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77화 (177/251)

< 반가워요! 나는 튜토리얼의 요정!(2) >

말레아 메이 브링턴.

올해로 19세가 된 그녀는 청연 사립 마법 고등학교 14학년에 재학 중이다.

마법에 대한 재능은 그냥저냥 평범한 수준이지만, 활발한 성격과 화려한 외모 탓에 학교에서는 나름대로 상당히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리더십이 높으며 책임감이 강하고 주도적인 성격으로 인해 낮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전교 회장을 맡을 정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말레아는 자신의 성격이 대담하고, 용감하고, 그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능동적인 임기응변으로, 완벽히 대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반가워요, 여러분! 나는 튜토리얼의 요정이에요! 자, 그럼 튜토리얼을 시작해볼까요?

···‘튜토리얼’이라는 곳에 떨어지지만 않았더라면.

평생 그렇게, 믿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그렇게 말했다.

‘나만 믿어 얘들아. 내가 알아서 해줄게.’

튜토리얼의 거탑에 같이 떨어진 동급생은 총 열한 명. 물론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나 나이가 적은 후배도 있었으나, 거탑에서는 그런 게 별로 의미가 없었기에 말레아는 서로의 친밀감을 위해 모두를 동급생으로 묶고서 자신이 직접 리더를 하였다.

열한 명의 마법사 지망생이 힘을 합친다면, 이 미지의 장소에서도 어떻게든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네가 뭔데 우리를 지휘하겠단 거야!’

‘그게, 우선 누군가는 리더를 해야만 하니까······.’

자존심만 더럽게 세고 판단력 흐린 여선배 한 명이 말레아의 자리를 탐냈다.

‘그 아이템을 왜 네가 가지겠단 건데?’

‘이건··· 지휘력이 올라갈 뿐이야. 공격력과 방어력이 높은 장비는 너한테 줬잖아.’

말레아가 가지는 모든 것을 동급생이 질투하기 시작하였다.

‘싫어! 내가 그 역할을 왜 맡아야 하는데! 나도, 나도 싫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여기에 남아서 보호막을 쳐줘야 해! 적진으로 뛰어들어서 물건을 탈취해오는 건 내가 하잖아!’

‘그 사이에 몬스터가 뒤돌아서 나를 죽이면? 아무도 날 지켜주지 못하잖아! 위험하다고!’

‘대체······.’

어렸을 땐, 자신이 리더십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였다. 아니, 실제로 그녀의 리더십은 굉장히 뛰어난 편이었고, 그 특출난 판단력은 수많은 ‘랭커’들이 인정해줄 정도였다. 심지어 튜토리얼 스킬 [위대한 리더 S]를 획득했으니까.

그러나 동급생을 다루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어려웠다. 평화에 찌든 세계에서 건너온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예민했고, 그들 모두를 달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학생들은 겁에 질려있었다. 무엇 하나 손해 보기 싫어했고, 이기적이었으며, 서로 거리를 두기에 급급했고, 자신이 조금이라도 부족한 보상을 받거나 조금이라도 더 위험한 임무를 맡으면 곧바로 반발을 해버렸다.

가장 어려운 임무는 자신이 도맡아서 했다. 보상 또한 자신의 것은 쏙 빼놓고 모두에게 분배하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왜 쟤보다 내가 더 안 좋은 걸 받아야 해?’라며 불평을 내뱉었고, ‘왜 쟤보다 내가 더 위험한 구역에 따라가야 하냐고!’라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정확히 하루 하고도 3시간 전.

마지막 동급생이 죽었다.

튜토리얼의 거탑 10층.

전체 도전자의 90%가 포기하여 상주한다는, 이른바 ‘도전자의 무덤’이라 불리는 10층에서 말레아는 열한 번째 묘비를 세웠다. 10층은 마치 현실의 어느 도시를 본따서 만든 듯한 생김새였고, 놀랍게도 하늘이 존재하여 비구름까지 구현이 되어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소나기를 맞으며, 말레아는 마지막 친구가 잠든 무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벌써 튜토리얼의 거탑에 갇힌 지도 1년이 넘었다. 그동안은 먼저 치고 올라간 몇몇 도전자들의 도움으로 무려 10층에 오를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진짜배기 도전이 시작될 터였다.

친구들의 도움으로도 오르지 못했던 거탑을, 과연 혼자의 힘으로 오를 수 있을까?

오르지 않으면 이 지옥같은 곳에서 영영 빠져나갈 수 없다. 법도 없고, 죄의식도 없는 10층의 거탑은 강도·살해·강간·협박·납치 따위는 일상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말레아는 약자에 속했고, 아마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길바닥의 시체로 굴러다니게 되겠지.

그래서 그녀는 일기장을 펼쳤다. 튜토리얼을 시작한 이래로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써내려왔던 그 일기장에는 여태 겪어왔던 일들이 모두 기록되어있었다.

뚝, 물방울이 일기장을 적셨다.

무어라 적어야 할까.

[오늘, 마지막 친구가 죽었습니다.]

뭐라고 써야 할까. [하지만 나는 슬프지 않습니다.]라며 거짓말을 적을까. 혹은 [그럼에도 나는 나아갈 것입니다.]라며 희망찬 메시지를 남겨놓을까. 누군가 볼 때를 대비해서,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인 수식어로 자신을 포장해볼까?

그럴 의미가 있을까. 나 따위가 죽으면, 이 일기장 따위는 그저 불쏘시개가 될 뿐일 텐데. 말레아의 부정적인 생각은 자꾸만 먹구름처럼 머리를 뿌옇게 물들였지만, 애써 견뎠다.

도시로 돌아온 말레아는 후드로 머리를 푹 눌러썼다. 예쁘장한 얼굴은 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그녀의 자신감이나 다름없어 항상 당당히 드러내고 다녔지만, 이 시궁창에서는 그저 먹잇감으로 변모할 뿐이다. 그녀가 여태 무슨 인생을 살아왔든 튜토리얼의 도전자들에게는 하룻밤 인형 정도의 취급을 받을 것이다.

“이봐, 그 소식 들었나?”

“그래. 도전자 ‘유서담’이 솔로 플레이로 60층에 올랐다면서?”

“‘위젠’에 이어서 두 번째로 60층에 올랐어. 위젠은 파티가 있는데, 유서담은 혼자라는 점에서 더 대단하다고 봐.”

“거탑에 들어온 지 반년 만에 거기까지 갔다지? 씁···. 누군 29층에서 반년 동안 궁상떨고 있는데.”

거탑의 저층이 무법지대가 되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로는, 고층에 올라 고레벨의 장비와 많은 스킬을 가진 도전자들이 아래층으로 내려올 수 있다는 이유가 있겠다. 압도적인 강함을 가진 그들은 저층의 도전자들을 괴롭히기 일쑤였는데, 그것은 심각한 빈부격차와 신분제를 만들어냈다.

실제로 10층의 지배자 역시 56층에 오른 도전자의 ‘다할란테’의 길드 ‘천상의 날개’가 점령하고 있었으니까.

천상의 날개 길드원들은 아이템과 던전을 몰아받으며 승승장구하는 와중, 없는 이들은 더욱 더 빼앗기고 정체되어 높은 곳으로 오를 꿈을 박탈당한다.

“야야, 숙여! 숙여!”

“천상의 날개 길드원들이다···!”

어둡고 칙칙한 거리의 사이로,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은색과 금색의 갑주를 입은 이들이 나타나자 도전자들이 고개를 숙였다. 말레아 역시 고개를 푹 숙인 뒤, 힐끔 그들을 쳐다보았다.

“10층의 도전자들이여, 공지를 하겠다. 얼마 전 천상의 날개 길드에서 미지의 던전을 발견한 바. 우리는 특별히 너희들을 위해, 던전을 공유하도록 하겠다. 위치는 10층의 북부 ‘라유카의 서식지’. 많은 참여를 바라겠다.”

“더, 던전이라고···?”

“10층에 아직도 남아있는 던전이 있어?”

“미, 믿을 수 없어······.”

거탑에서의 강함은 단 두 가지로 결정이 된다.

첫 번째로, 스킬.

10층 단위로 스킬 슬롯이 늘어나는 거탑에서는 당연하지만 더 높은 층을 오른 도전자일수록 더욱 강한 힘을 갖춘다.

두 번째로, 장비.

10층 단위로 1레벨씩 올라가는 장비 아이템. 도전자들 간의 격차가 날 수밖에 없는 가장 절대적인 이유 중 하나였는데, 1레벨의 무기로는 제아무리 날고 기어도 2레벨의 방어구를 뚫을 수 없다. 그만큼 장비의 차이가 강함을 결정하는데······.

문제는, 그 장비 아이템이 반드시 ‘던전’에서만 드랍된다는 것.

현재 10층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던전은 모두 점령되었기에 새로운 도전자들이 장비를 얻을 방법은 거의 전무하다고 봐도 좋았다. 즉, 11층으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 외 ‘고정형 던전’은 죄다 천상의 날개에서 독식하고 있으니, 그들의 노예가 되는 것 외에는 달리 장비를 얻을 방도가 없는 것이다.

말레아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곳에서 여자가 받는 취급을 잘 알고 있었기에, 천상의 날개에 들어가 봐야 얼마나 끔찍한 꼴을 당할지 예측하는 건 너무나도 쉬웠다.

현재 말레아는 대부분의 장비가 9층 이하에서 획득한 0레벨의 장비밖에 없었으며, 그나마 지팡이가 1레벨의 무구였지만 지휘력을 올려줄 뿐 대단한 효과조차도 없어서 사실상 11층 등반은 반쯤 포기한 채였다.

그런데 만약, 천상의 날개가 이번에 발견했다는 던전으로의 원정에 참여할 수만 있다면? 던전 도전자 전원에게 시스템상으로 무조건 분배되는 장비 아이템을 단 하나라도 얻을 수 있다면······.

‘하지만, 뭔가 이상해.’

상식적으로 천상의 날개가 그간 얼마나 이기적으로 행동했던가. 그들이 갑자기 자신의 길드원이 아닌, 다른 도전자들을 데려가준다? 분명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나도, 가볼까.”

“병신아. 함정일 게 뻔하잖아···.”

“어쩔 수 없잖아! 평생 10층에서 살 거야? 11층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남아도는 게 던전이니까 쭉쭉 올라갈 수 있어. 여기서 장비 하나만 얻으면 나도 다시 탑 등반을 할 수 있는 거라고!”

10층에서 상주할 수밖에 없었던 도전자들은 결국 저 말에 현혹될 수밖에 없었다.

······말레아 역시, 마찬가지로.

*

-오오, 이번 던전에는 꽤 다양한 도전자분들이 모이셨군요! 맨날 보이던 얼굴만 보여서 살~짝 식상하던 참이었답니다~

이튿날.

던전의 입구에는 마흔 명가량의 천상의 날개 길드원들과 백여명에 달하는 일반 도전자들이 모여있었다. 그리고, 사슴과 토끼를 합친 듯한 기묘한 생김새의 반투명한 요정 하나가 폴짝폴짝 허공을 뛰어다니며 떠든다.

이른바 ‘튜토리얼의 요정’이라 불리는 저것들은 이 탑의 비밀을 알고있는 유일한 생명체이다. 어떤 도전자들은 운 좋게도 요정에게서 단 한 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그것으로 인생역전을 하여 현재 고층에서 상주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 정도로 황금알 낳는 거위나 마찬가지인 요정들이었으나, 걸핏하면 인간들의 대가리를 펑펑 터뜨리는 터에 누구도 쉽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이번 던전의 ‘비밀’ 또한, 저 요정은 모두 파악하고 있을 터. 한 마디라도 그에 대해 들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며 말레아는 요정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최소한 그들은 탑의 도전에 있어 거짓을 말하지는 않으니까.

-자~ 이번 던전의 룰은 간단합니다! ‘선택하라, 진실의 문!’ 던전 내에는 수많은 문이 존재하지만, 진짜 문은 단 하나! 당신들은 이제부터 진실로 통하는 문을 찾아야만 합니다! 만약 진실이 아닌 문을 고른다면? 안타깝지만, 죽을 수밖에 없겠네요~!

“뭐, 뭐라고···?”

“잠깐······!”

그제야 천상의 날개 길드에서 자신들을 부른 이유를 깨달은 도전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분명 던전 내에는 ‘진실의 문’을 찾기 위한 올바른 파훼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상의 날개 길드에서는 그 방법을 끝끝내 찾지 못하였고, 하는 수 없이 또다른 방법을 생각한 것.

바로, 도전자들을 마구잡이로 문 안에 집어 처넣고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하는 것이다.

도전자들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천상의 날개 길드원들이 검을 뽑아들었다. 대부분이 3레벨 이상의, 그러니까 30층 넘게 오른 도전자들이었기에 감히 대항하는 것조차 불가능.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지 않겠나?”

“이 천벌받을 놈들······.”

“뭐, 좋게 생각하라고. 진짜 문을 운 좋게 찾으면 너희도 장비 한두 개 정도는 나눠줄 테니까.”

표정 하나 안 바꾸고서 뻔뻔히도 그리 말하는 그들에게는 다른 도전자들을 향한 그 어떠한 감정조차 없었다. 정말로 1회용 말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다.

말레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사방에서 30층 이상의 도전자들이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터에 도망치는 건 불가능. 결국, 던전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건데······.

‘······행운의 여신께서, 내 편을 들어주실까?’

식은땀이 주륵, 뺨을 적신다.

알고 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이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두려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땀에 젖은 주먹을 꽉, 말아쥐고서 요정을 노려보고 있는 그때.

누군가가 말레아의 등을 톡톡 쳤다.

“······?”

천천히 뒤를 돌아보니, 자신과 마찬가지로 후드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서있었다. 그 사람은 자신보다도 체격이 더 작았는데, 무슨 연유로 불렀느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가 후드를 살짝 걷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새카만 흑색의 장발 머리칼에 바다를 닮은 푸른색 눈동자.

너무나도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소녀였다. 튜토리얼에서 보냈던 고된 시간들을 잠깐이나마 잊어버릴 정도로.

그녀는 대뜸 천진난만한 미소를 방긋 지으며 조용히 물어왔다.

“저 기억 안 나세요? 엄청 오래 찾았는데.”

“······아뇨?”

“흐음··· 그런가요. 그럼 초면이네요. 저는 구면이지만요.”

“예?”

얼굴은 예쁜데, 혹시 머리는 홰까닥 돌아버린 걸까? 말레아가 그런 불순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소녀가 손을 내밀었다.

“아라셀리라고 해요. 잘부탁드려요, 말레아 씨.”

이름을 어떻게 아는가. 아직 얼굴도 가리고 있는데.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말레아는 아라셀리라는 이름의 소녀의 악수를 받아주었다.

어차피, 둘 다 오래 살아남기는 글러먹은 것 같으니 마지막 인연이라도 챙기자는 생각으로.

< 반가워요! 나는 튜토리얼의 요정!(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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