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89화 (189/251)

< 이계에서 찾아온(1) >

사실, 내가 저 남자에 대해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차원여행자······.’

그렇다면, 어째서 차원여행자가 지구로 찾아왔는가? 그 부분이 가장 중요했다.

우선, 차원 여행은 굳이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다는 점을 먼저 떠올렸다. 그의 머리 위에 주인공 특유의 해시 태그 또한 없었으며, 애초에 지구에는 현재 주인공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즉, 저 남자는 아라셀리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차원 여행을 하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오히려 위험하다는 생각은 줄어들었다.

‘혹시 내가 아닌, 또다른 주인공 사냥꾼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으나 역시 의뢰인이 나를 제외한 주인공 사냥꾼은 없다고 했으니 그 점은 접어두었다.

“이계에서 찾아오신 분이로군요. 먼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계의 손님은 대상이 누구든간에 일단 대접해줄 필요가 있었다. 무려, 차원을 건너서 여행하지 않았던가?

지구의 과학 기술로는 몇백 년쯤은 더 기다려야 가능할 것이다. 뭐, 주인공 보정을 받는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겠지만.

“흐음······. 그래. 대화가 좀 통하는 사내로구먼. 그럼 역시, 자네도 이계의 인물인가?”

여기서, 나는 평범하게 답하려 했다. 지구 사람이지만, 차원 여행의 기술까지 보유하고 있을 뿐이라고.

하지만 의뢰인이 저지하였다.

<···조금 다르게 대답해보시겠습니까?>

의뢰인의 말이 짧게 이어졌고, 이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테일러와 하선영을 모두 물렸다. 불만 가득한 테일러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중요한 이야기를 위해 주변인들을 뒤로 물린다’라는 행위 자체가 저 남자에게는 중요하게 작용할 테니까.

“예.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이윽고, 듣는 사람이 모두 없어지자 나는 괜한 쓸데없는 분위기를 잡고서 표정을 있는 힘껏 굳힌 뒤 말했다.

“저도······ 이계에서 왔습니다. 지구 출신이 아니지요.”

그리고 뻔뻔스럽게도 거짓을 고한다.

그러자 사내는 내 대답에 ‘역시’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에 대해서는 이상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어.”

아마도 저 사내는 여태 어나더 리그가 일궈놓은 수많은 업적을 되새기고 있을 것이다. 마법 문명의 발전이니, 이계에 거점을 세운다느니, 마법과 과학을 합친다느니 어쩐다느니.

그것들은 전부 이계의 지식이 없다면 할 수 없는 것들.

“부안두르크. 내 고향의 이름이다. 지구의 아메리카 대륙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세계였지만, 그 조그만 땅덩어리 좀 차지해보겠다고 수천 년 동안 전쟁이 끊이질 않는 세계였지. 나는 그곳의 참전 전사였다. 이름은 베르소크. 절대적인 벽이라는 뜻이다.”

“그렇군요······.”

“네 고향은 어디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아라셀리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제 고향은 비비안타 제국입니다. 인간의 지식으로 신에게 닿는 게 목표인, 꿈과 낭만으로 가득한 세계였지요. 실제로 그곳의 마법 수준은 신의 힘과 거의 밀접해 있었습니다.”

“오호라···. 그렇군.”

베르소크는 내 말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비비안타 제국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없는 듯싶었지만, 그런 건 별로 상관이 없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자네의 세계 또한 멸망한 모양이군.”

“···예?”

그는 담배를 푸후, 내뱉었다. 연기가 접객실을 가득 메웠지만, 고성능 공기청정기가 순식간에 그것을 빨아들였다.

“자네의 세계 또한 멸망했으니, 이렇게 도망쳐 다른 세계로 와서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게 아니겠는가?”

“······.”

그 말에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아서 내가 침묵하자, 내 반응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베르소크가 먼저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야. 차원 여행조차 하지 못하는 미개인들은, 멸망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조차도 할 수 없으니까.”

“그건··· 그렇죠.”

“나는 세계를 옮겨다니며,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아무리 멀리 떠나도 ‘멸망’은 세계를 뒤덮고 있어. 별 하나, 세계 하나. 전부, 그렇게 죽어가고 있다.”

그건, 내가 아는 이야기였다. 그 멸망의 원인은······ 아마도 주인공에 의해서겠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하지만, 도망치는 것도 그것도 끝이다.”

“···끝이라니요?”

“자네도 알지 않는가? 멸망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도 천천히, 이곳을 향해. ······그리고,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 이곳, 지구가 마지막 세계야.”

“······뭐?”

덜컥, 순간 사고가 정지된 것 같았다. 지구가 마지막이라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자네 말고도, 이곳으로 피신해온 이계인들이 숨어 살고있는 건 알고 있나? 조만간 멸망이 도래할 때까지 마지막 안식을 즐기려는 모양이더군.”

“······.”

꽤 찝찝한 사실을 알아버렸다.

세계가 계속해서 멸망하고 있으며, 그 마지막 마지노선이 바로 지구라는 사실.

그러니까, 지구는 수많은 차원계 중에서도 가장 끝부분에 위치한 차원 중 하나라는 말이 되겠다.

언젠가, 아라셀리가 말하길 ‘지구는 너무 멀어서 갈 수 없어요.’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단순히 조금 멀리 있구나 싶었는데, 그게 이런 의미였다니.

‘······모든 세계가, 멸망하고 있다는 거야?’

나는 허공을 향해 질문을 던졌고.

<그렇습니다···.>

의뢰인이 답했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나저나, 비비안타 출신 양반. 같은 이계인으로서 상부상조 해야지 않겠소?”

“···뭐요?”

“보니까, 이계 출신치고도 아주 잘살고있는 듯싶던데···. 크흠, 돈도 많고, 미인들도 끼고 살고 말이야. 말했다시피, 나는 자네의 비밀을 알고있단 말이지. 그러니-”

“재산을 달라, 이겁니까?”

순간 어이가 없어진 나는 헛웃음을 쳤다. 의뢰인의 반응으로 봐서는 그의 말에 거짓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심각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고작해야 재산을 탐내서 그런 것이었다니.

물론, 돈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이며 나 또한 이 돈 한 푼이 없어서 서러움에 복받쳐 살아가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세계의 멸망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하던 와중 저 따위 요구를 뻔뻔스럽게 할 줄이야.

“제 비밀이라. 제가 이계인이라는 비밀,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러니까, 같이 잘 좀 지내보자고. 같은 이계인끼리. 응?”

“······같은 이계인이라니. 저와 같은 취급을 받고 싶은 겁니까?”

나는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저와 당신의 공통점은, 그냥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것. 그것밖에는 없습니다. 고향도 다르고, 심지어 제 세계는 아직 멸망하지도 않았습니다.”

“···뭐, 뭐라고?”

“그리고. 지구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신 주제에 제 뒷조사만 대충 하다 오신 거 같은데······.”

나는 책상 테이블을 툭툭 쳤다. 나와 관련된 기사가 뜰 때마다 예카테리나가 정성스럽게 오려서 코팅해놓은 것들이 지금 이 테이블에 붙여져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차원학을 연구하다? 어나더 리그의 유서담!’이라며 내 얼굴이 대문짝하게 박혀있었다.

언젠가, 나는 내가 차원학을 연구하는 중이라며 세상에 밝혔고 그 증거로 아차원에 아지트를 건설해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전부 다 거짓말이지만······.

“어, 어···?”

“그러니까, 그런 협박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겁니다. 제 비밀을 알고 있다길래 뭔가 했더니··· 고작 그겁니까?”

혹여나, 내 ‘주인공 사냥꾼’과 관련된 비밀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솔직히 조금 가슴이 철렁인 것도 사실이었으나 저 ‘이계인’이라는 남자가 가진 정보가 고작 저것밖에 안 된다면, 내가 져주고 들어가야할 이유가 하등 없었다.

“그러니까, 썩 꺼지십시오.”

내 문전박대에 베르소크가 표정을 와락 구기더니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저 남자의 에너지 파형을 분석해.’

테이블 아래에 숨겨진 키보드를 툭툭 두드리자, 눈에 보이지 않는 스캐너가 베르소크를 훑었다.

“두고 보겠소. 지구에 숨어든 이계인들의 숫자는 이미 상당한데, 자네 혼자서 모두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래봐야 당신같은 거렁뱅이들이면 별로 무섭지도 않군요.”

좋은 정보를 얻었다. 지구에 숨어든 이계인들이라. 하긴, 이계인으로 가득찬 세계도 있었는데 가장 마지막 차원인 지구에 숨어사는 이계인이 단 한 명도 없으리란 법도 없다. 이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내게는 익숙했다.

*

베르소크를 돌려보내면서도, 그에 대한 추적하도록 암영미소에게 지시하였다. 그의 은신술은 자신보다 한 단계 경지가 더 높은 이조차도 속일 수 있는 수준이었고, 과학 장비로도 탐지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나 혼자 남아서 눈을 감고서 사념에 잠겼다.

‘모든 세상이 멸망하고 있다.’

천천히, 하나의 세계씩, 멸망으로. 그건 분명 누군가, 압도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악의를 가지고서 저지르는 짓이거나······ 혹은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어, 지성체 따위가 감히 대응하는 건 불가능한 단순히 ‘재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이건, 분명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세계의 멸망에 ‘주인공’이라는 키워드를 집어넣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대체 누가?

어떤 존재가 주인공을 지정할 수 있으며 또한 세계의 모든 축복을 한 사람에게 몰아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고작 그런 간단한 행위로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다니······.

“······의뢰인. 너는 어떻게 생각해?”

<저도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혹은, 그냥 대답해주기 싫은 거라던가.

“모든 차원에 주인공이 있지는 않다고 했잖아. 그건 왜 그런 거야?”

<그건··· 그쪽 세계에서, 스스로 주인공을 극복해낸 경우입니다.>

“스스로, 극복?”

<예.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연재 중단]과도 비슷한 현상이죠. 주인공이 어느 순간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게 되고, 세계가 원래의 섭리대로 흘러가면 멸망을 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의뢰인은 그런 세계를 굳이 내게 보여주지 않았다. 아주 가끔 주인공이 존재하더라도 내가 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던 세계들이 아마도 그런 곳일 터.

“주인공에게··· 그러니까, 개연성에 간섭할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너밖에 없어?”

<예, 아마도. ···저와, 당신 뿐이겠지요.>

그렇다면, 더욱 더 궁금한 게 있다.

의뢰인은 대체 누구기에 모든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자에게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거냔 말이다.

<저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당장 말씀드리는 게 불가능합니다.>

“후우, 그러시겠지.”

<하지만.>

의뢰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정말로 개미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헬 게이트에 들어가신다면. 저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뭐? 헬 게이트는 갑자기 왜···.”

<하지만!>

내가 무어라 묻기도 전에, 그녀가 말을 잘랐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당신이 그러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저 지금처럼··· 이계의 주인공들을 사냥하며, 이기적으로, 항상 성공하고, 항상 행복하고, 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여유로운··· ‘주인공같은’ 삶을 조금 더 만끽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쩐지, 진심이 담긴 것 같은 말이었지만 그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헛소리하지마. 헬 게이트 하나 때문에 살인청부업 하고있는 거니까.”

<······.>

내가 모든 것을 다 저버려도, 단 하나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

*

한편, 유서담에게 문전박대를 당한 베르소크는 어느덧 부산까지 내려와 골목길을 비척비척 걷고 있었다.

지구의 언어를 제대로 못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이곳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좀도둑질이나 하며 살아가던 그였기에 변면찮은 식사는 먼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유서담에게 찾아가 뭐라도 좀 건져올 생각이었는데.

“빌어먹을.”

자신의 힘으로 유서담을 제압하기에는 역부족. 애초에 사용하던 초과학 공학무기의 배터리도 거의 소진되었기에 괴수 한 마리 간신히 사냥하는 것도 무리였다.

도망치고, 또 도망치는 삶도 슬슬 지쳤다. 감춰진 코트의 안쪽을 살짝 걷으니, 내장과 살점, 그리고 뼈와 혈관이 얽히고 설킨 채 꿈틀거리는 끔찍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언젠가 자신의 ‘자식’이었을 무언가. 그러나 ‘멸망’에 노출된 직후, 아내와 함께 저것이 자신의 몸으로 융합되었다.

그만큼······ 멸망은 끔찍한 것이었다. 아마, 그것을 직접 본 자가 없다면 이해할 수 없을 테지.

모든 것이, 단 하나로 돌아가는 그 끔찍한 세상의 말로를.

“킥··· 어차피 이 세계도 조만간일 테지.”

그는 그리 중얼거리며 술에 찌든 취객처럼 걸었다.

< 이계에서 찾아온(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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