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아인의 땅을 위하여(2) >
-긴급 속보입니다! 현재 이란의 영공(領空)에 위치한 SSS+급 던전의 ‘동기화’가 감지되었다고 합니다!
-닥터 라이너. 그게 사실입니까?! 저 던전 동기화 현상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발생시킨 것이라니요?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현재 이란의 해공관할권에 의해 타국의 헌터가 출동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접경국이 침묵······.
한편, 던전 동기화 현상은 전 세계에서 동시에 관측되었다. 분명 수십 년은 더 기다려야 동기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던전이 갑작스레 움직이기 시작하자, 전문가들이 바삐 움직여 미디어 매체를 통해 의견을 전파했는데, 대부분이 동일한 내용이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던전을 브레이크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대체 왜 그러느냔 말인가?
투두두두!!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보내드립니다.
이란 내부에 위치한 기자들 역시 바삐 움직여 소식을 전달하였다. 최소 C랭크 이상의 강체 능력자로 구성된 ‘위험지역 급파 기자’들이 이 현상을 촬영하기 위해 나선 것.
-저길 보십쇼! 이란의 라흐바르가, 최초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카메라에는 바위기둥을 타고 치솟은 라흐바르의 모습이 고화질로 담기고 있었다.
검은색의 생머리칼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그 예쁘장한 소년은 역대 라흐바르와는 상당히 다른 외견을 가지고 있었다. 지나치게 젊은 외모에 복장과 능력이 아니었다면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누군가와 싸우고 있습니다. 저건, 대체 뭐지요?
쿠우웅!
대지에서 다섯의 거인이 일어났다. 짐승의 형상을 가진 그 거인들은 땅속에서 온갖 광물을 분석하고 또 합성하여 최강의 방어력을 자랑했으며 심지어 라흐바르와 연결만 되어있다면 무한한 재생력까지 보여줄 수 있는 괴물들이었다.
비록 라흐바르의 얼굴은 처음 보았지만, 저 ‘능력’ 자체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본인이 힘을 쓰지 않아도 먼 거리까지 알아서 움직이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소환수’ 타입의 능력이었으니까.
물론, 실제로 소환수는 아니었지만······. S랭크에 육박하는 거인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위협적이지 않은가?
그 거인이 무려 다섯이라니!
라흐바르는 누군가를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키가 3m에 육박했으며 회색의 피부가 강철처럼 매끈하였고, 날카로운 회백색의 날개 한 쌍이 펄럭이고 있었다.
마치, 인간을 닮은 그녀의 모습에 기자들이 순간 숨을 들이켰으나 이내 침착하였다.
-인간형 괴수. 인간형 괴수입니다! 현재 라흐바르가 인간형 괴수에게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과연, 전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그때, 인간형 괴수가 손을 가볍게 휘저었고.
뚝!
거인 중 하나의 목이, 그대로 썰려나갔다.
깔끔한 즉사였다.
-마, 맙소사······!
*
라흐바르는 표정을 굳혔다. 아직 기력은 충분하니, 거인쯤이야 얼마든지 복구시킬 수 있다. 하지만 상성의 문제였다.
대지계열 초능력은 공격과 방어, 탐색 등 다방면으로 활용이 가능하며 그 외에도 능력을 실체화시킬 수 있다는 점으로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어디에서나 환영받는 능력이다.
하지만, 단 하나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공중전에 취약하다는 것.
비록 자신은 SS랭크에 도달하여 거대한 가시를 소환하거나 바위를 날리는 등, 공중전에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게 되었지만 결국 동급의 능력자를 만나면 그 상성 때문에 밀리게 되는 것이다.
비록 저 여자 또한 ‘던전 동기화’를 위해 저곳에서 멀리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 거인들의 사거리가 닿는 위치에서 날아다니고 있었지만 그래도 불리한 것은 여전했다.
콰드드득!!!
대지에서 날카로운 가시 수십 개가 꽈리를 틀며 여인괴수에게 돌진하였지만 그녀는 여유롭게 날아다니다가 날개를 휘젓는 것만으로도 그것들을 모두 잘라냈다.
대지에서 송곳이 튀어 올라 총알보다도 빠른 속도로 쏘아졌으나 모두 튕겨나갔고, 대지가 상공 300m 높이까지 거대하게 치솟더니 입을 쩌억 벌려서 그녀를 삼키려고 했으나 그대로 지반이 무너지며 실패했다.
그때.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고서 황급히 고개를 젖혔다.
그러자 하늘에서부터 그녀의 목을 노리며 스쳐 지나가는 날카로운 흑색의 송곳. 지반에 숨겨져 있던 광석을 가공한 에테르 송곳이었다.
‘공중에서도 컨트롤을 할 수 있나?’
그녀는 흥미로운 눈으로 마치 날개가 달린 것처럼 허공에서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날카로운 줄기를 바라보았다. 짙은 흑색의 그 물질은 탄소 성분을 띠고 있었는데, 내부에서 무한히 에너지가 들끓고 있는 게 느껴졌다.
슬쩍 뺨을 훑어보니 핏물이 흘러내렸다. 고작 스친 것만으로도 상처가 난 것이다.
물론, 곧바로 재생되었지만.
일곱 개의 거대한 흑색 송곳들은 라흐바르의 수족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욱 세밀할지도 모르겠다.
서로가 엉키지 않게 조절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여인괴수를 타격함과 동시에 거인들이 그녀를 압박한다. 심지어 대지에서부터 자꾸만 농구 경기장 크기의 지반이 솟아올라 자꾸만 그녀를 가두려고 하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마치, 한 명이 아닌 군대를 상대하는 듯한 이 느낌.
상당히 즐거웠다.
-노, 놀랍습니다! 라흐바르가 역대 SS랭크의 초능력자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지구상 존재하는 38인의 SS랭크 초능력자들은 동급인 SS랭크의 무림인들보다 훨씬 더 출력이 강하다.
물론 그들이 단순히 1대1로 맞붙는다면 무림인이 승리하겠지만, 단순히 ‘출력’만을 놓고 보자면 동급의 마법도, 무공도, 그 어떤 것도 초능력에 미칠 수는 없다.
순수한 괴물의 에너지를 집약하여, 오로지 파괴만을 위해 가공한 힘이 바로 초능력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초능력자 사이에서도 라흐바르만큼의 능력을 선보인 자는 여태 아무도 없었다.
S랭크의 능력치를 지닌 거인 다섯을 조종하며, 추정 랭크 SSS의 괴수의 피부조차 갈라놓을 수 있는 날카로운 송곳을 공중에서 컨트롤하며, 심지어 본인은 지반을 자유자재로 조종하기까지 하다니.
물론······ 그러기 위해, 그는 자유를 포기했으며 대지에 뿌리를 내린 채 수십 년을 갈고 닦으며 준비해온 것이었지만, 라흐바르의 순수 능력치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마치 천재지변이 홀로 그 자리에 서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직 싸움은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었다.
그녀가 두 눈을 뻔쩍 뜨자, 갑작스레 광선이 발사되었다. 황급히 거인 하나를 앞에 세워 막아보았지만 역부족. 자신의 생명력 일부를 투자해 뿌리를 내렸던 지반의 일부를 소모해야만 간신히 막아낼 수 있었다.
‘이 무슨······!’
순수한 에너지의 집약체가 이 정도의 위력이라니.
그녀가 가볍게 손짓할 때마다 날카로운 바람이 날아가 바위가 뎅겅뎅겅 썰려나갔고, 에너지가 절단되어 공중에서 기동하던 지반이 힘을 잃고 떨어졌다.
심지어, 라흐바르는 회피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에 모든 공격을 반드시 수비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럴 때마다 기력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깎여나갔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다. 절대적인 방어력을 자랑하는 다섯의 거인과 절대적인 공격력을 자랑하는 일곱의 송곳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이 대지에 ‘뿌리’를 수십 년 간 내리고 있었던 덕분이었으니까.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여태 쌓아두었던 모든 것들이 소멸되며, 그것은 곧 패배를 의미한다.
‘조금 더, 조금만 더······.’
라흐바르는 이를 악물고서 기력을 포함해, 여태 자신이 쌓아두었던 에너지를 모두 끌어올렸다. 원래는 훗날 터져나올 게이트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거늘, 고작 침입자를 상대로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지금은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흐읍!”
라흐바르는 힘껏 양팔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가느다란 줄 알았던 그 양팔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운동을 통해 자연스레 만들어진 근육은 아니었다. 강력한 에테르 에너지로 인해, 신체에 자연스레 축적된 근육이었다.
쩌저, 쩌어억······!!
뒤늦게 여인괴수도 뭔가를 눈치채고서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오······?”
그림자가, 드리운다. 먹구름 하나 없는 창창한 날씨였거늘 보름달이 전부 가려졌다.
하늘에······ 거대한 섬이 떠있었다.
어느 틈에? 설마, 싸우는 내내 사방에서 지반을 끌어모아 하늘에 띄워두었단 말인가? 그리고 지금 막 그것들을 모조리 하나로 모아서, 거대한 덩어리로 만든 것이고.
“이건 좀 놀라운걸······.”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침묵하였다. 한 명의 인간이 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압도적인 광경에 말을 잃은 것이다.
‘이 땅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인생을 이 땅에 바쳤다. 이 땅을 지키기 위해, SS랭크라는 사상초유의 힘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의 자유를 옭아매었다.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삶. 모니터 너머로밖에 지켜볼 수 없는 백성들의 고통과 죽음을 보며 그는 점점 더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일생을, 수명을, 스스로의 생명과 감정과 인연과 권력과 힘과 권리를, 그 모든 것을 대가로 바치고서 일궈놓은 것이다.
이란, 아리아인의 땅을 위하여.
영혼마저 바칠 준비가 되어있었다.
“······떨어져라.”
이내 라흐바르는 팔에 쥔 힘을 풀었고, 그것은 여인괴수를 향해 자연 낙하하기 시작하였고.
“미안하지만······ 시간이 다 돼서, 장난은 여기까지 하도록 할게?”
마치, 애완동물에게 말을 거는 듯한 다정한 목소리로 입술을 뗀 여인은 빙그레 웃으며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쩌적-!
이슬람 사원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섬이, 정확히 두 동강이 나버렸다.
“욱···!”
그 반동으로 심각한 내상을 입은 라흐바르가 비틀거리며 피를 토해냈다.
‘어떻게······!’
자신의 생명력을 담은 지반을 모아서 만든 것이기에, 그 강도는 지구상 그 어떤 물질과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할 터였다.
그런데, 저토록이나 간단하게 잘려나가다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라흐바르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으니, 사실 여인괴수 또한 저 섬 자체를 동강낼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아주 「우연히」 라흐바르의 실수로 인해 섬에 나있던 자그마한 균열을 발견하였고, 그 틈새를 공략했을 뿐이다.
그 우연, 한 끗 차이 때문에 라흐바르는 패배하였다.
서걱!
이윽고 여인괴수가 팔을 휘두르자, 라흐바르의 발목이 잘려나갔다. 툭, 중심을 잃은 그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뿌리를 잃은 다섯 거인과 일곱 송곳 역시 마찬가지. 역대 최강의 방어력과 최강의 공격력을 뽐냈던 SS랭크 초능력자의 압도적인 무구들이 모조리 소멸해버렸다.
휘이이잉······.
끝없이 추락하며, 라흐바르는 질끈 눈을 감았다. 결국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애초부터, 승산조차 없는 상대였다.
저런 존재가 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왔는가. 그런 원망과 의문에 앞서, 자신이 패배한 뒤 던전 동기화로 인해 죽어나갈 백성들이 더욱 걱정되었다.
쿵···!
마침내 바닥에 추락한 것인지, 아득한 충격이 느껴져왔다. 이 정도로 SS랭크의 초능력자가 죽지는 않겠지만, 그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눈을 뜨니, ‘던전 동기화’가 마침내 시작된 것인지 거대한 규모의 게이트가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역사상 몇 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SSS랭크의 던전 동기화 현상.
마침내 여인은 힘껏 주먹을 움켜쥐었고, 폭발적으로 게이트가 벌어지며.
···그 안에서 날개 달린 새하얀 말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위에 탑승해있는 자들은 어떻게 보나 ‘인간형’으로 보였다.
‘어······?’
던전 내에, 저런 괴수가 존재하던가? 아니 애초에··· 인간형태의 괴수가 저렇게나 많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떤 이는 인간처럼 생겼으면서, 뾰족한 귀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이는 갈색 피부에 키가 엄청 작았고, 어떤 이는 초록색 피부에 덩치가 어마어마했으며, 어떤 이는 인간과 똑같은 모습이었고, 어떤 이는 팔이 네 개가 달리는 등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되 인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
유서담이 있었다.
-······던전 안에서, 헌터 유서담이 신비로운 병력을 이끌고 나타났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그가 이란의 라흐바르를 돕기 위해 나타난 게 틀림없습니다!
그 모습이 일파만파로 전파되었으며, 라흐바르 또한 안심한 듯한 표정으로 그대로 눈을 감았다.
‘안심하고, 잠깐은 잘 수 있겠군······.’
···그 와중, 유서담은 창백하게 물든 얼굴로 멀거니 지상을 내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 이게 다 뭔 일이여······.”
< 아리아인의 땅을 위하여(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