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74화 (174/251)

< 현대의 마법사 아카데미(1) >

한편, 지구에서는 여전히 ‘악마’라는 불가사의한 존재로 인한 소동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초인들의 강건한 육체나 하이 테크놀로지의 위대한 과학 문명으로 만들어진 보호막조차도 ‘감정’에 의한 공격을 막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 어나더 리그 길드에서 발표한 ‘감정 보호법’이 세상에 널리 퍼지면서 정신력이 강한 초능력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은 언제 악마에게 노출될까 두려움에 떨며 살아가야만 했다.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발발했을 때보다도 더욱 비상사태가 되어, 거리에서 사람을 찾아보기란 힘들었으며 대부분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호신용 전기충격기나 가스 등을 들고 다녔고 서로를 경계하였다.

또한 어떤 회사는 아예 출근하지 않은 채 자택에서 업무를 보도록 지시하였으며,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고서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악마의 공격이 언제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돌아다니다가는 스스로의 감정을 조종당하게 되거나 혹은 감정을 잃은 타인에 의해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예카테리나는 악마에 대해 여러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악마가 해당 지역에서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빙의체’가 해당 장소에 존재해야만 한다.

두 번째, 빙의체의 움직임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편이며, 세간에 얼굴이 잘 알려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 70억 인구 중에서 과연 누가 악마와 계약을 하였는가. 어찌 보면 찾기 힘들어 보이지만, 예카테리나는 ‘마녀’가 악마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중점으로 하여 추적을 들어갔고, 그 결과 용의자를 단 한 명으로 좁힐 수 있었다.

‘모리안 길드의 에이번······.’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예언자’였던 자신을 감금하였던 그 마녀. 러시아 최대 규모의 길드 ‘모리안’의 수장이자, 세계에서 첫 번째로 모습을 드러낸 마법사.

그녀의 행적이, 악마의 출현지와 상당히 일치하였다.

에이번은 에이번 나름대로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한 모양이었지만, 어나더 리그와 신 무림맹의 정보력은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밀항이든 밀입국이든 어떤 방법을 썼든 간에 모든 행적을 알아낼 수 있었다.

예카테리나는 에이번이 악마의 빙의체거나 혹은 그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영혼감별을 사용하기만 한다면, 그 정체를 전 세계에 드러낼 수도 있을 터.

‘하지만 어떻게?’

다짜고짜 러시아 최고 길드의 수장에게 영혼감별을 사용하는 건 엄청난 모욕일 뿐더러, 당연히 ‘명예 훼손’을 빌미로 삼아 거절할 게 뻔하다. 애초에 예카테리나에게 악마의 빙의체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 이상 에이번은 최대한 어나더 리그와의 만남을 거절하려고 들 터.

그러나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악마가 아닌, 다른 미끼로 유혹하면 되지 않는가?’

그 미끼는 다름 아닌 ‘마법’.

지구 마법의 총수라고도 할 수 있는 예카테리나는 사실상 마법에 관해서는 타협이 필요없는 권력과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의 말은 곧 법이 된다.

그리하여, 예카테리나는 ‘마법사 총회’라는 것을 모집하기로 하였다.

마법사 집단이라고 해봐야 지금 당장은 모리안 길드와 어나더 리그밖에는 없지만······.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최고의 마법사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거기에 예카테리나는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유명인사(슈퍼스타, 세계적인 배우나 정치인, 공화국의 대통령이나 거대 길드의 마스터 등)들을 대거 초대하였다. 이제, 어나더 리그는 그런 것이 가능한 수준까지 성장한 것이다.

비록 이 모임의 당초 목적은 에이번을 끌어들이기 위함이었으나······ 어쩐지 어나더 리그의 힘을 직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던 예카테리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후우······.”

예카테리나는 자신의 머리칼은 닮은 백색의 정장을 입고서 대기실에 앉아 거울을 쳐다보았다. 거울 속 자신은 긴장한 듯 한숨을 푹 내쉬고 있다.

이곳에는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 계획으로 인해 모인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그것도 한 명 한 명이 모두 전 세계에서 힘 꽤나 쓴다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니,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준비되셨습니까? 예카테리나 사장님.”

한국인 여성 스태프가 와서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 총회는 대한민국에서 열린다. 어나더 리그가 대한민국에 있었기 때문이며, 예카테리나는 이 점을 합의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모리안의 에이번은 이 총회의 규모를 생각해서라도 반드시 대한민국으로 와야만 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단 두 개의 마법사 길드밖에 없지만······ 먼 훗날 이 마법사 총회에는 수많은 마법사들이 참여하게 될 터. 그 역사적인 첫 총회에 에이번 길드가 참여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마법사라는 자부심 하나로 살아가는 그들이었으니까.

내가 맡은 일은 아주 중대하다. 예카테리나는 그리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유서담은 자신에게 악마의 빙의체를 잡아둘 것을 부탁하며 이계로 떠났다. 타국에 발을 딛는 것조차 긴장되는데, 그는 무려 직접 악마의 본체와 대면하기 위해 타계(他界)로 떠났다. 그가 짊어지고 있을 그 육중한 책임감에 비하면야, 자신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사람을 조금 많이 만날 뿐이었으니까.

“······갑시다.”

그녀는 어깨를 당당히 펴고, 고개를 치켜들고서, 비록 시력은 없지만 그 무엇보다도 맑은 눈동자로 세상을 바라보며 회의장으로 걸어 나갔다.

전 세계 각국의 방송사 마크가 새겨진 수십 대의 카메라가 동시에 예카테리나의 얼굴을 비추었다.

“반갑습니다. 어나더 리그의 마법사, 예카테리나입니다.”

대외적인 장소에서는 언제나 그랬듯, 그녀는 싸늘한 표정을 고수하였다. 좌중을 슬쩍 둘러본 뒤, 가장 끝에 앉아있는 에이번에게 시선을 둔다. 그녀는 이 자리가 썩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를 만든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마법’이라는 학문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전 세계에 퍼뜨리기 위함입니다. 현재까지도 괴수에 대항할 힘이 부족하여 매일 수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보라서 마법을 익히지 못했을까요? 아닙니다. 마법이라는 이능력을 접할 기회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마법은 인터넷과 포털 사이트 등에 ‘일부’ 공개되어 있었고, 유서담 또한 그것을 허락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국가에서는 마법을 접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저는 마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의 장소를 만들 생각입니다. 가장 먼저, 마법사라는 직업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고 또한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장소인 ‘마탑’과 학생들이 마법에 대한 꿈을 펼쳐나갈 수 있는 ‘마법 학교’에 대한 계획입니다.”

사실 마탑은 현재 설립을 진행 중이었지만, 마법 학교까지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그냥 이 자리를 만들기 위한 구실이었을 뿐이다. 애초에 학교 내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을 것이고, 지원자는 넘쳐날 텐데 그들을 하나하나 받아들이는 것도 일이다.

“마법 학교라고?”

“드디어······.”

“마법사라는 직업을 공식적으로······!”

그녀의 발언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마법을 대외적으로 공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그 배움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고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어나더 리그에 반드시 가입을 해야만 했기 때문.

하지만, ‘마법 학교’가 설립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나더 리그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마법을 배울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졸업한 뒤 ‘어나더 리그 마탑’이나 ‘어나더 리그 연구소’라던가 ‘어나더 리그 에이전시’ 등에서 몇 년 동안 근무를 할 것이라는 조건이 붙기야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디인가?

‘이건, 그냥 미끼였는데······.’

별생각 없이 던진 화두에 사람들이 격한 반응을 보이자 예카테리나는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갈 예정이었는데, 생각보다 이쪽에 더 이목이 집중되자 오히려 곤란해졌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당장 모두가 귀를 열 수밖에 없는 화젯거리를 꺼내 들었다.

“···또한, 마법으로 ‘악마’라는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 대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제가 공개한 바가 있을 겁니다.”

악마. 현재 지구에서 최악으로 꼽히는 정체불명의 괴수. 형태도 없고, 공격 방식도 불투명하여 대응법이라고는 오로지 어나더 리그에서 공개한 혼령술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전적으로 예카테리나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혼령술은 마법과는 거리가 굉장히 멀었으나, 현대인들은 그러한 사실을 알 도리가 없었기에 속을 수밖에 없다.

“마법을 보편화하려는 이유 중 또 하나로는, 바로 이 악마의 존재 때문입니다. 악마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마법이 반드시 필요하니까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어째서 마법은 악마에게 대항할 수 있는 겁니까?”

“그건······ 마법사가 악마를 소환했기 때문입니다.”

마법사와 악마는 전혀 관계가 없다. 둘은 접점도 없고, 기술적으로도 서로가 상극이다. 하지만 예카테리나는 그런 거짓말을 하였고, 좌중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마법 학교 때보다도 더한 혼란이 찾아온 것이다.

“마, 마법사가 그런 짓을······?”

“···일리가 있는 말이로군요. 마법사만이 악마를 소환할 수 있다면, 마법으로 악마에 대항할 수 있다는 점이 설명됩니다.”

“하지만 그럼 누가, 대체 왜 그런 일을 벌였단 말입니까?”

슬슬 이야기가 계획대로 전개된다. 에이번은 그제야 예카테리나의 의중을 알아채고서는 표정을 굳혔다.

“······아마도, 마법의 중요성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말에 모두가 충격에 빠진 듯, 이번에는 아예 웅성거림이 잦아들고 말았다.

여기서부터 어떠한 시나리오가 그려진다.

마법은 분명 대단한 학문이고, 원체 주목을 많이 받고 있었다. 그 예시로 예카테리나라는 지구 최고의 마법사가 소속된 어나더 리그는 연일 승승장구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지 못한 마법사 길드가 또 하나 존재한다.

모리안 길드.

그들은 역시도 마법사가 다수 모여있는 길드였는데, 기술력의 차이로 인해 주목을 전혀 받고 있지 못했던 것. 날이 갈수록 어나더 리그의 마법에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니, 모리안 길드는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악마를 소환하였다. 오로지 자신들만이 그에 대항할 방법을 알기 때문에, 현대인들이 자신들에게 의지할 것이라 생각하고서.

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어나더 리그에서 대응법을 공개하는 바람에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라는 내용의 이야기.

물론, 전부 소설이다. 증거도 없다. 하지만 여기서 예카테리나는 본인 스스로도 용의 선상에 들어감으로써, ‘마법사’가 악마를 소환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구상에 또다른 마법사 집단은, 저희 모리안 길드밖에 없습니다. 지금 저희를 음해하시려는 겁니까?”

“아뇨.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그 말대로라면, 어나더 리그도 의심스럽군요. 애초에 저희를 묻어버리기 위해 악마를 소환한 뒤 그런 여론을 조작한 것 아닙니까?”

“네. 그럴 수도 있겠지요.”

예카테리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법사들에게 ‘심령 감별’을 할 생각입니다. 물론 저를 포함해서요.”

“···심령, 감별?”

“예. 일전에 공개했던, ‘영혼의 개수’를 확인하는 혼령술보다도 더 정확한 판별법이죠. 대상의 육체 내에 존재하는 영혼을 형상화하여 보여줍니다.”

만약 A라는 사람에게 심령 감별을 사용할 경우, A라는 사람과 똑닮은 영혼이 보여진다. 그런 간단한 기술이었지만 만약 악마의 빙의체에게 이것을 사용한다면?

에이번의 표정이 점점 더 구겨졌다. 좋지 않다. 만약, 이 자리에서 저걸 사용했다가는······ 정말로 정체를 들킬 가능성이 높았다.

‘이봐, 악마. 무슨 방법 없나?’

‘······.’

게다가, 언제든 부르기만 하면 대답을 해주던 ‘악마’조차도 갑작스레 침묵을 해버린 상황.

“···그런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지금 저희더러 믿으란 말입니까?”

“검증되지 않았다니요. 실제로 저희 마법은 악마에게 대항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발언을 해보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예카테리나의 말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분위기를 완전히 휘어잡은 것이다. 실제로 에이번이 범인이라는 심증은 있었으나 증거는 단 하나도 없었고, 예카테리나의 말은 99%가 거짓이었지만······ 이렇듯 분위기가 조성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심령 감별’을 해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 이상 지체하지 않겠다는 듯 예카테리나가 일어서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예사혜와 또다른 마법사 한 명이 나왔다. 그러고선 예카테리나의 양옆에 서서 손을 뻗으니, 기묘한 마법진이 생성되어 발밑에 가라앉았다.

우우웅···!!

이윽고, 예카테리나의 몸에서 새하얀 원피스 한 장을 입은, 반투명한 영혼이 빠져나왔다. 눈을 꼭 감고있는데다가 허공을 자연스럽게 부유하는 저 모습은 정말로 ‘영혼’ 그 자체였기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다음으로는, 모리안의 에이번. 당신입니다.”

“크···.”

곤란하다.

정말로 곤란하다.

예사혜와 마법사가 서서히 다가오자 에이번은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눈알을 굴렸지만, 방도가 없었다. 애초에, 언론은 예카테리나의 편을 들어주고 있었기에 그 어떤 변명도 소용이 없다.

‘이대로는······.’

에이번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S랭크의 헌터들과 무림맹에서 파견나온 무림인들까지 즐비한 이곳에서 도망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고, 저 심령 감별을 받는 순간 자신의 정체가 들통나고 만다.

식은땀이 주륵, 흐른다.

그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체포될 수는 없어!’

하는 수 없이.

고개를 치켜든 에이번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기이한 행동에 S랭크 헌터들이 달려들기도 전, 찰나의 순간.

콰아아아앙-!!

에이번의 몸이 부풀어 오르더니, 지반과 천장을 박살내며 순식간에 ‘거대한 형상’을 이루었다.

“으윽!”

“뭐, 뭐야!”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 헌터들은 잽싸게 뒤로 물러서서 주요인물들을 보호하였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저···건······?”

“···악마라고?”

뚫린 천장 사이로 태양빛이 스며들기도 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마치 해골의 형상을 한 그것은 온통 붉은색을 띄고 있었으며 톱을 닮은 커다란 뿔이 흉악하게 달려있었다.

말 그대로 ‘공포’를 유발하는, 압도적인 존재감.

혼령술을 어느 정도 보고 배운 S랭크의 헌터들조차 그것을 눈앞에서 목도하자 바닥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예카테리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 떻게······!’

분명 저 ‘악마’는 당분간 현신을 못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남아공에 악마가 출현했을 당시 터져나온 ‘에너지 파장’을 분석한 결과,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검출되었기 때문. 분명 그 정도의 에너지를 다시 모으기 위해서는 최소 몇 년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쿵!

그것이 가볍게 발을 비틀자, 건물이 통째로 쓸려나갔다. 누구도 움직일 수 없었다. 지독하리만치 선명한 ‘공포’의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있는 용감한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악마가 입을 열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나의 목소리가 아닌, 두 개의 목소리였다.

-“여전히 건방지구나, 예카테리나. 그래, 예전부터 너는 이런 쓸데없는 꿍꿍이를 좋아했지.”

“으···.”

-“하지만······ 기억못하는 거니? 네 꿍꿍이는 언제나 나로 인해 무너졌다는 것을.”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눈물이 고이고, 손끝이 덜덜 떨리고, 입술이 움직이질 않아서 마법조차 사용할 수 없었다. 분명 혼령술을 통해 영혼과 감정을 보호하는 배리어를 쳐두었음에도, 악마의 본체가 등장하는 순간 그런 꼼수는 아무짝에도 효과가 없었다.

-“옛날 생각 나는구나, 예카테리나. 너를 보호해주고 보살펴준 은혜를 배은망덕하게도 원수로 갚으려 하다니. ‘나쁜 아이는 벌을 받아야지?’”

그것은, 감금당하던 시절 몇십 년 동안이나 줄곧 예카테리나가 들어왔던 말. 저 말이 떨어진 이후에는, 언제나 가혹한 체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PTSD를 자극하는 말 한 마디에 예카테리나는 결국 완전히 무너져내려, 저항의 의지조차 상실하였고.

-“그럼, 돌아가자꾸나.”

그런 그녀를 향해, 악마가 새빨간 손을 뻗어 움켜쥐었다.

정확히는, 움켜쥐려고 했다.

-“···어?”

화르륵!

갑작스레, 악마의 몸에 불이 붙었다. 발끝과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그 불꽃은 순식간에 그 몸체를 집어 삼키기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그것조차 악마의 기술이라 생각하여 지레 겁을 먹었던 몇몇 헌터들이 이상함을 느끼고서 고개를 들었다.

자신들에게 간섭하던 ‘감정’의 힘이 약해진 것이다!

-“으, 크으윽?! 뭐, 뭐야! 대체 뭐야! 이봐, 악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대답해! 대답하라고!”

온몸에 불이 붙은 채, 괴로움에 몸서리치며 에이번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으나 여전히 대답을 돌아오지 않았다. 자신에게 악마의 힘을 빌려주었던, 그리하여 이 힘으로 향후 세계를 발밑에 두겠노라 논의하였던 그 이성적인 악마의 존재감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예···카테리나! 대체 무슨 짓을······!”

당황스러운 건 예카테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아무것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 오히려 겁에 질린 채 고개를 들지도 못하지 않았는가?

그러다 뒤늦게, 그녀는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고선 있는 힘껏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쳤다.

“악마가 약화되었습니다! 이제 아무것도 못하니까, 어서 제압해주세요!”

그러자, 헌터들의 격렬한 호응이 돌아왔다.

“마, 마법사 예카테리나께서 악마를 제압하셨다!”

“지금이야! 힘이 약해졌을 때 대가리를 박살내버려!”

“죽어라 이 개자식아!”

높으신 분들이 모여있는 탓에 고급스러운 어휘가 돌아다니던 현장에는, 이제 헌터들의 거친 언사가 사운드를 가득 채웠다. 여태까지는 전혀 물리적 타격이 통하지 않았거늘, 이제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 악마를 보며 예카테리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악마를 약화하여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구했을 누군가를 떠올리며 미소지었다.

< 현대의 마법사 아카데미(1) > 끝

1