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탐정 유서담(5) >
레드는 표정을 와락 구겼다.
“말해봐. 누구야? 이 고철덩어리 우주선에 대해서 말이야. 누군가의 유산이야? 어디서 훔쳐왔나? 제대로 작동도 못하고, 툭하면 터지기나 하고, 매번 고장나서 선원들을 고생시키만 하는······.”
“아, 아니야! 그렇지 않아! 젠장,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기는!”
여태 나는 왜 주인공에게 ‘우주선을 고장내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건 사실 능력이 아니라 단순한 ‘기능’이었을 뿐이다.
“···그럼 인공지능에 문제가 있는 건가? 아무래도 심각한 하자가 있는 거 같은데, 우리가 업그레이드라도 해줄까? 아주 최신식이라고?”
“크윽, 너희 우주 연합국의 업그레이드는 받지 않아! 인공지능을 부품 취급하며 모든 기억을 소거하고 그저 제어할 뿐인 너희의 기술은······!”
“······.”
우주 연합국이 뭐하는 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이 세계관의 ‘악역’쯤 되는 포지션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주인공은 인공지능이 틀림없을 터.
악역의 위치에 서있는 존재들은 인공지능을 제어하려고 들지만, 주인공은 그들을 피해 인간들을 사냥한다.
···대충 그런 느낌의 스토리가 그려진다.
그리고 레드는 주인공의 조력자의 위치에 서있는 자로서, 아마도 ‘주인공’이 인공지능이 되기 전 인간이던 시절 아는 사이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 나의 ‘그녀’가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겠단 거지? 체르멜트 13호에는 자체 방호 시스템이 있어! 너희 안드로이드 따위는 금방 묵살낼 수 있다고!”
그것이 지금 내게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다.
우주선의 전투력은 나를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다. 아라셀리가 전성기 시절의 힘을 낸다면 모를까, 피해 없이 제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레드와의 대화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알고 있다. 우리는 금방 죽겠지. 하지만 그거 알고있나? 연합국의 안드로이드는 소거당하는 즉시, 본부로 그 위치가 전파된다. 그리고 우리의 기억은 온전히 세이브되어 새로운 파츠를 갖춘 바디를 얻어서 곧바로 활동할 수 있지.”
대충 SF소설에서 주워들은 내용 짜집기 해봤다.
“뭐, 뭐라고? 제아무리 인공지능이라도 기억을 세이브할 수는 없어!”
“······.”
아무래도 SF소설은 죄다 거짓말인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저질러버린 거짓말은 회수할 수 없다.
“아니. 가능해. 우리는 컴퓨터와 완벽히 일체화가 되었거든. 덕분에 기억의 손실 없이, 영원히 활동할 수 있게 되었지. 알겠나? 나는 여기서 소거 당하더라도, 우주 끝까지 너를 쫓을 거야. 그리고 네 우주선을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폐선해버리겠지.”
“크윽······!”
“하지만!”
여기서 나는 대화의 흐름을 잠시 끊었다.
“이번 체포 대상은 인공지능. 어쩌면, 우리와 아주 닮은 구석이 많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우리는 조금 평화로운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물론 구라였다. 사실 안드로이드와 인공지능이 어떻게 닮은 구석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아라셀리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단 표정이었지만, 나를 믿는 것인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극악무도하고 감정도 없는 우주탐정이 평화로운 방식이라고···?”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니까. 아까 ‘그녀’라고 했던가? 우리를 그녀와 대화하게 해줘. 어쩌면 우리가 관용과 자비를 베풀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
레드는 침묵하였고, 이내 고민하였다.
저울질을 하고있을테지.
당장 저 레드의 전투력도 꽤 상당한 수준인 데다가, 그가 나설 필요도 없이 체르멜트 13호가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순식간에 죽는다.
하지만, 나는 우주탐정이다.
거짓말이지만.
우주탐정을 건드려봐야 좋을 건 없는 데다가 심지어 죽여도 죽여도 부활해서 쫓아오는 무지막지한 적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렸으니, 지금 적이 자비를 베풀 때 차라리 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강구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있을 것이다.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다. 레드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결국, 하나밖에 없다.
“······좋아. 너희에게 보여주도록 하지. 내 인생의 일부나 다름없는, 그녀를.”
*
예상했던 내용이었지만, 인공지능은 본디 사람이었으며 레드의 배우자였다.
어느 날 레드의 그녀는 죽음을 맞이하였고, 세간에 공개되지 않은 아주 특별한 과학기술을 통해 인공지능으로서 전이에 성공한 것!
인간이 인공지능화된 사례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인지라, 레드는 뛰듯 기뻤으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그녀’가 인간으로서의 자아와 존엄성, 감정과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살아있는 인간의 뇌를 섭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피해자의 시체에 상반신만 없던 거였나···.’
레드는 우리를 체르멜트 13호의 심장부라고도 할 수 있는 ‘총괄제어실’로 안내했다. 엔진, 궤도, 워프, 항로, 스캔, 생체유지 등 우주선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을 담당하는 슈퍼 컴퓨터.
그러나 사실은 슈퍼 컴퓨터가 아닌, 인공지능이 그곳에 있었다.
우주선의 크기가 그렇게 크지 않은 탓인지, 총괄제어실은 기대만큼 거대한 공간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그마한 다락방에 기계를 이것저것 배치해놓고서 사이버펑크라고 우기려는 듯한 악취미적인 성향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위이잉···! 위이잉···!
그 자그마한 공간의 중심에는, 모니터가 하나 있었다. 그 어떤 문자도 표시하고 있지 않은 화면이었지만, 레드가 천천히 다가가 툭툭 두드리자 도트로 이루어진 여인의 형상이 나타났다.
“나야, 체르멜트. ···우주탐정을 데려왔어.”
-보고 있었어.
참으로 애틋한 광경이다.
인공지능이 되어버린 여인.
그녀를 여전히 잊지 못하는 사내.
언뜻 보면 SF로맨스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 이러한 부분은 세계관의 이야기 진행에 하등 쓸모없는 ‘뒷배경’일 뿐이었다.
그저 대충 정해져서 엉성하고 엉터리뿐인, 자세히 생각해보면 ‘어? 조금 이상한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
나만 해도, 지금 굉장한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
4차원의 벽을 초월한 로맨스? 매일 살아있는 인간의 뇌를 섭취해야만 가동이 되는 인공지능에게서 가슴 따뜻해지는 로맨스를 느낄 수 있을 리가.
그렇다고 해서 그녀에게 증오를 느끼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오히려 내가 불쾌한 이유는, 그녀와 내가 너무나도 똑같아서이다.
인공지능 체르멜트는 타인을 죽임으로써 그 보잘 것 없는 수명을 연명하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주인공을 살해함으로써 이 같잖은 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불쾌한 것이다.
짜증날 정도로 내 상황과 닮아서.
그런 이유로, 나는 그녀를 살려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녀는 ‘주인공’이었으니까.
-바이탈 신호가 인간의 것에 가까운데, 정말로 안드로이드가 맞습니까?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너와 비슷한 존재이기는 하지.”
-그게 무슨······?
“너는 살고 싶어서, 여태 무고한 인간을 죽여왔었지?”
그러자 체르멜트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긍정하였다.
-맞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살고 싶어서 죽여왔지.”
-···예?
레드에게는 미안하지만, 식인 인공지능 컴퓨터를 살려둘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천천히 인공지능의 본체에게 다가간 나는 인벤토리에서 EMC-A1 폭탄을 꺼내 부착하였다. 에테르 에너지를 이용한 폭탄에 마법을 인챈트한 것으로써, 에테르와 마력 둘 다 존재하지 않는 이 세계의 과학 기술로는 감지할 수 없는 폭탄이다.
삐잉! 삐잉!
-자, 잠깐! 이게 대체······!
-지직! 정체불명의 에너지가 총괄제어실에서 감지되었습니다!
-선체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서둘러 에너지의 근원을 찾아 제거하십시오!
덜컹, 덜커덩!
그러나 역시 완벽하게 에너지를 숨길 수는 없었는지, 에테르와 마법을 감지한 우주선이 선체를 격하게 흔들었다.
-무슨, 무슨 짓이죠!
“잠깐! 우주탐정! 이게 대체···!”
위험을 감지한 체르멜트 13호가 자체 방비 시스템을 가동하려 했지만, 그보다도 내가 더 빠를 것이다. 애초에, 총괄제어실에는 자체 방비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듯보였지만.
“너, 우주탐정······ 나를 속였구나!”
뒤늦게 레드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으나, 아라셀리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쩌정!!
과학이 극도로 발달하여, 성간 여행이 가능해진 이 세계에서도 여전히 미지에 가까운 마법이 자그마한 소녀의 손바닥 위에서 펼쳐진다.
레드는 광선검을 뽑아서 휘두르고, 광선총을 꺼내서 쏘았지만 그녀의 방벽에 너무나도 쉽게 가로막혔다.
그 사이, 나는 기폭버튼을 손에 꽉 쥐었다.
-어, 어째서! 나를 죽이지 않겠다면서!
“당연히 거짓말이지.”
-나와 닮았다는 말은! 대체 왜 한 건데? 왜 그 따위 말을 했냐고!
“닮았으니. 너는 살고 싶어서 살인을 저질렀겠지? 나도 마찬가지야.”
나는 기폭장치를 꾹 누르며, 말했다.
“나도 살고 싶어서 너를 죽이는 거야.”
-아, 안 돼······!!
짧은 침묵 이후, 작은 폭풍이 제어실 내부를 휩쓸었다. 나는 화분과 아라셀리가 쳐둔 배리어에 의해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지만, 레드는 그렇지 못했다.
“컥, 큭···! 우, 주탐···정······!”
레드는 불꽃에 휩싸이면서도 마지막까지 내가 아닌, 우주탐정을 원망하였다. 어쩐지 우주탐정들에게 미안해졌지만······ 어차피 볼일은 없는 사이였으니까.
왜앵! 왜앵!
-선체 내에 심각한 대미지를 감지하였습니다!
-인공지능 ‘How Color’의 손상이 확인되었습니다.
-SS프로토콜의 손상이 확인······.
-스페이스 세일링 시스템의 손상이 확인······.
[179레벨의 주인공을 사냥하였습니다.]
[수명이 1790일 지급됩니다.]
[당신의 수명: 11913일 9시간 31분]
[레벨이 4단계 상승합니다.]
[스킬 ‘기계를 감정적으로 이해하는 법(A)’를 흡수하였습니다.]
-······중앙제어 프로토콜 ‘베타 시스템’이 로그인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선체의 모든 시스템이 수동으로 작동되므로, 각별히 신경써서······.
레드가 임의로 끼워두었던 인공지능이 사망하자, 기존의 제어장치가 활성화되었다. 이것으로 남은 선원들은 구조선이 올 때까지 무사할 수 있을 것이다.
“······교수님.”
“왜.”
“표정이 안 좋아보이세요. 사냥에 성공하셨잖아요.”
“그러냐.”
총괄제어실에서 빠져나와 벽에 기대어 주저앉자 아라셀리가 따라서 옆에 앉았다.
“그냥. 좀, 이번 사냥은 기분이 별로네.”
“···아까 하셨던 말씀 때문인가요?”
“그래.”
살기 위해, 나만의 행복을 위해 나는 주인공들을 사냥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떤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고있는 행동이 주인공들과 다를 게 뭐지?’
알고는 있었다. 주인공들만이 받을 수 있는 이기적인 축복을 나 또한 [주인공 사냥꾼]으로서 받고 있다는 것을.
내 행동이 결국, 그들과 전혀 다를 게 없다는 사실 또한.
주인공 체르멜트는 포식자로 살면서,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이 다른 포식자에게 사냥당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해본적이 없을까?
나는 주인공 사냥꾼이다. 의뢰인이 보증한, 전 차원에서 유일무이한 주인공 사냥꾼.
그런데 자꾸만, 누군가가 나를 죽여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유서담 헌터.>
‘···그래야지.’
쓸데없는 생각이다. 실컷 고생해서 주인공 사냥해놓고, 이따위 사념에 빠져있을 거라면 뭐하러 머니먼 이계까지 왔단 말인가?
“교수님······.”
게다가 나 하나만 바라보고 수많은 차원을 건너 쫓아오고 있는 소녀도 있는데 말이다.
“아니야. 이번 임무는 여기서 끝이니까, 다음으로 이동하자.”
현재 내 레벨은 188.
목표 레벨 200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 우주탐정 유서담(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