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공들을 위한 세상(1) >
“우리를 돕고자······ 찾아왔다고?”
“그렇습니다.”
라칸탈이 침묵하자, 유서담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이계인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는 이유로는,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들이 ‘멸망’을 한 번 겪어보았다는 점이 더욱 컸다.
50명도 안 되는 이계인 중에서 멸망을 직접 목도한 자는 열 명도 채 안 된다고 하지만, 그들은 모든 세상이 합쳐지는 과정을 아주 찰나일 뿐이지만 지켜보았고, 그 과정은······ ‘헬 게이트’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물질과 생명체가 뒤죽박죽으로 섞여있는 미지의 공간, 헬 게이트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르는 게 많았기에 어떻게든 정보를 최대한 끌어모아야만 했다.
물론, 이들을 설득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우리의 세계 또한 낯선 것을 배척하고, 밀어내었다. 지구라도 다를 게 있겠는가?”
“괜찮습니다. 저는 당신들을 보호할만한 힘이 있거든요.”
“그대 또한 이계인이 아니던가?”
“예. 하지만 지구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은 이계인이죠.”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지구 어디를 가든, 누구나 저를 알아볼 것입니다.”
이건 치트키나 다름없는 카드였다. 유서담이라는 이름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했고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이름으로 보호를 해주겠다.
“······이계인 치고, 지구에서 상당히 적응을 잘했군.”
어쩐지 의심하는 듯한 그 말투에도 그는 뻔뻔스럽게 나갔다.
“원래 살던 세계의 사회가 이곳과 비슷했습니다. 필사적으로 이계의 언어를 배워서 적응하고자 노력했죠.”
잠시 입을 다물고서 고민하던 라칸탈은 유서담과 눈을 똑바로 마주하였다.
“이계의 낯선 사회에서 살아남았을 정도로 혹독한 사내가 고작 동질감과 동정심으로 우리를 도울 리가 없다. 그대가 우리를 도와서 얻는 이득이 뭐지?”
“사업가처럼 생각하시는군요. 예. 맞습니다. 당신들의 지식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게 필요한 이유는?”
잠시 고민하던 유서담은, 이내 입을 열었다.
“멸망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러자, 라칸탈이 웃었다.
“그건······ 불가능하다. 그대는 밤하늘을 가만히 올려다 본 적이 있는가?”
“예?”
너무 뜬금없는 말이었기에 유서담이 대답하지 못하자, 라칸탈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 고향에서, 나는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다. 해가 지고, 별이 뜨고, 달이 떨어지고, 태양이 소멸하는 그 순간까지. 계속해서 하늘을 바라보았지.”
그는 추억을 회상하듯, 그렇게 중얼거린 뒤 고개를 살짝 떨궜다.
“···모든 별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 세상의 멸망은, ‘순리’다. 결코 우리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어. 받아 들여야만 하는 운명이지.”
“······.”
그건··· 이 남자가, 이미 한 번 멸망을 겪어보았기에, 과학과 기술과 힘을 극한까지 끌어올렸음에도 멸망에게서 도망치는 게 불가능했기에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유서담은 라칸탈의 말에 동조했다.
“당신의 경험은 분명 소중하고 값진 지식일 겁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과 함께하고 싶은 것이고. 하지만······ 그래도 저는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운명을 받아들일 생각따위는 추호도 없으니까요. 당신이 만약 저를 돕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저는 끝까지 제 신념을 밀고 나갈 겁니다.”
본디, 유서담은 멸망이고 뭐고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저 헬 게이트로 진입하여, 레이나 주를 꺼내오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하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자신의 목표가 곧 멸망과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멸망한 세계의 최종 정착지, 헬 게이트.
···아주 다행스럽게도, 자신이 주인공을 사냥하는 데에 성공한 세계는 멸망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외, [연재중단]으로 인해 스스로 멸망에서 벗어난 세계를 생각한다면······ 모든 세계가 반드시 멸망한다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반드시 멸망으로부터 도망치는 방법은 존재한다. 이미 자신은 몇 번이고 멸망으로부터 세계를 구해낸 적이 있었으니까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예전이었다면 세계의 멸망 따위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재능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그였기에, 차라리 세상이 망해버리면 속 편히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구에는 지킬 것이 너무나도 많았고, 더 이상 모든 것이 무너져도 상관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군.”
라칸탈은 힘없는 눈으로 유서담을 바라보더니, 이내 허탈하게 웃었다.
“사별한 내 아내와 똑닮은 눈을 하고 있군. 디멘션 게이트 기술을 끝끝내 발명해내고, 멸망 속으로 사라졌지.”
“···유감입니다.”
“아니. 그 덕에 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대를 만나지 않았는가.”
라칸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는 오십 명 가량의 이계인이 살고있다네. 축하한다. 자네는 한 명의 이계인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군. 이제 마흔아홉 명 남았어.”
“······!”
라칸탈은 희미하게 웃으며 긍정을 표했고, 유서담은 환희에 찬 얼굴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가장 영향력이 강한 자를 설득했으니, 나머지는 그리 어렵지 않을 터였다.
*
50인의 이계인 중 12인은 표류 차원에 남기를 택했고, 38인은 지구로 향하기를 원했다.
12인 중에서는 멸망을 직접 목도한 이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심각한 공포에 사로잡힌 그들은 결코 말로 설득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또한, 인간의 사회에서 결코 적응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는지 일찌감치 포기한 이들도 있었다.
“이대로 밖에 나가면, 가장 먼저 ‘폭주 이계인’이라 불리는 이들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겠지. 폭주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네만.”
“···그들은 자신들이 배웠던대로 행동하고 있을 뿐이긴 하죠.”
애초에 내가 이란으로 파견나온 이유도, 미지의 이계인이 미지의 힘으로 날뛰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계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잘못한 게 없다.
누군가가 위협하면 죽이고, 누군가가 가진 것이 많으면 강탈하는 게 당연한 사회에서 살다왔을 뿐이니까.
다만,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그 법칙을 이해하지 못한 잘못이 가장 컸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이제부터 우리는 그런 폭주 이계인들을 체포해야만 했다.
“나가는 길은 내가 안내하도록 하지.”
라칸탈은 협조하기로 마음먹은 뒤부터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아내의 차원 게이트 기술을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 그저, 이정표 없이 떠도는 법을 배웠을 뿐이지.”
예를 들어, A라는 문을 만들면 C라는 차원으로 통한다. 하지만 다시 문을 열면 D라는 차원으로 통하고, 다시 문을 열면 이번이는 G라는 차원으로 향하게 된다.
원하는 목적지를 설정할 수 없으며, 심지어 장거리 여행을 위해서는 ‘한 사람 이상의 생명’을 제물로 바쳐야만 했다.
실제로, 이곳에 도달하기 직전 라칸탈의 아내가 스스로의 목숨을 바쳐서 그를 살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안타깝지만 라칸탈의 기술은 지구에서 제대로 써먹을 수가 없었다. 마도공학을 발전시킨다면 모를까, 앞으로 수십 년은 더 걸릴 터다.
하지만 그 기술 덕분에 50인의 이계인은 던전과 표류 차원 사이에 길을 내어, 지구인들에게 들키지 않고서 몰래 활동하는 게 가능했다. 충분히 고마운 기술이었다.
“여긴······.”
“지구에서 ‘던전’이라고 부르는 세계입니다.”
라칸탈의 옆에 서있던 붉은 피부의 사내가 말하였다. 그는 놀랍게도 화산에서 태어난다는 전설의 종족 ‘아구마니우스’였는데, 비비안타 제국의 지식으로 따지자면 ‘최강의 종족’이라 불러 마땅한 종족이었다.
비록 전설과는 달리 몸집이 굉장히 작았지만, 어린 나이에도 상당히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낯선 세계인 이곳까지 와서도 무려 SS랭크 수준의 힘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던전이라···.”
“하지만 괜찮습니다. 저와 동료들이 힘을 합쳐서, 조금씩 안전구역을 확보해놓았기 때문이죠.”
“···음?”
SS랭크 수준이면 어지간한 던전도 혼자 공략할 정도는 될 텐데 동료들과 힘을 합쳐서 움직인다니?
이윽고, 협회의 헌터들이 던전 에너지 측정기로 이곳의 파장을 체크하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유, 유서담 헌터님? 여기 던전의 랭크가 SSS+인데요······?”
“······.”
즉, 저들은 던전의 보스까지 모조리 처치한 뒤 던전의 형태를 유지하는 ‘코어’만을 남겨두고서 이곳을 통로로 활용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겠다.
이란의 최대 골칫거리 중 하나인 SSS+급 던전을 이계인들이 처리해놓았을 줄이야. 하긴, 다른 차원에서는 날고 기던 영웅들이 몇 명이나 있는데, 이 정도도 못해서야 말이 안 되기는 했다.
“우선, 저희는 나가서 조용히 움직일 겁니다. 여러분을 다짜고짜 사회에 소개할 수는 없으니 충분한 시간을 가진 뒤, ‘기자회견’이라는 방법을 통해 세계적으로 여러분의 존재를 공개할 생각이거든요.”
던전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나는 그들에게 내 생각을 설명하려 했다. 이계인을 받아들이기에, 세상은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위이이잉···!!
갑작스레, 던전의 파장이 기묘하게 휘어지기 시작했다. 던전 측정기 또한 빨간 불빛을 번쩍이며 경고음을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어떤 위화감을 느꼈으나 거기에 신경쓸 새가 없었다.
“허, 헌터 유서담! 이, 이거··· 던전 동기화 현상입니다!”
“뭐라고···?”
이렇게 갑자기, 던전 동기화가 발생한다니.
바닥은 이미 흐릿해지고 있었고, 주변 풍경이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현실’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미친, 여기 몇백미터 상공이잖아?”
이대로 있다가는 추락한다. 나를 비롯하여 소수의 영웅 출신들은 살겠지만, 강제로 차원을 유랑하며 모든 힘을 잃고, 심지어 장애를 앓고있는 이계인들은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마법을 사용하여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화분을 호출하려는 그때, 라칸탈이 손가락을 튕겼다.
펄럭···!
그러자, 우리들의 발 아래에 날개 달린 새하얀 말이 소환되었다. 그것들은 능숙하게 서른여덟의 이계인들과 나를 포함한 다섯의 헌터를 태우고서 허공을 부유하였고, 이내 현실이 눈앞에 드러났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 이슬람 사원의 상공에서 나는 고개를 내려보았고.
······그곳에는, 온갖 생명체가 뒤죽박죽 섞인 듯한 기묘한 형태의 여인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
그녀는 나를 바라보더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네가, 왜 거기에서 나오는 거지?”
나는 저 여자를 모른다. 회색의 강철처럼 매끈한 피부에 날카로운 날개를 가진 저런 종족은 듣도보도 못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녀가 말하는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꽤 소름끼치는 ‘위화감’이었다.
마치,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을 해버린 것처럼.
“아니. 아니야. 차라리 잘 됐어. 후후, 나답지 않게······.”
그 여자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이윽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모든 것을 꿰뚫는 듯하여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게 만들었다.
그에, 나는 본능적으로 스킬 [만물을 냉정한 시선으로(B)]를 발동하였다.
그리고.
“우욱···!”
나는 헛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저 여자는 대체······!’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존재였다. 그것이, 스킬로 인해 내 두 눈동자에 선명히 각인되었다.
그리고, 나는 저런 것을 언젠가 또 본적이 있다.
바로 헬 게이트에서였다.
‘하지만······ 저 여자는, 너무 정상적으로 생겼는데······?’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헬 게이트와 똑같은 성질을 가진 여자가 존재하는지, 그런데 어떻게 ‘무언가가 뒤섞였다’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 건지.
여자는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미안하지만, 조용히 죽어줘. 네 존재는 내가 살아가는 ‘완벽한 세계’에 방해가 되거든.”
그리 말하며 그녀가 주먹을 움켜쥐었지만, 무언가가 튕겨 나가는 느낌이 들며 아무런 효과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 여인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떠올랐다.
『쇰뺩허 잘 궗00^ 왔땜1』
#허듦 #렁처횅 #엠궉귷
······비록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그건 틀림없는 ‘주인공 해시태그’였다.
< 주인공들을 위한 세상(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