
[조연, 공주의 직속시녀 사에란]
‘음······?’
공주와 그 직속시녀라고? 그렇다기에는 복장이 너무 허름하다. 공주는 그나마 사람다운 옷을 입고 있는 데에 비해, 직속시녀는 아예 누더기를 걸친 수준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조연이라.’
의뢰인은 차원이동을 할때, 내가 그 세계에 도착해서 주인공을 사냥할 운명적 확률이 가장 높은 장소에 위치를 배정해준다.
내가 여기에서 그녀들을 만난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다가가자, 공주는 몸을 덜덜 떨었고 직속시녀는 그런 그녀를 껴안아 보호하면서도 강인한 눈빛을 잃지 않았다.
이제부터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까.
그러나 그런 고민은 할 필요도 없이, 셋째 공주 예리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황야의 붉은 거인을 단 일격에 해치우시다니. 대, 대단하시군요. 용맹한 전사여, 그대의 존함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있었지만, 저 어린 소녀가 이 상황에 애써 용기를 냈다는 사실 정도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중학생 때의 나는 고작 F랭크의 괴수 앞에서도 지릴 뻔했는데, 떡잎부터 다른 꼬맹이다.
“지나가던 나무꾼이다. 숲에서 지내는 와중, 거인이 나타나서 빠르게 해치웠지. 알다시피 거인의 간이 술을 담그기에 최고니까.”
그들의 신분을 눈치 채지 못한 척, 일부러 말을 놓은 뒤.
“···그러는 귀족 양반들이, 어인 일로 이런 곳까지 찾아오셨나?”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눈썰미 좋은 척도 한번 해본다. 이거 은근 재미있네.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하지만, 저희의 신분을 밝힐 수는-”
“네. 저는 프리델리아의 셋째 공주, 예리나 프리델리아입니다.”
“-공주님! 외부인에게 함부로 신분을 드러냈다가는 큰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알아요, 사에란.”
셋째 공주는 덜덜 떨리는 발을 억지로 움직여 자리에서 일어섰다. 뒤쪽의 거인 시체에게 최대한 시선을 주려고 하지 않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나무꾼께서 알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프리델리아 황궁에서는 ‘황위쟁탈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세 명의 공주 중에서, 가장 여황에 적합한 단 한 명만이 살아남는 참혹한 쟁탈전이지요. 저는 그런 쟁탈전에서 떨어져 나온 덜떨어진 패배자. ···하지만, 당신의 힘이 있다면 다시 한번 그 전장으로 발을 내딛을 수 있을 것도 같군요. 나무꾼님, 부디 저의 ‘후견인’이 되어주시겠습니까?”
“······.”
과연, 이런 느낌으로 가는 건가.
아마도 ‘주인공’ 또한 비슷한 제안을 받았을 것이다. 첫째 혹은 둘째 공주의 후견인으로서 활동하고 있겠지.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부와 명예, 나라의 모든 권력과 온갖 진귀한 보물들, 여자와 술까지도. 당신이 원한다면 뭐든 다 가질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너를 여황의 자리에 앉히지 못하면? 나는 어떻게 되나?”
그에 셋째 공주는 입술을 꾹 깨물고서 손끝을 떨더니, 진실을 이야기했다.
“···당신 또한 후견인으로서······ 죽습니다.”
그건, 생각보다도 더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 공주를 키···워라···?(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