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법명가의 망나니(4) >
마법명가의 망나니(4)
내 예상대로, 아라셀리는 ‘대물 마법사’의 소식을 듣고서 세미나에 찾아왔다. 그녀는 주인공 마젤리온의 가문인 알레로든 공작가에서 하녀로서 일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주인공에 대해 대략적으로 파악하는 게 가능했다.
“흑마법을 익히고 있단 말이지.”
“네. 4써클의 마나에 더불어, 3써클의 블랙 써클이 느껴졌어요.”
사실 그가 전생에 흑마법사였다는 사실은 [줄거리 열람]을 통해 알고는 있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밑밥을 미리 던져두고 있던 참이고.
하지만 이번 생에도 흑마법을 익혔는지, 만약 익혔다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였기에 아라셀리가 전달해주는 몇몇 정보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단 말이지······.’
그렇게 아라셀리와 아주 잠깐 짬을 내서 대화를 나누려는데, 옆쪽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무려 마력을 담은 시선이었기에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리니, 마젤리온이 꽤 흉흉한 표정으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설마 뒷담화를 들었을 리는 없었을 테고······. 왜 나를 저런 표정으로 보는 거지?
지금까지 나와 주인공의 접점은 전혀 없었기에 원한을 살만한 이유는 없을 텐데 말이다.
평소같았다면 별로 좋은 징조는 아니었을지도 모르나, 주인공 사냥을 위한 재료를 거의 다 모은 참이었기에 별로 상관은 없었다.
“···당신이 그 대물 마법사, 유서담입니까?”
“예. 알레로든 공작가의 막내 도련님이시군요.”
“흠······.”
그는 나를 잠시 째려보더니 푸른 마탑주 라냐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푸른 마탑과 알레로든 공작가는 예전부터 견원지간으로 유명했다. 알레로든 공작과 마탑주 라냐셀 7써클 마법사로서, 서로가 마법계에 미치는 영향을 조금이라도 넓히기 위해 숱하게 치고 받고 싸웠기 때문이다.
“마탑주 라냐셀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알레로든 가문의 자제들은 어릴 적부터 푸른 마탑의 견제에 의해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아왔을 터. 당연히 마탑주 라냐셀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으나, 마젤리온은 딱히 원한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푸근한 표정으로 그녀를 맞이한다.
주변에서는 그를 보며 포커페이스 유지를 잘한다고 감탄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마젤리온은 빙의자였기에, 정말로 아무런 원한이 없는 것이다.
‘빙의자는 참 여러모로 이점이 많단 말이지.’
예전의 이미지가 쓰레기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조금만 정상인 행세를 하면 그게 뭐 대단한 일이랍시고 난리법석이다.
이맘때쯤, 분위기를 눈치 챈 마젤리온의 표정이 서서히 밝아졌다. 그래, 어차피 여기는 모든 마법사들이 모이는 세미나였고 알레로든 가문은 모든 마법사들의 정점에 서있는 가문이 아니던가?
뭘 하든 자신의 무대가 되는 공간에서 괜히 기분 상할 이유가 없던 것이다.
그는 대뜸 씨익 웃떠니 좌우간 좌중을 향해 손을 펼치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오늘 아주 특별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그 이름도 특이한 ‘유서담’ 마법사! 바다 건너, 타대륙에서 왔다는 분이지요! 모두 큰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 친구가 갑자기 왜 저러지?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갑자기 나를 소개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이목이 집중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마젤리온의 눈빛이 슬쩍 아라셀리를 향하는데······.
‘···뭐야. 짝사랑? 질투라도 하는 건가?’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아라셀리를 쳐다보았다. 그녀 또한 어색한 눈으로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눈치를 살필 필요는 전혀 없는데···. 과연, 아라셀리도 굉장히 능력있는 여자이기는 하다. 그냥 공자님도 아니고 무려 빙의자 주인공을 꼬셨다는 건가.
그런데 하필 내가 아라셀리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엿 좀 먹여볼라고 이딴 짓을 벌이는 것이고.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내게 득이 되었다. 마침 나는 이런 주목을 받을 필요가 있었으니까.
“예. 반갑습니다. 바다 건너 옆대륙 ‘미켈라스’에서 넘어온 유서담이라고 합니다.”
“오오··· 역시!”
“옆대륙이라니 놀라운데···.”
옆대륙 미켈라스와의 연락은 사실상 백 년 전에 완전히 끊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백년만에 옆대륙의 마법사가 등장하다니?
마법사로서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일 터. 백년 사이에 이쪽 대륙의 마법이 고도로 발달한 것처럼, 옆대륙 미켈라스 또한 발달했을 테니까.
즉, 이들 중 그 누구도 옆대륙 미켈라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과학용품과 예카테리나가 개발한 마도기계를 옆대륙 미켈라스의 기술이라고 속여먹을 수 있었다.
마법이 인챈트 된 마탄이나 에테르 코팅 기술을 접목시킨 슈트, 그리고 ‘대물 지팡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윈체스터까지!
나는 이 독특한 기술을 앞세워 푸른 마탑주 라냐셀을 가장 먼저 속여먹었다. 제아무리 7써클의 마법사라지만, 뭐 어쩔 건가. 내가 이계의 기술 가지고 와서 옆대륙 기술이라고 우기는데. 속아 넘어가야지.
“내가 보증하도록 하지. 일주일 간 그의 수많은 마도구를 지켜본 결과, 우리 대륙의 것과는 전혀 다른 체계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미켈라스의 마법사가 맞다.”
그런 이유로, 마탑주 라냐셀마저도 긍정하자 세미나에 참석한 모든 마법사들은 내가 타대륙 미켈라스의 마법사라는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서부터가 중요했다.
나는 푸른 마탑주 라냐셀에게 ‘어떤 마법사를 쫓고 있다’라는 떡밥을 흘린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거짓 떡밥이었다.
그냥 이 대륙에 내가 미켈라스의 마법사로서 존재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한, 그냥 대충 내뱉은 핑계였단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점을 이 자리에서 제대로 써먹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푸른 마탑이 알레로든 공작가와 척을 진 웬수지간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제가 이 대륙으로 찾아온 이유는 어떤 마법사를 찾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말한 뒤, 목소리를 내리깔고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 대륙은 놀랍게도 단 한 명도 없는 모양이지만, 우리 미켈라스에서는 여전히 사회를 좀먹는 암덩어리들. 바로 ‘흑마법사’를 찾아내 처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뭐, 뭐라고?”
“흑마법사라니···!”
삽시간에 좌중의 분위기가 변하였다.
그럴 수밖에.
백년 전에 완전히 사라지고 없어진 흑마법사의 주제를 내가 꺼내버렸으니 말이다.
“······마법사 유서담. 지금 당신은 당신의 말을 책임질 수 있습니까?”
어떤 현명한 노마법사가 진중하게 내게 물었다. 그 중압감은 나 또한 긴장되게 만들었으나 저들조차 속아 넘겨야만 했다.
“예. 저는 이 대륙으로 건너오기 위해 동료 ‘이단심문관’을 서른여섯 명이나 희생해야만 했습니다. 그 정도로 극악무도한 흑마법을 보유한 자이기 때문이지요.”
이번에는 또다른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자가······ 어떤 마법을 지니고 있는지 설명하겠나?”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구부러진 콧수염이 인상적인 중년의 사내.
알레로든 공작이 서있었다.
‘뭐야. 돌아간 거 아니었나?’
분명 아까 알레로든 공작이 퇴장한다는 말을 들었던 거 같은데, 아무래도 주인공 마젤리온 알레로든이 자신이 없는 사이에 세미나에서 무슨 일을 벌이는지 시험하기 위한 블러핑이었던 모양.
하지만 ‘흑마법사’라는 민감한 화두가 등장한 이상 더 이상 가문의 문제로 유치한 장난 따위를 할 생각은 없었는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래. 뭐, 차라리 잘됐다. 알레로든 공작마저 있다면 모든 무대가 완성되었으니까.
슬쩍 마탑주 라냐셀을 쳐다보니, 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흑마법사가 대체 누구냐’고 묻는 듯한 눈동자. 나는 곧바로 시선을 마젤리온 알레로든에게 돌림으로써, 그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그자가 가진 흑마법은, ‘빙의’. 다른 이의 몸에 기생하여 그 삶을 송두리째 빼앗을 수 있는 마법입니다. 흑마법에 대해 무지한 자들은 결코 막을 수도, 대비할 수도 없지요.”
“······!”
“비, 빙의라고?”
“그런 마법은 들어본 적도 없어!”
“저희 미켈라스에서도 최근에 발견된 마법이니, 그럴 수밖에요.”
내가 주둥이를 나불거릴수록, 마젤리온의 안색이 점점 더 창백해져만 갔다.
당연하다. 그가 바로 흑마법사이자, 빙의자였으니까.
하지만 빙의는 흑마법이 아니다. 그저 주인공 보정일 뿐. 그는 그저 두 가지의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을 뿐, 정말 그런 극악무도한 마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정치질이 중요한 것이다.
“푸른 마탑의 마탑주로서 말하겠다. 나는 타대륙에서 건너온 마법사 유서담의 말을 존중한다. 따라서 그가 흑마법사를 잡도록 모든 지원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흑마법이 또다시 창궐하기 시작했다가는, 백년 전의 ‘흑마도 대전쟁’이 또다시 발발할 지도 모르니!”
역사 속에서 ‘흑마법’은 과연 잔혹하기 그지없는 마법으로 기록되어 있다. 어느 세계든 같지만, 일단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게 기본 전제였으니.
물론 빙의한 뒤의 마젤리온은 ‘주인공’이었고, 산제물을 바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과거에 저질렀던 만행을 뉘우치고 후회하며 속죄하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그런 컨셉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런 건 나랑은 전혀 관계가 없다. 그저 지금 마젤리온이 블랙 써클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할 뿐.
“그래! 마탑주의 말씀이 옳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흑마법은 역사적으로 끔찍하고 미개하기 그지없는 마법이었다.”
“놈을 색출해낼 수만 있다면······ 미켈라스의 마법사든 누구든, 손을 빌려야만 하겠지!”
“우리 마탑에서도 돕겠소! 흑마법사를 잡을 수 있게 해주시오!”
세미나에 참여한 모든 엘리트 마법사들이 내 말에 동조하기 시작하였다.
“그 흑마법사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대체 무엇이오!”
“안타깝게도 이쪽 대륙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흑마법사를 색출해내는 기계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제 힘으로는 그를 찾아낼 수 없습니다.”
그에 몇몇 마법사가 실망하는 눈치였으나, 눈치 빠른 알레로든 공작은 목소리를 내리깔고서 되물었다.
“···그 말뜻은, 우리의 힘을 빌리면 찾을 수 있다는 말이 되겠군?”
“그렇습니다. 이쪽의 마법사들 또한 백년 전에는 스스로 흑마법사를 색출해내지 않았습니까? 그때의 마도구 중에는 분명히 ‘블랙 마나’를 판별해내는 장치가 있을 겁니다.”
“···아! 그래. 우리 마탑에 전쟁 보관소가 있습니다.”
“박물관에도 있소. 기능하는진 모르겠지만, 수리하면 금방 쓸 수 있겠지.”
“우리는 아직 온전히 보존하고 있습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나도 아라셀리의 도움을 받아 그깟 흑마나 색출기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저들의 손에 흑마법사의 색출 과정을 전부 맡길 생각이었다.
왜냐, 타지인이 무려 알레로든 공작가의 삼남을 건드릴 수는 없을 테니까.
내 기계로 내가 진실을 밝혀내봐야, 결국 공작가의 세력이 반발을 할 것이다. 저자의 말은 사실 거짓이다. 음모를 꾸민 것이다.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한 변명거리를 준비하겠지만······.
저들의 손으로 저들이 직접 그 흑마법사를 밝혀내게 한다면?
마젤리온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마침, 우리 마탑에 ‘흑마나 색출 센서’가 있는데 말이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 가져와도 되겠는가? 아무래도 흑마법사라면······ 가장 뛰어난 마법사들이 모인 이 자리에 숨어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푸른 마탑주 라냐셀이 평소의 그 가벼운 말투는 어디다 버렸는지, 진지하게 그리 말하자 마법사들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빙의라니. 그런 끔찍한 흑마법을 익힌 자가 주변에 있는데, 발 뻗고 잠을 청할 수도 없소이다.”
“푸른 마탑주께서 마침 색출기가 있어서 다행이오.”
“오늘 당장 이 자리에 모인 마법사들을 대상으로 어서 색출해보도록 하지요!”
이내, 기다렸다는 듯 마탑주 라냐셀은 색출기를 가져왔고, 회장의 정중앙에 설치되는 마도기계를 보며 마젤리온이 뒷걸음질을 쳤다.
저것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 정체가 까발려지게 된다.
빙의라는 마법은 익힌 적도 없는데도. 흑마법을 제대로 써본 적도 없는데도. 그건, 그저 전생에 모아둔 마나였을 뿐인데도.
변명의 여지조차 없이, 흑마법사가 된다.
그는 창백해진 얼굴로 알레로든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공작은 그의 기대를 배신하고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지금부터, 그 누구도 세미나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그 순간.
마젤리온은 마지막을 직감했다.
창대한 미래를 꿈꾸고서 시작한 두 번째 인생이라고 보기에는, 덧없이도 초라한 마지막이었다.
< 마법명가의 망나니(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