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법명가의 망나니(5) >
마젤리온은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회장을 둘러보았다. 우월감에 한껏 심취하여 둔재들의 경외 어린 시선을 받아도 모자란 시간에, 그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할 지에 대해 모색하고 있었다.
당장 회장의 중앙에 설치되고 있는 저 거대한 기둥이 발동되기만 하면, 그 즉시 자신의 블랙 써클이 들통난다.
이곳에 있는 모든 마법사들은 저것을 두고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고 있겠지만, 마젤리온에게 만큼은 심판의 단두대처럼 느껴졌다.
이 끔찍한 압박감 속에서,
[주인공 보정이 발동됩니다.]
마젤리온은 문득,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간 잊혀졌던 기억이었으나 때마침 이 상황에 잘맞는 기억이었다.
‘만약, 네 모든 흑마법을 포기해서라도 살고 싶다면······ 이 방법을 사용하도록 하여라!’
그 기억은 자신에게 흑마법을 처음 가르쳐주었던 스승의 한 마디였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마법사는 자신의 마법을 결코 잃고 싶어하지 않는다. 마법을 잃을바에 죽음을 택하는 자가 수두룩할 정도로.
하지만, 마법을 포기해서라도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면?
특히 흑마법사의 경우에는 마법을 포기해야만 하는 순간이 올 경우가 잦은데, 그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바로 ‘써클 브레이크’였다.
자신의 심장에 새겨진 모든 써클을 붕괴시키는 것!
이 마법을 한 번 사용하면 다시는 마나 써클을 쌓을 수 없지만, 다행스럽게도 마젤리온에게는 두 개의 마나 써클이 존재했다.
‘블랙 써클을 포기하는 건 아깝지만······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일반적인 백색, 혹은 푸른색의 마나보다도 더욱 밀도가 높은 흑색의 마나는 고작 3써클의 수준이었음에도 어지간한 4~5써클의 파워를 보유하고 있었다.
즉, 원래 가지고 있는 4써클과 연계한다면 그는 6써클의 마법사와 겨룬다고 해도 비등하게 싸울 수 있는 데다가 상성만 좋으면 7써클의 대마법사조차 이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미나에는 7써클의 대마법사가 무려 두 명이나 존재하며, 천재라 불리는 마법사들이 수백 명이나 참석해있다.
그들 모두를 이길 수는 없으니, 블랙 써클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젠장. 1년만 더 있었더라면, 내 이전의 경지를 되찾아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인간들을 죽이고 증거를 인멸할 터인데······.’
굉장히 뼈아픈 손실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계획을 떠올린 즉시 마젤리온은 자리를 떴다. 세미나 회장 바깥으로 나가는 건 안 되지만, 공원을 이용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여기라면 내 흑색 마나가 새어나가는 게 회장까지 퍼지지는 않겠지.’
적막한 정원에 자리를 잡은 마젤리온은 즉시 자신의 흑색 마나 써클을 힘껏 회전시켰다.
“크읏···!”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어마어마한 고통과 상실감이 수반되는 일이었지만 생존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포기할 수 있었다.
살아남기만 한다면, 이 블랙 써클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다.
세계 제일의 마법 명문가의 가주가 될 자격도 주어졌으며, 세상에서 가장 신비롭고 아름다운 마법사 소녀 아라셀리와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고, 다른 그 어떤 마법사와도 비교되지 않는 천재적인 재능으로 가장 높은 경지를 이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살아남기만 하면!’
이를 악물고서 정신을 집중하자, 심장을 두르고 있던 흑색의 마나 써클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입술을 비집고 심음이 새어나온다. 몸에서 스멀스멀 검은색의 연기 같은 것들이 흘러나와 허공을 맴돌다가 사라졌다.
쨍그랑!
하나의 써클이 부서지고, 두 번째 써클을 가속하여 무너뜨린다. 마치 평생 사용하던 팔과 다리를 모두 잃은 것처럼,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한 상실감과 끔찍한 고통이 정신을 집어삼켰지만 꾹 집어삼키고서 힘을 주었다.
쩌억-쨍그랑-!!
첫 번째보다도 더욱 큰 고통과 함께, 더 많은 양의 흑색 마나가 흘러나왔다가 사라졌다.
증거는 완벽하게 인멸된다. 저들은 공기중에 남아있는 흑색 마나를 감지할 줄도 모를 뿐더러, 혹여나 블랙 마나 센서의 작동이 시작된다 하더라도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마지막, 마지막만 끝내면······!’
이윽고.
마지막 세 번째 블랙 써클에 거미줄처럼 금이 가더니, 작은 충격파가 발생하였다.
파앙···!!
“허억!”
직후 마젤리온은 바닥에 손을 짚었다. 눈가의 실핏줄이 터져서 피눈물이 새어나왔지만, 해냈다는 안도감에 미소지을 수 있었다.
블랙 마나 써클이 완전히 소멸된 것! 이제 이 자리를 서둘러 벗어나기만 하면, 증거는 완벽하게 인멸······.
푸욱!
“컥!?”
그때, 빛의 궤적에 의해 마젤리온의 복부에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초고열의 레이저는 순식간에 상처에 화상을 입혀, 출혈조차도 저지하고 만다.
하지만 그 고통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기에 마젤리온은 복부를 움켜쥐고서 고개를 들었다.
‘마나 실드가 발동되지 않을 정도로 초고속의 공격이라니······!’
수준급의 마법사는 대비하지 못한 마법에 적중당하더라도, 심장의 써클이 알아서 마나 배리어를 발동하기 마련. 심지어 그는 실전 경험이 꽤 풍부했음에도, 이 공격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상대방은 최소한 7써클. 대체 누가······!’
그리 생각하며 빛의 궤적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본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여전히 하녀복을 입은 아라셀리가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던 것이다.
저 손가락 끝에서 빛나는 자그마한 마력의 집결체는, 방금 전 자신의 복부를 관통한 마법을 사용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아, 아라셀리. 네가 어째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던가!”
“···착각도 정도껏 하세요.”
“어···?”
그녀는 진심으로 한심스럽다는 눈빛을 지었다. 그건, 흡사 벌레를 바라보는 눈빛이었기에 마젤리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저는 이미 마음을 내어준 사람이 있습니다. 혼자 유사 연애하는 남자를 누가 좋아하겠어요?”
“뭐, 뭐라···?”
그는 무어라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보다도 먼저 아라셀리의 뒤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타대륙에서 온 이단심문관, 유서담이었다.
“유서담······.”
마젤리온은 이를 악물고서 그를 노려보았다. 이단심문관? 그런 건 중요치 않다. 그저 이 상황을 그가 꾸몄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양손에 마나를 응집시킬 뿐.
‘흠···.’
그는 윈체스터를 어깨에 걸친 채 허공에 뜨는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주인공의 능력이 일시적으로 하락합니다!]
[주인공 마젤리온의 레벨 변동 확인: 183(-93)]
확실히 그의 능력치는 약화되었고, 지금이라면 싸워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다.
하지만 소중한 아라셀리의 마나를 낭비하는 것도 싫고, 탄환도 아깝다.
그래서 그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어딜···!”
유서담이 도망치려는가 싶어 마젤리온이 마법을 날리려는 순간, 허공에 거대한 장벽이 생성되며 그 마법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저지되었다.
“······!!”
이 거대한 장벽, 언제가 한 번 본 적이 있다.
‘설···마······.’
이미 심장은 멎어버린 듯 싸늘했는데, 어째서 자꾸만 뛰는가. 그건, 공포 때문이 아닐까.
마젤리온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7써클의 위대한 대마법사이자··· 알레로든 가문의 가주, 알레로든 공작이 옷자락을 펄럭이며 마젤리온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안타깝구나, 아들아. 아니, 너를 아들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군.”
그는 마젤리온이 아닌 그 머리 위에 시선을 둔 채였다.
흑색의 마나 오라가, 여전히 선명하게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그건 너무나도 명백한 증거였다.
“아, 으···! 이, 이건··· 뭔가 잘못된, 그, 오해가······!”
“······한때나마 너를 인정했던 내 자신이 실망스러워지는군.”
“제, 젠장!!”
알레로든 공작이 손을 뻗자, 마젤리온은 있는 힘껏 마나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4개의 써클만이 회전할 뿐, 전생부터 현생까지 평생을 함께해온 흑색의 써클은 전혀 느껴지지 않은 채 공허했다.
‘차라리, 써클을 지우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여기서 알레로든 공작을 죽일 수는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미 후회는 늦은 채였고.
[183레벨의 주인공을 사냥하였습니다.]
[수명이 1830일 지급됩니다.]
[당신의 수명: 10128일 16시간 12분]
[레벨이 4단계 상승합니다.]
마젤리온은 그렇게 끝을 맞이하였다.
*
사건은 빠르게 일단락되었다.
알레로든 공작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명성에 아주 크나큰 흠집을 입었고, 나를 도와주던 푸른 마탑은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우리 귀염둥이~ 지내고 싶은 만큼 지내도록 해~!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전부 말하고! 이 누님이 도와줄라니까!”
마탑주 라냐셀은 알레로든 공작가가 주춤하는 사이 자신의 정책을 마구잡이로 밀고 나가며 그 힘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거기에는 내 덕이 상당히 컸으므로, 그녀는 나를 상당히 아껴주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푸른 마탑에서 VVIP대접을 받으며 아라셀리와 함께 새로운 스킬을 연구하고 있었다.
[스킬 ‘더블 써클(SSS)’을 획득합니다.]
주인공 마젤리온을 사냥하고서 얻은 스킬, 더블 써클.
사실 ‘더블 써클’이라는 개념 자체는 장르계에서 꽤 흔했다.
‘여타의 마법사들은 심장에 마나 써클을 만들지만, 주인공은 단전에 마나 써클을 하나 더 만든다.’라는 흔한 클리셰부터 시작해서 자연의 마나 그 자체를 이용하는 주인공도 있었고 뱃속에 드래곤 등의 영물이 존재하여 마나를 두 배로 뻥튀기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더블 써클 역시도 그와 마찬가지로, ‘주인공’들 고유의 클리셰적 스킬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해당 스킬을 획득할 경우 ‘개연성’이 대량으로 쌓이게 됩니다.]
이 스킬은 본디 내가 획득해서는 안 되는 종류의 것이다. 의뢰인조차 ‘주인공화’를 두려워하여 나를 만류했을 정도이니까.
하지만 나는 개연성을 억지로 소모할 생각까지 하면서 이 스킬을 택했다.
내가 강해지기 위해서? 아니다. 분명 내게도 큰 도움이 되겠지만, 나는 개연성이라는 위험부담을 안을 필요는 전혀 없다.
“너는 지금부터 마나 써클을 하나 더 만들 거야.”
“그···렇군요······.”
오로지, 아라셀리를 위해서였다.
나 하나 찾아보겠답시고 대뜸 차원계를 방랑하기 시작한 어린 소녀, 아라셀리.
그녀는 역사에 길이 남을 9써클의 위대한 마나를 심장에 새기는 데에 성공했으나, 겁없이 차원을 건너려고 한 대가로 모든 마나가 굳어버렸다.
그 굳어버린 마나는 내가 ‘아라셀리식 마나 써클링’을 대신 해줌으로써 어느 정도 완화가 가능하다지만······ 거기에도 한계는 있다.
아라셀리는 항상 마나의 부족에 시달리며 살아왔을 텐데, 그 상실감을 내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더블 써클’은 내가 아라셀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이었다.
그녀는 여태 그 어떤 대가없이 나를 도와주었고, 지금도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위해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기에, 개연성이라는 위험부담을 감수한 것이다.
아직은 아니다. 아슬아슬하게, 다음 세계로 넘어가서 개연성을 소모한다면 주인공화를 피할 수는 있을 것이다.
“곧바로 다음 세계로 넘어가도 좋겠지만, 또 헤어지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당분간은 함께 마탑에서 지내면서, 네 두 번째 마나 써클을 만드는 데에 집중하자.”
아마도 이것은, 첫 번째 마나 써클을 만들었을 때보다도 더욱 힘들고 고된 길일 것이다. 나는 그나마 스킬을 통해 쉽사리 첫 번째 써클이 자동으로 생성되었다지만······ 스킬 시스템이 없는 아라셀리는 순수한 ‘재능’만으로 해내야 했으니까.
“흐··· 그렇군요.”
앞으로 자신이 얼마나 고통받을지 알기는 아는 건지, 아라셀리는 그저 헤픈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더블 써클을 활성화하여 그 개념 자체를 그녀에게 확실하게 전달하였다.
그 순간, 뜨는 메시지.
[주인공화가 진행되&궓 샳처맞! 횅독^뜲]
“···? 교수님, 갑자기 왜 멈추시나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불길한 메시지가 자꾸만 신경쓰이게 만들었지만 아직은 괜찮을 것이다.
아직은.
내 직감이, 그리 말하고 있다.
< 마법명가의 망나니(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