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87화 (187/251)

< 현대의 마법사 아카데미(3) >

[목표를 달성하여 원래의 세계로 귀환합니다.]

눈을 떴을 땐, 이미 지구로 돌아온 뒤였다. 나는 손에 꽉 쥐고있던 수정구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녹화 구슬에 영상을 저장하기 위한 자그마한 녹화장치.

계획대로라면, 내 기준으로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뒤의 말레아는 여전히 살아있을 것이다.

그 어설픈 재회를 마지막으로 두지 않고서, 또다른 재회를 가슴에 품고 살아갈 말레아를 떠올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2년 전의 유서담이 지금의 나를 보았다면 ‘쓸데없는 짓’이라며 일축했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하며 많이 달라진 걸까.

좋은 의미겠지.

인연을 챙긴다는 건, 삶에 여유가 생겼다는 증거니까.

몸을 감싸고 있는 갑주를 모두 벗어 인벤토리에 수납한 뒤, 헤어지기 직전 아라셀리에게서 받아온 교본을 꺼냈다.

‘제가 비비안타에서 재학하고 있을 때의 교재를 비슷하게 흉내내봤어요. 그래도 디테일적인 면에서는 많이 떨어지겠지만요.’

비비안타 제국의 세계관은 우리 지구보다도 더 압도적인 기술력을 가진 ‘하이 파워’의 세계다. 그리고 그곳의 교과서는 사실 홀로그램이나 데이터베이스 등을 사용하는 터라 교과서라는 것은 거의 폼으로 들고다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마법사라는 특성상 결국 책과 종이는 버릴 수 없던 것인지 다행스럽게도 교본이 남아있었고, 또 유난히 책을 좋아하던 아라셀리였기에 머릿속에 ‘저장’해두었던 책들이 상당했다고 한다.

그렇다. 저장이란다.

대마법사의 수준에 이르면, [백색 마녀의 도서관]과 유사하게도 머릿속에 자신의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모양이다.

대마법사도 아니면서 머릿속에 도서관이 있는 나는 참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객체 지향 원리로 이해하는 마법이론!]

[머릿속에 쏙쏙 들어와요! 마도학 계획서]

[마법은 설계다! 마법설계서 –기초편-]

[마법으로 이해하는 세계의 원리! 세상은 사실 완전하지 않다?]

······몇몇 교과서는 지구의 수준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기에 안타깝게도 내 인벤토리에 영영 잠재워야만 했다.

심지어 우주에 존재한다는 미지의 에너지를 다루는 ‘다크 매터 이론’이나 블랙홀의 에너지를 끌어와 사용하는 ‘시공간 여행 이론’에 더불어 세계의 근원을 다루는 ‘모든 것의 이론’까지 있었는데, 이건 지구보다 몇 세기는 앞서있는 기술이라 감히 세간에 공개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아라셀리에게서 교과서를 받으며 쓸모있는 기술을 상당히 건질 수 있었다. 비록 아라셀리의 전공이 아니라 세세한 부분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현재 지구에서 예카테리나가 연구에 혈안을 올리고있는 ‘마도공학’과 관련된 연구서를 상당히 확보할 수 있던 것.

아마 이게 있다면 마법과 과학의 융합이 더욱 손쉬워질지도 모르겠다.

교본을 내려놓은 뒤, 이번에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179레벨의 주인공을 사낭하였습니다.]

[수명이 1790일 지급됩니다.]

[당신의 수명: 6307일 9시간 41분]

거탑을 오르는 동안, 주인공 위젠 또한 성장하였다. 그 역시도 ‘오버 이레귤러’라는 설정이었는지 튜토리얼 외부에서도 이미 S랭크로서 상당한 초인이었는데, 거탑 내의 특수한 아이템으로 그 능력을 더 강화한 것.

나 또한 그런 것들을 어디서 못구하나 찾아보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대다수가 주인공 보정에 의해 구해진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레벨이 3단계 상승합니다.]

[극악 난이도의 주인공을 사냥하여 추가로 레벨이 3단계 상승합니다.]

[스킬 ‘냉정한 시선’을 획득하였습니다.]

스킬 냉정한 시선.

설명은 간단하게도, 물질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더 냉정하게 만들어 대상을 철저히 분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단다.

그리고 이 스킬은 [영혼을 꿰뚫는 눈(C)]과 융합되었다.

[스킬 ‘만물을 냉정한 시선으로(B)’가 생성되었습니다.]

즉, 나는 이제 무언가를 바라볼 때 그것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마력 소모가 상당하여 자주 사용하지는 못하겠지만······ 어딘가 쓸일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또 하나.

[스킬 ‘주인공 사냥꾼’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드디어 주인공 사냥꾼 스킬의 레벨이 올랐다. 그래서 이번에는 주인공에게 개입하거나 조금 더 편리한 기능이 추가될 줄 알았으나, 전혀 아니었다.

레벨이 오르며 추가된 문장은 단 하나.

[세계의 이야기의 흐름에 편승하게 됩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의뢰인에게 물어보았으나.

<그렇습니까······.>

의미심장하게 대답하고서는 조용해졌다.

“흠···.”

뭔가 굉장히 수상쩍었으나, 달리 더 알아낼 방법은 없었으므로 우선은 뒤로 넘겼다.

<유서담>

[도합 레벨: 167]

*능력치

[근력 163] [체력 179] [민첩 165]

[기력 1] [마력 278]

*재능

[검술 S] [사냥 D+] [사격 S]

[요리 D-] [직감 A] [기민 A]

[통찰 B] [원기 SS+][기타···.]

*스킬

[주인공 사냥꾼 Lv. 5]

[백색검법(S)] [육감(B)]

[인벤토리(S)] [달마풍천신법(SS+)]

[정신 집중(SS)] [신성력 변환(F)]

[아라-선영 식 마나 써클링(SS+)]

[백색 마녀의 도서관(C)]

[만물을 냉정한 시선으로(B)]

레벨은 정말 쥐꼬리만큼 오르고, SS랭크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또다른 의뢰를 받으러 떠나고 싶지만, 아쉽게도 지구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었다.

*

“안 돌아오시는 줄 알았어요.”

“미안.”

지구 최초로 공개되는 마법 강의의 날짜가 어느덧 바로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저쪽 세상에서 보낸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이 이쪽에서는 두 달밖에 안 지났다는 점이 퍽 놀라웠으나, 하마터면 지각할 뻔했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그나저나······ 교본의 수준이 어마어마한데요? 저도 임시로 하나 만들고 있긴 했는데···. 비교가 안 돼요. 이 정도면 마법에 대해 아예 모르는 어린 아이들까지 교육시킬 수 있겠어요.”

“그래?”

아라셀리는 친절하게도 초등수준부터 마나의 기초 원리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다양한 교과서를 준비해뒀는데, 지구에서는 대학 수준 이상의 학력을 가지지 않는 이상 난해할 수밖에 없었던 마법을 아주 쉽게 풀이해놓았다.

“게다가, 이건 대체······.”

그녀는 [마도공학의 설계도에 대하여]라는 책을 읽고는 홀린 듯이 빠져들었다.

“안타깝게도 저희 기술과는 많이 달라서 쓸 수는 없겠지만··· 이 원리를 이용하면 제 연구가 조금 더 수월해지겠어요.”

“음··· 다행이네.”

안타깝게도 마법의 연구고 뭐고 그런 건 내 분야가 아니라서 저런 걸 내가 받아봐야 별로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새삼 예카테리나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흐···. 지금 당장이라도 이걸 읽어보고 싶지만······ 우선은 연구원들에게 보내줘야겠네요. 아, 그거 아세요? 제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얼마 전 모두 3써클의 수준을 달성했어요. 전부 초능력에 대한 재능이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지금 당장은 거리에서 C랭크의 괴수를 마주쳐도 물리칠 수 있는 수준이라니까요?”

“오. 대단한데?”

그 정도로 연구원들의 성장이 빠를 줄은 몰랐다. 아직 그들의 얼굴조차 몇 번 본적은 없지만, 예카테리나가 한명, 한명 조심히 뽑은 이들인 만큼 상당히 똑똑한 사람들일 터. 과연, 마법은 똑똑한 사람들이 배우는 학문인 듯싶었다.

“일단 이 교재를 토대로, 내일 할 예정이었던 강의의 순서를 조금 바꿔야겠네요. 와, 초등학생도 배울 수 있는 마법! 뭐 이런 식으로 홍보하면 효과가 장난 아니겠는데요?”

예카테리나는 그리 말하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무언가를 적어내려갔다. 나 또한 그녀를 도와주려고 펜을 들었는데, 갑작스레 스마트폰이 울렸다.

[설중연]

누님이었다.

*

이면 세계.

현실과 동떨어져있는, 던전도 아니고 게이트도 아니며 그렇다고 다른 차원도 아닌, 하지만 더욱이 현실은 아닐 수밖에 없는 그 미지의 세계는 지구 곳곳에서 관측되고 있다.

평상시에는 지구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지만, 그 세계의 영향력이 심해질 경우 현실에 간섭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폴터가이스트’ 등이 있겠다.

하지만 이면 세계의 해결책은 어나더 리그의 유서담이 제안, 그 뒤로는 무림맹이 도맡아서 해결한 덕분에 별로 이슈가 되지 않았는데.

“······이게, 대체 무슨 현상입니까?”

미국, 알래스카에서도 가장 북쪽 끝의 땅에서.

설중연은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참상을 바라보았다.

그 참상의 규모는, 그래. 솔직히 자그마한 수준이었다. 게이트나 던전으로 따지면 고작해야 D~C 정도일까.

빌딩 하나 정도에 그치는 수준의 피해였지만······ 그 빌딩 전체가 ‘이면 세계’로 뒤덮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맹주님···. 저, 저게 대체······.”

“······.”

설중연 또한 혼란스러운 눈으로 건물을 바라보았다. ‘이면 세계’의 끔찍한 물질로 완전히 뒤덮인 건물. 아니, 저걸 건물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면 세계와 융합된 직후, 건물 그 자체가 생물이 되어 갑작스레 살아 숨 쉬기 시작했는데 말이다.

지금도 호흡을 하는지 건물의 ‘하반신’이 들썩이고 있었고, 가스같은 것을 배출하였다.

건물의 내부에서는 눈알이 데룩데룩 굴러가고 있었는데, 저 안에 또다른 생명체가 있다는 증거였다.

“진입···합니까?”

“그래. 우선 위험요소를 배제해야하니까.”

어째서 이면 세계의 물질이 현실로 뛰쳐나온 건지는 잘 모르겠다. 영 좋은 징조는 아닌 듯싶었지만, 우선은 저것을 없애는 게 급선무였다.

그리 생각하며 검을 뽑아들고서 건물 형태의 생명체에게 다가가려는데.

“······궗다_각 핞죽!!”

건물의 안쪽에서, 생명체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뛰쳐나와 무어라 소리를 쳤다. 팔이 일곱 개나 달렸으면서 다리는 없고, 머리는 산만하면서 몸통은 없는, 정말로 끔찍하기 그지없는 생명체였으나 그것은 마치 ‘대화’를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 설중연이 걸음을 멈추어, 제지하려고 했으나.

투슝···콰아아앙!!

누군가에 의해 발사된 에너지 미사일이 건물의 하층부를 정확히 타격하였고.

쿠르릉······!!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때가 되자 결국 저 생명체들도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하여, 싸우는 수밖에는 남지 않았다.

“······.”

···그들의 목을 베어내면서도, 어딘가 찜찜한 감을 지울 수는 없었다.

‘대체 뭐였지?’

상황의 정리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애초에 놈들은 위험하지 않다. 이면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되어 있었기에 무림이 강제로 도맡을 수밖에 없었을 뿐, 막상 현실로 나오면 헌터들의 힘으로도 충분히 정리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설중연은 천천히 건물의 ‘시체’를 살펴보았다. 건물 역시 거대하고, 살아있기만 했을 뿐 별다른 공격능력이나 방어능력은 없어서 손쉽게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었다.

그녀는 건물의 내부를 돌아다니며 놈들의 흔적을 천천히 둘러보았고.

가장 높은 층에 도달하였을 때, 어떠한 문양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단순히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림 속에는, 모든 생명이 죽고 사라진 ‘종말’이 표현되어 있었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직관적인 그 그림은······ 마치 자신들이 죽더라도 다른 누군가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그림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들이, 그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아니, 그렇다면.

···저들이 표현해놓은 ‘멸망’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설중연은 그림의 위쪽을 바라보았다. 온통 피칠갑이 되어있어, 자칫 잘못된 그림을 지우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설중연은 ‘아무것도 없는, 공백’을 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서담에게 연락해야겠구나.’

< 현대의 마법사 아카데미(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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