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법명가의 망나니(3) >
나는 마법사다.
“대물 마법사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그냥 마법사도 아니고 대물 마법사다.
어감이 굉장히 이상한 것 같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기는 했다.
나는 여타의 마법사들과는 달리 대물(大物) 지팡이(윈체스터)를 사용했으니까.
그건 지팡이가 아니라 총이라고? 아니다. 지팡이 맞다. 아무튼 총구에서 불꽃이 튀면 유사 마법이 발동되며 적을 파괴하니까.
“그 지팡이 한 번만 보여주시면 안 됩니까?”
“어허, 이 사람이. 대물 마법사님께 예의 없게 무슨 짓인가?”
“앗, 죄송합니다!”
이곳은 푸른 마탑으로서, 제국에서 가장 큰 마탑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런 명문 마법사들이 모인 푸른 마탑에서도 내 지팡이는 퍽 신기한 듯싶었다.
그럴만하긴 했다. 비비안타 제국은 이곳보다 훨씬 더 발달한 세계였음에도 개량되기 전의 메가 슈터를 지팡이로 착각했는데, 아예 마법을 인챈트할 수 있게 된 윈체스터를 보고 착각하지 않을 수 있을 린 없다.
그런 이유로, 나는 푸른 마탑에 마법사 등록을 한 뒤 고작 일주일 조금 넘게 흘렀음에도 꽤 유명세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부지런히 윈체스터로 파괴적인 마법을 선보인 탓이다.
-저는 현재 알레로든 가문의 하녀로 일하고 있어요.
이 세계에 도착한 후 이틀째가 되던 날 새벽, 아라셀리에게서 도착한 메시지. 어째서 나는 멀리 떨어진 푸른 마탑에 떨어졌고, 아라셀리만 알레로든 공작가에 떨어졌는진 알 수 없지만······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되는 게 주인공을 사냥할 ‘운명론적 확률’적으로 가장 높기 때문이겠지.
오늘도 윈체스터에 새로운 마법을 인챈트하여(화분의 도움을 받는다) 마법적 가치를 시험하고 있는데, 웬 늙은 마법사 한 명이 다섯의 젊은 마법사를 이끌고서 내게 다가왔다.
“유서담 마법사. 이번 세미나에 참여한다고 들었네만.”
“예.”
“건방진 거 아닌가?”
“예?”
“마탑에 들어온 지 고작 일주일 조금 넘었으면서 세미나에 참여하려고 하다니······.”
“자격이 있어서 참여하는 겁니다만.”
“허, 다른 마법사는 자격이 없어서 참여 안 하는 줄 아나? 선배 마법사가 먼저 참여할 수 있도록 양보하는 거지! 보아하니 특별한 지팡이 믿고 너무 설치는 모양인데, 그딴 식으로 생활하다가는 금방 연구실에서 쫓겨날 듯싶군. 지금이라도 세미나 참여를 취소하고 후년을 기약하게.”
슬쩍 노인의 뒤에 서있는 젊은 마법사들을 본다. 다섯의 마법사 중 한 명의 마법사가 유독 나를 노려본다. 그제야 이해가 갔다. 저놈이 원래 세미나 참여하려던 놈이었구나. 근데 내가 참여하겠다고 해서 자리를 빼앗긴 것이고.
늙은 마법사는 세상물정 모르던 내가 슬슬 말귀를 알아먹었겠거니 싶어서 대답을 기다렸지만, 사실 난 연구실이고 뭐고 쫓겨나도 상관없었기에 칼같이 답했다.
“싫은데요.”
“···뭐라?”
“저 뒤에 있는 아저씨보고 말하세요. 꼬우면 저보다 잘난 마법사가 되라고. 능력이 없으면 세미나에서 빠져야죠. 선배 마법사면 뭐합니까? 후배 마법사보다 못나셨는데.”
“이, 이놈이 지금 뚫린 입이라고···! 감히 선배 마법사를 모독해?”
마법사들 사이에서의 위계질서는 상당히 중요시 여겨졌는데, 어지간한 군대 이상급이었다. 그러나, 이게 마땅히 필요한 위계질서인가? 그럴 리가. 오히려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저 위계질서는 그냥 꼰대들의 문화다.
하지만 이 늙은 마법사는 위계질서에 상당히 민감한 지, 이를 가만히 넘어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내, 당장 부마탑주께 말씀드릴 것이다!”
“그러시던가요.”
그러면서 늙은 마법사가 부탑주에게 일러 바치기 위해 쿵쾅거리며 계단을 올라가자, 나는 탑주를 만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마탑 내에서도 VIP만 탈 수 있는 초호화 엘리베이터다.
"오, 우리 서담이 왔구나~!"
마탑주의 사무실을 열고 들어가니, 붉은색의 웨이브진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30대 초중반의 여인이 나를 반겨주었다. 저렇게 보여도 무려 7써클, 즉 SS랭크의 경지를 달성한 위대한 마법사 '라냐셀'이었다.
참고로 원래의 나이는 70대다.
"···이상한 생각 한 건 아니겠지?"
움찔, 그러고 보니 마탑주의 특기는 정신계열이던가.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정신 집중]을 비롯하여 정신방벽에 한해서는 강력한 보호장을 구성하고 있어서 라냐셀이 내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도 내 경지가 살짝 낮은 탓에, 나이같은 중요한 단어를 생각하면 언뜻 꿰뚫리는 듯싶지만.
"아무 생각도 안했습니다."
"그래? 넌 이상하게도 마음이 잘 안 읽힌단 말이지~ 그래도 뭐, 상관없어!"
"다행입니다."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는 거니~?"
"아뇨."
"후후, 고민 있으면 언제든 이 누님한테 말하렴!"
고민이 있긴 있다. 아까의 그 늙은 마법사, 지금쯤 부탑주에게 내 욕을 왕창 쏟아내고 있겠지. 하지만 뭐, 나쁘지 않다. 그 마법사는 그저 마탑의 유구한 꼰대문화를 열심히 지켜내고 싶을 뿐이니까. 내가 굳이 나서서 그 문화를 짓밟기는 귀찮다.
"그나저나, 네가 찾고 있다던 그 마법사는 찾았니?"
"······."
이쯤에서 내 '컨셉'을 대충 설명하자면, 나는 타대륙에서 넘어온 마법사이자 이단 마법사를 사냥하는 이단심문관이다.
하지만 이 '타대륙'이라는 컨셉이 상당히 마탑주의 흥미를 이끌게 했다. 지구와는 달리, 이 세계의 바다는 온갖 마수와 재해로 가득하여 대륙간의 교류가 거의 불가능했고, 옆대륙과의 연락은 100년 전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끊어졌다고 하니까.
그러한 와중 내가 옆대륙에서 넘어왔다고 하니 흥미가 솟은 것이다. 솔직히,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대꾸한 건데 이런 뒷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줄은 몰랐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내가 사용하는 지팡이(소총)와 화분의 독특한 마법 체계는 이쪽 대륙에는 전혀 없는 마법이었고, 타대륙에서 왔다는 말에 신빙성을 실어주었다.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마법사는 틀림없이 세상에 해악이 되는 존재! 반드시 찾아내야만 합니다."
나는 사연이 가득 담긴 눈동자를 연기하며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 ···그놈을 찾아내면, 조용히 처리하고 떠나겠습니다."
존나 카리스마있어.
*
처음의 세미나는 아주 적은 인원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제1회 세미나는 마법 대학의 마법사 스무 명 남짓이 모여서 마법의 진리에 대해 토론했다고 하는데, 당시 모인 마법사들 중 절반 이상이 마법계에 한 획을 그을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였던 게 문제였다.
그들의 세미나는 세계적으로 그 명성이 널리 퍼지게 되었고 제2회, 제3회 세미나부터는 인원이 3배, 5배로 불어나게 되었으며 제30회가 된 지금은 참여 마법사의 수만 해도 거진 300명이나 되었다.
이렇게 많이 모여서 대체 무슨 토론을 하며 대체 무슨 연구를 하겠나 싶겠지만 실제로 이 장소에 모여서 마땅히 무언가를 연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1년간의 연구 성과를 자랑하는 장소에 가까웠다.
"이번에 테레스 남작가의 장남이 3써클을 달성했더라지?"
"허, 젊은 나이에 성취가 대단하군. 우리 아들놈이 그 반만 따라갔더라도···."
"어허 이 사람이. 자네 아들은 써클은 낮지만, 미도분계학의 새로운 이론을 10대의 나이에 제시하고서 벌써 대학에 들어가지 않았던가?"
마법명가들이 모여서 서로의 성취를 칭찬하고, 또 칭찬을 받음으로써 자존감을 높이는 자리. 그것이 바로 '세미나'의 정체였다.
그러한 와중에도, 유독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들이 있었다.
첫째는 바로 알레로든 공작가의 삼남, 마젤리온 알레로든이었다.
그는 고작 스물의 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장층 및 노년 마법사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도 전혀 꿀리지 않는 당당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건방진 태도를 지적하지 않았다.
마젤리온은 세계 제일의 마법명문가 알레로든이자, 스물에 4써클을 달성한 천재 마법사였으니까. 심지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망나니를 연기하다가 스물이 되는 순간 사람이 확 뒤바뀌었다고 하지 않던가?
'속에 능구렁이가 들어있을게야.'
'무서운 놈.'
'알레로든가의 가주께서도 장차 가문을 누구에게 물려줄지 고민이 많으시겠어.'
30대에 6서클을 달성한 첫째도 분명 대단하지만, 그는 정치에는 영 재능이 없었다. 사람이 실없고 어리버리한 반면에, 막내는 재능도 뛰어나면서 심지어 정계를 벌써부터 발칵 뒤집어 놓았으니 사람들은 과연 누구에게 줄을 서야하나 고민이 많았다.
벌써부터 대마법사의 기질이 보이는 맏형이냐, 아직은 창창한 새싹이지만 팔방미인으로 보이는 막내 아들이냐!
마젤리온 알레로든은 그런 그들의 시선을 느끼며 우월감에 심취하였다. 그러고서는 슬쩍 아라셀리를 바라보았다.
세미나는 세미나지만, 이곳은 마치 연회장처럼 음식과 술이 배치되어 있었다. 어차피 칠판과 펜이 전혀 필요없는 장소였기에 10년 전부터 이런 형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는 아라셀리에게 가장 값비싼 메뉴와 술을 대접하였다. 평민 하녀로서는 감히 맛볼 수조차 없는 진귀한 음식.
'아마 엄청 고마워하고 있겠지.'
예상대로 아라셀리는 이 귀한 음식을 함부로 다루기 싫었는지,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찔끔찔끔 썰어서 입에 조금씩 집어넣었다.
"아라셀리. 많이 먹어도 돼. 내가 말만 하면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으니가."
"네에···."
"어때. 맛있지? '블랑카우'라고 하면 알지 모르겠네. 3년에 단 한 마리밖에 안 나오는 귀한 소거든. 그 한 마리에서도 단 500g밖에 안 나오는 부위인데, 이걸 한 번 맛보면 천국조차 안 부럽다더라니까?"
마젤리온은 그리 설명한 뒤 뿌듯함을 느꼈다. 이 정도면 평민이 넘어오지 않을래야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조차 희귀해서 쉽게 손대지 못하는 음식을 무려 평민에게 맛보여줬으니 말이다.
"그렇군요···."
그러나 아라셀리는 한숨을 내쉬며 혀에 들어오는 소고기의 맛을 느꼈다.
그래, 확실히 맛있기는 맛있다. 하지만 그녀는 9써클을 달성한 세상에 다시없을 위대한 대마법사로써 이 정도의 소고기쯤은 매끼니마다 먹을 수 있었다.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아서 검소하게 먹었을 뿐.
"아,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줄래? 나는 아버지 좀 만나고 와야 해서."
"네에."
아라셀리의 답을 들은 뒤 마젤리온은 재빠르게 일어나, 아버지가 계신 최상층의 발코니로 향했다.
대륙에 10명도 채 안 되는 7써클의 대마법사, 알레로든 공작. 그는 방금 첫째 형과 만난 것인지 표정이 살짝 느슨해져 있었다.
'재수없는 늙은이.'
마젤리온은 저 아버지라는 작자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좋은 마법만을 배우며 살아왔으니 위대한 대마법사라 불리게 되었겠지. 만약 자신도 처음부터 그런 가문에서 태어났다면 아버지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 그 가문을, 내가 반드시 손에 쥐겠어.'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문을 물려받아야만 했다.
"요즘 성취가 많이 좋아졌더군."
"예. 모두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이지요."
"내가 네게 가르친 건 아무것도 없다. 모두 스스로 네가 깨우치고 배워나갔을 뿐. 하나, 나는 그런 네가 자랑스럽다."
"······!"
마젤리온은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저 아버지라는 작자는 '자랑스럽다'라는 단어를 쉽사리 입에 담지 않는다. 그 맏형에게조차, 결코 하지 않는단 말이다.
'설마, 저 말뜻은···!'
"앞으로고 기대하고 있으마."
알레로든 공작은 마젤리온의 어깨를 툭툭 친 뒤, 그렇게 홀연히 사라졌다. 세미나 도중에 퇴장하는 건 예의없는 짓이었으나 알레로든 공작에게 만큼은 예외일 것이다.
마젤리온은 주먹을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당장이라도 환호성을 내지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아버지의 마음이 서서히 자신에게 기울고 있다는 그 명백한 증거를 봐버렸는데, 이 정도로 참는 것도 용하다.
'그래, 조금만 더 하면······!'
그는 기쁨을 꾹 눌러 감춘 채 다시 세미나로 돌아왔다. 어쩐지 회장이 소란스러웠다.
"푸른 마탑주님과 그 마법사가 함께 왔다지?"
"신기하군. 타대륙에서 왔다던데, 아주 독특한 마법을 구사한단 말이지?"
"별칭이 '대물 마법사'라고 했던가···?"
대물 마법사? 그 마법사라면 마젤리온도 기억한다. 아라셀리가 유일하게 호기심을 드러내었던 마법사였으니까. 그래, 그 마법사가 왔다고 전해주면 아라셀리도 기뻐할 테지. 마젤리온은 그런 생각으로 아라셀리를 찾기 위해 회장을 둘러보았다.
'···응?'
그런데, 아라셀리는 이미 그 대물 마법사와 만난 뒤였다.
'어떻게?'
그녀는 일개 하녀의 신분으로 입장했기에 감히 마법사와 대화를 나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의문조차도 금방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유서담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마법사와 대화를 나누는, 아라셀리의 표정이.
너무나도 행복하고 밝아보였기 때문이었다.
'······뭐, 야?'
3년에 단 한 마리만이 나온다는 희귀한 스테이크를 자신과 먹을 때도, 저런 표정은 짓지 않았다. 유서담은 아라셀리에게 고작 귤 하나를 까서 입에 집어넣어줬을 뿐이다. 현재 계절은 겨울. 흔하다 못해 바닥에 굴러다니는 게 귤이다.
그런, 흔한 과일 따위를 먹고 있을 뿐인데.
어떻게 저런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뭔가, 뭔가······.'
불현듯 불쾌한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으나, 꾹 눌러 담았다.
그래봐야 결국 유서담은 길거리 방랑 마법사일 뿐이고 자신은 차기 알레로든 공작가의 가주가 될 사내였으니까. 저 거렁뱅이와 자신은 비교하는 것조차도 실례다.
'···나중에 시간내서, 처리해둬야겠어.'
마젤리온은 이를 갈며 거칠게 와인을 들이켰다. 59년산의 진귀한 와인이었지만, 그저 쓰기만 했다.
< 마법명가의 망나니(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