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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96화 (196/251)

< 주인공들을 위한 세상(2) >

주인공들을 위한 세상(2)

“주인공이라고······?”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주인공 특유의 레벨도 보이지 않고, 에피소드나 스토리의 흐름조차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바로 ‘합당한 개연성’이 그녀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저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는 있었다.

그렇다면, 갑자기 지구에 왜 주인공이 찾아왔단 말인가? 그리고, 저 여자는 왜 헬 게이트의 그 혼란을 온몸에 한가득 품고있는 것이고.

의문이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여자는 나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생에서 주인공인 법이지.”

그건, 퍽 장난스러운 말투였다.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무슨 소리지? 넌 대체 정체가 뭐야?”

“몰라서 묻는 건가? 인간은 뭐든 스스로 알아낼 수 있는 지적 능력조차도 없는가? 그렇다면 실망인데. ‘주인공 사냥꾼’은 조금 다를 줄 알았거든.”

“······뭐?”

순간,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나는 여태껏 내가 주인공 사냥꾼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나마 어렴풋이 풀어서 설명한 사람이 있다면, 아라셀리 정도일까.

설중연 누님이나 테일러에게는 그저 이계에 가서 살인청부를 하고있을 뿐이라고 설명했으니, 내가 주인공 사냥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뢰인 뿐이라는 건데······.

‘설마, 너 말고도 주인공 사냥꾼에 대해 아는 존재가 있는 거야?’

나는 설마하는 마음에 의뢰인에게 물었고, 그녀는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다. 그래. 어디 영원한 비밀이 있던가. 나 또한 주인공 사냥꾼에 대해 잘 모르는데, 이게 나만의 비밀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항상 그런 생각을 달고 살았기에, 나는 조금 더 침착할 수 있었다.

“나는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세계, ‘헬 게이트’에서 왔다. 어렴풋이 짐작을 하고 있었겠지? 후후, 귀여운 인간.”

그래. 헬 게이트에서 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설마 헬 게이트 내부에 저 정도로 높은 지능을 가진 존재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럼······ 넌 헬 게이트의 ‘주인공’인가?”

말이 되지를 않는 전제였다. 헬 게이트는 애초에 모든 차원의 찌꺼기가 모여드는 장소였으니까. 그러나, 만약 헬 게이트조차 하나의 차원으로 취급된다면······ 개연성에 따라, 주인공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좋을대로 생각하라. 어차피, 네가 그 답을 알아내도 의미는 없으니까.”

“의미가 없다니?”

“너는 우리의 완벽한 세상에 방해가 되는 존재다. 너를 살려두는 이유를 전혀 모르겠군.”

살려둬? 누가? 나를?

그러나 생각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그녀가 살기를 풀풀 풍기면서 손을 치켜들었기 때문.

이곳에는 SS랭크 수준의 등급을 가진 영웅들이 많았기에, 제대로 겨룬다면 분명 호각을 이룰 수는 있겠으나 ‘주인공 보정’까지 받은 적을 상대로 얼마나 힘을 낼 수 있을지는······.

콰르릉, 번쩍-!!

그런 생각이 든 순간.

갑작스레, 마른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정말로 더럽게 재수가 없으면 벌어지는 일.

그리고 그 날벼락은, 정확히 저 헬 게이트의 여주인공을 향해 떨어졌다.

푸쉬익···!

벼락에 맞은 탓에 그녀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고작 날벼락 정도로는 저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에게 대미지를 줄 수는 없다.

다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런 중요한 순간에, 주인공에게 재수없는 일이 발생했다고?’

주인공은 세계의 축복을 받는 존재이다. 오히려 날벼락이 나 아니면 이계인들에게 떨어졌으면 모를까, 혹은 축복을 받아 이 상황을 더욱 유리하게 이끌어나갈 스킬을 부여받는다면 모를까.

갑자기 재수없는 일이 발생한다고? 그런 순수한 의문이 든 나와는 달리, 그녀의 안색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자, 잠깐··· 이건 아니잖아요······. 잠깐만요, 저는 진짜, 순수한 의도로······.”

휘이이···!!

싸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아무런 인기척도, 그 어떤 시선도 느껴지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횡설수설하며 허공에 대고 이야기를 했다.

때로는 하늘을, 때로는 땅을, 때로는 구름을, 때로는 산을 보면서.

“이, 건······ 그게 아닌, 데······.”

사방을 향해 말을 걸어댄다.

“미친건가···?”

주인공이? 갑자기?

내가 당황하는 와중, 라칸탈이 손을 치켜들었다. 그 손에는 푸른색의 크리스털이 박힌 지팡이가 들려있었다.

“저 여자를 쳐라.”

그는 은연중에 이계인 사이에서 리더로 통하고 있었기에, 이계의 영웅 혹은 난민들은 그 명령을 곧바로 받아들였다.

비록 대부분이 힘을 잃었거나 전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픈 이들이 많았지만, 추정 랭크 SS의 영웅이 무려 다섯이나 있었으며 그 전투 센스가 어디로 사라지는 건 아니었기에 정신이 어딘가로 나가빠진 저 여자를 상대하는 건 상당히 손쉬운 일이었다.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왜 반격하지 않는 거지?’

방금까지만 해도 사람 하나 가볍게 죽여버릴 것 같은 눈으로 쳐다보던 여자가, 모든 전의를 상실한 채 나라를 통째로 잃은 애국자의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날개가 찢겨나가고, 피부가 깨졌으며, 눈이 파열되었고, 얼굴이 뜯어지는 와중에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그녀는 마지막으로, 눈물을 한 방울 뚝 흘리더니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우리들의 완벽한 신세계에······ 네가 있을 자리는 없어.”

“뭐?”

“왜냐면······.”

그녀는 분노한 듯, 혹은 절망한 듯한 표정으로 마지막 말을 이었다.

“그곳은, 주인공들을 위한 세상이니까.”

서걱!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의 목이 떨어져내렸고.

[렅듖 쁦뙛ᄁᆞᆬ을 사냥하여 레벨이 7단계 상승합니다!]

[재능과 스킬을?귲궞 긞?]

[수명을폭곁훨^허 듦횅]

주인공을 사냥했다는······듯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러나 나는 한동안 그녀의 시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죽었음에도 그 순간 나타나야만 하는 ‘개연성 회수’ 현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저 여자는 주인공이 틀림없다. 죽음과 동시에 내게 ‘개연성’이 흡수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를 축복하던 세계의 개연성은 전혀 그 흐름이 달라지지 않았다.

애초부터 주인공은 없었다는 것처럼.

‘그럼, 저 여자는 대체 뭔데?’

*

사건이 일단락된 이후, 나는 이란 라흐바르의 병문안을 갔다.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에서였다.

찰칵! 차르륵!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밀고서 묻는다.

-헌터 유서담! 적대국을 도운 이유가 있습니까!

이란은 대전쟁 이후, 한국과 척을 진 이후 전혀 교류하지 않던 국가였다. 그러던 와중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 중 한 명인 내가 이란을 도왔으니 기자들이 난리가 난 것은 당연한 일.

심지어 그뿐이랴.

차차, 준비가 모두 끝나면 드러낼 예정이었던 ‘이계인’들마저도 만천하에 드러나버렸다.

-정체불명의 이종족들에 대해 밝혀주십시오!

기자회견을 열어야만 하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헌터 협회에서 지원나온 S랭크의 초능력자 감시반이 기자들의 앞길을 막아세우자, 나는 비교적 쉽게 병원에 들어설 수 있었다.

어디 귀족들이나 사용할 법한 거대한 크기의 1인실에는 소년처럼 보이는 라흐바르가 곤히 누워있었다. 눈감고 있으면 정말 여자로 착각할 정도로 고운 외모였다.

“자네 덕분에 한숨 덜었다. 감사를 표하지.”

“감사 인사는 카메라 앞에서 해주시죠.”

“뭐, 그래야겠지. 그때를 위한 대본도 지금 미리 짜두고 있으니까.”

능청스럽게 말하는 라흐바르의 발목을 힐끗 쳐다본다. 완전히 잘려나간 신체를 회복시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그는 평생을 걷지 못할 것이다.

“신경쓰이나?”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겠죠.”

라흐바르와의 만남은 이번이 두 번째다. 나는 그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다. 지극히 사업적인 이유로 찾아왔으니까. 그러나, 전투 도중 신체를 결손한 헌터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영 불편하다.

그건 내가 여전히 전장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차라리 잘 됐어. 정말로 잘 된 일이지.”

“······예?”

뜬금없는 라흐바르의 말에 내가 답하자, 그가 드물게도 진심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어디로든 갈 수 있게 되었지 않던가?”

“······.”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두 다리를 잃고서야, 비로소 자유를 얻다니.

라흐바르는 이란을 지키기 위해, 모든 삶을 이 땅에 뿌리내리고서 스스로의 자유마저도 통제했다. 그렇게 해야만, 이 땅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는 이란 최고의 지도자였지만, 스스로를 대신할 다른 사람을 구하고자 하였다. S랭크의 초능력자들, 이계인들, 용병들, 닥치는대로 돈으로 고용할 수 있다면 누구든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려 했다.

하지만, 그래봐야 부질없는 짓이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서 이 땅 전체를 감지하고 또 통제하려 해도, 결국 한계는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번 사건 덕분에, 가장 중요한 건 통치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어 백성들에게 안심을 주는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아주 고마운 일이지.”

···대충,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계인들에 대한 미련을 버릴 테니, 알아서 하라는 뜻이 되겠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숙인 뒤, 병원을 나섰다.

여전히 기자들이 바글바글하다. 협회의 헌터들이 막아주고는 있었지만, 그들의 원성을 저지하는 것까지는 불가능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당당히 나가기로 했다.

“예. 저는 이란의 라흐바르를 도왔고, 그에 따른 마땅한 대가를 받았습니다.”

찰칵! 셔터가 터질 때마다, 태양이 번쩍이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려왔다. 그만큼이나 기자들이 많이 모여있던 탓이다.

“이종족에 대한 존재 또한 사실입니다. 저는 지구에 숨어살던 이종족에 대한 소식을 들었고, 그들이 지구의 사회에 동화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스트레스 받게 할 정도로의 과도한 스토킹 행위는······ 제가 결코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내 마지막 말에 몇몇 기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미 이계인들에게 몰래 초능력자를 붙여놓은 기자들일 것이다.

걸리기만 해봐라. 암영미소한테 시켜서 그냥 작살을 내줄 테니까.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오늘 이후로, 길드 어나더 리그는 ‘헬 게이트’ 원정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진짜 목표를 위한 한걸음이다.

*

머나먼 차원.

청연 사립 마법 아카데미······가 존재하는 세계의 대륙, 가장 구석진 시골에서.

아라셀리 라인칼은 자그마한 오두막을 지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유서담의 배려아닌 배려로 인해 거탑을 중도 하차할 수 있게 된 아라셀리는 말레아의 세계에서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휘이이······.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초록색의 파도가 넘실거린다.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들판을 가만히 바라보며, 뺨에 부딪혀 부서지는 시원한 바람과 하나가 되었다.

조만간 교수님이 여행을 시작하면, 아라셀리는 곧바로 감지할 수 있다. 비록 그 ‘시간축’이 심하게 비틀리는 바람에 매번 다른 시간대에 찾아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그를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이다.

그리 생각하며 가만히 눈을 감으려는데.

“······!”

움찔,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난 아라셀리는 황급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뭐지···?’

아주 순간적이지만, 유서담의 기운이 감지되지 않았다. 여태까지는 제아무리 멀리 떨어진 차원일지라도, 유서담의 기운은 항상 자신의 영혼과 연결되어 있었기에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찰나의 순간, 유서담을 느낄 수 없었다.

9써클의 위대한 대마법사에게 ‘기분탓’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가 그렇게 느꼈다면, 정말로 무언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대체······.”

마치 유서담이 아득하게만 느껴져서, 그녀는 그날 밤잠을 설치고 말았다.

< 주인공들을 위한 세상(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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