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계에서 찾아온(3) >
대전쟁 이후의 이란은, 참으로 삭막한 나라가 되었다.
대화가 줄어들고, 총탄과 비명만이 사운드를 가득 메우는 곳. 행복과 사랑을 흥얼거리던 노래와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침묵하였고 그저 죽음과 고통만이 이 세상의 전부를 독차지하는 듯싶었다.
이계?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어디에서는 마법이니, 마도공학의 개발이니 하면서 더 살기 좋은 세상, 더 발달한 세상을 꿈꾸고 있지만 당장 대륙 반대편을 돌아보기만 해도 여전히 낡은 납탄 따위에 의지하여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패잔병들이 내일의 태양을 포기한 채 살아간다.
나는 현재 이란에 입국해있는 상태였다. 입국 절차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란 최고지도자이자, 최고성직자라 불리기도 하는 라흐바르가 우리의 출입을 허락했으니까.
헌터 협회에서 차출된 인원은 총 넷으로, 모두 S랭크의 헌터였다.
두 명의 여인과 두 명의 남성으로 구성된 그들은 나름 혹독한 전장에서 10년이 넘도록 구른 베테랑들이었다. 이전이었다면 비록 내가 17년차 헌터라지만, 등급의 차이 때문에 ‘존대를 받지만, 그렇다고 하대하기는 어색한 후배’들이었겠지.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나 또한 비공식적으로는 S랭크였고, F랭크의 배지를 허리춤에 달고 있기는 했지만 그들 또한 내 명성을 존중해주었다.
“반갑습니다. 유서담 헌터, 꼭 한 번 뵙고 싶었는데 같은 임무를 수행하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소문이 아주 자자합니다.”
나는 딱히 대꾸하지 않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내 업적의 대부분은 괴수 사냥이 아닌 사업쪽에 치우져 있다.
헌터로서 세운 대단한 업적이라고 해봐야 헬 게이트 참여나 SSS랭크의 던전에 들어가봤다는 점일까. 물론 그것만 해도 대단하기는 하지만 S랭크의 베테랑 헌터들이 깍듯하게 존경할만한 정도는 아니다.
단순히, 내가 마법을 세계화시켰기에. 마도공학을 발전시켰기에. 무공을 재구성하여 대괴수전검술을 탄생시켰기에. 그리고··· 그 외 여러 가지 등등.
······듣고보니, 대부분은 내가 아니라 길드원들이 처리한 사안인 것 같지만 아무튼 모두 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업적들이었다.
즉, 저들은 헌터 유서담이 아닌 길드 마스터 유서담을 존경하고 있는 것이다.
뭐······. 나쁘지는 않다. 누군가에게 존경받는다는 건 어쨌든 기분나쁠 일은 아니었으니까.
협회의 헌터들과 나를 태운 트럭 차량은 황량한 이란의 도로를 가로질렀다. 안내 표지판은 다 뜯어진지 오래였고, 도로도 움푹 패인 채 보수가 되지 않아서 지프차가 자꾸만 덜컹거렸다.
그나저나, 전기차를 넘어서 에테르 차량이 보편화 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화석연료 차량을 쓰는 건지.
휘이잉······!
어느덧 시내로 진입하였지만, 인기척은 드물었다. 혹은, 다 무너진 건물의 틈새에 숨어있다고 표현하는 게 옳겠지.
무너진 사원에는 반쯤 찢어진 팻말이 너덜너덜 매달려 있다. 30년도 더 되어 보이는 것이었기에 글귀를 제대로 읽을 수는 없었으나, [···한때 사랑을 사랑했던 우리를 기억하라]라는 문장이 유난히도 바람에 나부꼈다.
“저기네요.”
다 쓰러져가는 도시를 넘어서자, 이번에는 조금 더 깔끔한 도시가 나왔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깨에 총기류를 한 자루 매고 다녔다.
“살벌하네요······.”
“총을 무장한 사람이 많은 건 좋은 의미가 아니긴 하지.”
“그렇죠? 언제 뭐가 터질지 모른다는 거니까.”
“아니. 그거 말고.”
“네?”
남성 헌터, 릭의 말을 부정하고서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총을 무장한 자가 많다는 건, 초능력자가 적다는 뜻이니까.”
“아······.”
현대에 들어서, 초능력자들은 총기류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처럼 특수 개조 탄환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그러나 이곳을 돌아다니는 사람 중 70%는 총기류를 무장하고 있었고, 전투병력 대부분이 무능력자라는 사실을 뜻했다.
뭐······ 그렇다고 이란 전체가 약하느냐면, 그것도 아니긴 하다. 10%도 안 되는 그 초능력자들의 대부분이 A랭크 이상이며, S랭크의 초능력자 대다수가 라흐바르의 직속 병력으로 이 국가를 지키고 있었으니까.
라흐바르 본인 또한 어떠한가.
그 압도적인 힘을 경험한 적이 있는 나는 ‘사원’의 앞에서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들어오시오.)”
변역기를 통해 페르시아어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들려왔다. 나는 주인공 사냥꾼 보정 및 페르시아어를 알고 있었기에 굳이 번역기를 쓸 필요는 없었지만, 다른 헌터들은 아니었으니까.
총 대싱 기묘하게 생긴 지팡이를 들고서 사원을 지키고 있는 병력들을 따라 이동하며 이슬람 사원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중동의 이슬람 사원은 대개 요새의 성벽처럼 콱 틀어막힌 구조였는데, 공간을 긴장감 없게 넉넉하게 배치해두어 천국과 이승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했다고 한다.
하늘을 향하려는 듯 솟아있는 고딕 양식의 그리스도교 대성당과는 사뭇 차이점을 보인다.
저 멀리, 예배당에서는 예배자들이 예배를 인도하는 자를 따라서 일어서고, 절을 하며, 무릎을 꿇는 등의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예전에는 여기에 출입하는 건 꿈도 못꿨는데······.’
이 근방에서 살았다지만, 사원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대전쟁 이후 무너졌다가, 새로 지워진 이 이슬람 사원은 이란의 핵심 병력들이 지키고 있는 만큼, 가장 중요한 장소였으니까.
덜커덩···!
이윽고, 목이 끊어져라 높게 쳐들어야만 간신히 꼭대기에 닿을 만큼 커다란 대문이 양옆으로 열리며.
“왔구나.”
올림픽 경기장을 연상케할 만큼이나 거대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삭막한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홀연히 의자 하나를 두고서 못에 박힌 듯 앉아있는 소년 아니, 라흐바르.
실제 나이는 50대에 육박한다고 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10대에 불과하였다.
길게 늘어뜨린 흑색의 생머리, 까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여유로운 듯 방긋방긋 웃고있는 표정.
전혀 라흐바르같지 않지만, 그가 이 국가 전체를 홀로 수호하고 있는 SS랭크의 초능력자였다.
드드드드득!!
“으윽?”
“엇!?”
바닥이 접히며, 우리의 위치가 에스컬레이터를 탄 것처럼 라흐바르의 앞으로 이동되었다.
라흐바르가 가진 기술 중 하나로서, 몇몇 헌터는 축지(縮地)라고 부르는 기술이다.
다른 네 명의 헌터가 당황하고 있을 때 내가 헛기침을 하자, 그제야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서 침을 꿀꺽 삼켰다.
“흐음··· 너희 넷은 처음 보는군.”
오른팔로 턱을 괴인 채 라흐바르는 여유롭게 그들에게 한 번씩 시선을 두다가, 이내 나를 향하였다.
“너는, 이곳에서 살았던 적이 있고.”
고개를 끄덕이자 라흐바르가 웃었다.
헌터들은 그를 따라서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울상을 지으며 서소를 바라보다가, 뒤늦게 라흐바르의 발목을 볼 수 있었다.
“······!”
그러고선 소리없이 놀란다.
그럴만 했다.
라흐바르의 종아리 아래부터, 완전히 대지와 동화되어 있었으니까.
즉, 그는 이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그것이 라흐바르가 이란 전체의 지맥(地脈)을 지배하는 대가였다.
이 국가 전체를 감시할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광범위한 탐지 능력을 지녔으며, 또한 지켜낼 수 있을 정도의 광범위한 능력을 소유한 자.
라흐바르는 지구상, 최강의 대지 능력자라고 봐도 무방했다.
“사실, 이렇게 외부의 인원을 들이는 것자체도 부끄러운 일이야. 뭐, 이제 와서는 딱히 상관도 없지만.”
“······.”
라흐바르는 분명 대지의 지배자이지만, 약점이 하나 있다.
공중전에 취약하며, 던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
물론, 그가 움직일 수만 있다면 두 가지의 단점 모두가 보완되겠지만 그렇게 되면 이란 전체를 굽어 살필 수 없게 된다. 즉, 라흐바르는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여 이 국가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차원으로 숨어든 이계인들을 찾을 수 없을 테고.’
최고의 탐지 능력자라는 이명은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광범위한 탐지 능력을 지녔기에 붙어진 이름이다. 이 땅에 발을 붙이는 순간, 라흐바르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유틸리티나 융통성 면에서는 차라리 S랭크의 음파 능력자인 헬로니의 탐지 능력이 더 뛰어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란은 외부, 특히 헌터 협회로의 도움 요청을 상당히 자주 하는 편이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최고성직자는, 이 땅을 지키느라 움직일 수 없기에 국가를 발전시킬 수 없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래도······.”
라흐바르는 나를 바라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귀하신 손님이 찾아왔으니, 좋군.”
“영광입니다.”
“해서, 그런데······.”
드드득!
갑작스레 땅이 접히더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어느덧 바로 코앞에 라흐바르의 얼굴이 있었다. 속눈썹이 여자만큼이나 짙은 그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
“내 부탁을, 하나만 들어줄 수 있겠나?”
“······저는 이계인을 찾는다는 임무를 수행하러 왔을 뿐, 다른 부탁을 들어드릴 수는 없습니다.”
내가 미쳤다고 공짜로 일해주냐.
“아아, 그러지 말고. 이야기나 들어보지 그래?”
라흐바르는 빙그레 웃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바닥에서 자그마한 기계가 솟아오르더니, 이내 허공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이제 보니, 이 공간 전체에서 에테르의 흐름이 감지된다. 비록 흙더미 속에 파묻혀서 보이지 않을 뿐.
홀로그램 속에는 수많은 이계인들의 행적이 담겨 있었다. 나 또한 협회에게 전달받아서 보았던 것들.
“어나더 리그의 유서담. 유명하지. 나도 관심이 많았거든, 그대한테.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어.”
“뭐가 이상합니까?”
“왜 어나더 리그의 유서담씩이나 되는 거물이······ 직접 이란으로 찾아왔을까?”
우와. 나 이란 라흐바르한테 거물 소리 들었어. 내심 기뻤지만 티를 내지 않으며, 근엄있는 표정을 굳혔다. 대답은 질문한 라흐바르 본인이 했다.
“정답은, 유서담 또한 이계인들의 능력에 관심이 있다······ 아닌가?”
“······.”
아닌데.
애초에 그들이 가진 능력은 ‘종족 특성’이기에 해부해서 신체 구조를 분석하는 게 아닌 이상 뭔가를 얻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역시, 맞았지?”
아니라고.
“그런데 이거 어쩌나. 사실 나도 그들의 힘에 아주 관심이 많아. ···이왕이면, 저들이 모두 내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안 그래? 이란 땅에 살면서, 내 백성이 될 생각은 왜 안 하느냐, 이거다.”
즉, 이건 그거다. 내가 이계인들을 찾으러 온 김에, 그들을 모두 포섭해서 데려가버릴 줄 알고 라흐바르는······ 발등에 불이 붙은 사람처럼 나에게 경쟁심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뭐 그럴 듯하긴 했다. 유서담이라는 인물이 여기까지 찾아올만한 이유는 정말 저거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러나.
나는 썩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글세··· 과연 그게 쉬울까.’
이계인들을 설득한다? 말이 안 되는 소리. 언어도 통하지 않을뿐더러, 애당초 그들이 숨어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썩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그저 그들과 대화를 해보기 위해 찾아왔을 뿐이니까.
즉, 나는 잃어도 별 상관없는 패에 상대방이 전전긍긍한다는 것.
더 이상 라흐바르에게 내가 숙이고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이계인들을 받아들여야만 할 정도로, 초조하고 절박하다는 이야기겠지.’
라흐바르는 짐짓 여유로운, 최고 성직자의 태도를 보이고 있었지만 그 속내에 감춰진 불안한 심상의 흐름을 너무나도 간단히 읽어낼 수 있었다.
*
늦은 저녁.
이란의 상공.
“······베르소크가, 한국에 다녀왔단 말이지?”
“그래. 차원 여행조차 제 힘으로 하지 못해, 지구로 불시착한 주제에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더군.”
“저가 우리와 같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내버려 둬.”
“이미 죽였다.”
구름에 가려질 듯 거뭇거뭇한 두 형체가 지상을 내려보고 있었다. 한 명은 날개가 달려있었지만, 한 명은 날개가 없다.
둘은 공통점이 없는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 가장 크다면 큰 공통점이 하나 있기는 있었다.
둘 모두, 헬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지성’을 가진 생명체라는 것.
그들의 고향은 헬 게이트이다.
수많은 멸망 속에서 살아남은 수많은 생명체가 도착하게 되는 장소, 헬 게이트. 모든 것이 뒤죽박죽 섞이고 이치대로 흐르는 것이 단 하나도 없는 ‘무질서’의 세계였지만······.
그들은 그 무질서 속에서 태어났음에도, 퍽 질서정연한 것처럼 보였다.
참으로······ 특이한 일이다.
그들의 시선은 단 한 군데에 고정되어 있었다. 네 명에 더불어 그림자 속에 스며든 한 명의 동료까지 데리고 이란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사내, 유서담.
“···하필이면 유서담에게 찾아가다니.”
날개달린 여자가 표정을 찌푸리자, 사내가 웃었다.
“어쩌면, 그 또한 ‘세계’의 뜻일 수도 있겠지.”
사내는 그리 말한 뒤 자취를 감추었다. 마치 이 세계에서 사라진 것처럼. 날개 달린 여성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금 유서담을 향했다.
어쩐지, 저 남자를 볼 때마다 무언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세계의 의지는 그를 건들지 말라고 하였지만······. 어쩐지 그녀는 그럴 수가 없었다.
‘······차라리, 먼저 죽여놔야겠어.’
여자 또한 날개를 접고서 구름에 가려진 달빛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이계에서 찾아온(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