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법명가의 망나니(2) >
마법명가의 망나니(2)
사건의 발달은 이러했다.
바르칸 대륙이라 불리는 이 세계에 도착한 직후,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어쩌다 보니 알레로든 공작가의 하녀가 되었다.
나쁘지 않은 일이다. 의식주가 제공되는 일거리였으니까.
그리고 하녀 생활 첫날밤.
아라셀리는 경비가 약해진 새벽을 틈타 하늘로 날아올랐다. 공기를 밟는다거나, 중력을 역전시키는 허접한 마법 따위는 쓰지 않는다. 발목에 자그마한 날개를 달아서, 말 그대로 몸을 부유하게 만든 것!
이내 지붕을 밟은 뒤 아라셀리는 양손을 모아 자연의 마력을 있는 힘껏 끌어모았다.
마나가 부족했기에 유서담의 정확한 위치를 탐색할 수 없었고, 하는 수 없이 그녀는 불특정 공간을 향해 ‘메시지’를 발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유서담이 이쪽 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쓸데없이 어마어마한 마력을 소모하는 이 마법은 성공적으로 먹힐 것이다.
파사아앗···!
새하얀 빛무리가 보름달을 등지고서 저 하늘 너머로 흩어지는 것을 확인한 아라셀리는 다시 조용히 지붕 아래로 내려왔다.
그러다, 재수없게도.
알레로든 공작가의 막내 마젤리온에게 들키고 말았다.
방심했던 탓이 더 클 것이다. 그녀의 마력은 조용히 전개되기에 어지간한 마법사는 느낄 수도 없을 뿐더러, 그나마 감각이 좋은 7써클 마법사인 가주는 현재 제국의 수도로 가있는 상태였기에 들킬 염려도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마젤리온이 그날따라 새벽에 산책을 하고있을 건 또 뭐란 말인가?
“······아름다워.”
지붕에서 사뿐히 안착한 아라셀리를 향해 마젤리온은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
“너와, 네 마법 모두. 너무 아름다워. ···이름을 들을 수 있겠나?”
“아라셀리···입니다.”
그녀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여태껏 이계를 여행하며 자신이 마법사라는 사실을 들킨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계로 이동하자마자 들켜버리다니.
심지어 누가 봐도 수상하다. 마법사가 대체 왜 하녀 생활을 하고있단 말인가?
그런데.
마젤리온은 그것을 다르기 이해하였다.
“성이··· 없나?”
“네? 아··· 그, 그렇습니다.”
“그렇군. 이제 알겠어. 네가 우리 가문에 들어온 이유를. ···가엾게도, 평민은 마법을 배울 수 없는 탓에 멀리서라도 몰래 배우고 싶었던 것이로구나.”
“······?”
뭔 소리래. 하지만 썩 나쁜 오해는 아니었기에 아라셀리는 최대한 장단을 맞춰주었다.
“죄송합니다. 감히 공작가의 마법을 넘본 죄, 달게 받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평민이라고 마법을 배우지 못한다는 건··· 꽤 슬픈 일이지.”
얼씨구. 빙의 전에는 평민이었던 모양이다.
“네가 마법사라는 사실은 눈감아주도록 하지. 대신, 앞으로 내 시중을 들도록.”
“······예.”
그렇게 마젤리온은 달빛을 등진 채 온갖 폼을 잡으며 사라졌고.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 다시 현재.
“후우······.”
“어머, 아라셀리. 무슨 고민 있니?”
“네? 아뇨. 그냥 피곤해서요.”
“일을 너무 열심히하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쉬엄쉬엄해.”
딱히 일을 열심히 해서 한숨이 나오는 건 아니다. 그저 교수님과 함께 보내야할 소중한 1분 1초의 순간들이 모두 이런 쓸데없는 곳에서 허비되고 있으니, 답답할 뿐.
하지만, 그러한 속사정은 겉으로 티내지 않고서 그저 예의바르게 대답했다.
“네에······.”
“옳지. 네 휴식 시간은 내가 꼭 보장해줄 테니까.”
하녀장은 아라셀리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다.
똘똘하고, 일도 잘 배우고, 열심히 하고, 싹싹하게 말대꾸도 잘하고, 심지어 귀염상의 얼굴을 하고 있으니 호감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조심해야 해. 너 요새 도련님과 미묘한 관계라면서?”
“······.”
아닌데요.
주위를 슬쩍 둘러보니 다른 하녀들 역시 귀족과 평민의 금단의 로맨스가 상당히 흥미로웠는지 저들끼리 꺅꺅대며 뺨을 붉히고 있었다.
정작 본인은 짜증나서 죽을 거 같은데.
“평민과 귀공자의 로맨스······. 소설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어쩜, 도련님이 그렇게 맹목적이라시지?”
빙의 전 마젤리온의 평판은 인간 쓰레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맏형은 현재 30대 초반의 나이로 무려 6써클에 달한 천재 중의 천재였으며, 둘째는 써클은 낮았지만 뛰어난 마법학 이론으로 몇 번이나 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으니 말이다.
그에 비해 마젤리온은 마법도 간신히 1써클을 완성한 수준에 그쳤으니, 형들과 어찌나 비교되는가.
그러한 와중, 갑작스레 모종의 이유로 정신을 차린 마젤리온은 어마어마한 성장세로 마법을 배우며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전에 보여주었던 그 쓰레기같은 이미지와의 갭 때문에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게 되었다.
20세에 4써클의 경지를 달성했다는 건, 역사에 기록될 정도의 천재라는 의미인데······ 어디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던가?
세간에서는 마젤리온이 형들에게 압박받을 것을 어린 시절부터 염려하여, 일부러 힘을 숨기고 있다가 이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나이가 되자 그제야 재능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이전까지 보여주었던 쓰레기같은 행동이 모두 계획된 일이었다니?
그 어린 나이부터 정계에 대비를 했다는 말인가?
정말 알면 알수록 놀랍고 대단한 점밖에 없었으니, 그의 매력이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실상은, 그저 ‘빙의’ 덕분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아라셀리였기에 그저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지만.
“앗, 아라셀리. 여기에 있었네!”
“네. 무슨 일인가요?”
“알면서~ 막내 도련님이 리플라시안 정원에서 보자시던데?”
그에 아라셀리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우선, 주인공에게 잘보여야만 하는 때다.
*
마젤리온 알레로든은 본디 다른 세계에 살던 다른 사람이었다. 그쪽 세상에서 나름대로 천재 마법사였던 그였지만, 신분이 천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마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다름 아닌 ‘흑마법’. 암흑의 존재들에게 영혼을 팔아야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었지만 그 성능만큼은 확실하게 보장되었다.
당연하지만 흑마법은 마법 사회에서 사용이 엄금되어 있었다. 흑색의 마나는 폭주할 가능성이 높았으며, 부정한 에너지로 인해 주변 환경과 주변인들이 오염된다는 부작용 때문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빙의 전의 마젤리온은 마법사들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재능은 충분한데, 신분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마법을 배우지 못한 것도 서러운데 조금만 특별한 마법을 배우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척살이라니!
그 억울함은 이 새로운 세계에서 깔끔하게 해소할 수 있었다.
이 세계에서의 흑마법은 이미 백 년도 더 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똑같은 이유로, 흑마법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흑마법사들이 백 년 전에 모두 척살된 것이다.
불행일까, 다행일까.
마젤리온은 이 세계에서 유일한 흑마법사가 되었음에도, 그 누구도 그의 어두운 마력을 알아채지 못했다.
웅웅!
그는 자신의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선명한 4개의 백의 마나 써클과 3개의 흑의 마나 써클을 느꼈다.
남들에게 감추고 있는 마젤리온만의 비밀! 이 흑색의 마나는 비장의 수단이 되어, 자신을 지켜줄 것이다.
또각!
구두굽 소리가 들리자, 마젤리온은 사색을 멈추고서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하녀로서 알레로든 공작가의 대저택에 들어왔으나, 이제는 마젤리온과 ‘연인 관계’가 된 신비로운 마법사 소녀, 아라셀리가 서있었다.
“왔구나. 아라셀리.”
“······네.”
마젤리온은 아라셀리를 향해 성큼 다가갔다. 그녀는 어쩐지 불편해 보였다. 마젤리온은 곧 그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아, 근무 시간에 불러내서 다른 하녀들의 눈초리가 무서운 거면 솔직하게 말해. 내가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다음에 말하고 싶을 때 말하도록 해. 네 고민이라면 언제든 들어줄 수 있으니까.”
그리 말하며 마젤리온은 스스로 뿌듯함에 취했다. 그녀가 어떤 점에서 불편해 하는지 빠르게 알아챔으로써 부담감을 덜어주었다. 이래서 남자는 눈치가 빨라야 한다.
‘······뭐라는 거야 대체.’
아라셀리는 어이가 없을 뿐이었지만.
마젤리온과 아라셀리는 정원을 거닐었다. 마젤리온의 명령에 의해 이 정원에는 현재 정원사는 물론 그 누구도 출입할 수 없었다. 멀리서 기사들이 호위를 하고는 있으나, 어차피 필요도 없다.
‘지금 확 죽일까?’
어차피 교수님이 처리해야할 놈이라면, 얼마든지 자신의 손을 더럽힐 생각이 있는 아라셀리였으나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대부분의 힘을 잃고, 교수님의 마력을 보충받지 못하는 지금은 그를 상대하기 어려울 뿐더러 ‘주인공 보정’이라는 세계의 축복을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슴에 저 기운은··· 틀림없이 흑의 마나야.’
하지만 어째서 이 세계의 다른 마법사들은 흑마법을 저지하지 않는단 말인가? 마치, 흑마법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처럼.
‘설마 이 세계에는 흑마법이 아직 등장한 적이 없는 걸까······?’
이곳에 도착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아라셀리였기에 배경지식이 상당히 얕았고, 그 탓에 대부분의 상황을 스스로가 추리해나가야만 했다.
‘일리는 있어. 주인공의 축복이라면 역사 정도는 가볍게 간섭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마젤리온은 ‘현실 간섭’계열 클리셰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의 축복은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삶을 사는, ‘빙의’였으니까.
존재했던 역사를 완전히 비틀어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우선 이 세계에 있는 흑마법에 대해 알아봐야······.’
“아라셀리.”
“···네?”
“너는 마법을 배우려는 이유가 뭐였어?”
“······?”
너무나도 원초적인 이유였다. 왜 배웠을까.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그저 가문을 타고난 덕분이었던 것 같다.
대마법사 라인칼의 후손, 아라셀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마법은 숨 쉬는 것보다도 더욱 쉬웠고, 그저 가장 잘 할 수 있었으며, 주변의 모두가 기대하고 있었기에 열심히 배웠다.
그러나 나중에는, 다른 이유로 변질되었다. 그저 어떤 한 남자를 만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인생을 바쳐서 마법을 공부하고 또 연구하였다.
“······제 인생을 위해서, 배운 거 같아요.”
그래서 아라셀리는 그렇게 답했고, 마젤리온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래? 나와 비슷하네. 나도 내 인생을 위해서 마법을 배웠어. 정확히는 살아남기 위해서. ···그래서 네가 우리 가문에 몰래 들어와서까지 마법을 배우려는 행위가 썩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아. 그건 옛날의 나를 떠올리게 만들었거든.”
“······.”
정말 여러모로 이상한 부분을 망상해서 자꾸만 공통된 부분을 만들려는 것 같은데, 그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그냥 웃기고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옛날의 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는 말은 굉장히 아라셀리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들었다.
살아있는 인간을 제물로 바쳐야만 힘을 얻을 수 있는 흑마법 따위를 배운 주제에, 자신의 노력과 동일시 하다니.
“그래서, 나는 너한테 기회를 많이 주고 싶어.”
“···기회요?”
“응. 이번에 세미나에서 세계의 유명한 마법 명가가 모일 예정이거든. 수행인을 골라서 데려갈 수 있는데, 나는 거기에 널 데려갈 생각이야.”
그러면서 어때? 고맙지? 따위의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저같은 게 거기를 따라가면 도련님의 명성에 흠이 갈지도 몰라요.”
“그런 쓸데없는 고민은 안 해도 좋아.”
“게다가 제가 그런 델 간다고 해서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게 많을 걸?”
가기 싫다는 말을 열심히 돌려서 말하는데, 참 말귀도 못알아 먹는다.
“망설일 필요 없다니까? 거긴 대단하고 특별한 마법사들이 아주 많아. 골렘을 전문으로 만드는 사람도 있고, 얼마 전에는 물건을 장거리 텔레포트에 성공시킨 마법사도 있었고, 다른 나라와 교신할 수 있는 특별한 수정구를 만든 마법사도 있었고······.”
당연히 그것들 역시 아라셀리에게는 그 어떤 감흥도, 흥미도 주지 못했다.
그러나, 마지막 말 한 마디가 그녀의 눈을 반짝이게 만들었다.
“···아, 그렇지! 기다랗고 커다란 지팡이를 부리는 마법사도 얼마 전에 등장했다지.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성벽 하나를 통째로 뭉개버릴 정도의 위력을 보이던데···. 어디서 그런 마법사가 나온 건지 원.”
“잠깐만요. 혹시···, 그 마법사도 이번 세미나에 오나요?”
“어? 어어. 그렇지?”
갑자기 아라셀리가 흥미를 보이자 마젤리온은 신나서 그가 언제 일주일 전에 등장했으며, 옆 나라의 명문 마탑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말까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그에 아라셀리는 그 마법사가 틀림없이 자신의 교수님이라고 확신하였다.
“저도 갈래요. 세미나.”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 마법명가의 망나니(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