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탐정 유서담(2) >
우주선이 없다. 그런데, 표류 중인 우주선에 탑승했다. 나의 말은 신빙성이 전혀 없었으나 현재 내가 이 자리에 똑똑히 존재하였기에 부정할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그럼 대체 무슨 수로 이곳에 왔다는 겁니까?”
붉은 우주복의 사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한다. 비록 헬맷에 가려져서 얼굴과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나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지 않았을까.
이런 적이 거의 없어서 상당히 당황스러웠지만 서둘러 변명했다.
“그··· 우주선이 있었습니다만, 반파되었습니다. 그러다 운이 좋게 여기에 불시착했구요.”
워프 마법을 운운해볼까 했지만, 여기는 SF 세계관이다. 과학의 판타지나 다름없는 세계에서 마법을 언급했다가는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게 뻔했다.
“맙소사······ 우리가 수리할 수 있습니다! 그 우주선의 위치를 알려주십시오! 어서!”
“예?”
“레드! 진정하세요! 저들은 3격납고에서 왔습니다! 거기는 출입할 수 없다구요!”
“잠깐이면 되잖아! 잠깐만 갔다 오면······!”
“정신 차려요! ‘직사광선’에 노출되어 죽고 싶은 겁니까!”
“······그러고 보니, 저 사람들 뭔가 이상합니다. 어떻게 3격납고에서 올 수가 있는 거죠? 거기는 이미 배리어가 대부분 걷혀서 직사광선이 제대로 쬐는 곳일 텐데.”
형형색색의 다섯 병사들이 침묵한다. 그러고선,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듣자 하니 3격납고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건데······ 기압이 낮은 것 외에 별다른 특이사항이 있던가?
어느 환경에서든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주인공 사냥꾼] 덕분에 나는 별 이상을 못 느꼈지만, 유독 아라셀리가 심하게 탈진에 빠지긴 했었다.
아무리 힘이 약해졌더라지만, 차원 방랑자로서 이계의 힘을 견뎌낼 수 있는 아라셀리가 고작 기압의 차이로 힘이 빠진다는 건 뭔가 이상하다.
즉, 다른 원인이 있었다는 뜻.
“······.”
아라셀리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식은땀을 훔치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희는 인간이 아닌 이종족입니다. 빛을 다루지요. 인간과는 달리, 항성의 직사광선을 쐬고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리 말하며 아라셀리는 손가락 끝에서 빛무리를 생성하였다. 나 또한 서둘러 마법으로 손가락 끝에 빛의 방울을 형성하자, 그제야 병사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외계인이었군······.”
“빛을 다루는 외계인라니. 들어본 적도 없어······.”
“어느 행성에 어느 문명이 존재하는지는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진 게 하나도 없으니까 낯선 외계인이 우리 신호를 포착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어.”
저들끼리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이내 납득한 듯 무기를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아라셀리의 변명이 제대로 통한 듯싶다.
레드는 팔목을 들어올려 버튼을 꾹꾹 눌러 누군가와 교신을 하려고 했지만, 다시금 팔을 내려놓았다.
“젠장. 다른 선원들에게 이 사실을 전달할 수도 없군. 통신 관리관이 죽어버린 게 이렇게 큰 실책이 될 줄이야······.”
그러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아무튼, 체르멜트 13호에 탑승한 걸 환영한다. 아무래도 저승 가는 길, 동반자가 두 명이나 늘어서 그런지 우리도 썩 기분이 좋지는 않군.”
그렇게 나와 아라셀리는 무사히 ‘체르멜트 13호’에 섞여들 수 있었다.
*
“여기는 체트논-g5 성운의 B15은하 북동부 클리제논 179A 항성계다. 우리의 고향으로부터 약 18,000광년 떨어진 곳이지.”
주소지 한번 거창하다.
“멀리도 왔군요.”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지구라고 말하면 알려나? 같은 차원이 아니라 지구가 아예 존재하지 않을수도 있겠다. 저들은 인간이지만, 나와 같은 세계에서 사는 지구인들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멀지도 않다. 성간 워프장치가 고장나지만 않았더라면 반년 이내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겠지.”
그러자 구석에 쭈그려 앉아있던 푸른색 우주복의 사내가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글쎄요. 워프 장치가 있었더라도, 여기에서 빠져나가는 게 가능했을까요?”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군.”
그에 나는 대화 주제가 넘어갈까봐 서둘러 되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죠? 워프 장치가 있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까?”
“음? 자네도 우주선을 타고 왔다면 봤을 텐데?”
“스캐너가 나가버려서 보지 못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불시착했구요.”
“후우, 그렇군. 설명해주지. 우리가 돌아갈 수 없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 우선, 첫 번째는······.”
레드는 그리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에 있는 컴퓨터를 조작하였다. 그러자 허공에 홀로그램이 피어올랐다.
그건,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너무나도 흉흉하게 발광하고 있는 붉은색의 거대한 항성이었다.
“PG1 M000.1Q-86.”
“······?”
“저 항성의 이름이다. 우리 고향의 태양보다 10배는 더 커다란 크기를 가지고 있지.”
“미친······.”
태양의 10배라니. 상상해본 적도 없는 스케일에 입을 쩍 벌리자, 홀로그램 화면이 넘어갔다.
이번에는 푸른색의 구체가 나타났다.
“별칭은 ‘푸른 태양’. 저 항성에 공식적인 이름은 없어. 우리가 이곳을 항해하다가 최초로 발견했거든.”
“···그렇습니까?”
“그래. 예정대로의 궤도로 이동했다면 우리는 무사히 PG1 M000.1Q-86의 워프 포인트를 타고서 다음 행성계로 이동했을 거야. 그런데, 고향에서는 전혀 관측하지 못했던 또다른 항성이 떡하니 이곳에 존재했던 거지.
말도 안 된다. 우주 여행까지 가능한 문명이 저런 거대한 항성을 관측할 수 없다니.
···그러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과학이 만능인 세계에서 과학으로도 알 수 없는 ‘미스테리’가 벌어지는 게 바로 SF의 클리셰이자 호러틱 전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저 항성은 이상해. 저건······ 뜨겁지 않다. 오히려, 차갑지. 아주아주 차가워. 우주 공간은 평균 섭씨 -270도로써 절대 영도에 가까운데, 저건 말 그대로 절대 영도 그 자체야. 영하 273도,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항성이지.”
“허, 미친.”
“네에? 저, 정말인가요······?”
내가 암만 과학을 모른다지만, 그런 게 말이 안 된다는 사실 정도는 잘 안다. 아라셀리 또한 입을 쩌억 벌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교, 교수님. 저런 게 존재할 수 있는 건가요?”
“글쎄. 바나나가 원숭이를 먹는 세계도 있었고 민트와 초코를 섞은 미친 세상도 있는데 없을 건 또 없지.”
세계는 무수히 많고, 무수히 많은 상식이 붕괴되어 가고 있으니까. 120명으로 3300명을 포위했던 미친 세상도 있었으니, 얼어붙은 항성이 현실성이 없더라도 믿어야 한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네.”
홀로그램이 흔들리며, 이번에는 주황색의 구체와 푸른색의 구체가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비쳐졌다.
그리고, 그 구체들 사이의 빈공간에 끼어들어가있는 아주 자그마한 먼지 한 톨.
그것은 그 어디로도 움직이지 못하는 채, 완벽히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게 설마 이 우주선입니까?”
“정답이다. 두 항성의 궤적에 아주 미세하게 맞물려,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지. 우리는 이걸 ‘중력의 올가미’라고 불러. 워프 장치가 고장난 우리 우주선의 힘으로는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단 말이지.”
“그렇군요······.”
“하지만.”
레드는 희망을 담아서 말했다.
“구조 신호를 본부에서 포착했다. 버티기만 하면 수송선이 올 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리면 돼.”
“그럼 희망적인 거 아닙니까?”
“당장은 두 번째가 더 중요하다.”
그는 분노한 듯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밤이 되면, 항성풍에 의해 우주선이 심하게 파손된다. 하지만 이곳에 탑승한 선원들 모두 뛰어난 기술자들이지. 흩어져서 수리하기만 하면, 문제없이 매일밤을 버텨낼 수 있어. ···그런데, 누군가가 밤마다 선원을 죽이기 시작했다.”
“예?”
“불행하게도 통신장치가 고장나 멀리 떨어진 선원과의 교신은 불가능. 우리가 각자 구역으로 흩어져서 수리하는 동안에는 완벽한 ‘빈틈’이 생긴다. ···군인으로서 부끄럽지만, 살인자는 우리가 이길 수 없어. 상반신을 완전히 뜯어먹고서 하반신만을 남겨두는 그 괴물같은 살인자를 우리가 어떻게 이기겠는가?”
“······.”
대충 [줄거리] 시스템을 통해 파악하기는 했지만, 설마 이런 내용이었을 줄이야.
요약하자면 이렇다.
매일 밤, 선원들은 우주선의 보수작업을 위해 곳곳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선원으로 위장한 누군가가 선량한 선원을 살해.
그렇게, 매일 한 명씩 인원이 줄어들어 현재는 고작 여덟 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구조선이 도착하기까지는 일주일이 넘게 남았다. 일주일 뒤에는,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을 터.
만약 뒤늦게 구조선이 도착했다가는, 그곳에 살인자가 탑승하여 똑같은 악몽이 반복될 것이다.
“모두가 죽기 전에, 살인자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이곳의 핵심 ‘스토리’였다.
*
잠시 뒤, 레드는 우주선의 선원을 전부 불러모았다.
빨강부터 시작하여 선원들은 각자 구분이 가도록 알록달록한 색상의 우주복을 입고 있었는데, 혹여나 나타날 수도 있는 살인자를 구분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또한, 레드를 제외하고서는 매일 색깔을 바꿔가면서 서로를 숨기고 있다고 하였다. 혹여나 ‘엔진 관리사’와 ‘광자 궤도학자’가 살해당할 경우 사태가 더욱 끔찍해진다는 이유 때문.
목소리마저 변조로 숨긴 채, 오로지 리더로서 레드만이 스스로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흠······ 범인은 완벽히 선원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있다고 했던가.’
나는 천천히 그들을 둘러보았다. 주인공의 이름은 ‘하우컬러’로서, 레드에게 물어보니 그런 선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즉, 어떤 색인지 어떤 이름인지조차 모르는데 심지어 그 누구의 머리 위에도 ‘주인공 해시태그’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억지로 헬맷을 벗기자니, 죽이기 전까지는 벗기는 게 불가능한 시스템인 데다가 의심을 살 확률도 높았다.
‘싸워서 전부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은?’
<2명에서 3명 정도는 사살할 수 있으나, 곧바로 우주선 내의 자체 방비 시스템에 의해 제압될 것입니다.>
마법과는 달리 극한에 달한 과학은 ‘생각’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시스템은 그저 적이라고 인식한 순간, 사살한다.
그렇기에 내가 최대로 죽일 수 있는 선원은 3명. 애초에 선량한 일반인을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8명 중 3명 안에 주인공이 없었다는 최악의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잠자코 지켜보는 게 옳았다.
즉, 오로지 두뇌 하나에 의존해서 우주선에 숨은 살인자이자 ‘주인공’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건데···.
“그래도 일손이 늘어서 다행이군. 자네들 또한 밤에 임무를 도와줄 수 있겠나? 둘은 함께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해주겠네.”
“물론이죠.”
밤마다 무슨 일이 터지는지 지켜보려면,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움직일 생각이다.
왜앵! 왜앵!
비상 경보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어, 항성의 파동에 의해 우주선이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레드는 우리에게 초심자도 할 수 있는 간단한 미션을 주었고, 똑똑한 아라셀리는 곧바로 그것들을 머릿속에 정확히 입력하였다.
‘중요한 건 미션이 아니란 말이지······.’
어차피 범인만 잡으면, 우주선은 저들끼리도 알아서 유지보수 해가며 구조선이 올 때까지 버틴다.
이곳의 태그가 『밤하늘을 표류하는 어떤 이의 살해일지』인 것으로 보아, 주인공은 틀림없이 살인자다.
범인이 주인공인 장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특별히 이상할 것도 없다. 다만, SF장르인 줄 알았더니 추리 장르에 가깝다는 점이 참으로 한탄스러울 뿐.
하지만, 시간을 되돌리는 주인공이나 세상을 창조하는 주인공에 비해 훨씬 낫지 않던가?
[메인 에피소드 「밤이 되었습니다」를 감지하였습니다.]
주인공 색출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 우주탐정 유서담(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