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탐정 유서담(3) >
레드가 우리에게 준 미션들은 생각보다 별거 없었다. 폐유류 버리기, 쓰레기 소각하기, 전원 전부 올려놓기, 전등 교체하기 등등······.
“슬롯을 아래로 당기면 게이트가 열린대요. 폐유류를 버리라는데요? 우주 쓰레기가 늘어나겠어요.”
“넌 무슨 그런 걸 신경쓰냐······.”
“저희 세계에서는 우주 환경에 대한 문제가 제1순위로 직면했거든요. 마르칸 제3녹색행성의 요정들과의 교섭이 결렬된 가장 큰 이유도 저희 하늘이 너무 더러워서 그랬대요.”
“요정들은 원래 깔끔떨잖아.”
“재수도 없죠.”
나와 아라셀리는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하나의 미션을 완료하면 지도를 보면서 다음 행선지로 이동한다.
그러던 도중, 왜앵! 왜앵! 거리며 비상 경보음이 울리며 전등이 꺼졌다.
나와 아라셀리는 시력이 워낙 괴물 수준으로 좋은지라 상관없지만, 평범한 인간이라면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깜깜했다.
각자의 우주복에 주어진 후레쉬만으로는 고작 두세 걸음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수준······.
“발전기의 전기가 꺼진 거 같은데.”
“이쪽으로 가면 발전기가 나와요. 경보음이 울릴 때가 가장 위험한 상황이니 어지간해서는 다같이 모이는 게 낫다고 레드가 그랬어요.”
“우리도 가보자.”
지도를 보며 경보음이 울리는 발전기 방향으로 향해 빠르게 달려가니, 우리보다 먼저 모여있던 세 명이 고개를 돌렸다.
각각 그린, 핑크, 그레이였다.
그리고 때마침 켜지는 우주선의 전등. 저 세 명이 발전기를 고친 것이다.
“다시 돌아가게. 여기는 우리가 끝냈으니.”
“예. 수고가 많으십니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잡담 나눌 틈이 없어. 나는 빨리 함장실로 가보겠다.”
그리 말하며 그레이는 서둘러 나갔다. 빠르게 우주선을 수리하지 않으면 궤적이 비틀린다거나, 엔진이 새어나가는 등의 위험 요소가 있을 수 있어서 여유롭게 잡담을 나눌 틈이 없다는 것이다.
“나와 핑크도 의료실로 돌아가도록 하지. 바이탈 스캔 장치를 고쳐야겠어.”
“저희는 7섹터로 돌아가서 쓰레기 좀 소각하려구요.”
“수고하게.”
건조하고 필요한 대화만을 딱 주고받은 우리는 즉시 헤어져서 각자의 미션지로 이동했다.
7섹터는 레드와 우리가 처음 만난 장소이자, 이 우주선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원래는 여덟 명의 인원이 모두 북적거리는 곳이건만, 지금은 휑했다. 흩어져 있으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선원들은 모두가 생존하기 위해 흩어져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우리는 거기에 끼어든 입장이었고 주어진 미션도 사소한 것들이지만 대충대충할 생각은 없었다.
덜커덩! 쿵!
쓰레기 더미가 우주공간으로 날아가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온통 검은색의 배경에 무수히 반짝이고 있는 수천, 수만, 수억, 수조 개의 별들. 이 세계의 문명은 저 수많은 별들을 여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달해 있었다.
아마도 지금껏 가보았던 세계 중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과학적이지만, 가장 감성적인 세계가 아닐까.
별들을 여행한다니.
“교수님.”
“응.”
“교수님이 찾고 계시다는 그··· 레이나 주라는 분은 어떤 분이셨어요?”
조금은 갑작스러운 질문이었기에 나는 잠시 손동작을 멈추었다.
“···글쎄. 엄청 어른스러웠어. 어린애답지 않게.”
“교수님보다 나이가 많았나요?”
“그럴걸. 사실 실제 나이를 들은 적은 없어서 정확히 몇 살인지는 몰라. 추정 상 나보다 한두 살 많아 보여서, 대충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기억 속의 레이나 주는······ 이미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의젓하기가 쉽지 않은데, 대단하신 분이네요.”
“뭐··· 가끔 화날 땐 무서웠지만.”
단 한 번이지만, 레이나 주가 진심으로 내게 화냈던 적이 있다.
내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고 했을 때.
‘야이 개미친 썅놈의 새끼야! 네가 지금 제정신이야!’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레이나 주는 쌍욕을 했다. 항상 얌전하고 점잖았던 레이나가 그렇게까지 화를 낼 줄은 몰랐기에 나는 울음을 터뜨렸고, 레이나도 나를 끌어안으며 ‘미안해, 내가 미안해······’라고 중얼거리며 울었다.
나는 레이나가 무서워서 울었지만, 당시 레이나가 운 이유는 아직까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때 왜 울었는지 영원히 알지 못하겠지.
“교수님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계셨나 보네요······.”
“맞아. ···아직까지도 그 애정이 부담스럽지만.”
“왜요?”
“나는 레이나에게 해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일방적으로 보호를 받았거든.”
“······그렇군요. 마치 부모님같네요.”
“맞아. 부모님. 이유없는 일방적인 사랑. 나는 레이나에게서 부모님의 사랑을 느꼈어. 사랑을 느낄만한 부모님이 있던 적은 없지만.”
그렇게 잡담을 나누며 임무를 수행하다보니 어느덧 우리의 할당량을 거의 다 채웠고.
그 순간.
빼앰! 빼앰! 빼앰!
경보음이 느리게 울려퍼졌다. 시스템에 의한 경보가 아니었다.
“···긴급 소집 회의야.”
누군가가, 우리 모두를 호출하고 있었다.
*
호출지의 위치는 함장실. 서둘러 그곳으로 이동하니 사람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이건······!”
아라셀리가 입을 틀어막고서 소리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함장실에는, 반토막난 시체가 있었다. 상반신이 아예 없이 하반신밖에 남아있지 않은 그것을 과연 토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그레이가 죽다니······.”
“맙소사···. 오늘 그레이는 누가 입었지? 어서 대답해! 레드!”
“···그건 말해줄 수 없다. 범인이 누가 죽었는지 알아선 안 돼.”
“젠장! 마리사, 마리사가 죽은 게 아니면 된다고······.”
“블루! 실명을 거론하지 마라! 마리사는 중요 인물이라 타겟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멍청한 놈. 너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마리사가 반응했으면, 네가 네 연인을 죽게 만들었을 거야.”
“······크윽!”
그레이가 사망했다.
남은 선원은 7명.
희망이 꺼져가는 와중에도, 레드는 리더로서 냉정해져야만 했다.
“······각자의 행선지를 말해.”
레드의 말에 핑크부터 시작해서 차례대로 움직인 위치를 말했다.
함장실을 거친 인원은 총 셋.
블루, 레드, 민트.
그러나 그 셋 모두 초반에 잠깐 들렀다가 금방 자리를 떴고, 도중에 그 누구도 마주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레이는 전력 발전소에서 우리와 함께 만났던 적이 있다. 즉, 한참 뒤에야 함장실로 갔다는 의미인데······.
“······이 우주선 내에 다른 인원이 있는 거 아니야?”
“아니. 우주선의 바이탈 사인은 미생물조차 포착한다. 우주선 내에는 분명 열 명밖에 없었어.”
살인자는 틀림없이 선원으로 위장해서 숨어있다. 그런 이유로, 이들 중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있다.
“나는 저 두 명이 의심스러워. 어떻게 갑자기 우주선에 나타날 수가 있지? 분명 여태까지 우리 선원들을 살해하면서 숨어있다가, 위치가 들키니까 불시착했다고 거짓말 친거야!”
“맞아! 빛을 다루는 외계 종족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저놈들이 제일 의심스러워!”
“···진정해라, 핑크. 그린. 저 둘이 3격납고에서 온 건 내가 틀림없이 봤어. 저들을 퇴출했다가, 살인이 또다시 일어나면? 그땐 너희들이 책임질 거야?”
“지금 책임이 문제냐고! 우리가 다 죽게 생겼는데!”
선원들의 감정이 격해졌다. 우리가 의심받는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라, 잠자코 있었다.
‘블루, 레드, 민트. 함장실을 다녀온 셋, 죽어있는 그레이······.’
초반에 블루와 민트가 함장실로 간 것은 내가 처음에 확인했다. 하지만 레드가 언제 갔는질 모르겠다.
“우선은 진정하고, 오늘 임무는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지.”
점점 더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고, 그렇게 우주선에서의 첫날이 저물었다.
*
둘째 날이 되었다.
하루종일 7섹터에 모여있던 아홉 명의 인원은 각자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일 밤, 동료가 한 명씩 살해당한다는 공포.
그러나 여기서 움직이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다. 우주선을 보수해야만 했기에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오늘 임무도, 다들 부탁하지.”
나와 아라셀리는 여느 때와 같이 간단한 미션을 부여받았다.
“아라셀리. 누가 범인같아?”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 사람의 눈빛을 본다면, 속내를 알 수 있기는 한데 헬맷을 쓰고 있어서······.”
아직까지 의심가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달리 생각해야만 했다.
“오늘 미션은 조금 제쳐두고, 행선지를 바꿔보자.”
“네? 왜요?”
“그냥 좀······.”
그때, 경보가 울렸다.
왜앵! 왜앵!
중력 유지 장치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곧바로 수리하러 가지 않으면, 중력이 없어져서 똑바로 서서 걷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사실 지구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여기에서는 아주 위험한 상황에 속했으나, 보통 같았으면 서둘러 수리하러 가는 게 옳았을 터.
“교수님. 중력실은 북쪽 17번 문을 통해야 하는데요?”
“반대로 가자.”
“네.”
아라셀리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중력실은 우주선의 오른쪽에 위치해 있었는데, 우리는 일부러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중력실과는 전혀 상관없이 동 떨어진 장소.
아마 우리 모두의 ‘동선’을 아는 자가 있다면······ 중력실에 문제가 생긴 즉시 우리가 어떻게 이동할 것인지 잘 알고있을 것이다.
즉, 그 빈틈을 파고들어서 조용히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다는 사실.
“······자네들, 왜 여기에 있나?”
그리고,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던 와중 우리는 레드와 마주칠 수 있었다.
중력실과 전혀 상관이 없는 곳에서 말이다.
“놓고 온 물건이 있어서요. 레드는요?”
“나는 미처 못다한 임무가 있어서 그랬다네.”
“···그게 중력실보다 중요한가요?”
“중요하지.”
“흠······.”
의심스럽다. 의심스럽다 못해 범인같다. 이건 틀림없다. 중력실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틀림없이 다른 사람의 이동 동선에 끼어들어 누군가를 살해하려고 했을 터.
“······그럼, 나는 이만 임무를 수행하러 가보도록 하지.”
그렇게 레드가 어딘가로 사라졌고, 우리는 그를 쫓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아직 확신이 없다. 그를 쫓아갈만한 이유도 없다. 오히려, 리더인 레드가 언론 플레이를 통해 우리를 수상하다고 몰아가는 순간 불리해진다.
‘약점을 정확히 잡아야 해. 누군가 희생이 되더라도······.’
이윽고 중력실의 경보가 해제되었다. 선원들이 모여서 중력실의 오류를 해결한 것이다. 우리 또한 장소를 이동하여 미션을 수행하였고.
빼앰! 빼앰! 빼앰!
누군가의 긴급 호출 경보가 울려 퍼졌다. 아라셀리와 나는 마력까지 써가져 서둘러 경보가 울린 장소를 향해 달렸다.
위치는 의료실.
선원의 바이탈 사인을 체크할 수 있는 장소.
의료실의 문을 서둘러 열고 들어서자.
그곳에는.
“······어라?”
상반신이 사라지고 없는, 레드의 시체가 떡하니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 우주탐정 유서담(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