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법명가의 망나니(1) >
주인공 카이도가 사망한 뒤 세계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주인공에 의해 상식이 개벽되지 않은······ 그런 평범한 세상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모험가들의 파티에 꼭 한 명 이상은 껴있을 정도로 흔했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던 마법사의 개체수가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꿈과 희망과 영웅담이 넘쳐나는 이세계는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모험가들은 피튀기는 전장에서 숱하게 살아남은 진짜배기 용병들만이 남아있었으며, 노출도 높은 옷을 입은 채 활보하던 여자 모험가들은 모조리 사라지고 없었다.
아라셀리는 한순간에 뒤바뀌어버린 세계를 보고서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세계의 근원 그 자체를 바꿔버리다니······. 주인공이라는 존재는 무섭네요.”
“그러니까 말이야. 솔직히 사냥 포기해야 하나 싶었을 정도였다니까.”
“보다도 더한 주인공이 있었나요?”
“음······.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주인공도 있었으니까. 무한히 시간을 되돌리는 놈도 있었고.”
나는 별대수롭지 않게 그리 답했으나, 아라셀리는 조금 다른 반응을 보였다.
“세계를··· 창조했다구요?”
“어? 응. 정확히는 그 주인공이 설계했던 세계관이 그대로 현실화된 거지만.”
“······.”
그에 아라셀리는 턱을 짚고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세계’가 주인공을 위해 온갖 축복을 몰아준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주인공의 무대를 위해 하나의 세상 자체를 창조해준다는 사실은 좀··· 충격이네요.”
“그렇긴 하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에요. 예전부터 들었던 생각인데, ‘세계’에게 의지가 있다면 대체 무슨 목적으로 주인공에게 축복을 부여하는 걸까요?”
“어?”
“대체 무엇을 위해 시공간을 비틀어가며 세계는 스스로를 멸망의 길로 이끌고 있느냐는 거죠.”
“······.”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말문이 막혔다. 나는 그저 ‘주인공은 세계의 축복을 독식하여, 세계를 멸망으로 이끈다’라는 사실 하나에 의거하여 그들을 사냥했을 뿐이니까.
“주인공을 위해 주인공만의 세계가 창조되었다······. 분명히 이 세상은 어떤 의지와 목적을 가지고 있어요. 여러 세계를 여행하면서 느낀 감일 뿐이지만, 저는 확신하고 있어요.”
즉, 아라셀리의 주장대로라면 세계는 스스로가 멸망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인데······.
“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얼마 전에 알아낸 몇몇 사실을 그녀에게 전달했다. 헬 게이트에 지성체가 살고 있으며, 세계가 멸망할 때 모든 것이 ‘하나’가 된다는 사실까지도.
그 이야기를 전부 전해들은 아라셀리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아무래도 그냥 전해듣는 것으로는 뭔가를 알아내기에 한계가 있어요. 직접 볼 수만 있었더라면······.”
“···얘기가 나온 김에 말하는 건데, 지구까지는 아직 많이 멀었어?”
“아뇨.”
그녀는 묘하게 단호한 눈으로 말했다.
“점점 더 지구와 가까워지고 있어요.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냐······.”
내가 알기로, 아직도 아라셀리가 지구에 도착하기까지는······ 여전히 까마득하다. 그런데, 굳이 저렇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모르겠다. 원래부터 속을 알 수 없었던 아라셀리였으니까. 대마법사의 속내를 나같은 게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아무튼, 고생했어. 이번에는 곧바로 다른 세계로 이동할 생각인데, 너도 따라올 거지?”
“네? 지구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요?”
“응. 의뢰 몇 개를 한꺼번에 진행하려고.”
이번 임무가 상당히 빨리 끝난 것도 있으며, 앞으로 헬 게이트에 진입하기 위하여 더 빠르게 강해지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현재 내 레벨은 180.
[193레벨의 주인공을 사냥하였습니다.]
[수명이 1830일 지급됩니다.]
[당신의 수명: 8237일 17시간 10분]
[레벨이 4단계 상승합니다.]
[에필로그 직전의 주인공을 사냥하여 추가로 레벨이 2단계 상승합니다.]
[재능 ‘집중 C’를 흡수하였습니다.]
━
<유서담>
[도합 레벨: 180]
*능력치
[근력 176] [체력 190] [민첩 175]
[기력 1] [마력 299]
*재능
[검술 S] [사냥 D+] [사격 S]
[요리 D-] [직감 A] [기민 A]
[통찰 B] [원기 SS+] [집중 C]
[기타···.]
*스킬
[주인공 사냥꾼 Lv. 5]
[백색검법(S)] [육감(B)]
[인벤토리(S)] [달마풍천신법(SS+)]
[정신 집중(SS)] [신성력 변환(F)]
[아라-선영 식 마나 써클링(SS+)]
[백색 마녀의 도서관(C)]
[만물을 냉정한 시선으로(B)]
━
내 목표는 레벨 200에 도달하는 것이다.
S랭크에 도달하는 순간 어느 정도의 ‘환골탈태’가 이루어지는데, SS랭크에 도달하는 순간 그러한 현상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기 때문. 지금의 나에게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럼······ 곧바로 이동하시나요?”
“응. 따라올 수 있겠어?”
“당연하죠! 이렇게 가까이서 함께 출발하면, 시간축이 비틀릴 일도 없을 거예요.”
“그래. 속전속결로 가자고.”
아라셀리의 대답까지 들은 이상, 모든 임무를 완수한 이쪽 세계에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곧장 허공에 미리 정해두었던 다음 행선지를 띄웠다.
『마법 천재, 마법명가 막내아들로 환생하다』
#망나니빙의물 #사이다 #성장
#우리도련님이달라졌어요
“바로 출발하자.”
*
한편, 지구에서.
예카테리나는 이계인들을 현대에 적응시키기 위한 몇몇 프로젝트를 구상중이었다.
아무래도 현대인들이 이계에서 온 존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들의 첫인상을 강렬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었고, 최소 S급 게이트나 던전 등의 위험 지역에서 활약을 하는 식으로 등장하면 충분히 긍정적인 이미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도 별문제가 없는 늑대인간이나 드루이드 등의 몇몇 종족은 벌써부터 몇몇 던전을 돌파하며 얼굴을 알렸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을 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한 와중, 가장 도움이 되는 이계인은 역시 라칸탈이었다.
그는 다른 이계인들처럼 강력한 힘을 스스로 발휘할 수는 없었다. 차원이동 과정에서 모든 마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마공학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 지식이 타이밍 좋게도 ‘헬 게이트 이상변화’ 현상에서 쓰일 수 있게 된 것이다.
헬 게이트의 에너지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 민간인들의 귀에 들어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기밀을 유지한다고 해도, 연구소에 거주하는 인원만 수백에 달했기에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세상에 소문이 퍼져나오게 된 것이다.
헬 게이트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어린아이조차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으니, 모두가 불안에 떠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한 와중.
“차원 균열의 뒤틀림을 억제할 수 있소.”
라칸탈의 기술이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이계의 지식, 이계의 기술.
거부감 드는 이계인들의 힘이 지구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고, 곧 이계인들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어나더 리그의 주가 상승률이 어마어마하군요.”
로스트 데이, 마스터 유하람.
그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상대방의 말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그래도 되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럴만하지. 세상 좋은 건 저가 죄다 독식하고 있으니까.”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기껏해야 F랭크에서 골골대며 값비싼 총기류가 없으면 E랭크 수준의 괴수조차 상대하지 못하던 헌터가 바로 유서담이었다.
불치병에 걸려, 빠른 시일 내에 사망할 것이라는 보고를 듣고서 귀찮은 혹덩어리 하나 떼어내겠거니 싶었건만······.
‘······설마 이렇게까지 덩치가 커지다니.’
이제 더 이상은 로스트 데이가 덩치로 밀어붙이는 것조차도 불가능해진 상황이었다.
그건, 꽤 좋지 못한 현상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죽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뭐?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유하람은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행동하며, 자신에게 위험부담이 있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지금은 21세기 중반이오. 초능력은 물론 마법에 무공까지 발달한 마당에, S랭크 수준의 초능력자를 죽이겠다고?”
그것도, 어나더 리그의 길드 마스터라는 어마어마한 거물을 말이다.
지금도 초능력자 암살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마법은 물론 무공에까지 능통한 그를 흔적없이 죽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애초에, 이 정도의 일로 사람 하나를 죽일 생각조차 전혀 들지 않았고.
그런데.
어째서인지.
얼마 전부터 자꾸만 ‘유서담을 죽여야 한다’는, 퍽 이성적이지 못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래야만 할 것 같다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였다.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길드는 많습니다. 단지, 티를 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유서담은 헌터 경력 17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강해지면, 정말 건들 수조차 없게 되겠지요. 그 전에! 처리를 해둬야 합니다.”
“···대체 어떻게 하겠단 말이오?”
“현 지구에는 무법지대가 존재하지 않습니까? 바로, 던전과 균열 내부이지요.”
“······!”
던전과 균열의 내부에서는 전파가 터지긴 터지더라도, 그 제약이 극히 심하다. 몇몇 던전은 아예 전파가 잡히지 않아, 외부와 격리되는 경우도 잦았다.
특히 그 등급이 높을수록 그런 경향이 심했는데, 이를 이용한 살인 및 강도가 최근에도 분연히 일어나고 있을 정도였다.
“조만간 SS급 던전 하나를 공략할 예정인데, 거기에 유서담을 끌어들이겠습니다. 그 뒤로는···, SS랭크의 초능력을 가진 당신의 역할입니다.”
“······.”
상대방의 말에 유하람은 표정을 굳히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은 이미 깔끔하게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저, 이제는 유서담을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를 고민할 뿐이었다.
*
아라셀리 라인칼이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유서담과 동시에 이동하더라도 ‘시간축’이 맞을지언정 ‘공간축’은 항상 어긋났다는 사실이다.
“얘, 아라셀리. 오늘 도련님 시중은 네가 들려무나.”
“네에······.”
그녀는 하녀복을 입은 채 한숨을 푹 내쉬고서 고개를 들었다.
거성을 연상케 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저택이 아라셀리의 시야에 한가득 자리잡았다.
이곳은 ‘알레로든 공작가’의 본가이다.
대륙에서 제일가는 마법 명가이자, 단 7명밖에 없다는 7써클의 위대한 대마법사가 가주로 있는 가문, 알레로든!
이 명문가에서 하녀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영광스러운 일인데, 심지어 아라셀리는 삼남 중 막내 아들인 ‘마젤리온’의 시중을 드는 하녀였다.
마젤리온 알레로든이 누구인가.
마법에 대한 재능은 쥐뿔도 없는 주제에 허구한날 여자나 밝히고, 재산이나 탕진하고, 매일마다 축제나 벌이면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이가 있으면 잔혹하게 괴롭히는 등 심성이 좋지 않은 자였다.
외관 또한 어떠한가. 몸무에가 가히 0.2t에 달한다는 말이 들려올 정도로 뚱뚱한 그의 외모는 본능적으로 혐오감이 몰려오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갑자기 달라졌다.
여자 관계를 청산하고, 재산을 모으기 시작했으며, 축제는 일절 벌이지 않았고, 아랫사람에게 관대해졌으며 살을 빼고나니 빼어난 미모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
그뿐이랴? 재능이 없는 줄로만 알았던 막내아들 마젤리온이 갑작스레 20세의 나이에 4써클을 각성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가주조차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정말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변화였다.
그러나, 이런 비슷한 경우를 일전에 겪어본 적이 있는 아라셀리는 알고있다.
정말로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빙의인건가······.’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알레로든 가문의 막내 도련님이자, 아마도 이 세계관의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마젤리온을 깨우기 위해 이동하였다.
“도련님. 아침 식사하세요.”
하녀 생활은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원체 배우는 속도와 눈치가 빠른 아라셀리였기에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들어와.”
다른 하녀들과 함께 식사를 들고서 마젤리온의 방으로 들어가니, 이제 막 일어난 듯한 그가 부스스 머리카락을 흔들고 있었다.
“어머머···.”
“어쩜 저렇게 고우실까···.”
뒤에서 다른 하녀들이 뺨을 붉힌다. 하지만 아라셀리에게는 영 느끼하게만 보일 뿐,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저 남에게 밥이나 줘야하는 자신의 신세가 굉장히 처량했을 뿐.
“음. 아라셀리로구나.”
“···예.”
무려, 막내 도련님이 일개 하녀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해주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라셀리의 얼굴밖에는 기억하지 못했다.
“아침부터 네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네. 오늘은 메뉴가 뭐야?”
“···모르는데요?”
아라셀리의 뻔뻔한 대답에 다른 하녀들의 안색이 창백해졌지만, 정작 마젤리온은 크게 웃었다.
“하하, 여전히 재미있네!”
그러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아라셀리에게 성큼 다가와 물었다.
“나는 네 마법을 똑똑히 봤어. 내 아내가 되기만 하면, 그 천한 신분에서 벗어나 얼마든지 마법을 연구할 수 있게 해줄게. 응? 나와 함께 하지 않을래?”
그의 말은 부드러웠고, 조곤조곤했으며,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세계 제일의 마법명가의 도련님이 결혼을 하자는데, 그 어떤 여자가 마다할까?
“······아뇨.”
아라셀리가 고개를 푹 숙이자, 마젤리온은 ‘또 튕기네.’라고 중얼거리더니 웃으며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실상, 아라셀리는 어떠한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교수님. 부디 제가 사람을 해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바로 살심(殺心)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여정은 시작부터 상당히 꼬인 것 같다는 생각에 아라셀리는 기분이 울적해졌다.
< 마법명가의 망나니(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