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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208화 (208/251)

< 우주탐정 유서담(4) >

[남은 인원 6명]

레드가 죽었다.

그 사실은, 13호의 선원 전원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아······.”

“맙소사······.”

대부분의 선원이 사망하고, 우주선 내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우주선이 거대 항성 두 개 사이에 껴서 고립된 와중에도 모두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었던 선장이다.

그런 선장이 죽었다는 사실은 선원들을 모두 흔들리게 만들었다.

“마, 말도 안 돼.”

“선장이 말했잖아! 자기는 스스로의 신분을 밝혀서 결코 살해당하지 않을 거라고.”

“선장은 특수전투 1급 요원인데··· 외계인 대항군 대장군이던 선장이, 정말 살인자 따위에게 죽었다고?”

“이, 이건··· 이건, 난··· 나는······.”

모두가 패닉에 휩싸였다. 기둥이 송두리째 뽑혀나간 집은, 가장 깊은 곳부터 무너져내리기 시작하였다.

“진정들 하세요. 살인자는 이걸 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가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해요.”

내가 그리 말하자 도리어 푸른색의 우주복을 입은 병사가 내 멱살을 잡았다.

“네가 뭔데! 외부인인 너 따위가 뭘 안다는 거야! 젠장할! 도움도 안 되는 불청객놈들!”

“그래! 아니지, 사실 너희들이 범인 아니야? 숨어있다가 나왔다니까? 내 말이 맞다고!”

“틀림없어! 저놈들을 퇴출시켜! 푸른 항성으로 던져버리자고!”

분위기가 극단적으로 변해간다. 선원들은 나를 원망스럽단 듯이 쳐다보았고, 정말로 우리를 죽이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건.

‘주인공, 즉 살인자가 원하는 상황이란 건가.’

너무 앞서나가는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살인자 입장에서 우리의 존재가 방해가 된 모양이다.

생각해보자.

모든 선원들의 동선은 정해져있다. 레드는 그 선원들의 동선을 대부분 파악하고 있었고, 그들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정해진 루트로 이동하여 정해진 장소를 거친다는 것이다.

살인자는 그 사실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데, 거기에 우리가 끼어들었으니 살인자가 움직이기 불편해졌을 터.

그런 이유로 나는 범인을 레드라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선원의 동선을 알고 있으니까.

유일하게 정체를 드러내고 있는 레드가 살해당하지 않은 것은, 단순히 그런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레드가 살인자라고 의심받을지도 모르니까.

모든 동선을 아는 레드만이 계속해서 살아남고, 다른 선원들이 죽어 나간다면 결국 범인으로 몰릴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레드를 범인이라고 의심하였지만 모든 선원들은 레드를 믿고 의지하였다. 그건 살인자의 계획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쓸모없어진 레드를 죽였다.

그리고 타겟을 바꾸었다.

나와 아라셀리라는 불청객들을 범인이라고 몰아세우기 시작한 것.

즉, 진범은 다른 누군가에게 범죄를 뒤집어 씌워야만 한다는 건데······.

대체 왜?

그의 위장은 완벽해 보인다. 선원으로 위장하고 있어 결코 들킬 일이 없으며, 설령 헬맷을 벗더라도 구분이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살인자가 생각하기에는 완벽하지 않다. 분명, 들킬만한 결정적인 무언가가 이 우주선 내에 존재하기에 선원들을 안심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살인자는 지금 시간 싸움을 하고 있다.

하루에 단 한 명 살해할 수 있는 능력으로 매일매일 인원을 죽여나가 마침내 모두를 살해하여 들키지 않거나, 혹은 그 전에 결정적인 힌트를 선원들에게 들켜 죽임을 당하거나.

“······잠시만 진정하시죠.”

내가 입을 떼자, 선원들이 침묵하였다. 여기서 변명을 잘못 했다가는 죽이겠다는 분위기는 여전했지만.

하지만 나는 변명할 생각이 없었다.

“여러분께 비밀로 하고 있었지만, 저는 사실 우주탐정입니다. 여기 이 친구는 제 조수죠.”

거짓말을 칠 생각은 있었지만.

“우, 우주탐정이라고······?”

“말도 안 돼! 네깟놈이 무슨 우주탐정이야!”

“그래. 온갖 우주의 미스테리를 풀고 다니는 우주탐정을 사칭하다니. 정말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 거냐!”

“우주탐정이라면 그 증거를 보여라. 우주탐정 배지가 있을 거 아니야?”

오, 뭔가 우주탐정이라는 직업이 실제로 있는 모양이다. 게다가 상당히 신뢰도가 깊은 직업이고. 그건 몰랐는데. 아무렴 상관없나.

“우주탐정 배지는 우주선에 놓고 내려서 없습니다만, 다른 증거를 보여드릴 수는 있습니다.”

극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같다. 지금 그들에게 있어서 우리가 사용하는 마법은 별달리 신기할 것도 없을 것이다.

초공간 워프, 모든 것의 이론, 블랙홀의 비밀, 우주의 근원을 이루는 암흑물질을 다루는 법 등등.

현대에서는 여전히 미지의 분야로 남은 그 지식들을 저들은 상식처럼 생각하고 있을 것이고, 그건 내 입장에서 오히려 마법과도 같은 일이었다.

여기서 비비안타 제국의 그 어떤 마법 기술력을 들이밀어도 신기할 건 없지만······.

그 어떤 기계의 도움도 없이, 생명체의 몸으로 그 과학을 실현하는 건 어떨까?

나는 양손바닥을 펼쳐보인 뒤, 불꽃과 얼음을 둥실 띄워올렸다.

“저는 사실 빛의 종족이 아닌, 우주의 미스테리를 탐구하고 조사하기 위해 제작된 특수 탐정 안드로이드 U-SD 1호입니다. 체내에 초고도로 정밀한 기계장치가 탑재되어있어 특별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지요.”

“아, 안드로이드라고······?!”

“그건 인권 문제로 제작이 금지되었을 텐데······.”

“인권 문제는 결국 높으신 분들의 돈지랄으로 얼마든지 해결되기 마련이니까요.”

“과연. 일리가 있어!”

일리가 있다니 이 양반들이.

그러다가 선원들은 아라셀리를 슬쩍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남자 안드로이드는 모르겠는데, 저 여자 정도로 예쁜 안드로이드를 제작할 수 있다면 난 전재산을 바치겠어.”

“동감이다.”

미친놈들인가.

아라셀리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지만 안드로이드인척 하는 나를 방해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말하니, 저 초고열과 초저온이 뒤섞인 직사광선에서도 무사한 게 이해도 되는군. 그리고 이 환경에서 우주복 없이 활동하는 것도. 안드로이드였던가······. 정말 인간처럼 보이는군. 자네 조수를 조금 살펴봐도 되겠는가?”

“그건 안 됩니다. 저렇게 보여도 무시무시한 살육병기거든요.”

됐다. 어느 정도 속아 넘어왔다.

‘교수님, 다음 계획은 뭔가요?’

아라셀리가 반짝이는 눈으로 내게 물어왔다.

그런데 이 다음으로 계획이 없다.아무 생각도 없다. 여전히 나는 범인에 대한 갈피를 전혀 잡지 못했으니까.

평범한 ‘추리물’이었다면 이 우주선에 살인자의 동선과 살인의 증거 등을 밝혀낸 뒤 결정적인 순간이 그 증거를 들이밀어 결코 도망칠 수 없게 만든다음 살인 동기를 자수하게 만드는······ 그런 전개가 되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주인공도 아니고 탐정도 아니다. 그런 고도의 전략적인 방법은 쓸 수 없단 말이다.

그런 이유로, 방법을 바꾼다.

내가 알고있는 아주 극히 미세한, 1%의 정보를 이용해먹는 것이다.

“저는 이틀간 이 우주선에서 지내며 최첨단 알리오-올리오 탐색법을 이용해 살인자의 흔적을 추적했습니다.”

“···성과는 있소?”

“있습니다. 투움바 추리 시스템으로 저는 아주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냈습니다. 멍청한 살인자놈, 아주 치명적인 증거를 방치해뒀더군요. 하긴,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겠죠.”

그건 지금까지 내가 알아낸 모든 정보를 술술 털어놓은 것이다.

‘살인자는 결정적인 힌트를 남겨두고 있어서 굉장히 급한 상황이다.’

이거 외에는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지만, 살인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웬 손에서 불꽃이니 얼음이니 막 뽑아내는 우주탐정 안드로이드가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냈다고 하니, 상당히 애간장이 타고 있을 터.

이 결정적인 순간에!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다음 기회에.”

“예?”

“안타깝게도 오늘은 긴급 호출 때문에 그 증거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일단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므로 내일로 넘긴다.

“하지만 내일, 제대로 확인한 뒤 증거를 제출하도록 하지요.”

그러면, 살인자의 시선은 자연히 나에게로 쏠리게 될 것이다.

*

클리셰에 따라서, 살인자는 하루에 단 한 명만을 살해할 수 있다. 물론 확정된 사실은 아니나 적어도 확신하고는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피아’ 컨셉의 스토리가 아예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밤, 한 명의 살인, 우주선의 붕괴.

저 키워드가 이번 주인공의 클리셰였기에, 그를 대면하기 위해 나는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밤이 되었습니다. 모두들, 각자의 임무는 숙지하고 계시죠?”

“원래는 레드가 유동적으로 변동해주지만······ 일단은 기존에 하던 임무를 그대로 수행하도록 하지.”

“레드의 임무는 어떡하지?”

“저희 둘이 하겠습니다.”

“레드의 임무는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할 텐데······.”

“저희는 안드로이드라 상관없습니다.”

사실 딱히 임무를 수행할 생각이 없었기에 대충 둘러댔다.

“그럼, 각자 흩어지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우주탐정님만 믿겠습니다.”

선원들과 헤어진 나와 아라셀리는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 그녀는 텔레파시로 내게 물었다.

‘무슨 수라도 있으신 건가요?’

무슨 수는 없다. 여기서 만약 살인자가 내 도발을 무시하고서 또 다른 놈한테 들러붙어서 살인을 저지르면 말짱꽝이 된다.

나는 오늘도 그 어떤 증거를 찾아내지 못할 테니까. 그걸 찾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클리셰’를 보유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그런 게 하나도 없다.

그런 이유로 첫 번째, 함장실.

“······.”

“······아무 일도 없는데요?”

“다음으로 가자.”

두 번째, 에너지 융합 발전소.

“더워요······.”

“······다음으로 가자.”

세 번째, 7섹터.

“아까 먹다 남은 감자칩이 있어요.”

“······다음으로 가자.”

네 번째, 고장난 워프 스테이션.

“와아. 저건 마법진 아닌가요?”

“전선 회로같은데.”

“마법진이랑 엄청 유사하네요.”

“······.”

여전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중력실이나 발전소가 고장나는 등의 살인자의 방해도 없다.

나는 슬슬 스스로의 행동에 의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방법은 안 통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다섯 번째, 의료실로 향하였을 때.

우주복을 벗은 채, 나를 노려보고 있는 웬 남자와 마주할 수 있었다.

“······역시! 가장 먼저 의료실을 찾아오다니. 나를 잡아낼 증거를 눈치채고 있었군, 우주탐정!”

가장 먼저는 아니고, 한 다섯 번째 쯤이는 하지만 딱히 대답하지는 않았다.

나는 아라셀리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쟤 누구냐?’

‘말레그레톤 억양의 거센 발음과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는 버릇, 묘하게 섞인 사투리로 봤을 땐 레드 같은데요?’

그렇군.

“레드. 나는 네 정체를 알고 있었다.”

“···내가 레드였던 것도 알아채다니. 역시 안드로이드는 무서운 존재로군. 너는 어디까지 알고있던 거지?”

어디까지도 알지 못했으므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레드는 헛웃음을 쳤다.

“그래, 우주탐정의 방식대로 체포하겠다 이건가. 범죄자와 결코 대화하지 않고 무조건 사살한다······. 우주 연합국의 방식과 아주 잘 어울려!”

나는 인벤토리에서 윈체스터를 꺼냈다.

여기까지는 전부 계획대로이다.

레드가 어째서 아직 살아있는 건지는 모른다. 시체의 상반신이 남아있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자신의 우주복에 피해자의 시체를 넣어놓은 뒤 본인은 선원으로 위장했을 가능성이 가장 타당하나, 사실 거기까지는 알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는 결국 내 유인에 이끌려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이제는 싸우는 일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의 ‘클리셰에 의한 살인’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어떻게 사람 하나를 반드시 죽일 수 있고, 또 그 사람으로 위장할 수 있으며, 생체 신호조차 남겨두지 않은 채 이곳에 섞여들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지, 잠깐.’

뭔가 이상하다.

일이 너무 쉽게 풀린다. 애초에, 이 정도로 쉽게 유인이 걸려들 정도로 상대방이 멍청하던가? 스스로의 증거를 꽁꽁 숨겨두던 그 살인자가?

<서담. 대상의 머리 위에 주인공 해시태그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뭔가 잘못됐다. 저 레드는, 범인이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범인 행세를 하고있는······.

‘잠깐.’

문득, 이 세계의 장르가 ‘마피아’라는 것을 떠올린다.

마피아는 시민을 살해할 수 있지만, 반드시 ‘사회자’의 동의를 거쳐야만 한다. 만약 정말로 이곳이 마피아 장르라면······ 사회자는 어디에 있는 거지?

사회자가 있다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문득, 나는 고개를 돌려 바이탈 사인을 체크하는 스캐너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남아있는 선원 여섯과 불청객인 우리의 생체 정보까지도 생생하게 드러나 있었다.

우주선의 그 어떤 미생물마저도, 저 스캐너를 피해갈 수는 없다. 그래서 선원들은 스캐너를 맹신하였고, 살인자가 선원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 우주선 자체가 우리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다면?

나는 다시 레드를 쳐다보았다. 그는 양팔을 활짝 벌린 채 내게 말했다.

“내가 범인이다. 그러니, 나를 체포해라.”

그제야 나는 이 상황을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SF장르의 상당히 싸구려틱한 클리셰가 떠오른 것이다.

“···이 우주선의 인공지능에, 뭐라도 심어놓으셨나봐? 레드.”

“뭐?”

지금부터는 생각나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던져야만 했다.

“나는 네가 범인이라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왜 스스로 자백하고, 체포하라고 우기는 거지?”

“그···건······.”

“애초에 내가 의료실에 왔던 건, 선원들이 무사한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마도 이 우주선은 매일 연료로서 인간을 필요로 했겠지. 맞나?”

우주선이 도리어 인간을 연료로 쓴다는 내용의 SF는 흔하진 않지만 찾아보면 꽤 존재한다. 그게 추리 마피아물과 뒤섞일 줄은 몰랐지만.

“하지만 당장 필요한 연료는 충분해졌고, 슬슬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발뺌을 할 필요가 있어졌겠지.”

굳이 ‘범인’이 다른 누군가에게 누명을 씌워서, 퇴출시키려고 했던 이유.

가장 범인같았던 레드가 살인자로서 내몰리지 않았던 이유.

그건 레드가 살인자를.

즉, 이 세계관의 주인공인 우주선 ‘체르멜트 13호’ 그 자체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 우주탐정 유서담(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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