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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76화 (176/251)

< 반가워요! 나는 튜토리얼의 요정!(1) >

이번 사건으로 인해, 어나더 리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 메이킹 효과만 있었으냐고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마법으로 인해 발생한 재앙 덕분에, 전 세계에서 가장 마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어나더 리그에게도 타격이 돌아온 것이다.

물론 그러한 부분을 전부 예상하고서 에이번을 이끌어낸 것이기는 했으나, 예카테리나 입장에서는 슬슬 어나더 리그를 타격하려는 언론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하자 마음의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중소규모 길드에 불과했으며 또한 마법과 무공을 전파하며 어떻게든 긍정적인 이미지만을 보여왔기에 물어뜯길 논란거리가 전혀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어떤 식으로든 트집을 잡힐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분간 테일러 나인에게도 조용히 지내는 게 좋겠다고 말했으나.

-헌터 테일러, 러시아 정부에서는 마법이라는 이능력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국제적으로 강력히 통제를 걸어야만 한다는 의견을 내보였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를테면, 그런 거다. 언론에 대답을 해줄 예카테리나와 유서담이 영리하게 입을 꾹 닫고있자 상대적으로 대외적인 활동이 잦으며 말이 많은(그것도 막말을 하는) 테일러 나인에게 인터뷰를 하여 무슨 말을 하든 트집을 잡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테일러는 이미 수많은 연예인과 정부, 국가와 길드를 호두깎이 인형마냥 깎아내린 경력이 있었으며 숱한 곳에서 명예 훼손으로 신고를 먹었고, 그 모든 고소를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해당 사건을 직접 언급을 하지 않아서 무효.’

‘비난을 한 대상이 불특정 다수이므로 꼭 그쪽을 욕했다고 볼 수는 없음.’

등등.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까내리는 것을 좋아하는 테일러였기에, ‘어떻게 하면 더 오래 더 많은 사람들을 깔 수 있을지’에 대해 영리하게 생각해뒀다는 것이다.

가까운 중국으로 던전 파견을 나왔다가 졸지에 방송국의 인터뷰를 받게 된 테일러는 얌전히 마이크를 받았다.

그러고선, 과장되게 슬픈 표정을 짓더니.

-발길이~ 닿는 곳 하나하나 피어나~

'······?'

노래를 한곡 뽑기 시작했다. 한국인도 잘 모르는 21세기 초 고전 노래를 말이다.

'잠깐, 헌터 테일러!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방송이 송출중이었기에 기자들이 마이크를 빼앗으려 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디 SS랭크 초인의 몸을 함부로 건들 수 있던가?

카메라까지 하나 빼앗아서 셀카 모드로 전환한 테일러의 노래는 클라이막스를 넘어서 아예 완곡을 하기에 이르렀고.

-그걸로 됐어~ 난 잘 하고 있어~ 내 삶이니까 내 길이니까~

중국에서 벌어진 테일러의 '인터뷰'는 중국은 물론 한국에까지 대서특필되었으며 외국에서도 상당한 이슈거리가 되었다.

물론, 또 제멋대로 행동한다며 욕을 조금 먹긴 했으나 결국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소속 헌터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밀며 민감한 정치적 주제로 인터뷰를 시도한 중국 방송사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심지어 테일러가 쓸데없이 노래를 상당히 잘하는 바람에 네티즌 사이에서는 꽤 많은 팬층을 확보해버리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거기에 세계적인 가수 헬로니가 별스타그램에 테일러를 태그하고서 같이 듀엣을 구성하자고 제안했다가 'Fuck'이라는 가벼운 답글과 함께 깔끔하게 차여서 한동안 인터넷의 화제를 점령하였다.

물론 어나더 리그가 계속 장난스럽게 대응을 한 것은 아니었다. 테일러 덕분에 이미지가 연막으로 가려진 사이 예카테리나는 뒷정리를 끝낼 시간을 벌 수 있었고, 공식적으로 발표를 하였다.

내용은 간단했다.

마법을 알지 못해서 무섭다고 생각하는가? 그럼 가르쳐 드리겠다! 입학해서 너도 나의 학생이 되어라!

물론, 이와중에 어떤 외신기자는 SNS에 한국어로 우려를 표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악마사태를 바이럴 마케팅으로 활용하여 마법 학교를 홍보하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대중들은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테일러가 직접 해당 계정에 찾아가 '가르쳐준다고 해도 지랄이냐 넌 배우러 오지마 씹새야'라고 답글을 달았고, 그에 테일러의 팬들이 찾아가 동조하자 기자는 해당 글을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네요. 이제 두 달 뒤에 있을 강의만 잘 마치면 돼요. 와이튜브 영상과는 달리 전문적으로 가르치는거라 조금 떨리기는 하지만···."

예카테리나는 최근 콧노래를 입에 달고 살 정도로 기분이 항상 좋아보였다. 거기에 유서담이 마법 학교의 설계도에다가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제공하자 '이건 반드시 성공하는 사업이다'라는 생각이 밤잠마저 설치고 있었다.

유서담은 이계를 다니면서 벌써 몇 번이나 마법 학교를 견학(?)한 덕분에 어떻게하면 마법 학교의 개성을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마법으로 움직이는 고깔모자 청소기, 말하는 게시판(가끔 화를 낸다), 마법으로 둥실 떠있는 전등, 마법으로 움직이는 벽과 문 등등···.

최대한 마법을 활용한 그의 아이디어는 대부분이 실제로 마법 학교에 쓰일 예정이었다.

"이런 아이디어는 대체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원래 아이디어는 너도 나도 돌려쓰는 거지."

"네···?"

이계 저작권 법 같은 게 있었다면 유서담은 진작 잡혀갔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게 있다면, 교본 제작이다. 유서담은 이 또한 이계의 지식을 아주 살짝 빌릴 생각이다. 백색 마녀의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아주 불친절하여 교재로 사용할 수 없었으므로 남은 건 역시···.

'···아라셀리한테 부탁해볼까?'

*

당연하지만 고작 교재 하나 만들겠다고 이계로 가는 것도 멍청한 짓이다. 하지만, 슬슬 임무를 받을 때가 되긴 했다.

이번에는 유독 이계에 오래 있었던 것 같지만 사실 그건 '의뢰'가 아니었고, 주기적으로 의뢰를 받기로 계약을 한 내 입장에서는 당장 청부살인을 하러 떠날 시기라는 말이었다.

가는 김에, 겸사겸사 아라셀리를 만나는 것도 좋았고.

<서담. 몇몇 주요 의뢰서를 뽑아놓았습니다.>

"그래? 마법 아카데미쪽으로 가볼까 생각했었는데."

<···저 또한 서담의 최근 상황을 알기에 그런 쪽이라면 더 좋겠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당장 위험한 세계관이 몇몇군데 생겨서 어쩔 수 없습니다.>

"음··· 사실 상관없긴 해."

난 어디까지나 의뢰를 받는 입장이었으니, 일터를 두고 불평을 할 생각은 없었다. 언제나 내가 원하는대로 세상이 굴러가지 않는단 사실 정도는 철이 들었을 무렵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사실 굳이 아카데미로 가지 않아도 좋다. 아라셀리의 방대한 지식이라면 다른 도움 필요없이, 얼마든지 교재를 하나 만들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이유로 나는 노트북과 빈 교재, 잉크펜 등을 챙겼다.

'갈때마다 뭘 자꾸 물어보거나 부탁하기만 하는 거 같네. 나중에 소고기라도 쏴야겠어.'

아라셀리가 소고기를 좋아하는진 모른다. 그래도 100명 중 90명은 좋아하니까 아라셀리도 좋아하겠지.

"의뢰 목록을 보여줘봐."

<알겠습니다.>

『또 죽으셨나요? 다시 하세요!』

#판타지 #회귀 #성장

#고구마 #사이다

『나는 튜토리얼에서 독식한다』

#퓨전 #독식 #선동 #날조

『이세계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계 최강 성좌들의 스승이 되었습니다만 나는 무능력자 소시민이라구요? 세계 최강 성좌 제자들과 함께 하렘을 노린다!』

#이세계전생물 #하렘 #성장형먼치킨

#성좌 #힘을숨긴주인공 #착각계

···마지막에 뭔가 정체불명의 제목이 있는 거 같은데, 저게 뭔지 대체 모르겠다. 저번에도 봤던 거 같긴 한데···.

<굳이 분위기를 따지자면, 일본이라는 국가의 장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냐···."

당장 위험한 세계관이라고 했으니, 결국 가긴 가야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갈 생각이 없었다. 사전 조사가 거의 되어있지 않았으니까. 차라리 익숙한 회귀물이 낫겠지만, 저쪽은 이상하리만치 난이도가 높았다.

"그럼······ 튜토리얼으로 가볼까."

<줄거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줄거리>

어느날 세계에 나타난 튜토리얼의 거탑.

수많은 세계, 수많은 종족이 모인 이곳에서.

[당신의 스킬을 로드합니다.]

[스킬 '튜토리얼 요정의 계약자'가 활성화됩니다.]

나는 이 세계를 독식한다.

"음···."

줄거리만 봐서는 확실하게 내용을 짐작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확실한 건 일단 회귀자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주인공의 능력이 다른 이들과 '특별한 차이점'을 두고 있다는 것.

튜토리얼에서 요정들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인 것을 생각하면, 그들과 계약한다는 건 분명 상당히 사기적인 능력일 게 뻔했다.

"좋아. 지금 바로 가자."

[139레벨의 주인공 ‘위젠’의 세계, 튜토리얼의 거탑 1층으로 이동합니다.]

[10···9···8···.]

세상이 뒤흔들리고, 지구의 모든 풍경이 점멸되더니, 이윽고 어떤 거대한 탑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2···1···0]

[이동이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은 ‘튜토리얼 거탑’의 도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나는 어떤 광장에 서있었다. 바닥이 체스판처럼 검은색과 흰색으로 뒤섞여,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재빠르게 주위를 둘러보니 나를 제외하고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흰색 티셔츠에 회색 반바지를 입은 채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스킬 '튜토리얼 상태창(임시)'를 부여합니다.]

[당신의 튜토리얼 레벨은 1입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끝없이 솟아있는 기둥이 보였다. 마치 이 세계 전체를 받치고 있는 것처럼.

"뭐, 뭐야!"

"여긴 어디야!"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분위기를 보건대, 이곳에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튜토리얼의 거탑으로 납치를 당해온 모양. 즉, 초심자들이 모여있는 장소였다.

'주인공은 어디에 있지? 레벨이 높아서 이런 초심자 구역에는 없을 거 같은데···.'

<네. 아마 주인공은 더 높은 층에 있는 것 같군요. 하지만, 탑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출입하기 위해서는 당신 또한 도전자가 되어야 하는데, 순차적으로 절차를 밟는 방법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냐.'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차근차근 올라가는 수밖에.

"내보내 달라고! 나는 당장 해야하는 일이 있단 말이다!"

"여, 여긴 대체 어딘가요? 으으···."

혼란이 더욱 심해지는 와중.

갑작스레 허공에 뿌연 안개가 끼더니, 누군가가 뿅하는 이펙트와 함께 튀어나왔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토끼처럼 생긴 저 생명체는 외안경을 끼고 허리춤에는 회중시계까지 달고 있었는데, 보라색과 붉은색이 섞인 특이한 정장이 인상적이었다.

-반가워요, 여러분! 나는 튜토리얼의 요정이에요. 자, 그럼 튜토리얼을 시작해볼까요?

토끼, 그러니까 '튜토리얼의 요정'의 말에 좌중이 침묵하였다. 그러나 이내, 어떤 쥐를 닮은 중년 사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너희들, 내가 누군 줄 알아? 지금 이딴 장난을 치고도 무사할 줄 알아?! 어서 날 돌려보내!"

그러자, 요정이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나는 그 다음 장면을 예상할 수 있어서 표정을 굳혔고.

퍽!

"어······?"

"뭐, 뭐···."

중년 사내의 머리통이, 말 그대로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터져버렸다.

-이래서 '인간'이란. 그럼, 다음으로 머리가 터지실 분이 더 있으신가요?

누군가는 주저앉아서 흐느꼈고, 누군가는 실신했으나,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순식간에 혼란이 정리된 것이다.

-없나보네요! 좋습니다. 약간의 사고가 있었지만, 다시 제대로 시작해볼까요?

이내 요정이 '게임의 룰'을 설명하기 시작하자, 불현듯 나는 무언가가 떠올라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곳에 들어있는 낡디 낡은 일기장 하나. 마법고의 교장, 말레아가 작성한 일기장이었다.

설마하는 심정으로 나는 그 일기장의 첫 페이지를 열었고.

[···튜토리얼의 1층에서. 누군가가 죽었다. 처참하게도, 머리가 터져서. 원인도 모르고, 의미도 없는, 그런 죽음이었지만 모두가 침묵하였다. 누구도 그 죽음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중략) ···하여, 튜토리얼의 요정이 게임을 시작하였다. 룰은 간단했다. 수많은 장애물과 괴수가 득시글대는 미로를 통과하는 것. 나는 거기에서···(후략)]

-룰은 간단합니다! 당신들의 뒤에 펼쳐진 저 미로를 통과하는 것! 어때요, 참 쉽죠?

일기장의 내용이, 현실에 그대로 펼쳐졌다.

< 반가워요! 나는 튜토리얼의 요정!(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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