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75화 (175/251)

< 현대의 마법사 아카데미(2) >

우리가 지구로 돌아왔을 땐,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나있었다.

“오, 핸드폰 터진다.”

뙤약볕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테일러는 은색의 단발을 찰랑이며 스마트폰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위성이 발달한 요즘 시대는 특수한 공간(던전 및 이상현상 발생 장소)가 아닌 이상 어디서든 인터넷이 터지기에 이곳 칼라하리 사막에서도 평범하게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건만, 버릇인 듯싶다.

최근에 고전 드라마(21세기 초)를 즐겨 본다더니, 그 영향을 받았나 보다.

“그러게.”

나 또한 스마트폰을 들어서 메신저와 뉴스를 확인하였다.

어나더 리그에서 개최한 마법사 총회, 그곳에서 발생한 거대한 악마.

그리고.

[특보! 모리안 길드의 마스터가 악마를 소환한 장본인이었다!]

[어나더 리그의 CEO 예카테리나, 성공적으로 악마 퇴치!]

이미 수많은 영상이 돌아다니고 있기에 현장을 찾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붉은 뼈다귀 거인이 나타나 사람들을 위협했으나, 예카테리나가 대항하자 악마가 쓰러졌다는 내용의 영상들.

“타이밍 좋게도, 백소휘가 그놈 목 쳤을 때가 바로 저때였나 보네.”

본래의 목적은 ‘차원문’을 닫아서 저쪽 세계와의 연결을 끊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악마는 지구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무의미한 짓이었고 결국 지구 어딘가에 또다른 ‘차원문’이 있을 수도 있었기에 우리는 차원문 폐쇄를 그만두었다.

대신, 백소휘에게 부탁해 악마의 목을 침으로써 지구의 혼란을 잠식하였다.

“······또다른 문이 있다면, 언젠가는 발견될 수도 있다는 소리겠구나.”

“그렇죠. 아마, 아무나 쉽게 통과하지는 못하겠지만요. ···아마, 거의 갈 수 없다고 보는 게 좋을 겁니다.”

누님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고향이나 다름없던 그곳은 현재 악마들의 출현으로 인해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황. 그러나, 우리가 그곳을 정리해줄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악마에게 대항하는 협객의 이야기’는 주인공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일전에 멸망한 세계에서도 느꼈지만, 주인공이 아닌 나 따위가 주인공만이 대적할 수 있는 존재에게 대적했다가는 정말 말 그대로 소리소문조차 없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므로 어지간해선 조용히 지나치는 편이 낫다. 어차피 알아서 해결 될 일들이니까.

나는 ‘개연성’이라는 존재를 포함하여 앞으로 무림이 차차 나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걱정을 전혀 할 필요가 없다고.

“그래. 이제 저쪽 세상에 미련은 없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윽고는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조금 더 현실에 집중할 수 있겠구나.”

*

악마가 쓰러진 뒤, 역병처럼 떠돌던 ‘감정 융화 현상’이 완전히 사라지자 세상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듯했다. 그 과정에서 유난히 화제가 되는 국가나 단체가 있기는 있었다.

국가 재난 사태에 제때 대응에 성공한 대한민국 정부가 전 세계에 위상을 널리 알렸으며, 혼란 속에서 오히려 더 혼란을 가중한 중국은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일본은 리더의 무능력함을 이번 기회에 증명하고서 아예 물러났고, 미국은 이기적인 유동 통제로 인하여 욕을 조금 먹었다.

하지만, 특출나게 망가진 국가는 없었다. 이미 수십 년 전에 발생한 ‘대전쟁’으로 인해 지구 대부분의 국가들은 미지의 비상 사태에 대한 대처를 능동적으로 할 줄 알게 되었으니까.

[모리안 길드의 몰락······ 지구상 첫 번째 마법사 길드가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가?]

모리안 길드 최고의 마녀이자 최초로 마법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었던 에이번은 현재 특수 능력자 감금실에 구형되어 있었다. 마력을 사용할 수 없도록 어나더 리그에서 특수 제작한 구속구까지 찬 상태로.

그와 반대로 악마를 밝혀내고, 심지어 쓰러뜨리기까지 한 예카테리나 덕분에(오해였지만) 어나더 리그의 주가는 급상승하였다.

그런 이유로 예카테리나는 매일같이 뉴스를 보며 콧노래를 불러댔는데, 어나더 리그의 위세가 상승했다거나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없이 ‘에이번’과 관련된 기사만 쳐다보는 게 그녀의 몰락이 썩 기분 좋았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서담님.”

“왜.”

예카테리나의 사무실(원래는 유서담의 사무실이었다) 옆에는 유서담의 책상이 하나 더 있었는데, 지구에서 체류할 때는 같은 공간에서 업무를 보는 편이었다. 노트북으로 머리를 쥐어짜며 무언가를 하고있는 그에게 예카테리나가 물었다.

“그 악마는 대체 어떻게 쓰러뜨리신 거예요? 일단 제가 한 건 아니니까요.”

“어, 그거. 내가 안 했어. 살인청부를 부탁했거든.”

“···네?”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악마는 평범한 인간의 힘으로 죽일 수는 없거든.”

“그런···가요?”

그 말에 잠시 고민하던 예카테리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아주, 아주아주 만약에 훗날 악마가 또 등장하면······. 지금과 같은 혼란이 또 초래할 수도 있다는 건가요?”

그에, 유서담 역시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겠지.”

비록 공포와 분노를 다루던 그 악마는 죽어서 없다. 또한 무림의 악마들은 지금쯤 백소휘가 소탕하고 있을 터.

하지만 이미 지구에 아주 진한 ‘악마의 흔적’이 남아버렸고, 그 냄새를 맡은 또다른 세계의 악마가 얼마든지 처들어올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을 과연 믿어도 좋은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차원 이동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흔하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유서담으로서는 상당히 걱정해야만 하는 문제였다.

전 세계 사람들은 예카테리나가 과학과는 또다른 마법의 어떠한 지식으로 악마를 쓰러뜨렸다고 알고 있지만, 결국 마법으로도 악마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도, 이번 일 덕분에 전 세계가 마법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 같아요.”

마법의 필요성이란, 마법을 터득하여 강한 힘을 구축할 필요성이 아닌 마법이라는 학문을 알고 그에 대비할 방법의 필요성을 의미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미지의 존재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

“그래서 지금 ‘마법 학교’ 설립에 대한 지원이 들어오고 있어요. 뭐··· 애당초 계획은 조그만 중학교 수준으로 하나 만들 생각이었는데······.”

예카테리나가 자신의 모니터에서 파일을 드래그하자, 유서담의 모니터로 자료가 이동되었다. 그는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본 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중학교 수준이 아니라, 거의 서울에 있는 대학 수준인데?”

“네. 그것도 전 세계에 일곱 개 정도를 세울 거 같아요.”

학교의 이름은 ‘어나더 리그 마법 대학’.

서울 캠퍼스를 시작으로, 세계 각국 주요 도시에 설립될 예정이라고 하니 이번 프로젝트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감히 상상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안 그래도, 이거 때문에 인원을 조금 더 보충하려구요. 게다가 전문적으로 마법을 가르칠 정도의 교수가 나오려면 최소한 5년에서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전까지는 저랑 서담님이 가르쳐야 해요.”

“······뭐? 내가?”

“네. 어쩔 수 없어요. 인원이 부족하거든요.”

“그, 학교는 언제 설립되는데?”

“으음. 아직은 설계도를 짜맞추고 있는 정도의 단계에요. 전 세계 일곱 개 캠퍼스의 모든 건축물 구조를 똑같이 맞추려고 계획 중인데, 괜찮지 않나요? 심지어 벽에 쓰인 글자도 전부 맞출 거예요.”

서담은 식은땀을 흘렸다. 유서담은 분명 머릿속에 방대한 마법적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도서관’의 형태로 보관되어 있었기에 그건 완전히 그의 지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예카테리나는 유서담이 그곳의 마법을 대부분 익히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돌겠네······.’

그래도 지금 당장 하는 건 아니라니까, 다행이다.

이후로 예카테리나는 업무에 집중하려는지 말이 없어졌고, 서담은 모니터를 빤히 바라보며 길드에 대해 생각했다.

애당초 길드를 설립하고,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는 건 원하지 않았다. 또한, 이렇게까지 정을 두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헬 게이트로 들어가기 위한 동료를 모집하고 싶었을 뿐인데.

창밖을 내다보자 어느덧 어엿한 무림인이 된 검술계의 달인들이 경공을 활용하여 펄펄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저 멀리 연구소에서는 마법사 연구원들이 마법이라는 미지의 학문을 현대적으로 분석하고 있을 터였고, 정령들은 이쪽 세상의 활기를 완전히 되찾고서는 식물에다가 자손을 꽃피우는 일종의 ‘번식’을 하고 있었다.

어나더 리그의 덩치가 점점 커진다.

그렇다면 ‘헬 게이트’라는 인생의 최종 목표와의 거리는 얼마나 가까워졌는가.

훗날, 자신은 저들을 모두 헬 게이트라는 사지로 집어넣을 수 있겠는가.

‘······모르겠다.’

사실, 처음부터 불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자신과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헬 게이트라는 미지의 장소를 파헤쳐서, 종착역에 도달하는 그 순간만을 매일 꿈꿔왔지만.

SS랭크의 헌터조차 살아남기에 급급한 그 장소에 과연 누가 함께하겠는가?

당장 유서담 본인만 해도 S랭크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그곳에서 안전하기 위해서는 설중연이나 테일러 나인 정도의 힘이 필요할 터인데······ 그는 결코 그런 위험한 사지로 그녀들을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나더 리그를 설립한 이후로.

‘차라리 혼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그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헬 게이트 내부는 제대로 밝혀진 게 없었고, 공간이 항상 뒤죽박죽으로 뒤틀리는지라 지도조차 만들 수 없었다. 그곳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실 괴수가 아니었다. 꿈도 희망도 없는 공간에서 끊임없이 깎이고 마모되어가는 자신의 감정을 버틸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는 헬 게이트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난데없이 벽에서 사람의 얼굴을 한 형상이 튀어나와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질 않나, 하늘 전체가 일그러지더니 기괴한 눈동자의 형태로 변하여 하루종일 자신을 노려보았고, 죽은 줄 알았던 동료의 신기루가 자꾸만 멀리서 자신에게 손짓을 하는데.

제정신 멀쩡히 서있을 수 있겠는가.

실제로, 당시 원정대의 절반 이상은 자살을 택했다. 그리고 또다른 절반은, 타살로 인하여 죽었다. 괴수에게 죽은 사망자의 비율은 20%가 채 안 된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살아나온 생존자들은 그저, 그저······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을 뿐이다.

그런 정신적인 문제를 넘어서더라도, 결국 괴수 또한 헬 게이트의 진입을 가로막는 큰 장벽이 되었다. 헬 게이트 내부의 괴수들은 지구에서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상식이 거의 통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마치, 이세계에서 온 것처럼.

‘잠깐.’

그러고 보니, 헬 게이트 물질에서 개화한 생명체가 자신의 곁에 하나 더 있지 않던가? 비록 헬 게이트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듯싶지만, 화분 역시 어쨌든 그곳에서 태어났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여태까지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었던 부분인데······.

‘······어째서, 화분에 대한 정보가 백색 마녀의 도서관에 적혀있던 거지?’

따지고 보면 ‘은빛 정령의 꽃’이라는 명칭도 결국은 백색 마녀의 도서관에 기록되어 있던 이름이다. 그러니까, ‘다른 세계의 마녀’가 기록한 생명체가 지구의 헬 게이트에서 발견되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왜?

‘뭔가······.’

뭔가, 이상하다. 애초에 ‘지구의’ 헬 게이트라는 표현이 맞기는 한 걸까? 그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려는 순간.

“됐어요!”

예카테리나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깜짝이야. 뭐가 됐다는 건데?”

“당장 학교를 세울 수는 없지만, 저희가 어떤 방식으로 강의를 하는지 커리어를 보여줘야 많은 학생들이 입학하겠죠?”

“어, 그렇긴 하지···?”

“그래서 한 두어 달 뒤에 임시로 호텔을 빌리기로 했어요. 서담님이랑 제가, 실제 10대에서 20대 학생들을 초청해서 강의할 수 있도록.”

“···엥?”

잠깐, 유서담이 무어라 말을 하려는데 예카테리나가 책자 하나를 넘기며 말했다.

“저보다는 서담님이 마법에 더 능통하시니까, 임시 교재 제작 좀 부탁 드릴게요? 아, 저는 회의가 있어서 이만 일어날게요.”

“······.”

망했다.

유서담은 그리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 현대의 마법사 아카데미(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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