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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83화 (183/251)

< 튜토리얼의 거탑(74층) >

말레아는 전략적인 재능이 굉장히 뛰어난 편이라 여태 거탑을 오르면서 특별한 상황에 막힌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반드시 공략법을 찾아내어 모든 수수께끼를 손쉽게 파헤쳤다.

하지만 유서담은 어딘가 독특했다. 그는 정석이 아닌, 꼼수를 즐겼으니까.

예를 들어서 45층의 보스 몬스터 ‘카크리움’을 잡을 때가 그러했다.

“네? 여기를 셋이서 깬다구요?”

“어.”

튜토리얼의 거탑 내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보스는 ‘어떠한 특정한 패턴’을 파훼해야만 했다. 다짜고짜 닥치는대로 공격해서 죽이는 건 결코 불가능. 하지만 보스 몬스터가 가지고 있는 퍼즐과도 같은 패턴을 알아내기만 한다면, 아주 기본적인 전투 능력만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공략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강한 이들이 모여도 보스 몬스터가 요구하는 인원 제한을 갖추지 않고서는 결코 클리어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카크리움은 전기를 다루는 독수리 괴물 컨셉으로서 요구 인원은 총 10명이 필요하다.

어그로 분산 담당 1명과, 패턴 파훼에 9명이 필요한 것.

“카크리움은 일정 시간마다 ‘일렉트로닉 블래스트’를 사용하는 건 알고 있지?”

“그렇죠······?”

일렉트로닉 블래스트는 놀랍게도 직접 맞아도 대미지가 거의 없으나, 맵에 닿게 되면 인간을 새카맣게 태워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전류가 방출되기 때문에 결코 바닥이나 벽에 닿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패턴의 파훼는 간단하다. 맵 어딘가에 뜨는 ‘기둥’에 찾아가 세 명이 나란히 서있으면 된다. 인간과 인간이 나란히 서있으면, 전기는 그들을 타고서 기둥으로 전이되는데 그 기둥은 전기를 흡수하여 오히려 카크리움에게 큰 대미지를 주게 된다.

물론, 카크리움의 피부색에 맞춰서 그때그때 다른 기둥을 찾아내야만 했지만 결코 어렵다고는 볼 수 없는 보스 몬스터. 하지만 반드시 10명 이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솔로 위주로 활동하는 유서담에게는 상당히 고역인 보스······였을 것이다.

“몬스터 가죽으로 만든 이 특제 ‘인간 피뢰침’을 쓰면 얼마든지 전류를 옮길 수 있다, 이거지.”

“허······.”

유서담은 적재적소에 피뢰침을 던져서 바닥에 꽂는 것으로, 단 세 명으로 카크리움을 클리어하는 데에 성공하였고 45층을 무사히 돌파할 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오늘은 하루에 세 층을 오를거야.’라던가 ‘이번 보스 몬스터는 사냥하지 않고 통과할 수 있어.’라던가 그가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말레아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거탑을 도전하는 모든 도전자는 반드시 정해진 틀 안에서 정해진 룰과 법칙을 따라, 정석적인 공략법을 찾아냈는데 그에 비해 유서담은 철저하게 ‘꼼수’를 부리는 것이다.

즉, 그의 공략법에는 ‘멋’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혼자의 힘으로는 결코 바로설 수 없는 이 끔찍한 지옥의 굴레에서, 혼자의 힘으로 가장 높은 층을 바라보았던 냉철한 도전자 유서담의 실체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왜 혼자 다니는지 잘 알겠네요.”

45층을 정복한 날 밤, 유서담 특제 떡만두돼지고기 덮밥을 먹으며 말레아는 허탈하게 웃었다. 얼굴보다 큰 양푼 밥그릇에 거의 얼굴을 처박고서 밥을 먹는 유서담과 다소곳하게 앉아서 밥을 먹는 아라셀리를 번갈아보던 말레아는 문득,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는다는 사실이 썩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동급생들이 죽은 뒤, 뒷골목에서 음식 언저리를 먹으며 생명을 연장해왔던 그때와 지금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누군가와 잡담을 나누며 밥을 먹는 행위 자체가 살아가는 데에 의미를 주는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라셀리. 넌 요리사 해도 되겠어.”

“으음?”

아라셀리는 입에 음식을 물고 있을 땐 결코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했으니까. 또한 떡만두에 돼지 고기를 추가해달라는 유서담의 기괴한 요청에도 끝내주는 음식을 만들어낼 정도로 그녀의 요리 실력은 뛰어났다.

마법이면 마법, 성격이면 성격, 외모면 외모, 요리면 요리. 그녀는 할 줄 아는 것보다 못하는 것을 찾아보는 게 더 빠를 정도로 팔방미인이었고, 또한 지식이 굉장히 방대하며 생각이 깊었다.

“나랑 결혼하자.”

“아, 안 돼요!”

“장난이야 장난.”

아라셀리가 진심으로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자 말레아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여러모로 놀리는 맛이 있는 귀여운 반응이었다. ···유서담은 그런 말레아를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사실 아라셀리가 더 나이가 많다는 사실을 말레아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이제 그만 자자. 내일 아침 일찍 46층으로 갈 거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여기서부턴 꽤 어렵거든. 내가 도와줄 수 없는 구간이 많으니까, 네 임기응변으로 일을 해결해야 해. 그렇다고 벌써부터 긴장하지는 말고.”

유독 걱정이 많아졌는지 말이 길어진 유서담을 보며 말레아는 피식 웃었다.

“저는 저 알아서 잘 한다니까요?”

“뭐, 하긴.”

여태 유서담은 말레아에게 수많은 도움을 주려고 했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그러기도 전에 말레아가 스스로 난관을 극복한 경우가 많았다. 유서담 또한 그녀를 인정하였다. 애초에 그가 짜놓은 전략의 절반은 원래부터가 말레아의 두뇌에서 나온 것들이었으니까.

“그럼, 내일 보자고.”

유서담은 그리 말하며 가장 먼저 간이 텐트에 기어들어갔고, 아라셀리도 그 뒤를 따랐다. 남녀가 함께 있으니 밤중에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걱정이지만, 저 둘은 정말 순수하게 그냥 서로를 껴안고 잔다.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서로를 느낄 수 있는 모양이었다.

말레아는 그 옆에 있는 침낭에 몸을 뉘였다. 텐트에 가려져서, 그리고 거탑의 천장에 가려져서 별은 보이지 않는다. 별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던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별······ 다시 보고 싶다···.’

그녀는 눈을 감고, 별을 상상하였다. 상상 속의 별을 헤아리며, 그렇게 잠이 들었다.

*

다음날, 눈을 떴을 땐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천상의 날개 길드장, ‘알플라이’가 12명의 5레벨 최정예 병력을 이끌고서 유서담 일행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유서담. 오랜만이오.”

“어. 10층에서 쩔쩔매던 코찔찔이가 많이 컸다? 빵셔틀을 12명이나 데리고 다니고. 쟤는 피자빵 담당, 쟤는 크림빵 담당이냐?”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이제는 나도 어엿한 길드장이니까.”

“어엿한 길드장? 지랄하고 있네. 이게 또 처맞을라고. 오랜만에 보니까 옛날 기억이 흐릿한가봐?”

유서담이 주먹을 치켜들자, 알플라이가 움찔 몸을 떨었으나 이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유서담은 자신들에게 대들 수 없다. 무려 70층을 정복하며, 이제는 유서담보다 한 단계 더 레벨이 높아진 ‘위젠’이 자신들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줄 테니까.

“그렇게 나대는 것도 여기까지오. 유서담, 좋은 말로 할때 순순히 뒤의 그 여자들을 내놓으시오.”

알플라이는 그리 말하며 유서담의 뒤쪽에 시선을 두었다. 그곳에는 긴장한 듯 보이는 말레아와, 아무 생각 없이 자리에 다소곳하게 앉아서 빵을 뜯어먹는 아라셀리가 있었다.

“그 여자들은 우리 길드에 치욕을 주었소. 우리는 정당한 복수의 권리를 원하고 있소. 당신이라면 ‘복수의 법률’을 잘 알고 있을 테지?”

거탑 애네는 수많은 ‘법률’이 존재했다. 그건 관리자나 요정들이 만든 게 아닌, 인간들이 만든 법률이었다. 악의와 혼란으로 가득한 거탑 내에서 도전자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 그에 따라 경찰과 비스무리한 존재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는 법률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유서담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면서 허공을 쳐다보았다.

[현재 주인공의 스토리 라인······ 74층 공략중.]

[‘엔딩’이 머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주인공을 사냥하십시오!]

위젠은 분명 강하다. 그 또한 ‘이레귤러’로서 거탑 외부에서부터 강력한 잠재력을 갖고서 튜토리얼에 입장했기에, 장비를 빼고 싸운다고 쳐도 어마어마한 힘을 보여준단 말이다. 심지어 7레벨이 된 그와 순수하게 일대일을 한다면 유서담이 무조건 밀리겠지만······.

과연, 알플라이는 위젠이 아래층으로 내려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 깝치는 것일까?

74층을 도전중인 그가 도전을 포기하고 내려오면, 다시 70층부터 도전을 해야만 한다. 위젠은 고작 천상의 날개를 봐주기 위해 그런 손해를 감수할 위인이 아니다. 그는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뿐이고, 천상의 날개 또한 그런 ‘이익’을 위해 만들어놓은 그룹일 뿐이다.

“그래······. 마침 잘 됐네. 안 그래도 너희 찾아가려고 했거든.”

“그게 무슨 말이오?”

“무슨 말이긴. 이제 슬슬 때가 됐단 말이지.”

그 순간, 알플라이의 눈에만 보이는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무려 ‘시스템 메시지’ 그 자체를 이용한 이 연락법은 오로지 거탑 내에서 천상의 날개 길드와 위젠에게만 허용되었다.

[알플라이. 지금 당장 34층으로 내려가서 ‘수목화석’을 준비하도록.]

[41층의 본 예거의 ‘녹슬지 않은 뿔’과 19층의 ‘메마른 우물’도 필요하니, 같이 준비해서 ‘튜토리얼 특급 우편’으로 전송하도록 해라.]

[이상.]

그렇다. 74층에 도달한 위젠은 슬슬 또다른 ‘준비물’들이 필요해졌다. 튜토리얼의 요정들을 통해 얻은 ‘힌트’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저것들이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유서담이 이리저리 구르면서 어떻게든 꼼수까지 써가며 도전을 하는 것과는 달리, 위젠은 여태 모든 층을 ‘치트’를 써가며 손쉽게 돌파해온 것이다.

하지만······.

“자, 잠깐···. 지금은 안 된다고 전해다오!”

알플라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금은 안 된다. 유서담을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여기서 그냥 물러나라고?

[안 된다. 바로 준비하라. 시간은 3시간 주도록 하지.]

“공략을 조, 조금만 늦추면 되지 않습니까?”

[내가··· 언제부터 네 사정을 봐줘야만 했지?]

“······!”

알플라이는 그저 위젠의 거탑 등반에 필요한 준비물을 배달해주는 심부름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알플라이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애써 현실을 외면하였다. 여태 해준 것들이 많았으니, 언젠가는 그가 자신의 사정을 이해해주고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위젠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내였기에, 결국 심부름꾼은 심부름꾼일 뿐 그것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강압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크윽······.”

어쩔 수 없다. 지금은 물러나는 수밖에.

“좋다···. 지금은 내가 일이 생겨서 다음에 오도록 하지. 하지만 그땐, 유서담 너 또한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래?”

그에 유서담은 씨익 웃으며 그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짚었다.

“근데······ 나도 널 보내준다고 한 적은 없던 거 같은데?”

“뭐···라고?”

“지금은 내가 널 붙잡아놔야, 위젠이 아주아주 곤란해지거든.”

“······!”

원래는 56층에 갔을 때, 진행하려고 했던 계획이다. 하지만 이렇게 알플라이가 스스로 찾아와준 덕분에, 조금 더 빨리 일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 오붓하게 데이트나 조금 즐길까?”

유서담이 주먹을 치켜들었고, 알플라이의 얼굴이 창백하게 물들었다.

*

“······답이 없군.”

한편, 74층의 위젠.

그의 동료들이 초조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74층 담당 튜토리얼의 요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위젠 라인’을 탄 이 요정들은 어떻게든 위젠을 통과시키기 위해 자신들이 알려줄 수 있는 모든 꼼수를 그들에게 알려주었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래층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만든 그룹이 바로 천상의 날개였거늘.

어째서인지, 그들과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남은 공략 시간 00:09:14]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9분 남짓. 평범한 방법으로는 결코 클리어하는 게 불가능해, 위젠 또한 요정들이 일러준 ‘치트’를 사용하려고 했으나······. 지금은 그것마저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차디찬 얼음의 성흔이 의아해합니다.]

[날렵한 독수리의 성흔이 화를 냅니다.]

[달리는 푸른 말의 성흔이 답답해합니다.]

성흔(星痕), 즉 ‘관리자’를 뜻하는 단어로서 현재 위젠과 계약한 성흔은 무려 백여 명에 달한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 자신이 계약한 도전자가 가장 높은 층에, 가장 우월한 방법으로 도달하는 것.

그런데 지금, 자신의 도전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던전에서 타임오버를 당하게 생겼다. 그것은 관리자로서 당할 수 있는 가장 치욕적인 수모였다. 위젠의 치명적인 실패는 곧 그들의 ‘격’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을 테니까.

몇몇 관리자들은 그래도 위젠이 어떤 신기한 방법으로든 통과할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는 듯싶었지만.

[타임 오버!]

[던전 공략에 실패하였습니다!]

이윽고, 9분이 지나며 위젠이 바깥으로 쫓겨나자 관리자들이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하였다. 그에 따라 몇몇 ‘가호’가 지워지기도 했으며 ‘스킬’이 소멸되자, 위젠 또한 표정을 와락 구겼다.

여태 그는 자신에게서 대부분의 감정이 배제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단 한 번도 초조함이나 분노 따위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 채, 오로지 가장 효율적인 방법만을 추구해왔던 여태까지의 자신은 인간이라기보단 기계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단 한 명의 사내를 만나며, 그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깨져버렸다.

‘유서담······ 또 네놈의 짓이냐······.’

아래층에서 천상의 날개가 무슨 일을 당했다면, 유서담밖에는 없다. 그만한 거대한 규모의 길드를 건드릴 수 있는 자는 이 거탑 내에서 자신을 제외하고는 단 한 사람밖에는 없으니까.

‘그때, 죽였어야 했거늘.’

주먹을 꽉 말아쥐며, 위젠은 이를 뿌득 갈았다.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인다.’

< 튜토리얼의 거탑(74층)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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