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세계의 상식은 뭔가 잘못됐다(1) >
태평양 한복판에는, 거대한 인공 구조물이 하나 떠있다. ‘섬’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 구조물은 현대 과학의 정수가 총집합되어있다고 봐도 무방한데, 이곳에서 하는 일은 오로지 단 하나.
‘헬 게이트’를 관측하는 것뿐이었다. 매년 이곳에 투자되는 예산만 수백억에 달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약 헬 게이트가 폭주하기 시작하면, 지구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멸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헬 게이트를 정복하려는 시도는 꽤 많았지만, 성공하지 못하였고 그나마 유서담이 포함되어있던 원정대가 내부의 물질을 캐내는 데에 성공했을 뿐이었다.
그런 ‘헬 게이트 연구소’라지만, 사실 그다지 치열하지도 않고 필사적으로 연구를 하고있지도 않았다.
헬 게이트의 폭주는 아직 그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오늘.
위잉!위잉!위잉!
“이, 이건 대체······!”
헬 게이트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겼다.
보통 ‘게이트’의 폭주라고 하면, 내부에 있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터져나오는 것을 뜻한다. 내부에 있는 환경과 몬스터가 지구로 쏟아져나와 큰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지구에서는 그토록 폭주를 경계하는 것이고.
헬 게이트 또한, 폭주하기 시작하면 내부에 있는 그 끔찍한 것들이 튀어나오리라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에너지를, 도리어 흡수하기 시작했다고?”
헬 게이트는 뭔가가 달랐다. 에너지를 외부로 쏟아내는 것이 아닌, 오히려 지구의 것을 끌어당기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그 흡수율은 굉장히 미비하였지만······ 만약 이 현상이 가속된다면?
‘···정말로, 지구가 위험할지도 몰라.’
*
“인사해. 라칸탈 씨야.”
어나더 리그의 길드 아지트로 돌아온 나는, 서른여덟의 이계인들을 예카테리나에게 데려갔다.
무려 이계인이다. 그런 그들에게 합당한 신분증을 부여할 생각이었는데, 이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하다못해 국적을 바꾸는 것조차도 어려운 세상인데.
“······서담님. 지금 이계인분들 때문에 난리인 건 아시죠?”
“알지.”
“국제 초능력자 협회에서도 찾아왔어요. 위험할 수도 있으니 당장 조사해야만 한다고.”
“내가 알아서 한다고 하면 안 되냐?”
“그건······.”
그녀는 드물게 한숨을 푹푹 내쉬며 자신의 백색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꼬았다. 무언가 불안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안 될 건, 없겠죠. 하지만 상당히 타격을 입는 건 각오해야 할 거예요. 일개 길드가 이계인이라는 증명되지 않은 초능력자를 감싸고 도는 건 결코 사회적으로 좋지 않으니까요. 언론으로 아주 폭격을 당할 걸요?”
“괜찮아. 테일러가 알아서 해주겠지.”
“앙?”
그러자 뒤에서 키가 3m나 되는 오우거족의 근육을 퉁퉁 두드리던 테일러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상당히 뻔뻔한 듯 보였지만, 사실 언론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는 우리들 중 누구보다도 프로라고 할 수 있었다.
“이봐 아저씨. 이거 근육 어떻게 키웠어? 존나 섹시하네.”
근육만 보면 환장하는 테일러였기에 오우거에게 그리 물었으나.
“(···본인, 외계어 할 줄 모른다.)”
안타깝게도 오우거는 지구의 말을 전혀 사용할 줄 몰랐다. 그나마 지능이 인간 수준으로 뛰어난, 변종 오우거라서 다행이다. 말이야 금방 배울 테니까.
어쨌든, 예카테리나는 계속 내가 밀어붙이자 하는 수 없이 이계인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쩐지 힘이 없어 보였으나, 그것은 금방 호기심으로 뒤바뀌게 되었다.
“이 자는 늑대로 변신할 수 있다네.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 늑대였는데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고 해야겠지.”
라칸탈은 지구의 언어를 전혀 모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파로 대화를 하는 게 가능했다. 그는 예카테리나에게 이계인들을 일일이 소개해주었는데, 예카테리나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한 것이다.
“손에서··· 나무가 자라는군요?”
“숲의 드루이드만이 할 수 있지. 거기다 친하게 지내는 동물과 소통하거나, 변신하는 것도 가능해.”
“맙소사······.”
이계에는 특이한 능력을 지닌 종족이 수없이 살고 있다. 이곳에 있는 자들도 그런 이종족들 중 극히 일부였을 뿐이고.
거기에 라칸탈이 자신의 기술력을 일부 선보이자, 그녀는 아예 그의 손을 턱! 붙잡았다.
“혹시 저와 함께 일하실 생각 없으신가요?”
“······.”
라칸탈의 세계는 마공학이 극도로 발달하였고, 심지어 세기의 천재였다는 그의 아내는 차원학을 구현하는 데에 성공하기까지 했으니 예카테리나의 눈이 돌아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한 명, 한 명의 특징과 종족을 모두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어찌 되었든 그들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홀대할 생각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래, 이제 슬슬 듣고 싶은데.”
예카테리나가 이계인들을 안내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자, 라칸탈이 내게 말했다.
“우리를 받아들여가면서까지, 굳이 힘을 키우려는 이유가 뭔가? 유치하게도 세계정복을 꿈꾸는 건 아니겠지? 뭐, 그렇다고 해도 나는 동참할 생각이네만.”
“하하···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런가? 아쉽군. 새로운 세계를 정복하는 일도 짜릿할 텐데 말이지.”
이 사람··· 진심은 아니겠지.
“사실, 진짜 목표를 알 것도 같군. ‘헬 게이트’가 목표가 아니던가?”
“······맞습니다.”
나는 이계인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과 신분 등을 제공하면서, 하나의 조건을 걸었다.
내가 원할 때, 단 한 번 나를 위해 싸워줄 것.
그 단 한 번이 바로, 헬 게이트 원정대였다.
아직은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안에서 살아돌아올 수 있게 해주었던 내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조만간, 무슨 일이 터질 거라고.
그때까지는 약간의 여유가 있을 것이나, 지금부터 준비를 한다고 해서 과연 헬 게이트에서 발생하는 재앙을 인간 따위가 대비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다만, 나는 내가 주인공 사냥꾼이라는 사실에 모든 것을 걸 뿐이다.
“···그래. 알겠다. 헬 게이트라.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로군.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마 어떤 이는 거부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헬 게이트는 위험한 곳이니까. 나는 그들이 포기하고자 하면, 말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계약 관계일 뿐, 주종관계가 아니니까.
“그리고, 이후의 일은 제가 도움을 많이 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에 남아서 후속 처리를 해두고 싶은데······ 급히 타지로 파견을 나가야 해서요.”
“흐음······. 그거 혹시, 이계로 파견나가는 건가?”
라칸탈의 날카로운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비밀로 할 것도 없으니까.
“예. 다른 세계에서 발생한 급한 일을 먼저 꺼야 해서요.”
다행스럽게도 지구에는 믿음직한 동료들이 많이 있었기에 맡겨도 문제는 없었다. 일을 벌여놓고 나 혼자 도망치는 것 같아서 상당히 양심에 찔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서담. 에필로그가 가까워진 세계가 다수 포착되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멸망에 다가가는 세계가 순식간에 불어나고 있었으니까. 비록 그 모든 세계를 구할 수는 없더라도, 단 하나라도 건져낼 수 있다면 나는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그래. 고생하게.”
*
유서담이 떠난 뒤, 어나더 리그의 길드 본부로 비상 연락망이 울렸다. 그것도 보통의 길드와는 전혀 연이 없다고 봐도 무방한 ‘헬 게이트 연구소’에서.
“이건······.”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갑자기 헬 게이트 연구소에서의 연락이라니. 예카테리나는 짐짓 긴장한 얼굴로 전화를 받았고, 이내 두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헬 게이트가······ 팽창하고 있다구요?”
-그렇습니다. 하여, 차원학에 조예가 깊은 길드 마스터 유서담을 꼭 모시고 싶은데······.
하지만 유서담은 이미 자리를 비운 뒤였다. 한번 이계로 나가면 연락이 불가능했기에 예카테리나로서도 막막한 상황.
그때, 사무실에 찾아온 라칸탈이 흥미를 보였다.
“헬 게이트라. 이계로 통하는 문이라고 했던가?”
“네? 네···. 정체를 알 수 없는 차원으로 통하는 게이트라고 알려져 있어요.”
“흐음······. 그거 흥미로운데.”
라칸탈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눈빛을 빛냈다.
“차원학이라면, 우리 푸른 별빛에 젖어드는 이슬의 종족이 전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묘하게 자신감에 찬 표정이었다.
*
세계의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
의뢰인은 그리 말했으나, 서담이 그 말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만 어떠한 사건이 점점 더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정도만을 인지할 수 있을 뿐.
<지금도 수많은 세계에 수많은 ‘에필로그’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에필로그의 끝에는, 결국 세계가 멸망한 뒤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버리는 끔찍한 결과만이 남을 것이다.
새삼 다른 세계의 멸망에 대해 서담이 책임감을 가지지는 않았다. 다만, 다른 세계의 멸망이 결국 지구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의뢰인의 가설이 그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을 뿐.
차원의 찌꺼기들이 모이는 쓰레기통, 헬 게이트. 그곳에 모이는 찌꺼기들은, 과연 ‘찌꺼기’일까?
아라셀리는 수많은 차원의 파편으로부터 떨어져 나왔기에 찌꺼기라고 표현했지만······ 만약 라칸탈이 말했던, 모든 것이 단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 진정한 멸망이라면 그런 찌꺼기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헬 게이트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은 대체 뭐란 말인가?
찌꺼기가 없는데, 찌꺼기로 구성된 세계라니.
<······멸망 이후 ‘하나’로 돌아와버린 그 물질들이 모이고 모여서 헬 게이트를 구성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다. 내가 헬 게이트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던, 무지한 상태였고 지금은 아직 헬 게이트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조사가 불가능하다.
다만, 준비를 할 뿐이다.
그런데······.
유서담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하였다.
‘내가 지금 이렇게 준비를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현재 그의 전투력 수치를 숫자로 환산하면, 175레벨이 된다. 지구에도 수백 명이나 존재하는 S랭크의 초능력자 수준밖에 안 된다는 말이다.
높게 쳐줘서 SS랭크라고 해도, 과연 헬 게이트의 그 미지의 힘을 견뎌낼 수 있을까?
애초에.
강한 힘을 얻는 게 과연 정답이었을까. 그토록 노력하고 노력해서, 힘을 거머쥔다고 해서······ 멸망으로부터 도망치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한 손으로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가르고, 하늘을 뒤집을 수 있다고 해서 세계의 힘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헬 게이트로 향하기 위한 여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의뢰인의 말대로, 그저 지금 당장 가진 힘에 취해서 가진 것을 누리고 가진 것만을 바라보며 그렇게 마지막 삶을 행복하게 보내다가, 죽는 게 더 나은 삶이 아니었을까.
그런 의문이 자꾸만 솟아오르자, 서담은 스스로의 뺨을 두드려서 정신을 차렸다.
‘내가 미쳤나보네.’
너무나도 아득한, ‘멸망’ 그 자체의 의의를 목도하게 되자 인간으로서 한순간 압도되고 말았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는 것도 바보같은 짓이다. 헬 게이트가 애초에 불가해의 영역이라는 것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해온 게 아니던가.
“정신 차리고 가자.”
<네. 곧바로 이동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행선지는 어디라고?”
의뢰인은 대답 대신, 간단명료하게 메시지를 띄워서 보여주었다.
『이세계에 전이 고등학생 ~아무래도 내 마법이 최강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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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를 잠시 살펴본 나는 허공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저기 꼭 가야 되냐?”
<네? 네··· 아직 스토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주 빠르게 에필로그가 다가오고 있는 세계입니다.>
“그···러냐.”
아직 ‘저쪽 장르’에 대해서는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위험하다니 별 수 있나.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의뢰를 승낙했다.
“가자.”
<곧바로 이동하겠습니다.>
< 이 세계의 상식은 뭔가 잘못됐다(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