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아인의 땅을 위하여(1) >
SS급 던전, ‘기묘한 기둥에 매달린 둥지’.
···그곳의 보스룸에서.
유서담 일행은 도시락을 까고 있었다.
후루룩!
짜장면을 들이키는 유서담을 바라보며 헌터 협회의 S랭크 헌터 네 명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태 10년이 넘도록 함께 해왔던 동료들이었기에, 눈빛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했다.
‘우리 진짜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거 맞아?’
‘위, 위험한 거 아니겠지?’
‘몰라······. 난 몰라······.’
‘이··· 이 상황에서 저분은 밥이 넘어간단 말이야······?’
꿀꺽, 침을 삼키고서 아래쪽을 쳐다본다. 이 던전은 매우 특이한 구조로서, 거대한 기둥을 타고 위로, 더 위로 향하는 방식이었는데 마침내 그 꼭대기에 보스가 존재한다는 컨셉이었다.
SS급 던전이라.
국가 차원에서 대규모 공격대를 구성하고 치밀한 전략과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야만이 간신히 클리어가 가능한 수준이다.
그런데.
지금 유서담은, 그 보스룸의 꼭대기에서 짜장면을 후루룩 들이키고 있었다.
우워어어어-!
저 아래에서 난동부리는 보스를 가만히 내버려 두고서.
“안먹고 뭣들 합니까? 거, 소시지 안 먹을 거면 저 주십쇼.”
“아, 넵!”
아예 다른 사람의 소시지까지 뺏어가서 먹는 유서담을 향해, 조심스레 묻는다.
“저······ 저건 그대로 내버려둬도 되나요?”
기둥의 가장 아래쪽에는, 거대한 바다 혹은 호수같은 것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끝도 없는 망망대해. 검은 먹물로 들어찬 것만 같은 그 해수면 위에, 보스가 둥둥 떠있다.
원래부터 그런 건 아니다.
보스는 본디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는데, 유서담이 교묘하게 유인해서 떨궈버린 것.
“예. 저러고 조금 있으면 익사할 겁니다. 그때 에테르 크리스털만 회수해가죠.”
“서, 설마요······.”
협회의 헌터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질색하였지만, 이내 유서담은 바닥에 드러누워서 낮잠을 청했다.
그러기를 한 시간.
팔목에 차고있던 던전 캐치 디바이스가 [던전 공략이 완료되었습니다.]라며 던전의 모든 마력이 사라졌음을 알렸다.
정말로, 보스가 익사한 것이다.
“오, 이제야 죽었네. 갑시다.”
“······.”
네 명은 창백한 얼굴을 한 채로 유서담에 에테르 크리스털을 회수하는 장면을 지켜보았고, 그대로 던전을 빠져나왔다.
특이하다. 그리고 이상하다.
유서담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다. F랭크 헌터이던 시절부터 숱한 전장을 헤쳐나온 불패의 화신.
비록 예전에는 F랭크라는 이름에 의해 가려져서 명성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재 지구상 가장 유명한 헌터가 된 지금은 그에 대한 일화가 인터넷에서 폭풍처럼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일명, F랭크 당시의 유서담 목격담.
-그는 매우 전략적이고 치밀한 사내다. 결코 자신의 등을 내어주지 않는다.
-실패? 그런 단어는 그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성공하는 전략만을 사용한다.
-불가능해 보이는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면, 곧 가능해질 것이다.
······물론, 대부분이 헛소리였다. 실제의 F랭크 유서담은 D랭크 괴수 하나 잡겠다고 며칠밤을 지새웠고, 전략이고 뭐고 저격 포인트에서 날밤 까다가 괴수가 등장하는 순간 머리에 대물탄환을 박아넣는 등으로 사냥을 해왔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미지는 결국, 현재의 유서담이 S랭크였으며 언제나 성공하는 이미지만을 보여줬기에 그저 그를 좋아하는 네티즌들이 만들어놓은 것이라는 뜻.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몰랐고, F랭크 유서담이라는 존재조차도 몰랐던 협회의 헌터들은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치밀한 두뇌와 전략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유서담이, 이런 잔머리꾼이었다니······.’
한번도 제대로 던전을 돌아본 적이 없다. 대부분은 꼼수를 써서, 꼼수가 안 통하면 꼼수를 만들어서라도, 최대한 몸이 편하도록 노력한다.
유서담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지는 것을 느끼며, 그들은 SS급 괴수의 에테르 크리스털을 회수했다.
“그나저나, 어째서 갑자기 SS급 던전에 들어오신 겁니까?”
그의 능력은 특별하다. 비록 능력치는 S랭크 수준에 불과하지만, 다양하게 구사하는 마법과 스피드 계열 능력자보다도 더욱 기민하고 빠른 기동성, 그리고 S랭크 수준에 달하는 육체 능력과 능수능란한 검술까지 합치면 SS랭크 수준을 넘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SS급 던전을 갑작스레 공략하지는 않을 터다.
“네.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유서담은 허공을 바라보았다. 헌터들은 어째서인지 던전이 소멸되지 않자,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던전이 왜······?”
“제가 소멸되지 않도록 붙잡고 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유서담은 차원계 기술까지 갖추고 있던가. 완전히 닫혀버린 대균열에서도 송환했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없었으나 설마 던전의 소멸마저도 붙잡을 수 있을 줄이야.
“여기에 ‘단층 차원’이 있습니다.”
표류 차원, 떠돌이 차원 등 부르는 이름은 다양하다. 그것들 모두 유서담이 지은 이름이기 때문.
그의 길드 아지트인 공중정원이나 무림맹의 본거지 도깨비들의 도원처럼, 지구 근처에는 수많은 떠돌이 차원이 존재하였고 그것들은 지구의 과학기술로는 알아채기도,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유서담은 가능했다.
“암영. 여기가 확실한가?”
그가 허공에 대고 묻자, 그의 그림자 속에서 검은색의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기에, S랭크의 헌터들이 기겁하였다.
‘마, 맙소사!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깔끔한 인상의 미남, 암영미소는 유서담에게 고개를 숙였다.
“예.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통로’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음······. 알았어.”
이윽고, 유서담은 극소량의 수명을 소모하여 허공에 손짓하였다. 그러자 황금빛으로 공간에 균열이 일어나며, 마치 게이트같은, 그러나 게이트처럼 불길하지는 않은··· 공간의 통로가 나타났다.
“자, 갑시다.”
유서담은 가장 먼저 그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부터, 이계인들을 만나 ‘멸망’에 대해 물어볼 차례였다.
*
공기조차도 싸늘하게 내려앉은 저녁, 이란의 최고지도자이자 최고의 성직자라고도 불리는 라흐바르는 입을 꾹 다문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시력이 있었지만, 시력에 의존하지는 않았다.
대지에서 꿈틀거리는 생명력, 지맥, 그 흐름 하나하나가 곧 그의 심장이 되고 눈이 되었으며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비록······ 지금은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완전히 뿌리를 내리고 있어, 움직일 수 없다지만 불편한 점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니. 딱 하나 있다면.
‘던전······.’
이란에는 방치되어있는 SSS랭크의 던전이 다섯 개나 있다. 공략이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지만, 라흐바르가 움직이지 않으면 공략 확률은 현저히 낮아진다.
결국,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인데······. 외부 헌터들이 내거는 조건을 지독하기 짝이없었고, 결국 그 모든 거래를 거절한 뒤 던전을 방치한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던전이 무너지고, ‘동기화’가 일어날 경우 더 이상 이 땅은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리겠지만 아직까지 그럴 징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관측에 따르면, 최소 수십 년은 더 얌전히 있을 것이라고 하니까.
그러니까, 지금 당장 자신은 여전히 이 자리에 앉아서 이 땅을 수호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다.
“······!”
움찔. 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손 끝에 자꾸만 경직이 일어났다.
감각이 차단된 어딘가에서,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그 멀지만 가까운 그 장소는······.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그는 서둘러 감각을 4개의 SSS급 던전과 1개의 SSS급 게이트에 집중시켰다. 비록 그 내부까지 닿지는 못해도, 인적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낼 수는 있었기에.
직후, 라흐바르는 고개를 높이 쳐들었다.
SSS+급 던전 중 하나는, 다름아닌 이 ‘사원’에 위치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던전이······.
“붕괴하고, 있다고······?”
즉, ‘던전 동기화 현상’이 발발하고 있었다.
“어째서······?”
*
그녀에게 이름은 없다. 애초에, 서로를 구분하는 데에 이름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름이란 결국, 서로를 구분지어서 부르지 않으면 서로를 구별하지도 못하는 ‘미개 종족’들이나 짓는 것이었으니까.
그녀는 금색의 눈동자를 희번뜩 뜨고서, 짙은 검은색의 입술을 핥았다. 마치 강철에 덮인 것처럼 단단한 회색의 피부에 검은색의 줄기같은 것이 매끄럽게 빛난다. 그녀의 ‘에너지’가 힘을 발산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녀는 비록 완벽한 종(種)으로서 태어났지만, 헬 게이트의 완벽한 환경과 완벽한 공기가 존재하지 않으면 그 힘을 최대로 이끌어낼 수 없다. 인간이 산소가 없는 장소에서 몇 분 버티지 못하고 죽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완벽’했고, 환경이 달라진다 한들 조금 약해질 뿐 죽지는 않는다.
다만, 약해진 힘만으로는 그 남자를 처치하기가 살짝 곤란해 보이기에······ 던전의 힘을 빌렸을 뿐.
마침 바로 근처에 압도적인 에너지 파장을 지닌 던전이 있었고, 그녀는 그것을 살짝 건드렸을 뿐이다.
헬 게이트 내부에서 태어난 종족은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아니 공간 그 자체를 다루는 힘을 지니고 있었기에 던전을 무너뜨리는 것쯤이야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하늘 높은 곳에서, 인간이 세운 건축물을 내려다본다. 아무리 높게 세운다 한들, 결국 인간은 신에게 닿을 수 없거늘.
왜 하등 종족들은, 자꾸만 신에게 닿고자 발악하는 것일까?
그래봐야 결국 ‘실험체’일 뿐인데.
결코, 신에게 닿을 수 없는데.
···우드득! 꾸드득!!
파지지직!!
새카만 밤하늘에서 천둥벼락이 내려치기 시작하였다. 다시보니, 먹구름이 하나도 없다. 그건 그저··· 에너지의 충돌로 인해 일어난 격렬한 파장이었다.
세상에 SSS+급의 던전이 발생한 전적은 꽤 많다. 그중 일부가 ‘동기화’되어 그 땅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했고. 인간들은 이제 재앙에 대비할 줄 안다.
과연,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까?
“후후, 어디 한 번······.”
지켜보는 보람이 있겠어, 그렇게 중얼거리려는데.
“넌 누구지?”
바로 지척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따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긴 흑발을 가진 소년.
이 땅의 지배자가, 사원의 꼭대기에서부터 불쑥 솟아오른 기둥에 탑승한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냐고 물었다.”
“흐응······.”
안타깝게도, 그녀는 지구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다. 파리가 앵앵거리는 것을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원숭이나 강아지가 행동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 정도라면, 인간도 알아들을 수는 있지 않던가?
그녀는 저 눈앞의 소년, 아니 사내가 자신에게 상당히 적대적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리고, 라흐바르 또한 저 여자의 능력에 대해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었다.
‘능력으로 던전을 억지로 개방하고 있군······. 조금만 더 늦으면, 던전이 열린다.’
하지만, 저 여자를 막을 수만 있다면.
던전이 붕괴되는 현상을 저지할 수 있다.
꾸드드득, 꾸드드드드득!!
대지의 지형 자체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사방에서, 거대한 형상을 가진 무언가가 ‘조각’되었다. 거인, 용, 사자······ 다양한 짐승의 형상을 가진 그것들은 흡사 아파트 한 채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었고, 하나하나가 S랭크의 수준에 맞먹었다.
그것은, 라흐바르가 평생 동안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며 자신의 기운과 생명을 대지에 스며들게 하여 조각해둔 것으로, 이란의 최종병기였다.
‘이럴 때를 위해 사용하려고 조각해둔 것들은 아니었지만······.’
구워어어어!!! 짐승들이 괴성을 지르자, 온 세상이 진동하였다. 미처 대피 명령을 내리지 못해 주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이 방법밖에는 없다.
“어머, 귀여운 짐승이 흙장난을 치네?”
그녀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제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짐승이라 한들, 결국 ‘개연성’에 간섭할 수 있는 힘을 지니지 않는 이상 헬 게이트의 종족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러니까, 저 자그마한 하등 생물은··· 그저 놀잇감으로 가지고 놀기에 충분한 수준에 불과했다.
< 아리아인의 땅을 위하여(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