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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205화 (205/251)

< 우주탐정 유서담(1) >

현대, 지구.

예카테리나는 저물어가는 해를 보며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이곳은 현재 정령들의 공중정원이 아닌, 정말로 강남 한복판에 세워진 ‘어나더 리그’의 길드 빌딩이었다.

비록 본사는 공중정원에 있었기에 ‘본사’라는 타이틀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40층의 높이에 헌터들의 능력 훈련장, 마도구 및 에테르 디스펜서 특수 보관소까지 전부 갖추고 있는 나름대로 네임드 길드에 걸맞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흐음······.”

그녀는 모니터 그 자체라고도 볼 수 있는 거대한 창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헬 게이트’에 관련된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있었다.

제아무리 거대 길드라도 일반 업체는 결코 열람할 수 없는 극비 정보였지만, 이계 종족 라칸탈이 헬 게이트의 연구원이 된 덕분에 모든 정보를 받을 수 있었다.

마도기술이 최고 수준에 달했던 푸른 별빛에 젖어드는 이슬의 종족이자, 차원 그 자체의 개념을 이해하고 다루었던 여인의 남편이었던 라칸탈은 지구상 그 누구보다도 헬 게이트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이건 자연재해다. 지성체는 자연의 법칙을 지배할 수 없지. 자네는 세계에게 미움받아본 적이 있나? 이건 그런 거야. 세계가 우리를 증오하고, 밀어내려 한다. 결코 거스를 수 없어. 다만 저항할 뿐.’

라칸탈의 기술로도 헬 게이트의 팽창을 완전히 저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저 조금 그 시기를 늦출 뿐.

방법이 하나 있다면, 헬 게이트의 내부로 진입하여 핵심이 되는 ‘무언가’를 파괴하는 수밖에 없는데······.

지금으로서는 그 ‘무언가’가 대체 뭔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을뿐더러 최소 에너지 파장이 ‘URS’ 이상의 등급으로 추정되었기에 섣불리 진입하는 것도 힘들다.

‘URS등급이면······ 일전에 서담님께서 처치하였던 달마지존과 동급.’

S급 게이트 하나를 처리하는데 S랭크의 헌터 수십명이 필요한 것을 생각하면, 최소 달마지존급의 강자가 수십 명은 있어야 헬 게이트에 간신히 들어설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지구에는 그런 강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 최강의 힘을 가진 무림맹주 설중연조차 SSS랭크의 수준이었으니까.

라칸탈은 ‘포기하고 멸망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저 지금의 평화에 안주하고, 마지막 삶을 조금이라도 더 보람차게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이 지성체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선택지이자 유일한 선택지라고 하였다.

하지만······.

‘과연, 서담님이 포기할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고 꿋꿋하게 달려들려는 사람은 이 세상에 언제나 존재한다. 유서담 또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다만, 그에게는 정말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만한 힘이 있다는 것.

“후우······.”

모니터를 끄고서 노트북을 펼치려던 예카테리나는 자신의 그림자가 스멀거리기 시작하자 입을 열었다.

“보고하세요.”

그러자, 그림자 안에서 흑발을 길게 늘어뜨린 미남자가 스멀스멀 새어나왔다.

그림자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이 세상 어디든 잠입할 수 있는 사내, 암영미소였다.

“···사흘 전부터, 강남의 길드 빌딩 근처에 미행이 붙었습니다.”

“미행이라구요?”

“그렇습니다. 계속 건물을 감시하는 게 수상하여 정체를 밝혀내려고 했으나, 그자의 은신술 역시 상당하여 불가능했습니다.”

“······.”

그는 초절정의 고수이자 은신술의 대가이다. 최소 S랭크 수준의 은신술을 가진 그의 움직임을 파악해낼 정도라면 상대방은 S랭크 이상의 탐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S랭크 이상의 은신술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데······.

‘그런 사람이 왜 우리 길드에···?’

예카테리나는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하였다.

“괜찮습니다. 상대방이 누군지 특정짓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거예요.”

“···그렇습니까?”

“네. S랭크 이상의 은신 및 탐지계열의 능력을 가진 자는 별로 많지 않거든요. 초능력자로 한정짓는다면, 그 수는 더욱 줄어듭니다. 혹시 무림맹에 당신 이상의 은신술을 가진 고수가 있나요?”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초능력자들 위주로 조사해보면 되겠네요. 얼마 걸리지 않을 거예요.”

그에 암영미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상대방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다고 해서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부터 조사해볼 테니, 이만 돌아가서 쉬세요.”

“알겠습니다.”

암영미소를 돌려보낸 예카테리나는 즉시 초능력자 협회에 연락해 S랭크 이상의 은신 및 탐지계열 능력자의 목록을 뽑았다.

그러면서, 어쩐지 불안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째서 S랭크 정도나 되는 헌터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던 거지···?’

*

빙의자 마젤리온을 사냥하고서 한 달이 흘렀다.

주인공화의 메시지가 떴건 어쨌건, 우리는 푸른 마탑에서 꽤 호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환경은 호화로웠지만, 내막은 그렇지 못하기는 했다. 아라셀리가 ‘더블 써클’을 만들기 위해 꽤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만약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성과가 없었다면 굉장히 실망스러웠겠으나, 정말 놀랍게도 고작 한달만에 성과가 있었다.

“후우우······ 성공이예요.”

“···진짜로? 더블 써클을 벌써 만든 거야?”

“네. 으음, 조금 어색하네요. 마나가 역방향으로 회전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써클을 잘못 만들었다가는, ‘마나 사이드 이펙트’에 걸릴지도 모르겠어요.”

마나 사이드 이펙트란 마법을 사용하다가 걸리는 ‘매직 리바운드’와는 조금 다른 현상으로서, 무협 버전으로 일종의 ‘주화입마’와 비슷한 현상이라고 보면 되었다.

“결국, 문제 없이 만들었지만요!”

그러면서 아라셀리는 해맑게 웃었다. 실제로 그녀의 심장에는 9개의 굳어버린 써클에 더불어, 또다른 1개의 마나 써클이 회전하고 있었다.

비록 그 마나의 양은 원래의 마나에 비해 굉장히 미미했지만······ 차근차근 쌓아나가다보면, 원래의 힘을 되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새로운 써클링을 만들었어요. 이름하야 ‘아라셀리식 더블 써클링’! 가르쳐드릴까요?”

“아, 아니. 난 그런 거 못 배워.”

아라셀리는 원래부터 숨쉬듯 자연스럽게 마나를 다뤄왔기에 모르겠지만, 나는 마나를 다루는 재능이 아예 없다시피 해서 불가능하다. 일전에 하선영과 함께 마나 연공법을 개발하다가 뼈저리게 깨달았다.

“어쨌든, 성공해서 정말 다행이네.”

더블 써클까지 만들었으니 더 이상 이 세계에 있을 이유는 없어졌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푸른 마탑주 라냐셀에게 작별 인사를 간단히 전했다.

“어머~ 벌써 돌아가는 거야~?”

“네. 여기에서의 볼일이 끝났거든요.”

“흐음~ 그럼 미켈라스로 돌아가는 걸까나~? 배편을 알아봐줄까? 원래 타고 온 배는 침몰했다면서~?”

아. 그러고 보니 나 그런 컨셉이었지.

“아뇨. 괜찮습니다. 방법이 있어서요.”

“······그래~?”

서둘러 변명하자 그녀는 어째서인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이 아줌마, 내가 구라치고 있단 거 진작 눈치챈 건 아니겠지?

“어쨌든··· 뭐, 조심히 떠나도록 해. 네 여자친구도 함께 가는 거겠지?”

“그렇죠.”

“아쉽네에··· 그 아이, 재능이 상당히 뛰어난 것 같아서 내가 거둘까 했는데. 한 달만에 1써클을 만들다니, 굉장하잖아?”

“······.”

굉장한 수준이 아니라, 당신보다도 더 뛰어난 마법사였다고 말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 행선지로 향하시겠습니까?>

『밤하늘을 표류하는 어떤 이의 살해일지』

#SF #심리 #스릴러 #추리

“그래. 바로 가자.”

이번에는 아라셀리가 내 위치를 곧바로 느낄 수 있도록, 그리고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더불어, 내 체내에 쌓인 ‘개연성’의 대부분을 그녀의 차원이동에 사용하도록 하였다. 개연성을 지우는 것과 동시에 아라셀리의 나이가 1살 어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기에 일석이조였다.

[174레벨의 주인공 ‘하우컬러’의 세계, 표류하는 우주선 체르멜트 13호로 이동합니다.]

[10···9···8···]

[2···1···0]

[이동이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은 체르멜트 13호의 불청객이 되었습니다.]

눈을 뜨자.

쿠궁···!!

“윽?!”

“꺅!”

지상이, 덜컹 흔들렸다. 간신히 중심을 잡고서 벽을 짚었다.

[스킬 ‘주인공 사냥꾼’이 발동되어 환경에 적응하고 있으나, 공기가 심각하게 부족합니다!]

[공기를 보충하세요!]

“뭐?”

잽싸게 옆을 보니, 아라셀리가 창백한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나는 스킬 보정으로 적응할 수 있었더라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던 것.

“젠장, 시작부터 아주 난리도 아니군.”

잽싸게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벽이 온통 새카맣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다시 보니 벽이 아니었다.

그건 창문이었다. 그저, 창밖이 너무나도 새카매서 까만 벽이라고 느꼈을 뿐.

“······우주.”

그렇다. 이곳은 우주. 내가 밟고 있는 땅은, 표류하는 우주선이었다.

“아라셀리, 업혀.”

“···흐으.”

간신히 마나 써클을 돌려가며 버티는 아라셀리를 황급히 업은 채 이동하였다.

복도의 저편으로 뛰어가니, 자동문이 활성화되어 문이 저절로 개폐되었다. 내 지식수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계 장치들이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며 무언가 경보음을 내뱉었다.

-비상! 3격납고의 기압이 심각하게 낮습니다!

-비상! 3격납고의 기압이 심각하게 낮습니다!

[3격납고: 39%]

-3격납고에 계신 승객 여러분은 서둘러 빠져나와주시기 바랍니다.

허공에 홀로그램으로 지도가 떠올랐기에 나는 그것들을 보며 이리저리 꼬인 복도를 달리고 또 달렸다.

이 우주선은 무슨 거미나 미로를 본따서 만든 것인지 조그마한 복도가 여러개 이어 붙여진 형태라서 길을 찾기가 굉장히 힘들었으나, 간신히 ‘7섹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억, 후우······!”

“하아······.”

다행스럽게도 이곳에는 공기가 충분했기에, 자동문이 닫히자마자 산소를 폐부 깊숙히 집어넣었다.

산소가 이렇게 달달한 줄은 처음알았다. 역시 사람은 뭐든 없어봐야 깨닫는단 말이 사실이다.

“아라셀리. 괜찮아?”

그러나 아라셀리가 채 대답하기도 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철컥!

웬 갑옷···이 아니라 날렵한 우주복을 입은 병사 다섯이 우리에게 총구를 들이댄 것.

“누구냐!”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지?”

“남은 승객 중에 저런 놈들이 있던가?”

“처, 처음 봅니다!”

저들의 언어가 자동으로 번역되어 내게 들려왔다. 나는 저항의 의사가 없다는 의미로 만국, 아니 만계 공통 바디랭귀지로 양팔을 들었다.

“저희는 잠시 지나가던 길입니다.”

일단 나는 ‘불청객’이다. 승객은 아니기에, 승객 흉내는 내봐야 소용이 없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컨셉’을 제대로 정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독박을 쓴다.

“지나가던··· 길이라고?”

“그, 그렇다면 우주선도 있겠지?”

“너희 우주선! 우주선을 보여줘! 우리를 어서 탈출시켜달란 말이야!”

“역시 구조선이 올 줄 알았어! 으하하! 살았다, 살았다고!”

“······엥?”

뭐지 이 상황. 내가 원한 건 이런 전개가 아니었는데.

병사들은 각각 색깔이 다른 알록달록한 헬맷을 쓰고 있었는데, 그중 붉은색의 헬맷을 쓴 자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역시, 우리의 신호를 들은 모양이군. 자네의 우주선은 어디에 있지? 어서 안내해주게!”

“······.”

그러나 나는 그들의 기대에 부흥해줄 수 없었다.

“그런 거 없는데요······.”

“······응?”

“···뭐?”

애초에 우주선이 없기 때문이다.

< 우주탐정 유서담(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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