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의 마법사 아카데미(4) >
[다가오는 11일······ 최초의 ‘마법 강연’이 한국의 ‘태극 호텔’에서 펼쳐진다.]
[초등학생부터 전문가까지 누구나 배울 수 있는 학문, 마법? 과연 그 말이 사실일까?]
유서담의 교재를 받은 이후, 예카테리나는 수강생을 추가로 소집하였다. 그 연령대는 10대 초반의 어린 아이들로서, 이제 막 한글을 떼거나 덧셈과 곱셈을 익히는 수준의 평범한 초등학생들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의문을 표하였다.
그리고, 대망의 강연 당일.
수많은 오케스트라와 뮤지컬 등이 거치고 간 태극 호텔의 ‘로열 홀’의 무대 위에서 예카테리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수용 관객 수, 5만 명.
다시 말해서 5만 명의 수강생이 지금 이 자리에 나와있다는 의미. 비록 강의실과는 다른 구조였기에 이곳에는 책상도, 칠판도 없었지만 예카테리나는 첫 강의에 그런 것들이 마땅히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만, 모든 관객들의 의자에 디지털 태블릿을 설치해두었을 뿐.
이것만 해도 상당한 금액이 들었으나, 최초의 공개 마법 강연에 자신들의 디바이스가 사용되면 광고 효과를 누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전자 기업이 앞다투어 스폰서를 해주었고, 예카테리나는 돈 한 푼 안 들일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어나더 리그의 CEO이자 마법사, 예카테리나입니다.”
짝짝짝! 우렁찬 박수 소리는 짧았고, 이내 모두가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저는 지구의 사회에 마법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를 바랍니다. 저연령층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손쉽게 배우고 또 쓸 수 있기를 바라고 있지요. 누군가는 허황된 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마법은 상위층의 특권이라며 은근슬쩍 저를 막아서기도 했지요.”
그 ‘누구’가 모리안 길드의 에이번을 뜻하는 것임을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지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중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저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주신 길드 마스터 유서담이십니다.”
이윽고, 유서담이 무대의 뒤편에서 커튼을 젖히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깔끔한 정장 차림의 그는 머리까지도 빳빳하게 힘을 준 채였는데, 그 이미지가 상당히 지적으로 보였다. 거금 들여서 헤어 스타일을 바꾼 결과였다.
“반갑습니다. 어나더 리그의 유서담입니다.”
비록 그의 표정 뒤쪽엔 어떠한 문제로 인한 고민과 긴장이 뒤섞이고 있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당장은 급한 일도 아니었고, 고작 그런 문제 하나로 예카테리나가 고대하던 행사를 망칠 생각은 없었으니까.
“이 자리에 나와있는 여러분들은 마법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희가 인터넷 매체로 지식을 공개한다고는 해도, 결국 영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는 천천히 좌중을 둘러보았다. 이 5만 명의 사람들이, 전 세계 70억 가까운 인구 중에서도 선택받은 인원들이라니. 그리고, 그 선택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와있다니.
어떤 벅찬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이 자리에 앉아계신 분들 중에는 수십 개의 자격증을 따셨거나, 혹은 박사 학위를, 또 어떤 분은 수학 하나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셨겠지요. 하지만, 마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굉장한 실례가 되겠지만, 저는 당신들을 초등학생의 눈높이로 보고 가르쳐야만 합니다.”
물론, 그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이는 없었다. 다른 낯선 분야를 배울 때는, 아무리 박사나 전문가라도 해도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시작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유서담의 말에 숨겨진 진짜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정말로, 초등학생조차······ 아니, 어쩌면 초등학생이 박사나 전문가보다도 먼저 마법을 익혀버리는 그런 기현상을 노리고 있었으니까.
“······그럼, 가장 먼저.”
유서담은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마법에 대해서는 솔직히, 중학생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히 이 자리에 나와있는 이들을 설명할 수는 있었다.
게다가, 아라셀리의 교본까지 더해지니 ‘전문가 흉내’정도는 아주 손쉽게 낼 수 있었다.
파앗!
푸른색의 구체가 손바닥 위로 둥실 떠오르자, 그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마나의 근원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지요.”
*
강연은 짧았다. 아니, 평균보다는 길었다고 봐야 했으나······ 그 자리에 나와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짧다고 평하였다.
총 강의 시간은 4시간. 그 4시간 사이에, 5만 명의 인원 중 3천 명이 ‘마나’를 각성하였다.
즉, 고작 4시간 사이에 ‘이능력’을 각성한 자가 3천 명이나 나왔다는 말이다!
게다가 그 3천 명 중 어린 아이의 숫자가 1800명에 달했으니, 마법이 얼마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주는지를 다시금 실감하게 마들었다.
예카테리나는 그 1800명의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너희는 평범한 학교가 아니라, 특별한 아이들만이 다닐 수 있는 마법 학교에 입학할 자격이 있어’라고 유혹의 사탕을 던졌다.
사회적, 지리적, 정치적인 이유로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는 없겠지만, 그 아이들 중 10%만 건지더라도 ‘학교’라고 내세울 만한 집단을 만들 수는 있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학교는 다름아닌 정령들의 공중정원 내부에 세워진다.
사시사철 별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밤하늘 아래에, 새하얀 수정구슬로 이루어진 건물들.
어느덧 공중정원의 내부에는 일반인들도 굉장히 많이 들어와 있었다. 그 이름만 들어도 다 안다는 샌드위치 가게, 치킨 가게를 비롯하여 카페나 여가 생활을 즐길만한 공간도 잔뜩 만들어 두었고, 길거리에는 어느덧 철로가 생겨나 열차가 지나다니고 있었다.
공중정원의 크기가 상당하여 어지간한 도시 정도였기에 가능한 일. 어차피, 평생을 들여도 이 공간을 전부 어나더 리그에서 독점할 수 없을 것이란 사실 때문에 예카테리나가 일부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어나더 리그’가 이런 곳이다! 라는 광고 효과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와이튜버 화용입니다. 오늘은 길드 어나더 리그의 아지트는 어떻게 생겼을까?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이 자리에 와보았는데요······.”
게다가, 무뚝뚝한 정보 와이튜버로 유명한 사람이 다녀가자 그 관심도는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이제 일반인들도 다 알게 되었다.
길드 어나더 리그는 어딘가 특별하다!
또한 마법을 이용한 봉사활동 정책이나 괴수들을 사냥하고서 보수를 받지 않는 51인의 검사 집단이 알고보니 어나더 리그 소속이었다는 등, 이미지는 날이 갈수록 ‘그저 빛’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남들이 모르는 신비로운 기술을 사용하며, 세계의 발전에 그 누구보다 큰 기여를 하고있는 어나더 리그는 더 이상 길드가 아닌 하나의 ‘기업’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 어나더 리그의 중심에 서있는 유서담은, 자신의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서 홀로그램 화면을 허공에 띄워놓은 채 고민하고 있었다.
“······정말 끔찍한 그림이에요.”
예사혜가 그리 말하자 하선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게, 거, 뭐냐. 이면 세계에 살던 놈들이 지구로 기어나와서 그린 거라고?”
“그렇다네요. 일단 이와 비슷한 현상이 목격된 사례가 있는지 제가 조사해보고는 있는데······ 이번이 최초인 거 같아요.”
설중연이 찍어서 보낸 저 그림 속에는 ‘멸망’과 ‘공백’이 담겨있었다. 그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언어가 아닌 그림으로 그것들을 표현해놓은 것이다.
즉, 저들은 지구인과 소통하려 했으나 그것이 불가능하단 사실을 깨닫고서 그림을 남겼다는 말인데······.
“······그 정도의 지능이 있었다는 게 더 놀라운데? 어우 씁, 개끔찍해.”
테일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보기와는 다르게 징그러운 것들을 싫어하는 그녀였기에 모니터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유서담은 그들이 무어라 떠들든 말든 가만히 홀로그램 화면을 주시하였다.
뭔가, 뭔가 떠오를 것 같으면서도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멸망.
흔한 일이다.
주인공이 결국 모든 스토리를 완주하여, [에필로그]를 보게 되면 그 세상은 멸망하게 되니까. 실제로 예전에는 에필로그 이후의 멸망하는 세계를 몇 번 다녀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멸망을 지구까지 찾아와서 알리려는 거냔 말이지.’
자신들의 세계가 망했다? 그러니까 받아달라? 그런 의미였을까? 차라리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그들은, 지구에서조차도 어딘가로 도망가려는 행동을 취했으니까.
“후우···.”
뒤에서 여자들이 화면을 가지고 무어라 떠들기 시작하자 유서담은 허공에 대고 말했다.
“쌍라이트. 딴 거 틀어.”
-옙!
그러자 빛의 정령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홀로그램 화면이 순식간에 다른 화면으로 대체되었다. 그건 어나더 리그의 승승장구와 주가의 상승을 알리는 아주 희망적인 내용이었으나, 유서담의 기분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조만간 이면 세계를 한 번 다녀와야겠는데······.’
그리 생각하며 유서담은 의뢰인에게 말했다.
‘거, 저번의 그 추천 의뢰목록 보여줘 봐.’
<······네.>
『이세계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계 최강 성좌들의 스승이 되었습니다만 나는 무능력자 소시민이라구요? 세계 최강 성좌 제자들과 함께 하렘을 노린다!』
#이세계전생물 #하렘 #성장형먼치킨
#성좌 #힘을숨긴주인공 #착각계
그런데.
어째서인지 의뢰인이 단 하나의 의뢰밖에 보여주지 않았다.
원래는 총 세 개였고, 그중 하나를 얼마전에 클리어했으니 두 개가 남아있었을 터.
‘하나는?’
<···얼마 전에, 멸망했습니다.>
‘······뭐라고?’
그 말에, 목이 빳빳해졌다. 유서담의 당혹어린 목소리가 튀어나오자 의뢰인이 다급히 말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애초에, 세계는 끊임없이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당신과 계약한 것이구요. 지금까지 해주신 것만 해도 엄청 잘하시는 겁니다.>
‘······.’
분명 본 적도 없고, 가본적도 없는 차원이다. 그저 이름밖에는 모르는······ 그런 차원이었을 텐데.
멸망했다고 하니,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그러다, 귓가에 띠링! 하는 알림음이 울리자 유서담은 고개를 들었다.
-유서담 마스터님. 누군가가 찾아와서 만나고 싶다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뭐? 누군데?”
-그게··· 신원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뒤쪽에서 예사혜가 정색하고서 화를 냈다.
“당신. 지금 신원이 증명되지도 않은 사람을 들여보내려고 했나요? 당장 돌려보내세요.”
-아, 앗··· 그, 그게······. 자꾸만 마스터님의 비밀을 자신이 알고 있다는 등, 이상한 소리를 해대서······.
비밀?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었으나 순간 흥미가 생긴 유서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여보내.”
“네, 네에? 그런 수상한 사람을 왜······.”
“원래 드라마 보면 꼭 저런 수상한 사람 들여보내고 일이 잘 풀리잖아. 그러니까 들여보내.”
-아, 알겠습니다!
조금은 얼빵한 직원은 이내 손님을 접객실로 안내하였다.
유서담은 접객실에 미리 앉아서 기다리다가,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조금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 특이한 사내였다.
서부시대를 연상케하는 모자나 갈색빛의 코트, 걸어다닐 때마다 절그럭거리며 쇠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렸으며 진한 화약··· 혹은 무언가 알 수 없는 냄새가 풍겨왔다.
털을 깎지 않아 까칠한 턱을 매만지며 그 남자는 씨익 웃으며 유서담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이 길드의 주인이오?”
어딘가 가래가 끓는 듯한 목소리였으나, 그 중후한 목소리에는 힘이 담겨있었다.
“그래. 당신은 누구지? 내 비밀을 알고 있다고 한 건 무슨 뜻이고.”
그러나 그는 대답 대신 허리춤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서 태웠다. 지구에서는 본 적도 없는, 처음 보는 담배였다.
“좋군. 지구에는 없는 이계의 기술로 길드를 세워올리다···. 아주 신화를 쓰고 계셔. 그렇지?”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뒤쪽에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테일러와 하선영이 서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했으나, 혹여나 위험인물이면 곧바로 배제하겠다고 그녀들이 나선 것이다.
“거, 뒤에 서 있는 저 여자들은 네 애인인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거 아나? 나는 지금 지구의 언어로 말하고 있지 않아.”
“······뭐?”
갑작스러운 그 말에 유서담이 당황하자, 그가 씨익 웃으며 누런빛의 금니를 드러내었다.
“지구의 언어는 아무래도 불편하단 말이지. 특히, 너희 한글은 너무 불편해. 다른 그 어떤 차원의 언어를 통틀어서도, 배우기가 정말로 힘들었다 이 말이지.”
그러면서 그는 담배 연기를 후욱, 내뱉었다. 이 공간을 가득 채우는 저 미묘한 연기를 곧 ‘쌍라이트 홀로그램 시스템’이 분석하여 허공에 띄워주었지만 그런 건 전혀 중요치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내 살던 고향의 언어로 말했다.”
“······.”
“그리고 너는 내 말을 알아들었고.”
이내, 그 남자는 담배를 테이블에 비벼서 끄며 말했다.
“너, 정체가 뭐지?”
······그건, 마찬가지로 유서담이 묻고 싶은 말이었다.
< 현대의 마법사 아카데미(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