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90화 (190/251)

< 이계에서 찾아온(2) >

부안두르크 차원에서 찾아온 사내, 베르소크. 그는 유서담에게 말했다.

‘이계인들이 더 있다.’

그건 유서담에게 꽤 큰 힌트가 되었다. 만약 베르소크가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유서담도 그를 문전박대하지 못하고 깍듯하게 대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말대로 어느 정도 뇌물을 쥐어 주면서 어나더 리그에 데리고 살았겠지.

하지만 다른 이계인이 상당히 많았으며, 에너지 검출 결과 별볼일도 없다는 판단이 내려왔으므로 굳이 베르소크의 잔꾀에 넘어가줄 필요가 없었다.

-마스터님. 베르소크의 행선지를 추적한 결과를 보고하겠습니다.

“화면에 띄워.”

오히려, 이렇게 써먹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위치: 아프가니스탄 → 이란···]

“흠······ 거 참 신기하게도 지나다니네.”

베르소크는 신분증이 없는 관계로, 국경선을 통과할 때 불법출입국을 할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긴 했찌만, 설마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란을 가로지를 줄이야. 뭐, 어쨌든 이계인이니까 특별한 기술이 있다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란이라니. 조금 골치 아프게 되었네요···.”

옆에서 예카테리나가 중얼거렸다. 그럴만도 하다. 지금 나는 베르소크의 뒤를 캐서, 또다른 ‘이계인’들이 어디서 모이는지 그 위치를 특정해내려고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위치가 하필 이란이라니.

“저기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 중 하나잖아요.”

삼십여년 전 대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란은 괴수가 아닌 접경국과 전쟁을 벌였다. 사실 그들이 먼저 전쟁을 벌인 게 아니라, 옆나라에서 괴수를 피해 도망치겠답시고 침공을 한 거지만······ 중요한 건 이란이 뿔이 잔뜩 나서 주변을 전부 박살냈다는 것.

그리고 최후에는, 본인들마저 괴수들에게 개박살이 나버렸다.

그 이후로 어찌저찌 이슬람 종교인들이 모여서 국가의 형태를 취하기는 했지만······ 미해결 SSS+의 던전과 게이트가 도합 다섯 개나 있어서 세계 최고의 위험지역으로 구분되고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뭐, 이란은 나름대로 뜻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최초의 헌터가 활동을 시작한 곳이었기에.

그래서 저기에는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헌터 육성소’가 존재하였는데, 일반적인 헌터 학교와는 달리 이론 따위는 때려치고 열 살짜리 어린애한테 당장 특수 개조 총기 한 자루 쥐여주고 실전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졸업률은 1%남짓. 대부분 퇴학을 당하는 이유는 죽어서, 혹은 불구가 되어서이며 사지 멀쩡하게 졸업한 그 1%조차도 대부분 졸업과 동시에 도망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끔찍한 곳이네요.”

“너무 그러지는 말고. 나도 저기 출신이니까.”

“···예?”

“내가 말 안 했나? 보육원에서 길러지다가, 습격받아서 양부모님 모두 잃고 떠돌다 도착한 게 저기야.”

“모, 몰랐어요······.”

예카테리나가 진심으로 놀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필이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에서 자랐을 줄은 몰랐던 듯싶다.

하긴, 나도 내가 저 머나먼 타지까지 팔려갈 줄은 몰랐으니까.

그때를 생각하면 다시금 누군가가 떠오른다.

‘유하람······.’

로스트 데이의 길드 마스터이자, ······한때 같은 보육원에서 자랐던 나의 가족과도 같았던 남자.

나를 이란으로 팔려가게 만든 사내가, 다름아닌 그 유하람이었기에 나는 저 나라를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뭐, 이제는 어떻든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썩 나쁘기만 한 곳은 아니야.”

세간에는 매일같이 피가 튀고 새벽에는 괴수의 울부짖음에 마음 편히 잠조차도 제대로 청할 수 없는 곳이라고 알려졌겠지만······.

······음. 사실이긴 하지만.

어쨌든, 좋은 인연도 상당히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오히려 죽음과 죽음의 순간이 오가는 장소였기에 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인연을 만들었으니까.

대표적으로 테일러 나인이 있었고, 이제는 이 세상에 없지만 진정한 내 부모와도 같았던 레이나 주가 그곳에 있었다.

“이계인들이 저기에 숨어서 사는 것도 이해는 갈만해. 신분증이 딱히 없어도 출입할 수 있는 곳이니까.”

“그럼······ 역시 이계인들을 만나보려고 하시는 건가요?”

“그래야지.”

그래야, 멸망 당시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볼 수 있을 테니까.

근데.

거기까지는 다 좋은데.

“서담님···. 거기, 한국과 적대국인 건 아시죠?”

아 맞다.

*

17년 전, 처음 헌터가 되었을 때만 해도 내가 이란에서 활동하는 건 꽤 자유로웠다.

뭐, 말만 자유롭다 뿐이지 사실 그곳의 생활은 정말 하루하루가 지옥과도 다름없었다.

강력한 괴수를 상대할 수 없기에 헌터 사이에서도 E랭크 괴수가 하나 발견됐다치면 그거 하나 잡겠답시고 수십 명이 모였는데, 괴수보다 헌터에게 튀는 탄환이 더욱 많을 지경이었다.

괴수 사냥에 대한 기술은 충분하다. 하지만 일거리와 보수, 그리고 먹을 거리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 중학생 무렵에 헌터를 시작했던 나는 다른 동갑내기 헌터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기에 여덟 명의 가장 소중한 동기들과 함께 버티고 또 버텨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동기들이 한 명씩 떠나갔다. 각자의 목적을, 꿈을, 그리고 미래를 위해서.

모두가 성공을 위해,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 떠나던 그때, 나는 여전히 F랭크였고, 갈 수 있는 곳이 극히 적었다.

그때 내게 손을 내밀었던 사람은, 아이러니 하게도 나를 버렸던 유하람.

‘너, 헌터로서 뼈가 굳었군. 쓸만하겠어.’

더 좋은 시설에서 더 좋은 밥을 먹고, 더 이상 일거리와 잠자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국가이자, 나의 고향.

한국.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에, 나는 그날부로 유하람의 개가 되었다.

로스트 데이의 창설이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이더라······.”

그날 이후 이란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헌터들이 유년 시절을 억지로 헤쳐나가는 사이, 높으신 분들의 정치질에 의하여 이란은 더 이상 내가 발을 붙일 수 없는 국가가 되었으니까.

하물며,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다고도 할 수 있는 어나더 리그의 마스터가 입국하겠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 터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렇게 가만히 고민하기를 며칠.

능력도 좋고 재주도 좋은 암영미소는 제집처럼 이란을 돌아다니며 베르소크를 비롯한 또다른 이계인들의 행적을 캐내고 있었다.

암영미소나 베르소크는 가능하지만, 나는 불가능하다. 애초에 국경을 넘는 것 자체가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단 말이다.

SS랭크의 헌터조차 이란의 라흐바르(최고지도자 혹은 성직자)의 시선에게서 온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현 이란의 라흐바르는 지구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탐지계통의 초능력자였으니까.

듣기로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 전체를 자신의 기운으로 뒤덮고 있어서 한 명, 한 명을 감시할 수 있단다. 또한 국가 전체에 감지계 헌터들이 있어서 보고되지 않은 초능력자의 기운이 느껴지는 순간 곧바로 이슬람 성전 수비대가 출동한다······.

비록, 그 능력의 대가로 라흐바르는 영영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아무튼. 제아무리 S랭크의 능력치를 가진 나라도 그곳에 몰래 잠입하는 건 힘들었다.

‘뭔가, 수가 있을 텐데······.’

그때, 어떤 기시감을 느꼈다. 내가 고개를 치켜든 그 순간 스마트폰의 진동이 거칠게 울렸고, 나는 표정을 와락 구기고서 그것을 확인하였다.

[헌터 협회 한국지부장 김수종]

헌터 협회? 갑자기 여기에서 연락이 왜 왔지?

“네. 어나더 리그의 유서담입니다.”

-반갑습니다. 헌터 협회 한국 지부의 김수종입니다. 갑작스럽게 연락드려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헌터 협회의 한국 지부장이면 그 입김이 상당하다. 그런 사람이 언질도 없이 먼저 연락할 줄은 몰랐다. 그렇다는 건, 상당히 급하단 얘기겠지.

“뭐, 좋습니다.”

*

김수종과의 대면은 강남에 있는 어느 카페에서 곧바로 이뤄졌다. 나는 길드 내에서 상당히··· 가슴 아프지만 할 일이 없었고 김수종은 애초에 시간을 비워두고서 연락했던 것 같다.

“다름아니라, 최근 수상한 능력을 가진 집단이 확인되어서 그에 관한 전문가인 유서담 헌터의 자문을 구하고자 찾아왔습니다.”

“수상한 능력?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이죠?”

김수종은 인사치레를 간단히 생략하고서 곧바로 본문으로 넘어갔다.

“하나로 툭 잡아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이는 신체를 짐승의 형태로 변화시키기도 했고, 어떤 이는 귀가 굉장히 뾰족했는데······ 식물을 자유자재로 조종했습니다.”

“음···.”

그 외에도 김수종은 태블릿을 꺼내 홀로그램 영상을 띄워서 세계 각지에서 목격된 ‘특이능력자’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어떤 이는 마법과 비스무리한······ 하지만 마법이 아닌 기술을 사용하였고 어떤 이는 무공과 비스무리하지만, 무공이 아닌 기술을 사용하기도 했다. 거기까지는 그나마 익숙하지만, 초능력과 비슷하면서도 더욱 거칠고 난폭한 능력으로 폭주를 해대는 이들이 문제였다.

“에테르도, 에센스도 아닌 미지의 에너지를 사용했습니다. 이게 대체 뭔지, 헌터 협회와 초능력자 협회의 기술력으로는 알아낼 방도가 없어서······.”

에테르는 흔히 괴수들의 체내에 심어져 있는 에너지, 기력(氣力)이었고 에센스는 자연 그 자체에 포함된 성분 에너지, 마력(魔力)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얼마든지 ‘에너지’는 존재한다.

수많은 세상, 수많은 기술, 수많은 종족.

어떤 세상은 중력을 토대로 한 과학기술을 다루고, 어떤 세상은 우주의 근원이라 불리는 암흑 물질을 다루기도 한다. 지구가 전기 에너지를 다루는 것처럼 말이다.

즉, 지구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신비로운 기술일지 몰라도······.

‘···음. 나한테도 좀 신기한데?’

<······.>

아무튼, 어쨌든. 그렇다. 차원 여행자인 나한테는 유별난 것들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 상황을 내가 유리하도록 이용해먹기로 했···다······.

그 순간 또다시 느껴지는 기시감. 나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여유로운 전문가의 포즈를 지은 채 한 손에는 쓸 데도 없는 검은색 볼펜을 쥐고서 입을 열었다.

“‘이종족’입니다.”

“···이종족, 말씀이십니까?”

“예.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은 아닌 존재들이죠.”

“그런······.”

“저거, 짐승 보이십니까? 저건 늑대인간입니다. 저건 엘프구요. 저건 드워프네요.”

“허억, 설마요.”

“제 말이 맞습니다.”

사실 맞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럼 뭐 어쩔 건데. 말도 안 통하는데. 그냥 찍는 수준이지만, 아무튼 전문가인 척하기에는 제격이다. ‘설마 어나더 리그의 유서담이 거짓말을 하겠어?’라는 발상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나를 팔아먹는 것 같지만, 나는 원래 가치가 떡국에 둥둥 떠다니는 계란조각만도 못하다.

“이들이 발견되기 시작한 게 언제지요?”

“최초의 사례는 몇 년 전에도 있었습니다만······. 당시에는 그냥 넘겼습니다. 하지만, 최근 유난히 많이 발견되더군요.”

“음······.”

최근 유난히···. 어쩐지 불안한 말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의 접경지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당장은 사회에 별 해악을 끼치고 있지는 않지만, 강력한 능력과 지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 그들이 폭주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리 말하며 그는 태블릿을 드래그했고, 이란에서 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참혹한 살육의 현장을 보여주었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현상금 사냥꾼으로 보였는데, 초능력자가 상당히 많은 저곳을 단신으로 초토화시킬 정도라면······ 어마어마하게 위험한 존재라는 말이 되겠다.

‘하긴, 차원을 자체적으로 건널 정도의 존재인데.’

아라셀리만 하더라도 차원을 건너며 모든 힘을 잃어버렸지만, 이전에는 무려 9써클의 마법을 달성한 전적이 있다.

물론, 모든 이계인이 아라셀리처럼 차원학을 연구하지는 않았겠지.

이동준의 경우처럼 차원이동과 관련된 물건을 발견했다거나, 혹은 베르소크처럼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차원에서 차원이동장치만을 간신히 사용하는 수준이기에 본인의 힘은 한없이 나약하다거나.

혹은······.

<···그저, 극한의 확률을 뚫고서 아주 운이 좋게도 차원의 틈새로 빨려들어가 이곳까지 스며들어왔을 수도 있겠지요.>

그럴 확률이 100경분의 1의 확률로 극악이라 하더라도, 이 세상에는 정말 무수히 많은 차원이 존재하기에 그런 지구에서 몇몇 발견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마, 저들 중 대부분이 의도치 않게 이곳으로 흘러들어왔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위험하겠지요.>

베르소크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이곳에 닿았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이란에서 벌어진 저 참사처럼 폭주해버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문제로 최근 이란 내부에서도 상당히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란의 라흐바르가 직접 헌터 협회에 도움을 청했을 정도니까요.”

“뭐, 걔들은 원래 자주 그랬죠.”

이란은 자체적인 방위가 잘 되어있는 듯싶으면서도, 뻑 하면 사건사고가 터지는 곳이다. SSS+랭크의 던전 및 게이트가 다섯 개나 방치되어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하여, 헌터 협회에서 비밀리에 요원 몇 명을 데리고 잠입을 할 예정입니다. 라흐바르께서도 허락을 내려주셨지요.”

그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이거다!’

그러나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수종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물론 헌터 유서담께서는 바쁘실 테니 같이 파견나갈 수는 없겠지만······.”

아닌데.

“저희 요원들에게 브리핑을 해주시는 정도로 혹시 도움을 주실 수는 있는지······.”

나 시간 많은데.

“큼큼.”

헛기침을 한 뒤 슬쩍 눈치를 본 나는 은근슬쩍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사태가 심각하군요. 이렇게나 많은 사상자라니······. 이대로 가만히 두다가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지요. 어서 그 정체불명의 집단의 정체를 밝혀내야 합니다.”

“자고로······ 헌터는 대중을 위해 괴수를 베어내며, 대의를 위해 피를 흘리는 법. 저 또한 이런 참상을 두 눈으로 보고 있자니 마음이 영 불편하군요.”

“그렇다는 말은···.”

“저도 직접 임무에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김수종이 감동먹은 듯 초롱초롱해진 눈으로 내 두 손을 붙잡았다. 나보다 열댓은 많아 보이는 아저씨가 이러니까 참 부담스럽다.

“역시, 유서담 헌터십니다······!”

나는 절대 내 입으로는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는다.

< 이계에서 찾아온(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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