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98화 (198/251)

< 이 세계의 상식은 뭔가 잘못됐다(2) >

[5레벨의 주인공 ‘카이도’의 세계, 판타지 대륙 아츠바란으로 이동합니다.]

[당신은 아츠바란의 ‘모험자’가 되었습니다.]

눈을 뜨니,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낯선 풍경이 나를 반겨주었다.

시대는 중세. 그러나 어째서인지 10세기에서부터 16세기까지의 모든 특징이 뒤섞여있는 건축 양식은 상당히 독특한 분위기를 띠웠다.

거리는 북적거렸다. 바닥은 알록달록하게 예쁘장하게 포장되어 있었고, 형형색색의 건물들은 뾰족하거나 둥그런 개성적인 지붕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늘에는 날개 달린 용같은 것이 날아다녔고 거리의 마차는 말 대신 뿔 달린 괴물같은 것이 이끌고 있었다.

또, 거리에는 수많은 이종족들과 수많은 모험가들이 각자의 장비를 착용한 채 걸어다니고 있었는데······.

여성 모험가는 이상하리만치 노출도가 높은 장비를 착용했으며 심지어 죄다 미인인 데에 비해, 남자 여행자들은 죄다 우락부락하고 털복숭이에 못생겼으며 장비도 굉장히 촌스러웠다.

“뭐냐. 패션이 저렇게 불균형적으로 발달할 수도 있는 거냐?”

여자들의 패션은 휘황찬란하고 번쩍이는데 왜 남자들은 죄다 저 꼬라지인 건지. 오히려 간단한 흑색의 에테르 슈트를 착용한 내가 더 평범할 정도였다.

대충 분위기를 파악한 뒤 나는 가장 먼저 아라셀리의 기운을 감지하였다. 그녀의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곳에서 차원의 파동이 느껴져서 그곳을 향해 달렸다.

파지지직!!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차원이 서서히 벌어지고 있었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난 후, 검은색 머리칼을 가진 새하얀 나신의 아라셀리가 튀어나오자 나는 잽싸게 천으로 그녀의 몸을 두르며 낚아챘다.

“꺅!”

내 품에 푹 안긴 그녀는 잠시 당황한 듯 소리를 질렀으나, 이내 내 얼굴을 보고서 배시시 웃었다.

“다행이네요. 별 일 없으신 거 같아서.”

“당연히 별 일 없지.”

“네···.”

그녀는 어쩐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미리 준비해온 10대 소녀의 옷을 준비했고, 아라셀리는 잽싸게 그것으로 갈아입었다.

“이 옷은 교수님의 세계에서 입는 건가요?”

“비슷하긴 해. 조금 더 판타지스러운 디자인이기는 하지만.”

“아하. 그럼 이것들은 교수님의 취향인가요?”

“그···그렇지? 일단은?”

그러자 아라셀리는 어쩐지 기분 좋다는 듯 웃었다.

“가자.”

“네. 여기서도 세계의 축복을 독점하는 자를 사냥하는 건가요?”

“응. 근데 아직 찾지는 못했어.”

거리로 나온 뒤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주인공의 레벨이 심각하게 낮아. 아직 능력을 각성하지 못한 단계인가?’

지금이라면 가볍게 목을 비트는 것만으로도 죽일 수는 있을 테지만, 당연히 쉽지는 않겠지.

특히 이 ‘일본식 이세계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목을 비틀어서 죽여도, 심장을 분해해도, 갑자기 정령의 힘으로 부활하느니 혹은 드래곤의 힘으로 부활하느니 하면서 도리어 더욱 강력한 힘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가 완전히 죽을만한 ‘스토리’를 구상해야만 한다.

“어, 교수님. 저기.”

아라셀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휘황찬란한 장비가 아닌 웬 교복같은 것을 걸친 검은 머리의 소년이 서있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년의 왼쪽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는데, 그의 머리 위에는 선명하게 해시태그가 각인되어 있었다.

‘찾았다.’

주인공 카이도는 다른 모험가들과 함께 어딘가로 가고 있었는데, 다름아닌 ‘모험자 길드 사무소’였다. 우리도 그곳을 따라 들어섰다.

[주인공 카이도가 스킬 ‘상식개벽(SSS+)’의 하위 스킬 ‘언어 통일(S)’을 사용합니다.]

이윽고, 이세계 사람들의 입에서 일본어와 굉장히 유사한 언어가 흘러나왔다.

“카이도! 여기가 모험자 길드야. 정말 모험자가 하고 싶어?”

“응. 당장 돈이 없어서.”

“하지만······ 너는 방금까지만 해도 고블린 하나 사냥 못하고 죽을 뻔한 걸 우리가 구해줬잖아. 게다가, 몬스터가 없는 곳에서 왔다면서. 이곳에 대해 잘 모르는데, 모험자를 해도 괜찮을까?”

“어쩔 수 없어. 세상을 떠돌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길이 이것뿐이니까.”

“후후, 자신감 넘치는 카이도의 모습 보기 좋아.”

암살자로 추정되는, 정말이지 눈 둘 곳이 없을 정도로 노출도 높은 복장의 소녀가 그리 말하며 카이도의 등짝을 팡! 두드렸다.

···아니 근데 상식적으로, 낯선 세계에 떨어져서 당장 생활비를 벌고 싶으면 차라리 식당에 들어가서 서빙 알바를 하거나 배달이나 하는 게 좋지 않나?

저 주인공에게는 아닌 모양이다.

우리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서 카이도를 지켜보았다.

“이름이 카이도···. 모험자를 하고 싶으시다면 적성 검사를 하셔야 해요.”

“적성 검사요?”

“네. 어느 클래스에 맞는지 확인도 해야 하고, 파라매터도 확인해야 하니까요.”

“바로 할게요.”

“그럼, 이 수정구슬에 손을 올려주세요.”

설마 저 수정구슬 하나로 적성검사 끝인가? 참 간편해서 좋아 보이기는 하네······.

“카이도. 마력량이 너무 낮게 나와도 우울해하지는 마. 그래도 20에서 30정도만 나와도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하하! 그래, 그녀의 말이 맞다. 50정도가 나와준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고 말이지!”

쟤네 생 초면인 거 같은데도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친절하다. 뭐, 그럴 수 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이윽고 카이도가 푸른색 수정구슬에 손을 얹자, 갑작스레 공기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주인공 카이도가 이세계 치트 ‘무한의 마력(SSS+)’을 획득합니다.]

쩌적, 쩌저저적!!

챙그랑···!

“허억!”

“마, 맙소사!”

“수정구슬이 깨지다니······ 33년 전 ‘암흑룡의 용병왕 페르티샤스’ 이후로 처음이야······!”

모두가 당황하고, 심지어 저 모험가 길드 여직원은 뺨을 붉힌다. ···아니 대체 왜?

“이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그와중에 주인공은 딴소리한다.

지가 가진 스킬이 사기라는 사실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이웃집 시며느리도 아는데 주인공 본인만 모른다. 그래. 그럴 수 있다.

벌컥!

1층에서 소란이 일어나자 위층에서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걸어 내려왔다.

“앗··· ‘금색의 백기사 세아렌’님이다······!”

“허어, 여전히 아름다우시군.”

“갑자기 왜 나타나신 거지?”

금발에 백색의 갑주를 걸친 그녀는 대뜸 1층을 둘러보더니, 카이도를 향해 걸어왔다. 그러더니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대단하군. 이 정도의 마력량을 가진 자는, 일평생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어. 자네, 이름은?”

“네? 그, 카이도라고 합니다.”

“나는 금색의 백기사 세아렌이다. 나 또한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대에 비하면 발끝에 때만큼도 못미치는군.”

지랄들을 한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내 길드에 들어올 수 있겠는가?”

여기서 한국식 장르소설이었다면 뻥 걷어차고 자기가 길드 하나 만들겠지만, 일본식 장르소설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좋아요!”

이유는 간단할 것이다.

세아렌이 예쁘니까.

*

아직까지 카이도는 평범한 주인공의 성장기를 보여주었다. 나는 그를 어떻게 죽일지, 스토리를 짜보았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게 전혀 없었다.

“카이도군···! 대단해!”

“맙소사. 고작 ‘파이어 볼’이 저 정도의 위력이라고?”

“믿을 수 없어.”

뻔하지만, 뭐. 이 세계의 마법은 공부따위 하지 않아도 주문만 외우면 곧바로 발동된다.

여기서 의문점이 생겼는데, 내가 알기로 모든 세계의 마법은 통일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수학 공식인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다른 세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삼각형의 법칙이 다른 세계라고 해서 바뀌지는 않는단 말이다.

마법 또한 마찬가지로 마력을 체내에 쌓고, 그것을 수학적으로 운용하여 발산하는 과정은 결코 변할 수 없는 불변의 법칙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이 세계는 그 법칙을 무시하였다.

“아라셀리. 어떻게 생각해?”

현재 아라셀리와 나는 백기사 세아렌의 길드 ‘청명의 검’에 들어와 있었다. 나도 SS랭크에 버금가는 능력치를 가졌고, 아라셀리는 말할 것도 없으니 별로 어렵지는 않았다.

그 뒤로 카이도의 동료가 되기를 자처하여, 현재는 그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와, 대단해!’라며 감탄사를 내뱉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으음, 글쎄요······.”

아라셀리도 나와 마찬가지로 ‘우와, 정말 대단해요’라며 감탄사를 내뱉으며 표정을 굳혔다.

“저건 마법이 분명히 맞아요. 하지만 마법은 결코 저렇게 발동될 수 없어요. 마치 강제로 마법의 공식이 비틀리는 듯한 느낌이······ 으음.”

아라셀리조차 이 세계의 기묘한 마법을 잘 이해할 수 없었는지 표정을 찌푸렸지만, 결국 뭔가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카이도를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한 우리는 숲속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필드의 보스라고 불리는 ‘흑색의 늑대 카자라쿤’을 사냥하기 위해서였다.

새삼 느끼는 건데 이쪽 세상은 별호 붙이기를 참 좋아한다. 나중에 가면 숟가락도 ‘은색의 수저 김스푼’이라고 부르는 거 아닌가 몰라.

나는 슬쩍 일행을 둘러보았다. 일행은 총 일곱으로 나와 아라셀리, 카이도가 있었으며 그 외에 ‘실눈설명충’과 ‘민폐녀’, ‘감탄사 자판기’와 ‘플래그남’이 존재한다.

그들은 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편이었는데, 예를 들어서.

“앗! 카이도가 마법으로 카자라쿤을 단번에 무찔렀어!”

“맙소사, 어스 퀘이크를 이 정도까지 범위 조절을 하다니······! 여태 이 마법의 범위 컨트롤에 성공한 마법사는 역사상 단 9명 뿐이었는데, 모두 역사에 이름을 날리는 대마법사가 되었지······. 카이도, 넌 정녕 대마법사가 될 생각인 거냐······!”

“어이어이, 진짜냐고.”

이런 상황이, 한 서른 번쯤 발생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역시 ‘민폐녀’가 되겠다.

“흐윽, 늑대가 불쌍해.”

그녀는 성직자 계열의 미소녀였다. 왜 미소녀라는 단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었는데, 저 실눈설명충이 저 여자보고 미소녀라고 했으니 아무튼 미소녀가 맞기는 한 듯싶다.

성직자 민폐녀는 쓰러진 늑대를 향해 후다닥 달려가더니 갑자기 그걸 또 치료하고 앉았다. 아니, 그거 사냥하러 온 거 아니냐고.

“엘리자베스! 위험해!”

“하지만······ 다친 사람이 앞에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나는 이 늑대를 치료해주고 싶어······.”

“엘리자베스······ 역시 너란 여자는······.”

어처구니가 없는 콩트가 나오더니, 카이도는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치료하자.”

아니 그럼 대체 왜 사냥했냐고···.

“너의 따뜻한 마음씨를 분명 카자라쿤도 이해해줄 거야.”

이윽고 정말 저 미친 민폐녀는 지들이 여태껏 흠씬 두드려 팼던 카자라쿤을 치료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갑작스레 웬 강철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사방을 둘러싸더니 민폐녀를 인질로 삼았다.

“꺄악! 카, 카이도군!”

그 와중에도 주인공을 찾는 민폐녀. 상황이 굉장히 급전개같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하! 우리가 사냥하려고 했던 늑대 인간을 보호하다니! 제정신이냐!”

그렇게 외치며 앞으로 나서는 양아치처럼 생긴 전투력 측정기···가 아니라 남자. 그는 검을 카이도에게 겨누며 말했다.

“크크큭, 네놈이 ‘청명의 검’에 가입했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지. 감히 우리 길드에 너같은 잡종이 들어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카, 카이도군··· 나는 버리고 어서 도망쳐야 해···!”

“맞아. 카이도. 냉정히 생각해. 우리의 힘으로 저들을 이길 수는 없어.”

“크읏, 지금은 물러나는 수밖에 없는 건가!”

“······.”

주인공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동료의식 따위는 없는 건지 아무렇지 않게도 버리자는 말을 잘도 한다. 이 와중에 의협심 있는 자는 주인공밖에 없음을 강조하려는 걸까.

“아니, 나는 그녀를 버리지 않아!”

카이도는 그렇게 외쳤고,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크하하! 네 마법으로 우리를 공격할 수는 없다. 최소 C랭크의 마법이 아닌 이상······ 응? 지금 뭐하는 짓이냐?”

파지지직!!

카이도의 손에서 전격의 스파크가 튀기 시작하였다. 그에 기자들이 그를 비웃기 시작하였다.

“크하하! 공격 계열 마법이 화염, 방어 계열 마법이 대지라는 사실은 지나가던 개도 안다! 전격 마법 따위로 무얼 하겠다는 거지?”

그에 대답하지 않고서 카이도는 한쪽 눈을 빨갛게 물들이더니, 은근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뻗었다.

“체인 라이트닝!”

이윽고, 전격의 줄기가 전투력 측정기를 강타하더니······ 그 줄기가 다른 기사들에게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파지지직!!

“크아아악!”

“으아아악!”

기사들이 모조리 쓰러지고, 그나마 전투력 측정기만 간신히 고개를 들고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 네놈······ 어떻게 전격 마법 따위로 이렇게······!”

그러자 카이도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아, 모르는가. ‘강철’은 ‘전기’에 약하다. 우리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상식이지.”

“······그럴 수가!”

그제야 전투력 측정기는 자신의 갑옷을 보며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쓰러졌다.

“어이어이, 진짜냐고.”

“아아. 그의 세계에서는 이 정도의 대단한 지식이 ‘상식’이라니···. 얼마나 대단한 세계인 거냐고······.”

[주인공 카이도가 스킬 ‘상식개벽(SSS+)’을 발동합니다.]

그제야, 나는 이 세계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 이 세계의 상식은 뭔가 잘못됐다(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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